136. 로메른의 특별한 소원
‘그러고 보니, 너에 관해서 아는 게 없네.’
로메른이 처음으로 소환한 정령인데도 진은 로메른에 관해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진이 알고 있는 거라곤.
[난 어둠의 지배자이며, 모든 흑마법의 주인이며, 너의 절망이다!]
‘흑마법의 대가’라는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안하진 않았다.
[사내놈들끼리 과거 이야기를 왜 하냐.]
‘하긴 그것도 그렇지?’
로메른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고, 진도 별 관심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진은 로메른에 관해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부탁이 뭐야?’
덕분에 어떤 부탁이 나올지 전혀 예상되지 않았다. 한데, 녀석의 입에선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왔다.
[네가 알고 있듯이 난 ‘천재’야. 그것도 격이 다른 ‘천재’.]
갑자기 자기 자랑이라니?
진은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로메른은 진의 반응을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설명을 이어 갔다.
[그래서 난 저 모지리들과는 다르게, 후회나 아쉬움 따윈 전혀 없어. 난 내 인생에 최선을 다했으니까.]
‘전혀 없다고?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나 뭐 그런 것도?’
[전혀 없어. 난 어렸을 때부터 절대자가 될 때까지 철저히 혼자였으니까.]
그 인생이 어땠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지만, 진이 신경 쓸 건 아니었다.
지금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로메른의 과거가 아니었다.
‘그럼, 부탁이 좀 다르겠네?’
어떤 부탁을 할지가 중요할 뿐.
‘일단, 들어나 보자. 대체 뭘 하고 싶은 건데?’
[내 인생에 유일한 후회가 하나 있어.]
후회나 아쉬움은 없다더니, 녀석의 목소리에선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
한데, 좀 이상한 점도 있었다. 아쉬움과 함께 분노가 함께 묻어 있었다.
[저 모지리들 때문에! 연구도 끝냈고, 실행만 남았는데 못했다니까!? 야! 니들 왜 다 모른 척하고 있어! 너희들 때문이잖아!]
진이 다른 정령들을 바라보자, 녀석들이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허허. 세상을 구하는 일에 매진한 것이니…….]
[맞아요. 그 상황에 할 만한 연구는 아니었잖아요.]
-……솔직히 비효율의 극치잖아 그거.
정령들은 그게 뭔지 다들 알고 있는 눈치였다.
[너희 때문에 완성도 못했는데, 비효율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데?!]
-그건…….
현자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로메른은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내 연구 폐기하고, 니들이 재료 다 들고 간 거 모를 줄 알았어!? 이 금수 같은 놈들아!]
-멸망을 막기 위해서 어쩔 수…….
[그래서 그때 아무 말 안 한 거야.]
현자의 작은 반발이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로메른은 알고 있었다.
-……알겠어. 이번엔 방해하지 않을게.
이쯤 되니, 진이 더 궁금할 지경이었다.
‘대체 뭘 하려는 건데?’
[흑마법의 극의 하면 떠오르는 게 있지 않아?]
‘데스나이트?’
진이 알기론 데스나이트가 바로 흑마법의 극의였다.
흑색 마탑에서도 딱 한 기밖에 존재하지 않는 최상급 언데드가 바로 데스나이트였으니까.
[데스나이트는 회귀 전에도 수십 기 보유하고 있었어. 회귀 후에는 네가 있으니까 데스나이트 만들 생각도 안 했어.]
‘나?’
진은 자신과 데스나이트가 무슨 상관인가 싶었는데.
[네가 바로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데스나이트야. 죽지도 않았고, 살아 있는데 완벽한 육체. 데스나이트를 뛰어넘는 이상적인 그 무언가가 바로 너야.]
‘……어. 음.’
칭찬인 거 같은데, 뭔가 칭찬이 아닌 기분에 진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정말이지 흑마법사의 뇌 구조는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그럼 대체 뭐가 후회되는 거야?’
로메른은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본 드래곤. 솔직히 흑마법사의 정점인데, 이건 만들어 봐야 하잖아?]
