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33화 (133/210)

133. 성녀의 소원

성녀 루나. 그녀는 로메른과 진이 만든 규칙을 정말 잘 이용했다.

그녀는 진을 도와줄 때마다 차곡차곡 기록해 두었다가, 필요한 게 있으면 와서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어려운 걸 원한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 ‘골드’로 해결되는 진이 귀찮아지지 않는 요청이었다.

그래서 약간의 의문이 떠올랐다.

‘내 도움이 필요한 게 있었어?’

검성급 문제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골드로 해결이 된다.

‘가져간 골드로 과거에 바로잡고 싶던 일을 바꾸던 거 아니었어?’

[알고 있었어요?]

역시나 진의 생각대로였다.

‘네가 몰래 가져간 것도 아니고 보고까지 했는데 내가 몰랐을 리 없잖아.’

게다가, 그녀가 요청한 골드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다. 영지에서 벌어들이는 골드를 생각하면 티도 안 날 정도의 양이었다.

이렇듯 그 골드가 많지도 않은 양이고, 그녀가 일하는 동기가 되는데 굳이 아는 척할 필요가 없어서 모른 척했을 뿐이다.

‘또 귀찮기도 했고.’

왠지 귀찮은 냄새가 솔솔 풍기는데, 괜히 관여해 봐야 귀찮아질 거 같기도 했다.

[정말이지.]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진답네요.]

‘……칭찬이지?’

[예. 칭찬이에요.]

사담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럼, 본론으로 다시 넘어가자. 그런 성녀님께서 대체 뭐가 필요한 거야?’

[한 아이를 구해 주셨으면 해요.]

‘아이? 가족이야?’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제 가정사와 관련된 문제는 여태까지 받은 골드로 전부 해결했어요.]

‘그럼?’

[저와 대척점에 있는 아이예요.]

성녀와 대척점에 있는 아이라면 좋은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때 로메른이 끼어들었다.

[설마 걔 말하는 거야?]

로메른은 뭔가 알고 있는 거 같았다.

[예. 맞아요.]

[너도 진짜…… 아니다. 니가 그러니까 성녀지.]

로메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또 지들만 아는 이야기한다. 얼른 이야기 안 해?’

진의 말에 성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녀(魔女)로 불렸던, 저의 숙적인 아이를 구원해 주셨으면 해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로메른이 저런 반응을 보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미래의 악당을 구해달라는 거지?’

구원하는 것보다 죽이는 게 쉽다. 심지어 아직 ‘아이’라 불릴 정도라면 더욱 그렇다.

[맞아요. 이게 제 이유이며 소원이에요. 부탁드려요.]

원래라면 이런 부탁을 들어주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좋아.’

[뭐? 야. 진! 제대로 이해한 거 맞아?]

‘있어 봐. 뭔가 잡힐 거 같으니까.’

뭔가 느낌이 왔다.

진은 곧장 루나에게 물었다.

‘마녀면 강하지?’

[예.]

‘애라고 부르는 거 보니 아직 어리고?’

[예. 상상하시는 것 그 이상으로 어릴 거예요.]

‘좋은데?’

[들어주시는 거예요?]

‘당연하지. 동료의 소원인데, 내가 그것 하나 못 들어주려고.’

[정말 감사해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이들이 입을 열었다.

[허허. 진에게 선이 살아 있음을 내 의심치 않았네.]

-하긴 동료의 일이니까. 진짜로 엉망은 아닌 거 같네.

[현자여 너무 걱정하지 말게. 언뜻 보기엔 엉망인 것 같아도, 진은 선을 지킬 줄 아는 자이니.]

진의 행동을 훈훈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저 악당 같은 표정은…… 설마?]

진의 진의를 꿰뚫은 이도 있었다.

‘다들 출발하자!’

* * *

물론, 깨어나자마자 곧장 출발할 순 없었다.

그 난리를 치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세느 백작가를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성자님. 일어나셨습니까.”

진이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본 건, 자신을 간호하고 있는 ‘사제’였다.

‘계획대로 된 거 같네.’

[허허. 정말 고맙네.]

사제가 이곳에 있다는 건, 가문 폐쇄를 이미 풀었다는 뜻이었다.

“며칠이나 됐습니까?”

진은 반쯤 쉰 목소리로 사제에게 물었다.

“이틀이 지났습니다.”

진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 중얼거렸다.

“이러면 시간이…….”

누가 봐도 시간이 부족한 모습에 사제가 입을 열었다.

“따로 일이 있으십니까?”

“그분의 뜻에 따라, 급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진의 입에서 ‘그분’이란 단어가 나오자, 사제는 성호를 그었다.

“사제님께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저 명을 내려 주시면 됩니다. 성자님.”

“전 곧장 움직여야 합니다. 세느 백작가 분들께 잘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폐쇄가 풀린 걸 확인했으니, 나머지 귀찮은 대화는 직접 할 필요 없었다.

“예.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물론, 남아 있으면 훈훈한 덕담과 함께 보상이 주어지겠지만.

