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19화 (119/210)

119. 준비

지하에 있는 지옥 안쪽에는 조금 특별한 공간이 있다.

일명 ‘특수 훈련장’.

지옥의 에너지를 활용했기 때문에 쉽게 지치지도 않으며, 어떠한 상처를 입어도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그야말로 극한까지 몸을 단련할 수 있는 특수한 공간이었다.

[이거 효과가 너무 좋은데?]

[혈마법을 섞은 게 주효했어요. 어둠의 주민들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효과적이에요.]

심지어 이번에 연구한 혈마법 덕에 더욱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물론, 진은 그저 감탄만 터트리고 있지 않았다. 원래 예정에 없었던 인원을 훈련장으로 집어넣었다.

“평소와 좀 분위기가 다르신 거 같습니다?”

사뭇 진지한 진의 모습에 말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좀 급해.”

진의 말에 말릭이 입을 다물었다. 곧이어, 녀석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진이 찾아왔을 땐 언제나 재미난 일이 있었다.

심지어 급한 상황이라면?

더욱 재미난 일이 기다리고 있을 터.

“노바를 따라서 훈련장으로 가.”

“절 훈련시키실 생각은 아닌 거 같은데, 다른 임무가 있는 겁니까?”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애들이랑 대련할 때는 그 힘을 절반 정도만 사용하던데, 이번엔 전부 사용해. 죽일 각오로 싸워…… 아니. 죽여도 좋아.”

“호오.”

말릭은 나지막이 감탄을 터트렸다.

죽이라는 말 때문에 놀란 게 아니었다. 진의 안목 때문이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그 차이를 알아보다니.

눈앞의 성자는 자신보다 더 죽음에 가까운 사람이 확실했다.

“알고 있으니까 말하지. 이 쓸데없는 대화 계속할 거야?”

진은 짜증을 내는 표정으로 되물었는데, 말릭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닙니다. 그저, 진 님의 실력에 놀랐을 뿐입니다.”

그런 말과는 달리 말릭은 녀석은 즐거워하고 있었다.

“제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즐길거리가 한참 남은 거 같아서요.”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진은 소름이 끼쳤다.

‘진짜 저 또라이.’

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등 뒤로 말릭의 시선이 느껴졌다.

“빨리 안 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진이 말하자 순식간에 그 시선이 사라졌다.

‘저걸 든든하다고 해야 하나…….’

뭐, 어찌 됐든 개 목걸이가 채워져 있으니. 야무지게 써먹으면 될 일이었다.

‘진짜 쉴 틈이 없네.’

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 * *

진은 곧장 셋째, 빈 플린트를 찾아갔다.

드워프들과 함께 뭔가를 만들고 있는 빈. 그를 불러내 한 가지 부탁을 했다.

“형. 배를 하나 만들어 줬으면 해.”

“배?”

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배는 내가 만들 수 있는 분야가 아니야. 여기 드워프들도 못 만들걸?”

당연한 말이었다. 드워프들이라고 해도 여태 만들어 본 적도 없는 걸 뚝딱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진이 이걸 모를 리 없었다.

“배를 만드는 장인을 요청했어. 그들이 곧 올 거야.”

“……여기서 만든다고?”

바다는커녕 커다란 강도 없는 숲 한복판에서 배를 만든다니?

하지만, 오히려 비상식적인 일이기에 진의 의도가 뭔지 빈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움직이는 성이 아니라, 걸어 다니는 배를 만들 생각이야?”

“비슷해.”

“비슷하다고?”

“형. 꼭 걸어 다녀야 돼?”

“……설마 날아다니는 배를 만들자는 거야?”

“어. 날아다니는 배를 만들 생각이야. 앞으로 갈 곳들이 오지에 가까워서 무조건 날아가야 돼.”

“음. 진. 네가 하늘을 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몰라서 그래.”

빈은 진을 설득하듯 말했지만, 로메른이 있는데 이런 정보를 듣지 못했을 리 없었다.

“알고 있어. 평행 유지와 움직임 통제. 그 외에도 수많은 것들을 통제해야 해서 그런 거지?”

그저 하늘에 띄운다고 끝이 아니었다. 뜬 다음 통제하고, 움직이는 게 더 문제였다.

빈은 조금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알고 있었네?”

괜히 빈 플린트가 걸어 다니는 성을 구상한 게 아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보다 걸어 다니는 게 훨씬 만들기 쉽기 때문이었다.

