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12화 (112/210)

112. 빈의 움직이는 성

진은 마탑을 방문할 생각에 한껏 들떴다.

마탑은 단순히 높은 탑이 아니다. 지식의 상아탑이며 마법의 보고였다. 그야말로 판타지의 정수가 담긴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진의 기대는 여지없이 박살 났다.

목적지는 마탑이 아니었다.

‘여긴 또 어딘데…….’

마탑과는 연관이 전혀 없어 보이는 한 건물.

이곳은 오히려 대장간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네 형이 있는 곳이야.]

‘형은 마탑 소속인데?’

진의 그 말에 로메른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마탑 소속이라고 전부 마탑에 있을 수 있을 리 없잖아. 개인 연구를 하는 이들은 다들 밖으로 나오게 돼. 엄밀히 따지면 저 건물도 마탑 소속인 거지.]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마탑이 아무리 높아도 모든 마법사를 수용할 수는 없다.

심지어 연구 시설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 안 된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하잖아.’

적어도 신비하고 환상적인 것을 기대하고 있던 진은 뭔가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게 뭔지 알면 그런 말 못할걸?]

진은 그게 뭔지 로메른에게 묻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으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똑똑.

진이 문을 두드리자 문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문 목적을 확인하겠습니다.>

차가운 여성의 목소리.

진은 품에서 감찰부 증표를 꺼냈다.

“감찰부입니다.”

진의 말과 함께.

쿵.

“빨리 치워!”

쿠우웅.

내부에서 일어난 소란이 밖에까지 들렸다.

‘뭔가 있긴 한가 본데…….’

감찰부가 왔다고 이 난리가 난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애초에 마탑 쪽 연구는 감찰부가 본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문 열어요. 부수고 들어가기 전에.”

그제야 천천히 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감찰부에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조금 전 문 위로 들리던 목소리와 똑같은 목소리였다.

“지금 감찰부의 방문 목적을 묻는 겁니까?”

진의 목소리는 따듯했지만, 그 말까지 따듯하진 않았다.

지식의 해방 덕분에 감찰부의 권한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올라갔다.

요즘 같은 때에는 감찰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건 멍청한 짓이다.

“죄송합니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여쭤봤을 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녀는 멍청하지 않았다. 진의 말뜻을 이해하고 곧장 고개를 숙였다.

“마법사 빈 플린트는 어디 있습니까?”

“마스터께선 연구실에 계십니다.”

“안내하세요.”

“예.”

진은 그녀와 함께 건물 내부로 들어왔다. 겉으로 보기엔 완전 대장간에 가까운 작업장 느낌이었는데, 내부는 의외로 쾌적했다.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청소되어 있었고, 소박하지만 정갈하게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당신의 직책은 뭡니까?”

진이 넌지시 그녀에게 물었다.

“전 마스터를 모시는 노예입니다. 마스터께서 연구에 집중하실 수 있게 잡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마스터란 호칭이 묘하다 싶었더니, 역시나 생각대로였다.

그녀는 노예 출신인 거 같았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노예라…….”

진의 눈에는 그녀의 심장에 자리를 잡은 마나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녀는 노예면서 마법사였다.

진의 반응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지 그녀의 얼굴에 점점 경계심이 피어오를 때, 한 남자가 안쪽에서 허겁지겁 뛰어나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감찰부에서 나오셨다고……진?!”

셋째 형 빈 플린트는 진을 곧장 알아봤다.

“오랜만이야. 형.”

* * *

연구실 내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빈 플린트는 아직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요즘 감찰부가 과격하게 움직이고 있는 건 알고 있지?”

“어. 난리도 아니라고 들었어. 그래서 감찰부가 왔다고 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동생이라고 하면 형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데도, 굳이 감찰부라고 소개한 이유가 있었다.

“감찰부 내부에서 형 연구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어.”

“……내 연구가?”

“어.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쪽은 내가 담당하겠다고 하고 온 거야. 그래서 감찰부라고 소개하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어. 미안해 형.”

물론, 순도 100% 구라였다.