‘그딴 푼돈을 어따 써.’

지금 받아 봐야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이런 건 숙성시켜서 골수까지 빨아먹어야 하는 법이다.

오히려, 여기선 ‘신비감’과 ‘무욕함’을 선택하는 편이 좋았다.

“그럼, 뒷일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한 뒤, 진의 모습이 사라졌다.

“완치된 몸이 아니니 부디 조심하시길. 신이시여. 성자님을 부탁드립니다.”

방안에 남은 사제는 진의 안전을 기원했다. 신을 위해 몸과 생명마저 던지고 있는 성자의 안전을.

물론, 그런 사제의 진의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검성의 말대로 세느 백작가에선 영약까지 챙겨 줬는지 오히려 몸 상태는 훨씬 좋아진 상태였다.

‘로메른. 효과 확실한데?’

[저 사제가 보기엔 네 몸은 반쯤은 만신창이처럼 보였을 거야.]

원래 이런 건 아파 보여야 효과적인 법이니, 로메른이 약간의 조작을 해 놨을 뿐이었다.

‘근데 여기가 확실히 맞아?’

곧, 진이 공간이동으로 도착한 곳은 산골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지식의 해방의 손길마저 닿지 않을 정도로 산골 깊숙이 있는 작은 마을.

[예. 맞아요.]

[회귀 전에는 마녀의 소재는 모른다고 했으면서, 자세히 알고 있네?]

[……미안해요.]

[너무 그러지 말게. 어쨌든 이제 해결할 테니 문제가 될 건 없을 걸세.]

[그건 그렇지만.]

정령들의 투닥거리는 말을 들으며, 진은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제복을 입고 있는 진의 방문에 마을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교구마저 설치되지 않은 작은 마을.

이곳에 숨어 있는 마녀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마녀의 집은 알고 있어?’

[몰라요. 그래도 지금 날짜를 생각하면…… 보면 알 수 있어요.]

‘확실해?’

[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렇다면 쉬운 방법이 있었다.

진은 마을 중앙으로 이동해 크게 소리쳤다.

“교단에서 봉사 나왔습니다! 몸이 아프신 분들을 무료로 치료해 드립니다!”

진의 말에 깜짝 놀랐던 마을 사람들이 이내 정신을 차리고, 진 쪽으로 앞다투어 다가왔다.

진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아프신 분들 모두 봐 드릴 테니, 급하신 분들부터 와 주세요! 치료가 끝나기 전까지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제야, 허겁지겁 오던 사람들이 이성을 되찾았다. 시골에 봉사를 오는 사제가 드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곧이어, 하나둘 환자들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사제님. 제가 도끼질을 하다가 크게 베였는데…….”

“허리가 아파서…….”

“전 여기 염증이 생겼는데…….”

“불장난하다가 여기 화상을 입었어요!”

…….

산골 마을답게 특별한 상처는 없었다. 그저, 생활하며 다치는 정도의 상처뿐이니 치료도 어렵지 않았다.

그저 마녀를 찾기 위한 작업일 뿐이지만, 진은 최선을 다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사제님.”

“이제 안 아파요!”

“고맙습니다. 사제님.”

“사제님 정말 복 받으실 겁니다!”

덕분에, 치료를 받았던 이들에게 무수한 감사 인사를 받을 수 있었다.

‘사람들의 미소를 보니 정말 행복해!’

당연히 이런 개똥같은 이유 때문에 이런 건 아니었다.

마녀를 찾고, 작업을 하려면 어쨌든 이 마을에 있어야 한다.

‘이런 작은 시골 마을에선 인망이 곧 힘이야.’

감찰부나 성자라는 직책보다, 당장 날 도와준 좋은 사람이란 평판이 더 효과적이다.

[허허. 의도야 어쨌든 치료받고 행복해하는 사람을 보니. 내가 기분이 다 좋아지는군.]

물론, 그런 이유 때문에 즐거워하는 정령도 있었지만.

이렇게 치료를 이어 가고 있을 때. 조금 특별한 환자가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사제님.”

진마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특별한 환자.

“제 손 잡으세요. 몸 다치지 않게 천천히 앉으세요.”

진은 환자의 손을 잡고,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어떤 환자기에 이러나 싶겠지만, 이건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몇 개월이세요?”

“이제 10개월 다 돼 가요.”

그 환자는 임산부였다.

환자를 본 루나가 입을 열었다.

[찾았어요. 진.]

‘뭐? 설마 임산부가 마녀란 소리야?’

아니. 그럴 리 없었다.

그녀는 마녀가 상상 이상으로 어리다고 했다.

‘설마!?’

[예. 저 임산부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바로 ‘마녀’예요.]

마녀는 태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 * *

치료가 전부 끝난 저녁.

진은 추가 치료를 위해 작은 오두막에 와 있는 상태였다.

“저, 정말 그렇게나 안 좋은 건가요?”

