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마녀 해결
‘진짜 악취미라니까.’
진은 눈앞의 거대한 건물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대체 자기들을 봉인 했던 건물을 왜 다시 세운 거야?’
거대한 피라미드.
정령들이 마왕이 되며 무너졌던 그 거대 건축물이 다시 세워져 있었다.
‘뭐, 상징적인 의미라도 있는 거야?’
[얘들이 쓸 줄 아는 마법진이 힘이 고대 때 만들어진 것들이라 그래.]
‘……뭐?’
[저번에 말했듯 고대 쪽 힘은 삼각형이 필수야. 쉽게 말하면 효율적으로 힘을 사용하기엔 피라미드가 제격이란 소리야.]
뭔가 특별한 이유가 숨어 있나 했더니, 굉장히 현실적인 답변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 건물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대단하긴 해. 마왕에겐 악몽이나 다름없는 건물이잖아. 그걸 이겨 내고 다시 세운 거야. 네 말대로 나름의 의미도 있겠네.]
‘든든하네.’
과거의 트라우마도 이겨 내고, 미래를 위해 움직이는 마왕.
이름만 그렇지 굉장히 건실한 양반이었다.
‘그럼, 슬슬 들어가자.’
진은 천천히 피라미드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오. 응원하러 가는 거야?]
로메른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는데, 진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응원단장에 가깝긴 했다.
‘……마지막까지 확인하려고 가는 거야.’
[겸사겸사 응원도 하면서?]
‘……기왕이면 행운의 부적이라고 해 줄래?’
진은 그렇게 로메른과 투덕거리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 건물은 이면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공간이었다. 여긴 중앙 통제 센터 역할을 하는 건물이었다.
‘그런데 마왕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대단하네. 밖에서 보여 준 힘이 진짜 힘이 아니란 거지?’
[당연하지. 세계의 주인이잖아. 자칫 잘못하면 세계가 붕괴될 수도 있어.]
마왕의 힘 때문에 세상이 무너지지 않게 해 주며, 세상을 관리할 수도 있게 해 주는 공간이 바로 이 ‘피라미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은 마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대한 옥좌에 앉아 있는 마왕.
예전에 봤을 때와는 외형이 많이 변했다. 그때는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품격과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데려왔어.”
<앞에 내려놓고, 내 쪽으로 와라.>
진은 아기를 마왕 앞에 내려 둔 뒤, 곧장 마왕 옆으로 이동했다.
마왕은 그 아기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대는 정말이지 대단하다.>
“어? 갑자기?”
<발뺌하지 않아도 된다. 그대가 이곳에 오는 동안, 난 그대의 목적이 무엇인지 깨달았으니까.>
……어? 그런 게 있었나?
<그대가 날 살려 주고, 새로운 운명을 주었다. 거기에 이 세상에서라면 운명마저 거스를 거대한 힘까지 주었지.>
마왕은 은혜를 아는 녀석이었다.
진은 훈훈한 대화가 이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다음부터는 예상치 못한 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대는 내게 이러한 힘을 준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그 힘 때문에 내가 예전처럼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아니었다.
애초에 피라미드 안에서 생활하는 줄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마왕은 지 혼자 소설을 쓰고 있었다.
<난 갇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이면 세계 모든 곳을 볼 수 있으며, 자유로우니까. 그러니 그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걱정 안 했다.
뭐랄까, 이 친구는 추기경 영감님만큼이나 소설을 잘 쓰는 친구였다.
‘피라미드에서 오래 갇혀 있어서 상상력이 풍부한 건가?’
[……약간 맛이 간 걸 수도 있겠는데?]
마왕의 말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대가 준 기회는 고맙다.>
기회? 내가?
준 적 없다.
오히려 아기 문제를 짬 때렸을 뿐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여기서 되묻는 건 멍청한 짓이다.
“과연 마왕이야. 눈치챘구나?”
<……역시, 그대의 계획이었군.>
“어디까지 눈치챈 거야?”
자연스럽게 무슨 소설을 쓰고 있는지 마왕에게 물었다.
<그대가 나에게 자유를 줄 생각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제야, 진은 뭔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대는 내가 저 아이를 화신으로 삼길 원하겠지.>
마왕이 아기를 화신으로 삼으면 어떻게 될까?
간단하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아니. 문제가 해결되는 걸 넘어 생각지도 못한 도움까지 받을 수 있다.
<그대는 어디까지 자비로운 것인가. 나에게 이만한 자유를 주고도 부족하다고 생각한 건가?>
마왕이 이러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기를 화신으로 삼으면, 마왕은 아이의 몸에 강림할 수 있게 된다.
<내 자유를 이면 세계 밖까지 넓혀줄 생각이었다니. 난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그건 진이 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진은 프로다. 지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됐어. 공치사 같은 건 하지 마. 그저, 난 이 아이를 구하고 싶을 뿐이야. 애초에 마녀가 뭔지도 몰랐어.”
<하하. 그대는 정말이지…… 애초에 모든 걸 알고 내게 권했으면서 이리도 겸손하다니.>
이제 와 모른다고 해 봐야, 그건 겸손일 뿐이다. 마왕은 진이 의도한 대로 잘 오해해 주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그렇군. 서로의 의도를 알고 있으니, 더 대화하는 건 의미 없을 터. 행동으로 옮기겠다.>
마왕이 아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 * *
역시 짬 때리는 게 정답이었다.
마왕이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곧장 문제가 하나 터졌다.
[양막에 힘을 담아 놨을 줄이야.]
세상이 변해 운명과 저주의 업이 개입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저주의 업은 보험을 들어 놨다.
