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지옥을 만들어요
영지로 돌아온 진은 곧장 마그마를 찾았다.
“시킬 일이 있어.”
“예. 보스.”
“지하 공사하고 있다고 했지? 맨 아래층에 비밀 공간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
“용도는 창고로 하면 되겠습니까?”
그 순간 진의 눈빛이 스산하게 빛났다.
“감옥.”
“……예. 알겠습니다.”
“죄수들 대부분은 아예 움직이지 못할 테니까, 내부는 너무 복잡하게 만들 필요 없어. 차라리 넓은 홀을 만드는 게 제일 좋겠네.”
감옥인데 그저 넓은 홀?
마그마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진이 앞서 말한 말을 떠올렸다.
“죄수들 대부분은 아예 움직이지 못한다.”
그제야 눈앞의 존재가 지하 도시에서 가장 악독하고 지독한 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마그마는 느슨해진 자신을 채찍질했다.
“예. 완벽하게 처리해 두겠습니다!”
마치 신병처럼 대답하는 마그마의 모습에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빠르게 작업해. 이 녀석도 빌려줄 테니까 최소 인원으로 작업하고.”
진은 그렇게 말하며, 검성을 가리켰다.
[허어. 또 땅을 팔 시간이 오다니…….]
검성은 나지막이 한숨을 흘렸지만, 거부하지 않았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검성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땅의 정령의 도움이 있다면,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대한 빨리 끝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보라는 듯 손짓했다.
이건 고작해야 시작일 뿐이었다.
그때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가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군.”
노인의 목소리.
그는 다름 아닌 진을 따라온 망령들의 대장이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어. 작업하려면 한참 더 걸릴 거야.”
“흐음.”
그는 고민이라도 하는지 잠시 대화를 멈췄다.
잠시 후.
“이제 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웃기지만, 우리를 도와주는 이유가 있는 겐가? 아무리 봐도 우리를 죽이는 게 훨씬 효율적인 방법 같은데…….”
그의 말대로 망령들을 죽이고, 왕국의 귀족들도 그냥 목을 날려 버리는 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영감탱이가 정곡을 찌르네.]
로메른도 동의한다는 듯 중얼거렸다. 진의 솔직한 심정은 이랬다.
‘아! 나도 그러고 싶지!’
솔직히 그게 더 편했다. 굳이 이렇게 복잡한 방법으로 일 처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뭐, 그렇다고 지금 작업이 쓸모가 없는 건 아니지만.’
계획대로만 된다면 진에게는 막대한 이득이 떨어지는 건 분명했다.
‘단순히 지식의 해방에 엿먹이는 걸로 끝이 아니야. 지옥을 이용할 수 있어.’
아무튼, 진이 망령들을 죽이지 않은 이유는 더 간단한 이유였다.
“영감의 말대로 분명 그게 더 효율적인 방법이었어. 그건 나도 동의해. 하지만, 영감도 내가 누군지 알고 있잖아. 난 성자야.”
진의 말을 듣던 노인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허허. 난 모든 게 예전만 못하다 생각했는데, 모두 그렇진 않군. 더 나아진 부분도 있구나.”
물론, 진이 방금 한 말은 전부 개소리였다.
[애초에 우리가 상대하긴 버거운 적이었어.]
데스 블레이드를 전개하는 망령들을 전부 상대하기엔 진의 힘은 턱없이 부족했다.
‘허세 부리는 게 최선이었지.’
괜히 힐링 광선포를 아이들에게 사용한 게 아니었다.
일종의 무력 시위를 통해, 망령들에게 힘의 차이를 보여 준 것이다.
뭐, 제대로 싸웠다면 죽일 순 있었겠지만, 이쪽도 큰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만약 싸우다가 망령들이 도망쳤다면…….’
[그때부터 진짜 지옥이 시작되는 거야. 왕국의 오점인데도 괜히 망령들을 내버려 둔 게 아니야.]
그러니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망령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이 귀찮음의 대가는 톡톡히 받아 내겠어.’
그건 앞으로 천천히 빨아먹으면 될 일이었다.
“난 할 일이 있어서 이제 움직일 생각인데. 영감은?”
“편하게 행동하게. 신경 쓰이지 않게 따라다닐 터이니.”
어쨌든 진의 곁에서 상황을 지켜보려는 것 같았다.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할 일이 많았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동안 정말 바쁘게 움직였다.
‘아. 날씨 좋다.’
당연히 그 바쁜 사람 중에 진은 포함되지 않았다. 진은 오랜만에 해먹에 누워서 햇살을 즐겼다.
