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은퇴한 망령들
노바와 아이들은 진이 건네준 정보대로 움직이며 난리가 난 곳들을 하나둘 해결해 갔다.
모두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던 일에 문제가 생기게 된 건, 노인들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그대들의 행보는 여기까지일세.”
얼굴엔 주름과 검버섯이 가득했고, 머리는 희다 못해 듬성듬성 빠진 연로한 노인들.
그들이 노바와 아이들 앞을 막아섰다.
“그대들은 지금 감찰부 활동을 막고 있다.”
노바는 그들에게 물러서라고 말했지만, 노인들은 비키지 않았다.
“허허. 요즘 감찰부는 예전 같지 않구먼. 나 때는 가로막으면 일단 다리부터 자르고 봤는데…… 세상이 좋아졌구먼.”
오히려 웃음을 터트리며 묘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허허. 미안하게 됐네. 그대들을 죽이진 않겠지만, 더 나아가진 못할 걸세.”
“마지막 기회를 주지. 물러나라.”
다시 한번 이어진 노바의 경고에도 그들은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거 참, 웃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젊은이들이구먼. 아까 약속한 대로 죽이진 않겠네.”
그 말과 함께 노인들이 움직였다.
아니. 움직였다는 말로 부족했다. 그들은 골목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용수바람!”
노바는 곧장 용수바람을 불렀다.
용수바람은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성령들을 불러냈다.
아이들 뒤로 성령이 자리를 잡고, 어두운 골목을 밝혔다. 한데, 노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허허. 신기한 기술을 사용하는구먼.”
어딘지 모를 곳에서 노인들의 목소리만 가끔 들려올 뿐이었다.
그리고.
스윽.
미세한 소리와 함께 노바는 어깨 쪽에서 뜨거운 통증을 느꼈다.
‘베였다?’
깊지 않지만, 팔을 쓰기 시작하면 상처가 터질 만한 절묘한 위치.
이건 깊이마저 고려한 공격이었다.
“오른팔을 쓰지 말게. 신경이 끊어질 걸세.”
노바는 곧장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후웅.
검은 허공만을 벨 뿐이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살바람이 입을 열었다.
“내가 찾겠다.”
살바람 또한 골목의 어둠으로 사라지려고 한 순간.
스윽.
살바람을 감싸고 있던 어둠이 흩어지고, 발목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고작 한 번의 칼질에 은신이 해제되고, 움직임은 봉쇄됐다.
“…….”
그제야 살바람은 상대와의 실력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감이 잡혔다.
노인들이 자신들을 죽이려고 했다면, 순식간에 쓰러졌을 것이다.
“노바. 이탈해야 한다.”
노바는 살바람의 말에도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날파람이 종탑에서 원거리 지원을 하고 있다. 다음에 노인 중 하나가 나타나면 화살 세례가 날아올 것이다.
“종탑의 있는 아이의 지원을 기다리는 거라면, 기다리지 말게. 이미 기절했으니.”
하지만, 그 기대도 여지없이 부서졌다.
‘모든 걸 읽히고 있다.’
대체 어디서 저런 노인들이 튀어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식의 해방은 아닌 거 같은데?”
“어쩔 수 없는 협력 정도로 이해해 주게. 그렇다고 우리가 그놈들과 같다고는 생각하지 말게. 그저 그대들을 막는 의뢰를 받았다고 생각하게.”
자신들을 막는 임무라면 이 도시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도 쫓아올 게 분명했다.
이자들을 넘어서야만 주인이 내려 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후퇴한다.”
“허허. 좋은 선택일세.”
노바와 아이들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포기한 건 아니었다.
“빠르게 회복하고 다시 간다.”
그렇게, 노바와 아이들의 도전이 시작됐다.
* * *
처음엔 벽을 느꼈다.
도무지 도달할 수 없는 벽.
하지만, 그 벽 또한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챙-!
노바가 점점 검을 막아 내기 시작했다.
“허허. 젊은이들이라 빠르구먼. 그럼 이쪽도 속도를 조금 더 높이겠네.”
다시 한번 허공에서 검이 날아왔다.
챙-!