본 드래곤.
죽은 드래곤을 언데드로 만드는 ‘전설’이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존재.
‘가능해?’
[왜? 너도 이게 쓸데없다고 생각해?]
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너 설마…… 내 꿈을 이해해 주는 거야?]
‘당연하지! 개쩐다. 이거 당장 하자!’
[역시, 넌 좋은 녀석이야.]
본 드래곤. 이건 못 참지!
뜨거운 열정을 내뿜고 있는 둘을 지켜보던 정령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체 그게 뭐가 좋은 거야? 들어가는 자원을 생각하면…….
[허허. 당최 이해할 수가 없군. 그저 커다란 시체일 뿐인데.]
[가끔 보면 둘은 정말 애 같네요.]
-그게 정답이네. 진짜 애들이네. 애들이야.
그 말을 들은 진이 녀석들을 보며 소리쳤다.
‘이 로망도 없는 것들아!’
[옳소-! 로망도 없는 삭막한 것들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로메른의 부탁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 * *
진은 곧장 왕국 수도에 있는 흑색 마탑 본점으로 향했다. 한데, 이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대접을 받았다.
“진 세인트 남작님 맞으십니까?”
“예. 맞습니다.”
“VVIP 등급이 확인되었습니다.”
“……예?”
진과 흑색 마탑은 좋은 관계지만, 그렇다고 VVIP 등급이 될 정도로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
“제가 VVIP라고요?”
“예. 세인트 남작님.”
“어째선가요? 흑색 마탑 본점의 VVIP가 될 정도의 일은 한 적이 없는데요.”
그 이유는 다른 이에게 들을 수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세인트 남작님.”
“어? 지부장님?”
“밀튼 자작령에선 저희가 세인트 남작님에게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밀튼 자작령.
향락의 도시 카베마스.
처음으로 지식의 해방을 발견하고, 그 꼬리를 잡았던 곳.
그곳의 흑색 마탑 지부장이 진을 맞이했다.
“아닙니다. 그때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셔서 일이 잘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이곳엔 어떻게…….”
그는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세인트 남작님 덕분에 출세했습니다.”
“……예?”
“내부 감사팀으로 이동했습니다. 혹시 모를 지식의 해방에 가담한 흑마법사를 찾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닙니다. 사실 그때 진 세인트님이 아니었다면, 출세가 아니라 축출당했을 겁니다.”
그는 진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표정엔 호감이 가득했다.
“그럼 제가 VVIP인 건 지부장님께서 해 주신 겁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이번에도 도움을 받게 되어 VVIP로 선정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도움이요?”
아무리 생각해도 흑색 마탑 쪽에 도움을 준 게 없었다.
“하하. 직접적으로 저희를 도와주신 건 아니지만, 큰 도움이 됐기에 선정되신 거라 모르실 겁니다.”
그는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진이 VVIP 된 이유는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희 흑색 마탑은 약간의 편견을 달고 삽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부의 배신자는 치명적이었습니다.”
주류 학문이라곤 해도, 흑마법이란 꺼림칙함은 어쩔 수 없었다. 심지어 배신자까지 나온 상황이니 흑색 마탑에선 곤란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남작님께서 마탑 쪽에 숨은 첩자를 잡아 주신 겁니다.”
이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가 됐다.
마탑에서도 첩자가 나온 상황이니, 흑색 마탑을 향하던 부정적인 시선이 한결 수그러들었을 터.
‘……이건 생각도 못 했는데?’
[나도야. VVIP까지 해 줄 줄이야. 짠돌이 늙은이들이 웬일이야?]
‘3류 엑스트라치고, 너무 도움이 됐는데?’
베릴 조교수는 VVIP등급을 남겼다.
“그저 제 일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대접해 주시니 조금 얼떨떨한 기분입니다.”
“하하. 저희가 세인트 남작님 덕에 얼마나 상황이 좋아졌는지 모르셔서 그렇습니다.”