물론,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했다.
대부분의 시간은 눈을 감고,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허어. 이게 불편함을 감수하는 자세인가! 내가 땅을 파고 있는 동안, 이리 편하게 쉬고 있다니…….]
때때로 저런 쓸데없는 소리가 가끔 들려오긴 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과연, 정령사의 일 처리는 신기하구려.”
“마나 소모가 굉장하구려.”
“저 용암 정령은…… 아니. 골렘으로 보이는데…….”
“허어. 이런 정교한 마법진을 정령을 이용해 새기다니…… 골렘마저!?”
때때로 탄성을 터트리며 저런 말을 해 댔는데, 진이 대답해 주지 않자 그는 알아서 자신이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았다.
물론, 그 답들은 대부분 맞지 않았다.
“고도의 집중으로 세 정령이 일할 수 있게 통제하는 것이겠군. 그 실력이 마법진을 새길 정도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구려.”
전혀 아니었다.
엄밀히 따지면, 세 정령이 진의 마나를 이용해 알아서 일할 뿐이었다.
“허허. 이 정도로 뛰어난 실력이라니…… 과연, 망령들을 모두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진짜였구려.”
착각이고 오해였다. 망령들과 싸우면 이쪽도 큰일이다.
‘이 영감탱이는 쉬질 않네.’
진의 옆에서 감탄을 터트릴 때를 제외하면, 노인은 도시를 쏘다녔다.
심지어 구경만 하고 다닌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눈치는 있는 양반이야.’
노인은 정령들을 따라다니며 작업하는 걸 확인했고, 붙잡혀 온 죄수들을 관리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적하게 햇볕을 쬐고 있을 때. 진은 정령의 기척을 느꼈다.
[진. 작업이 거의 다 끝났어요.]
‘오. 벌써?’
진은 루나의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그 효과를 확인하러 갈 시간이었다.
‘가자.’
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영주성의 비밀 통로로 이동했다.
[이쪽에 손을 올려놓으시면 돼요. 진의 써클을 확인하는 보안 장치에요.]
진은 루나의 말대로 한쪽에 손을 올렸다.
곧이어 몸으로 들어온 마나가 느껴졌고.
촤르르륵.
바로 옆에 벽이 열리며 작은 공간이 나왔다. 그 안으로 진이 들어가자 루나가 입을 열었다.
[그럼, 내려갈게요!]
잠시 후, 마치 엘리베이터처럼 아래로 내려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마탑에 있는 시설을 로메른이 구현한 거예요. 참 신기하지 않아요? 서 있기만 해도 알아서…….]
루나의 설명을 듣는 사이, 어느새 ‘지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데, 지옥이라는 명칭과는 달리 내부의 모습은 오히려 ‘병원’에 가까워 보였다.
수많은 침대가 공동에 놓여 있었고, 지식의 해방 쪽 사람들이 그 침대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로메른!’
진이 로메른을 곧장 부르자 안쪽에서 녀석이 날아왔다.
[왔어?]
‘대충 세팅은 된 거 같은데…… 마법진은?’
[거의 다 끝났어. 와. 이 마법진은 진짜 설치하다가 쓰러질 뻔했어.]
로메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에 설치한 마법진은 로메른도 혀를 내두를만한 고위 마법진이었다.
‘작동은 될 거 같아?’
[당연히 가능하지. 내가 구현하기 힘든 부분은 뜯어 왔어.]
‘……감찰부 배지 필요하다더니 그래서 가져간 거야?’
[어. 드워프들 보내서 깔끔하게 뜯어 왔지. 수호자 그 양반이 도와줘서 손쉽게 가져올 수 있었어.]
마법진을 뜯어 온 곳은 다름 아닌 플린트 남작가였다.
수호자들이 드래곤 하트를 지키기 위해 만든 마법진을 이곳에 이식한 것이다.
이 마법진의 효과는 두 가지가 있다.
‘과거 추출은 가능하지?’
[어. 녀석들의 머릿속에 있는 정보를 전부 뽑아낼게.]
굳이 복잡하게 심문할 필요도 없이 손쉽게 정보 추출이 가능해진 게 첫 번째 효과였다.
‘영감의 기억 추출은?’
그 말에 로메른은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망령들의 대장인 노인이 누워 있었다.
[하고 있어. 망령이라 그런지 확실히 끔찍한 기억이 많아.]
‘뭐, 그렇겠지. 그 기억이 필요해서 데려온 거니까.’
두 번째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간단하다.