감찰부에서 마탑까지 건드릴 여유는 없었다.

“아니야. 내가 고맙지.”

하지만 형은 그걸 몰랐다. 빈은 살았다는 얼굴로 진에게 감사를 표했다.

“형제잖아. 형이 내 상황이었어도 나처럼 했을 거야.”

“그래도 고맙다, 진.”

형제의 훈훈한 분위기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

“에이 됐어. 그나저나 저분, 굉장하던데?”

진은 빈 뒤에 서 있는 여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미아?”

“표정 관리도 좋고, 상황 판다도 빠르던데? 형 걱정하는 것도 그대로 보였고. 좋은 사람을 곁에 두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했어.”

형은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맞아. 좋은 사람이야.”

그 눈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한데, 사랑은 아닌 거 같았다.

[제자로 삼았나 보네.]

‘아!’

스승이 제자를 생각하는 애정이었다.

‘다행히 적은 아닌 모양이네.’

노예가 마법을 숨기고 있을 린 없으니, 지식의 해방 쪽에서 보낸 위장 요원인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다.

‘직접 가르쳤을 줄이야…….’

마법을 노예에게 가르치는 건 파격에 가까운 일이었다.

‘작은 선물 정도는 괜찮겠지?’

[뭐, 마음대로 해.]

진은 곧장 형에게 말했다.

“제자야?”

“……뭐?”

“써클을 숨기는 방법이 내가 보기엔 어설퍼.”

진의 말과 함께 로메른이 움직였다. 녀석은 빛으로 만든 써클을 만들어냈다.

“이쪽이 확실히 약하지? 지금도 웬만하면 안 들키겠지만, 여길 보완하면 마탑주가 아니고서야 들킬 일 없을 거야.”

진의 말에 둘은 대답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로메른이 만든 써클과 진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보완 방법을 보여 줄게.”

로메른이 써클의 한쪽 부분을 움직였다. 허술했던 부분이 보완되고, 나머지 부분마저 견고해지기 시작했다.

“이건, 대체…….”

형은 감탄을 터트리며 그것을 지켜봤고, 미아는 곧장 써클을 보완해 나가기 시작했다.

[와우. 저 여자애 마나 통제력이 엄청난데? 내가 보여 준 걸 그대로 따라 하고 있어.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애지?]

로메른의 말대로 진이 눈에 힘을 발휘했음에도 써클의 흔적이 점점 옅어지더니 반투명하게 변했다.

“훨씬 좋아졌어.”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고맙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혼란스러운 얼굴로 진을 바라봤다.

“됐어. 앞으로도 형을 잘 부탁해.”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더 깊숙이 숙였다. 진과 그녀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형은 연신 감탄을 터트리며 써클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호 연계를 통한 보완을 이룬 건가? 이쪽에서 이렇게 했다면…… 정말 천재적인 발상이야! 어떻게 이런 구조로!”

로메른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센스가 있어. 이러니 그런 끔찍한 걸 만들어 냈지.]

‘써클 치워. 그 끔찍한 게 뭔지 확인해 볼 테니까.’

[알겠어!]

대답과 동시에 로메른 앞에 있던 써클이 사라졌다.

“아!”

형은 아쉽다는 듯 탄식을 터트렸다.

“형. 지금 여기에 집중할 때가 아닌 거 알지?”

진의 물음에 빈 플린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알겠어.”

“대체 무슨 연구를 하고 있길래 감찰부의 주의까지 끈 거야?”

“예전부터 하던 거.”

“예전부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진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예전에 우리가 한 약속 기억나?”

형의 입에선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내가 말했지? 마법사가 돼서 진 네가 세상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고.”

진은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 이야기를 했던 거 같기도 했다.

“그랬지.”

“솔직히 말할게. 난 네가 치료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 그래서 치료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았어.”

치료하지 않고, 세상 곳곳을 다닐 방법?

이게 대체 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연구하고 있는 건 간단해. 아직은 미완성이긴 한데…… 직접 보여 줄게. 미아. 가져와.”

“예. 마스터.”