한 여인이 크게 나온 배를 감싼 채 떨리는 목소리로 진에게 물었다.

낮에 봤던 임산부.

마녀를 잉태한 여인.

이곳은 그녀의 집이었다.

“그건 검사를 해 봐야 합니다.”

“…….”

그녀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오늘 제가 치료하는 거 보셨죠? 무슨 일이 있어도 치료해 드릴게요.”

“부, 부탁드려요. 전 괜찮으니 이 아이만이라도 꼭…….”

현대라면 모르지만, 판타지 세상에서 아이를 낳다 산모가 죽는 일은 꽤 흔하다.

산파와 사제가 있지만, 모두가 그 혜택을 받을 순 없는 일이었다.

“약속할게요. 당신은 물론이고, 아이까지 건강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눈물까지 흘리며 감사를 표했다.

“남편 분은 없으신가요?”

“예…… 없어요.”

“그럼, 더더욱 괜찮으셔야죠. 아이 혼자 세상을 살아가야 하잖아요.”

“……감사합니다.”

진은 침대가 있는 곳에 신성력을 뿌렸다.

“일단, 누워 보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침대 위에 누웠다.

“배에 잠깐 손을 올릴게요.”

“예.”

진은 곧장 그녀의 배에 손을 올린 뒤.

‘로메른, 루나. 둘이 확인해 봐.’

[알겠어!]

[금방 할게요.]

둘은 진의 손을 통해, 산모의 배 속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안쪽에서 로메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범한데? 이게 마녀라고?]

[제가 보기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어요.]

아이에겐 아무런 이상도 없었고.

[……진짜 얘가 마녀 맞아?]

[확실해요.]

오히려 마녀가 맞는지 의심할 정도였다.

‘낳아도 된다는 거지?’

[어. 괜찮아.]

로메른과 루나는 다시 진의 손안으로 들어오며 대답했다.

‘그럼, 성장 과정에서 마녀가 된다는 거야?’

[……그런 거 같아. 그런데, 마녀의 힘을 생각하면 뭔가 이상해. 후천적으로 그런 힘을 얻을 수 있나?]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었다.

‘뭐, 그거야 우리가 통제하면 되는 거지.’

커가면서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진이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는 문제였다.

영지로 이사를 시키면 끝이니까.

‘이사시키고 마무리 짓자고.’

[그러자. 그게 제일 확실하지.]

그렇게 결론을 내렸을 때.

변화가 생겼다.

“아아악!”

산모가 통증을 호소했다.

[……갑자기 왜 이래!?]

[진통이 시작됐어요. 아이가 나오려고 해요!]

진이 보기에 이 상황은 뭔가 이상했다.

‘……이상하지 않아? 갑자기 진통이 시작된다고? 루나. 마녀가 오늘 태어나는 게 맞아?’

[아니에요. 적어도 한 달은 남았어요.]

이건 진짜 이상했다.

마치 떠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옮기려고 결정을 내린 순간 진통이 시작됐다.

‘뭔가 감이 안 좋아. 한 사람 데리고 공간이동하는 건 문제 없지?’

[몸에 무리가 가겠지만, 문제는 없어.]

‘데리고 영지로 가자. 떠나지 못 하게 하려는 거 같아.’

[……확실히 그렇네. 준비할게!]

로메른이 대답한 순간.

“아아아악!”

그녀가 굉장한 비명을 지르더니.

[출산이 시작됐어요! 벌써 반쯤 나왔는데…… 뭔가 이상해요!]

출산이 급격한 속도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악!”

마치 마지막 비명을 지르듯 그녀는 힘차게 소리 지른 후, 혼절했다.

[진…… 이거 봐요. 이게 무슨…….]

루나의 말에 진이 황급히 아이를 확인했는데, 그곳엔 상상하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투명한 막에 있는 아기.

마치 알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이게 무슨…….’

알에서 사람이 태어나다니?!

놀라운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미친!]

마치 비명과도 같은 로메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다 싶었어! 설마 주(呪)의 업이라니! 이게 진짜 있는 거였어!?]

‘주?’

[저주! 저주의 업을 타고난 거야! 이 아이의 운명에 개입하니까 출산이 된 거라고!]

‘그게 무슨…….’

[우린 운명과 싸우고 있는 거라고!]

진은 혼란스러웠다.

솔직히 말하면 로메른의 이야기를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아무튼,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얽힌 것 같았다.

‘아. 다 귀찮네.’

[뭐? 지금 장난칠 때야?!]

아니. 장난이 아니었다.

그저 어린아이를 어르고 달래 우리 편으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이런 복잡한 상황이 생길 줄 몰랐다.

귀찮음이 턱 끝까지 올라오자.

놀라운 일이 생겼다.

해결책이 떠올랐다.

‘가자.’

[어딜?!]

‘이면 세계. 운명이고 나발이고, 우리 마왕 형이 이겨.’

마왕에게 ‘짬’ 때릴 생각이었다.

[……천잰데?]

로메른은 나지막이 감탄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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