[꿈속에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고통을 준다니…. 진 넌 진짜 악마야.]
‘효율적이라고 표현해 줄래?’
[뭐, 효율적이긴 하지. 계획대로만 되면 사념 농장이 될 수도 있으니까.]
인위적으로 사념을 만드는 게 두 번째 효과였다.
원래대로라면 생각만큼 많은 사념이 생성될 리 없었다.
하지만 그걸 가능하게 만들 방법이 있었다.
[시간 배율을 높인다는 끔찍한 발상은 정말 나도 혀를 내두를 정도야.]
현실은 하루지만, 꿈속에선 100년 동안 고통을 받으면?
생성되는 사념의 양은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다.
‘이게 지옥이지.’
[……지옥도 이것보단 덜 끔찍할걸?]
하루가 100년 같은 고통이 가득한 곳.
이게 바로 진이 생각한 지옥이었다.
‘그럼, 시작하자.’
[알겠어. 마무리만 하고 마법진 가동할게.]
그렇게 인세의 지옥이 오픈했다.
* * *
세계수 밑에 있는 핵물질이 에너지를 뿜어냈다. 그 막대한 에너지가, 뿌리를 타고 영지 지하로 이동했다.
그렇게 흘러 들어온 에너지는 깊고 깊은 지하에 도착해 벽으로 흡수됐다.
하지만, 벽에 새겨진 모든 마법진을 밝히기에는 그 힘이 모자랐다.
[출력이 부족해! 지금 상황에선 마법진 발동 못 시켜. 정글러들의 신물을 더 가져오든가 해야 해.]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핵물질보다 더 끔찍하고 대단한 물건이 진의 손에 있으니까.
진은 입고 있던 갑옷을 벗어, 로메른에게 건넸다.
‘더 가지고 올 때까진 드래곤 하트를 써.’
[알겠어!]
곧이어, 지하 벽면에 있는 모든 마법진이 빛을 내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법진이 발동됐다.
곧장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크으으윽!”
“미안해! 내가 미안해!”
“내 잘못이 아니야!”
“이건, 이건 꿈이야!”
“정신 나갈 것 같아! 정신 나갈 것 같아! 정신 나갈 것 같아!”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지식의 해방 녀석들이 잠꼬대를 하기 시작했다.
‘효과 확실하네.’
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로메른에게 지시했다.
‘음소거 기능 있지?’
[당연하지.]
수호자의 마법진을 그저 가져오기만 한 게 아니었다. 필요한 세부 기능들을 추가한 상태였다.
이내, 시위는 침묵에 잠겼다.
진은 자리를 옮겨 지옥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조금만 기다려 봐. 슬슬 생기기 시작할 거야.]
로메른은 중앙에 있는 단상 위를 가리켰다. 그곳엔 성배처럼 보이는 커다란 술잔이 하나 놓여 있었다.
[지옥에 있는 성배. 어때?]
‘진짜 센스 하고는…… 이 정도면 악취미 아니야?’
[악취미가 아니라, 철저하게 실리적인 이유 때문이야. 쌓인 사념을 처리하는 게 그 성배야.]
뽑아낸 사념을 가공하는 마도구 쯤으로 생각하면 될 거 같았다.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성배를 관찰했다.
잠시 후.
투툭.
작은 보석 같은 게 만들어졌다.
진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성공이네? 저거 사념 맞지?’
진이 웃으면서 물었는데.
[……와. 이게 진짜 되네.]
로메른은 성배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뭘 이런 거 가지고 놀래?’
[이런 거? 이게 그저 이런 거로 보여? 우리가 사념을 만들어 낸 거라니까? 우린 사념 농장을 만든 거야!]
‘뭐 대단한 거라고. 지식의 해방도 요새를 이용해서 사념 농장 비슷하게 만든 거 아니야?’
[지식의 해방이 요새 쪽을 농장으로 만든 것과는 비교가 안 되지! 생산 효율이 다르잖아. 그건 그저 쌓여 있는 사념을 수확한 것뿐이고, 이건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로메른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설명을 이어 갔지만,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 진의 관심 밖이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됐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진짜 자기가 무슨 일을 한 줄 모르네.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
로메른의 이어지는 설명에도 진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이걸 어디다 써먹느냐가 더 중요한 거지.’
기왕 써먹을 거 제대로 써먹어야 한다.
‘미모 후작 불러. 사업 하나 같이 해 보자고 전해 줘.’
놈들이 계약을 이용해 주식회사를 세웠으면, 돈으로 그 회사를 뺏어 줘야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