이번에도 막아 냈지만, 문제는 노인이 검을 한 번만 휘두른 게 아니란 점이었다.
핏-!
단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달라졌다. 곧이어 양팔과 다리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노바는 쓰러지지 않았다.
퉁-!
그런 노바 옆으로 화살이 날아왔다.
“허허. 레인저와 암살자를 한 팀으로 묶은 겐가? 화살이 날아오는 걸 보면 아직 잡지 못한 모양이군.”
노바와 용수바람은 노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노인을 쓰러트리기 위해 진심으로 움직일 뿐.
“나의 주인이시여. 노란바람을 치료하소서!”
용수바람 뒤에 있던 성령에서 밝은 빛이 흘러나오며, 노바를 감쌌다.
그러자, 노바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네 검이 보인다. 오늘 우리는 너희를 넘어설 것이다.”
노바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우리를 넘어선다? 허허. 아이야 꿈도 크구나. 우리의 힘이 이 정도라고 생각한 게냐?”
노인은 어린아이를 달래듯 말했다.
하지만 모든 힘을 사용하지 않은 건, 노바 쪽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도 그렇다.”
그 말과 함께, 노바 뒤에 있던 성령이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기백이 아이들의 몸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핑-!
마치 노바의 힘을 시험하듯 노인이 검을 휘둘렀지만.
챙-!
검이 막힌 것도 모자라.
스팟-!
노바의 검이 노인의 옷소매를 베어 냈다. 한데, 노인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허허. 이 일이 이리 즐거울지 생각도 하지 못했다네. 나도 진심으로 움직이지.”
서로 진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지금까지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검과 단검이 부딪히고, 피가 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아이들은 상처 때문에 움직이지 못할 몸을 억지로 움직였고.
채-앵!
원래라면 닿지 못할 곳까지 검이 닿기 시작했다.
바닥에 엄청난 피가 흐른다. 용수바람이 곧장 치료해 갔지만, 때때로 위험한 순간에 도달했다.
진이 몰래 설치해 둔 비상 신호가 울릴 정도로.
상황은 여전히 노인들이 압도적이었지만, 노바는 포기하지 않았다.
‘버틴다.’
노인들의 체력이 다할 때까지 버티고 버틴다.
노바가 찾은 유일한 해답이었다.
길고 긴 전투가 시작됐다.
* * *
“허어.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이야.”
전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노인들은 자신들이 오만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죽이지 않고 이 아이들을 막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손속에 자비를 두어선 끝이 없겠구나.”
마치 좀비를 상대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성장하는 좀비.
아이들의 실력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암살자로 보이는 아이는 이제 그 흔적이 잘 보이지 않았다.
활을 쏘는 아이는 때때로 위협적인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나머지 둘에 비하면 이 둘은 그나마 상식적이었다.
대장으로 보이는 아이는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마치 스펀지처럼 자신들의 기술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게다가, 후방을 지원하는 저 마법사인지 주술사인지 사제인지 알 수 없는 아이는 이 전투가 계속 지속되도록 만들었다.
“희망의 4기사라더니…….”
그 재능이 한 명 한 명 정말 대단했다.
“미안하지만, 여까지 해야겠구나.”
“우린 포기하지 않는다.”
“안다. 그러니 깔끔하게 베어 주마.”
정말 미안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데스 블레이드의 개방을 허가한다. 최대한 깔끔하게 베어라. 앞날이 창창한 아이들이니.”
그 말과 함께 불길한 붉은 마나가 단검을 감쌌다.
그들의 단검은 모든 걸 베어냈다. 아이들의 갑옷과 무기가 그 검에 잘려 나갔다. 곧이어, 아이들은 왼쪽 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노바와 아이들은 멈추지 않았다.
팔을 지혈하고 그들을 공격하기 위해 한 발 앞으로 나왔다. 그러자, 그들도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발목을 베어라.”
아이들의 발목이 잘리고, 아이들의 신형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깔끔하게 베었으니, 교단으로 곧장 향하면 붙일 수 있을 걸세. 미안하네. 우리들도 사정이 있음을 이해해…….”
그는 그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쿠---웅!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져 지상에 착지했다.