아기를 감싸고 있는 껍질(양막)에 저주의 힘이 잔뜩 담겨 있던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소용없다.>
운명이 아닌 ‘저주’의 힘은 세계의 주인인 마왕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튀어나왔던 저주는 마왕의 손짓에 다시 양막에 흡수되었다.
‘저거 잘못 건드렸으면…….’
[저주가 쏟아졌겠지.]
마왕에게 맡기지 않고, 진이 건드렸다면 큰 문제가 생겼을 게 분명했다.
마왕에게 무력할 뿐, 그 안에 담긴 저주는 치명적이었으니까.
<오라. 그대는 나의 화신이 된다. 새로운 운명을 받아들여라!>
마왕이 무언가를 할 때마다, 로메른은 그게 무엇인지 설명해 주었다.
[오. 저건 정령 계약과 악마의 계약서를 합친 거 같은데?]
‘계약?’
[어. 굉장히 영리한 방법이야. 계약 또한 운명에 버금가는 규칙이니까.]
‘……잠깐만, 계약은 상대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한 거 아니야?’
[아기와 계약하는 게 아니야.]
‘그럼?’
[이 세상의 운명과 계약하는 거지. 애초에 마녀로 정한 건, 아이의 동의가 있었어? 없잖아. 그저 세상이 멋대로 정해 놨을 뿐이잖아.]
그 말대로였다.
저 아기가 마녀로 태어난 건, 세상이 멋대로 결정한 일이었다.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운명.
‘그 불공평함을 이용한다는 거지?’
[정답이야. 마왕이 준비 많이 해 놨는데?]
‘잠깐만, 그럼 저주의 업은 그대로 남아 있는 거 아니야?’
문제는 계약을 통해 새로운 ‘운명’을 부여할 뿐이라면 여전히 저주의 업은 남아 있다는 소리였다.
저주의 업을 지닌 마녀의 운명.
마왕과 계약한 새로운 운명.
아기는 두 가지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기다려 봐. 그걸 마왕이 모를 리 없어.]
로메른의 말대로 마왕은 계약이 끝나자마자 곧장 움직였다.
마왕의 해결책은 간단했다.
화신인 아기의 몸에 강림했다.
[저런 무식한 방법을 쓸 줄이야.]
‘……영리한 거 아니야?’
[화신의 몸에 피해를 입으면, 본체인 마왕의 몸도 피해를 입어. 큰 위험을 감수하는 방법이야.]
게다가, 최악인 건 저 몸이 성인도 아닌 움직이기도 힘든 아기의 몸이란 점이었다.
‘이건 도와줘야겠네.’
진의 말에 정령들이 움직였다.
검성이 양막에 쌓인 저주를 베어내 작은 틈을 만들고, 그 틈으로 루나와 로메른이 들어갔다.
‘오. 멋진데?’
진은 육포를 꺼내 씹으며, 그 모습을 구경했다.
양막 속에서 신성력과 핏빛이 번쩍이길 한참.
양막 위에 가득하던 저주가 아이의 몸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어?’
변화를 보이는 건, 아기만이 아니었다. 진 옆에 있는 마왕의 육체에 마치 문신처럼 무언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불길하고 끈적해 보이는 문신.
‘……저주를 먹은 거야?’
곧이어,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기가 알을 찢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갸아!”
녀석은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소리를 질렀다.
‘……저게 무슨.’
갓 태어난 아기는 예쁘고 귀엽기보다는, 쭈글쭈글하고 뭔가 그로테스크한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면, 더 위험한 걸 만든 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마왕의 화신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 * *
마녀 문제는 여기서 끝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깨우자.’
진은 한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어.]
곧이어 그녀가 깨어났다.
“깨어나셨습니까?”
진의 물음에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다른 것을 먼저 찾았다.
“아, 아기는 괜찮나요!?”
진이 깨운 그녀는 다름 아닌 마녀의 친모였다.
“예. 괜찮습니다.”
진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 옆에 있는 작은 바구니를 가리켰다. 그곳엔 갓 태어났을 때와는 달리 귀여운 아기가 잠들어 있었다.
“아아…….”
그녀는 나지막이 감탄을 터트리며, 아기의 볼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부드러운 아기의 볼.
그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약속한 대로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진에게 감사를 표했다.
“아기와 관련해서 몇 가지 드릴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
“둘러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곳은 원래 계시던 그 집이 아닙니다.”
“아!”
그녀는 그걸 이제야 인지했는지, 깜짝 놀라 얼굴로 진을 바라봤다.
“놀라지 말고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아이를 위해서요.”
진은 천천히 설명을 이어 갔다.
물론, 약간 각색된 이야기였다.
“이 아이는 특별한 아이입니다.”
불길하고 저주를 타고난 아이가 아닌, 특별하고 재능을 타고난 아이.
“그렇기에,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물론, 그 보호는 감금에 가까운 보호가 아니었다.
아이와 엄마는 함께할 수 있으며,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
물론, ‘이면 세계’에서만.
“원래 살던 곳에서 떨어져 낯선 곳에 사셔야겠지만…….”
진은 그녀가 걱정하면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아니요. 전 좋아요.”
“예?”
“그 마을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어요.”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뱃속에 저주의 업을 지닌 애가 있는데, 당연히 뭔가 일이 있었겠지.]
로메른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제 아이를 좋은 곳에서 풍족하게 키울 수 있다면 전 만족해요.”
그건 진이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어처구니없게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가장 싱겁게 해결이 됐다.
‘골드로 해결되는 문제가 제일 간단한 문제지.’
* * *
마녀의 문제가 일단락되고, 로메른은 심각한 표정으로 진에게 다가왔다.
[진. 이제 내 차례지?]
마지막으로, 로메른의 부탁을 들어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