“다행입니다. 구하려던 물건이 좀 많아서 협조를 요청할 생각이었는데, VVIP라면 괜찮겠네요.”
진의 말에 지부장의 눈이 반짝였다.
“제가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조금 과한 도움이라고 생각했는데, 로메른이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신경 쓸 필요 없어. 물품 판매는 직책을 떠나서 실적에 포함돼. 오히려 많이 사면 살수록 저 양반한테 좋은 일이야. 그냥 맘껏 부탁하면 돼.]
그렇다면 사양할 필요 없었다.
“흑색 마탑에서 보유하고 있는 모든 뼈를 구매하고 싶습니다.”
“……예?”
“아. VVIP도 수량 제한이 있습니까?”
진의 질문에 그가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양이 꽤 많을 텐데.”
진은 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냈다.
“그럼, 이만큼만 양을 맞춰 주시면 됩니다.”
서류를 보는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렸다.
“……본점의 모든 뼈를 동원해도 턱없이 부족하겠군요.”
“아. 지부도 돌아다니며 구매할 생각인데, 그 준비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지불은 이곳에서 하고 가겠습니다.”
아마 이 정도 양이면 새로운 출셋길이 열리지 않을까?
“물론입니다! 잠시 앉아 계시겠습니까?”
그런 진의 생각이 맞았는지.
“우리 세인트 남작님께 차를 내와라! 최고급으로!”
그의 태도가 달라졌다.
진은 쇼파에 몸을 기대며, 기다렸다.
‘돈 벌어서 뭐 할 거야? 이럴 때 쓰는 거지.’
게다가, 그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았다.
“어딜 이런 쓰레기 같은 차를 우리 세인트 남작님께 드리려고! 탑주님이 드시는 차를 가져와라!”
“탑, 탑주님이 드시는 차 말입니까?”
“나와라! 내가 올라가 가져올 테니!”
구경할 거리는 주위에 가득했으니까.
* * *
돈은 위대했다.
왕국 각 지부에 흩어진 뼈를 모두 구매해서 가져오는 데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뭐, 이면 세계 도움이 크긴 했지만.’
아무튼 로메른이 원하던 양을 구매했다는 게 중요했다.
‘이러면 끝이야?’
[어. 뼈를 분해해서 이걸 드래곤 본으로 만들 거야.]
‘……그게 가능해?’
[뭐 어려운 일은 아니야. 드래곤 하트와 달리 드래곤 본은 제법 있는 편이라 분석은 회귀 전에 끝냈어. 일종의 인공 드래곤 본을 만드는 건데…….]
‘아무튼 된다는 거지?’
[그렇지! 돼!]
‘그럼, 내가 도와줄 건?’
[방해만 하지 마. 내게 시간과 루나, 검성만 빌려줘.]
‘혹시 필요한 재료 있으면, 마음껏 가져다 써.’
[알겠어!]
녀석은 다른 정령들을 데리고 곧장 산더미처럼 쌓인 뼈 쪽으로 날아갔다.
-……저게 뭐가 좋은 건지.
현자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모양인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넌 안 도와줘도 돼?’
-난 참여하지 않는 게 도와주는 거야. 서로 길이 달라서, 괜히 충돌만 해.
로메른이 괜히 현자를 빼놓고 간 게 아니었다.
‘잘됐네.’
-뭐가?
‘넌 없어? 소원 같은 거.’
-…….
진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지 녀석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거나 괜찮아. 들어줄게.’
-잘 모르겠어. 여태껏 내가 원한 건, 단 하나뿐이었어.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거?’
-어. 그것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버려도 아깝지 않았어.
녀석의 말에선 숭고함마저 느껴졌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모든 걸 버린 남자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진은 그저 다시 한번 되물었다.
‘진짜 없어? 거창하지 않아도 돼.’
한참을 고민하던 녀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
‘위험한 곳이야?’
-전혀.
그렇다면 마다할 필요 없었다.
‘다녀오자.’
-……고마워.
‘뭐가.’
-모든 게.
둘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