그건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검붉은색 갑옷을 뒤집어쓰고 있는 한 남자.
그는 착지와 함께 입을 열었다.
“성자 등장!”
……성자? 대체 성자가 갑옷을 왜 입고 있단 말인가!?
그런 의문이 무색할 정도로 놀라운 일이 곧이어 일어났다.
아이들의 몸에 있는 피가 움직여 잘린 팔과 발을 끌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그 위로 상상도 못 한 게 쏘아졌다.
“힐링 광선포!”
저걸 힐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광선포가 붙은 이상 이미 힐링이 아닌 것 아닐까?
몇 가지 의문이 떠올랐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으아아아아아! 치유된다!”
“커어어억! 주인님의 힐링!”
확실히 치료는 되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다.
“크으윽!”
심지어 팔이 떨어질 때도 소리 내지 않았던 암살자 아이마저 작은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치료된 아이들은.
“전투! 싸운다!”
광전사가 되어 있었다.
“……이게 대체.”
오래 살았지만, 이런 광경은 정말 처음이었다.
“크아아아-!”
“전투다!”
아이들이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허허.”
그렇게 2라운드가 시작됐다.
그 뒤론 기묘한 상황이 연출됐다. 진은 싸움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저, 자리 잡고 앉은 뒤 상황을 빤히 지켜볼 뿐이었다.
노인들이 진을 내버려 둔 건 이유가 있었다.
‘저 성자는 대체…….’
노인들이 본 성자는 ‘위험’ 그 자체였다.
‘다가가면 죽는다.’
위험하다는 직감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아니. 직감이 아니어도 성자가 위험한 건 알 수 있었다.
그를 감싸고 있는 압도적인 마나.
대마법사라고 해도 저러한 마나를 가질 순 없었다.
그렇게 전투가 이어지고 있을 때, 진이 입을 열었다.
“보니까 지식의 해방은 아닌 거 같은데?”
그런 진의 질문에 노인이 대답했다.
“그렇다네. 그저 의뢰를 받았을 뿐이지.”
진은 놀라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을 던졌다.
“실력을 보아하니 중요한 사람들이 납치되거나 한 건 아닌 거 같고, 골드?”
“허허. 골드라면 죽을 때까지 쓸 만큼 있다네.”
“그럼, 설마 젊은이나 영생 같은 걸 받기로 한 거야?”
“그건 좀 구미가 당기지만, 아니라네.”
“의뢰는 뭔데?”
“이 아이들을 막아 세우는 것. 그게 의뢰라네.”
“아. 죽이는 거 아니고?”
“아닐세.”
진은 곧장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 그만!”
마치 광전사 같던 아이들이 진의 말에 멈췄다.
“용수바람. 애들 몸에 있는 생명력 갈무리해 줘.”
“예! 주인님!”
이쯤이 되니 오히려 노인들이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그만하는 겐가?”
“실력 보니 애초에 죽일 생각이 아닌 거 같고. 애들이 위험했던 것도 저항이 거세서 그랬던 거 같은데. 맞아?”
“……그렇다네.”
노인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굉장히 놀란 상태였다. 그는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대화 좀 해 보자고.”
진은 씩 웃으며 노인들에게 말했다.
“대체 은퇴까지 하신 과거의 망령들께서 뭐가 아쉬워서 의뢰를 받으셨나 궁금한데?”
과거의 망령들이란 말이 나오자, 노인들의 분위기가 변했다.
“우릴 알고 있군.”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자 이야기해 봐. 지식의 해방이 준다는 게 뭐야?”
“거래를 하자는 건가?”
“어. 지식의 해방이 준다는 거 내가 줄게. 범죄자 놈들보다는 성자가 더 믿을 만하지 않아?”
“……소문과는 많이 다르군.”
“우리 애들 공격하고 있던 게 아니었으면 소문과 비슷했을 거야.”
진의 말에 노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도 그렇군.”
“말해봐. 지식의 해방에서 뭘 준다고 했지?”
성자는 마치 악마처럼 거래를 제안했다.
그래서일까. 노인들이 보기엔 오히려 더 믿음직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