잠시 후.

연구실 안쪽에서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키잉. 키잉. 키잉.

마치 곡괭이로 돌을 찍는 듯한 소리. 그 소리와 함께 나타난 건, 로봇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키잉. 키잉. 키잉.

6개의 다리를 움직여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이동형 로봇. 그 위에 미아가 앉아 있었다.

“……이게 뭐야?”

진이 떨떠름하게 묻자, 형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동형 마법 공학 골렘이야. 최종형은 성을 만들고 그걸 움직이는 골렘을 만드는 게 목표야.”

“움직이는 성?”

“그래. 치료 시설을 채워서 네가 세상 곳곳을 여행할 수 있도록 움직이는 성을 만들어 주고 싶었어.”

“……나 치료됐으니까 이제 이거 필요 없지 않아?”

“어. 그래서 연구 방향을 바꿨어. 소형화해서 운반용으로 만들면 어떨까 해서.”

로메른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너 때문에 소형화가 진행된 거였잖아! 저건 소형화되면 문제라고!]

‘대체 뭐가 문젠데?’

[함선에 달리는 마포와 공성 병기인 발리스타에 다리가 달린다고 생각해봐.]

‘그거…… 지옥이잖아!’

그렇게 되면 지구의 ‘자주포’와 비슷한 물건이 나오게 된다.

이동형 공성 무기.

설치와 운반이 어려워 잘 사용되지 않는 것들의 제한이 모두 풀리게 된다.

[그래. 지옥이야. 마법사나 기사가 없는 전장에서도 대량 학살이 가능해지니까. 저 물건이 튀어나오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대충 예상이 된다.

‘무기들의 발전이 가속화됐겠지.’

[파괴력이 높아질수록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어. 저 물건이 사람들에게 생각의 전환을 하게 해준 거야.]

기사와 마법사는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무기는 전혀 다르다. 생산되면 될수록 곳곳에 빠르게 퍼져나간다. 마법사를 양성하는 것보다, 무기를 생산하는 게 싸게 먹힌다.

그러니 방향을 바꿔야 한다.

“형. 논문 발표한 거 있어?”

“아직 없어.”

아직 없다는 건 앞으로는 있다는 소리였다.

“쓰고 있는 논문은 있다는 거지?”

“어. 마법 공학과 골렘의 결합이란 논문은 마무리 중이야.”

진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형. 원래 방향대로 연구해 보는 거 어때?”

“소형화하지 말고?”

“어. 진짜 움직이는 성을 만들어보자. 아주 크게! 일개 성이 아니라 도시는 어때?”

“도시를!?”

연구가 끝나는 게 문제라면, 끝나지 않을 연구를 던져 주면 될 일이었다.

“대신 연구비 지원이랑 시설 지원해줄게. 우리 쪽에 드워프 대장장이랑 엘프들 있는데, 이쪽 도움은 필요 없어?”

“드워프!? 엘프들까지?!”

“골드 제한 없이 연구 한번 해보지 않을래? 움직이는 도시 한번 만들어보자고.”

형의 눈이 반짝이고, 표정이 잔뜩 상기됐다.

“그래! 남자라면 대형이지! 무슨 소형화를 한다고!”

“그렇지! 거기다 드워프제 다리 붙이면 멋도 있지!”

“오오!”

“형. 우리 도시에 세계수도 있어. 도시를 움직이면 세계수가 포함이라니까?”

“세계수까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거기다 우리가 가족인데, 연구 성과 검사하고 하겠어? 천천히 완벽하게 진행해도 좋아!”

“마감 기한까지 없다고!?”

진은 그렇게 말한 뒤, 형에게 물었다.

“어? 형. 짐 아직 안 쌌어? 이사 안 갈 거야?”

그 말에 형은 곧장 미아를 바라봤다.

“미아! 짐 싸!”

“……예. 마스터.”

후원자가 붙었는데, 연구실을 옮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걸 이렇게 해결한다고?]

‘문제될 거 있어?’

[……없지. 와. 이게 없네.]

로메른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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