“일단, 하늘을 날 수 있게 만들어 줄 수는 있지?”

“가능하긴 해. 저번에 보여 줬던 그 정글러들의 신물? 그거면 동력은 충분할 거 같아.”

“통제 마법이나 장치는 만들지 않아도 괜찮아. 그건 이쪽에서 직접 통제할게.”

“대체 어떻게? 정말 짧은 시간에 지속해서 통제해야 하는 거라 사실상 대응이 불가능할 텐데…….”

그 순간 진의 품에서 로메른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러자 빈 플린트의 눈이 커졌다.

“너 설마…… 정령을 이용하려는 거야?”

“어. 바람의 정령은 아니지만, 가능할 거 같아.”

“……될 거 같기도 하고.”

정 방법이 없으면 로메른을 써먹었겠지만, 진에겐 훌륭한 대용품이 있었다.

‘용골이로 가능하지?’

[입력해야 할 정보가 많긴 한데, 뭐 배 하나 정도는 충분히 가능해.]

통제해 줄 용골이가 있는데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하늘을 나는 배라.”

빈 플린트의 얼굴엔 옅은 흥분이 떠올라 있었다.

[진. 조용히 자리 피해 줘. 너희 형 영감을 받은 거 같은데?]

공돌이는 공돌이가 알아보는 법.

진은 로메른의 말대로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이제 하늘을 나는 배는 빈에게 맡겨 두면 될 일이었다.

“마리아!”

진은 나오자마자 곧장 마리아를 찾았다.

“예. 남작님.”

“같이 외출할 거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내부의 일이 끝났으니, 이제 바깥일을 할 차례였다.

* * *

달란 백작가.

루나를 도와준 뒤, 동맹 관계가 된 곳에 진과 마리아가 도착했다.

사전에 연락하지 않았음에도, 워프게이트에 진이 도착하자마자 달란 백작가에서 안내인이 나왔다.

그 안내인은 다름 아닌…….

“방문해 주셔서 감사해요. 성자님.”

차기 가주로 불리는 루나였다.

예전에 봤을 땐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는 연구원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전혀 달랐다.

품위 있지만 과하지 않은 드레스.

세련되지만 실용적인 장신구.

절도 있지만 기품 있는 행동.

‘이야. 이렇게 바뀔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야말로 후계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루나 님.”

진은 그녀의 인사에 화답했다.

“성으로 가시겠어요?”

“아. 오늘은 후계자이신 루나 님을 찾아온 게 아닙니다. 연구원이신 루나 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예?”

이런 말은 상상도 하지 못한 건지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조금 재미난 물건이 있는데, 이걸 영약으로 제조했으면 합니다.”

진은 품 안에 있는 작은 과일을 하나 꺼내 그녀에게 보여 주었다.

“이건…….”

당황하던 모습도 잠시.

그녀는 처음 보는 과일에 관심을 띄기 시작했다.

“손상이 있는 것 같지만…… 굉장해요. 향만 맡아도 얼마나 대단한 과일인지 알 수 있어요.”

언제 후계자였냐는 듯 저번에 봤던 그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생기가 넘치는 눈으로 과일을 살펴보던 그녀가 화들짝 놀라 헛기침을 했다.

“흠흠. 이 과일로 영약을 제조하실 생각이신가요?”

인제 와서 후계자의 분위기를 내봐야 오히려 웃길 뿐이었다. 진은 웃음을 숨기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 과일을 이용해 영약 5병을 만들 생각입니다.”

“5병이나요? 그러면 효능이 떨어질 텐데요.”

“이건 지금 구할 수 없는 열매입니다. 제가 간신히 구했을 땐 손상된 상태였습니다.”

진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그녀의 표정은 더욱 묘해졌다. 대체 무슨 과일이길래 이런 효과가 있는기 고민하는 것 같았다.

진은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그걸 강제로 복원하다 보니 조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과다 복용하면 육체에 문제가 생길 겁니다.”

기운이 쪽 빠져 쭈글쭈글하던 세계수 열매를 복구하기 위해, 진은 자신의 피를 가공해 열매에 담았다.

변화했다고 해도 그 베이스는 혈화목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 부작용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

‘그때 피를 빨린 걸 생각하면…….’

뭐, 그래도 세계수 열매를 써먹을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건 제가 연구를 해 보면…….”

“죄송합니다. 시간이 부족합니다.”

시간도 부족하고, 만약 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과일에 담긴 힘이 너무 대단해서 어차피 나눠야 합니다. 이건 한 사람이 온전히 흡수할 수 있는 양이 아닙니다.”

그래서 5병으로 나누는 것이다. 로메른의 계산대로라면 5병이 딱 적당했다.

“예? 대체 이 과일이 뭐길래요? 그런 효과는 전설로 전해지는 세계수의 열매는 돼야…….”

“정답입니다.”

“……에?”

그녀는 제대로 되묻지도 못했다.

절반쯤은 얼이 빠져 있었고, 절반쯤은 경악하고 있었다.

“성자님의 영지 근처에 엘프들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설마 세계수의 열매라니.”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면서도 진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고작해야 한 번뿐인 도움이지만, 그녀는 진을 깊이 신뢰하고 있었다.

‘이렇게 단박에 믿어 줄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그녀를 도와주긴 했지만, 고작 한 번의 도움이었다.

[허허. 가문을 지켜주고, 동생의 명예를 보전해 줬으니. 이 정도 신뢰는 당연한 걸세. 물론, 저 아이의 심성은 참으로 보기가 좋군.]

‘그래?’

뭐, 좋은 게 좋은 거였다.

진은 마리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아이가 영약 제조를 도와드릴 겁니다. 보조 연구원으로 쓸 만할 겁니다.”

“성자님 쪽 연구원인가요?”

“그렇습니다. 중요한 단계에선 꼭 이 아이의 도움을 받으셨으면 합니다.”

“실력이 대단한가 보네요.”

“달란 백작가의 연구원들만은 못할 겁니다. 다만, ‘운’이 정말 좋습니다.”

“……예? 운이요?”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게 빠르다.

“마리아, 눈 감아.”

마리아는 진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움직였다.

그 순간, 영혼이 마리아의 몸에 자리 잡는 게 보였다.

“예. 남작님.”

진은 곧장 동전을 하나 꺼내서 던졌다.

팅-!

공중에서 회전하던 동전이 진의 손안으로 들어왔다.

“앞, 뒤?”

“앞으로 하겠습니다.”

팅-!

“앞, 뒤?”

“뒤로 하겠습니다.”

팅-!

“앞, 뒤?”

“뒤로 하겠습니다.”

…….

빠르게 5번을 했는데 모두 맞췄다.

소나는 놀란 얼굴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카지노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아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진이 실제 사례까지 곁들이자 그녀는 완벽하게 믿기 시작했다.

“어떤 의도로 붙여 주시는지 알겠어요.”

영약 제조에서 중요한 건 완벽한 제조법과 ‘약간의 운’이다.

같은 제조법으로 똑같이 만들어도 그 효과가 완벽하게 같지 않다.

마리아가 참여한 것만으로도 영약의 효과는 쑥쑥 올라갈 게 분명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바로 가시나요?”

그녀는 조금 아쉽다는 얼굴로 진에게 물었다. 진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예. 영약 제조가 끝나면 찾아오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만들게요.”

“기대하겠습니다.”

* * *

야만인들의 발호는 굉장히 까다로운 문제다.

만약 진이 그들을 굴복시켜 복속시키면 어떻게 될까?

‘왕국에서 경계하겠지.’

야만인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전투 병력이다. 그런 이들이 성자의 이름 아래 모인다면, 심각한 경계를 사게 될 것이다.

‘만약 그 경계를 무시하면…….’

지식의 해방은 왕국을 충동질할 것이다.

교단과 야만인의 세력을 모은 성자이자 영주. 국왕의 입장에서도 위협적인 세력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방관하면 야만인과 전쟁이 시작된다.

‘이건 노답이야.’

답이 없다.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다.

‘그나마 성공적으로 독립시킨 게 정글러들인데…….’

그들을 인정받게 만들기 위해 진이 했던 걸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성지를 만들고, 신녀를 이용해 정치적 완충을 시도했다.

그나마 왕국과 교류하고 있던 곳이라 이런 게 가능했다.

‘이러면 방법은 하나뿐이야.’

이건 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할아버지, 세상이 왜 이래!

좀 도와줘요!

진은 교황청으로 찾아가 추기경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성자님! 잘 찾아오셨습니다! 허허 이 노구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추기경은 환한 얼굴로 진의 부탁을 수락했다.

‘우리 할아버지가 최고야!’

빽을 써먹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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