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11화 (111/210)

111. 무한 동력인 줄

시간이 지날수록 손상률이 가파르게 오르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손상률 40%

덕분에 빠르게 결론이 나왔다.

[이거 함부로 사용하긴 쉽지 않겠는데? 자동 수복이 되긴 할 텐데 일단 두고 봐야 할 거 같아.]

아무리 자동 수복이 된다고 해도 무려 40%에 달하는 손상률이었다.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겠네.’

[맞아. 회복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확인해 봐야 할 거 같아.]

문제는 이게 고작 ‘힐링’을 사용한 반발력이란 점이었다.

‘힐링으로 이러면 파괴 쪽 마법 같은 건 사용하지도 못하겠네.’

파괴 쪽 마법이 훨씬 반발력이 큰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하지. 엄두도 내지 마.]

역시 아픔은 나눠야 하는 법이다. 만약 원래 생각대로 진의 몸으로 버티려고 했다면?

본격적으로 마법이나 힘을 사용한 순간, 몸이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용골이를 활용하는 게 정답이었네.’

[어. 기가 막힐 정도로 완벽한 정답이었어. 이러면 손상도를 보면서 적당히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힐링 말고 다른 걸 어떻게 확인할지는 천천히 고민해 보자고.’

그렇게 실험 결과를 정리하고 있을 때, 뿌리를 통해 세계수를 확인하고 있던 루나가 입을 열었다.

[진. 세계수에 변화가 생긴 거 같은데요?]

‘변화? 고작해야 빛 좀 뿌리는 거 아니야?’

세계수의 크기를 생각하면 고작 힐링 좀 맞았다고 극적인 변화가 생길 리 없었다.

[……확인해 보셔야 할 거 같아요.]

한데, 분위기가 묘했다.

‘왜? 뭐 있어?’

[열매를…… 맺은 거 같아요.]

‘열매? 그게 무슨…….’

[세계수의 열매요.]

그건 말이 안 됐다. 애초에 이 녀석은 세계수가 아니었다.

진짜에 가까운 가짜일 뿐이었다.

[혈화목에 열매가 어떻게 생겨?]

로메른도 진과 같은 생각인 거 같았다.

‘내 말이!’

한데, 진과 로메른의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엘프들이 손대기 전에 빨리 확인해 봐야 할 거 같아요.]

루나의 말대로였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결과를 수습하는 게 먼저였다.

‘가자!’

진은 곧장 갑옷을 해제하고, 서둘러 엘프들의 영지 쪽으로 이동했다.

* * *

엘프 마을엔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도시에 머무는 모든 엘프가 나와 열매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 머리통만 한 크기의 열매. 그곳에서는 달콤한 과육의 향기가 물씬 풍겨 왔다.

‘……혈화목은 열매 안 맺는다며.’

[아. 진짠데…… 혈화목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아니야.]

‘그럼 저건?’

[……모르겠어. 바즈라 그 또라이가 아무리 세계수라고 생각해도 상상 임신도 아니고, 진짜 열매를 맺는 게 가능한가?]

로메른은 머리를 계속해 갸웃거렸지만, 떡하니 나타난 결과에 뭐라고 답을 하지 못했다.

하늘로 날아온 진은 천천히 세계수 곁으로 내려왔다. 모든 엘프들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했다.

“어머니시여. 오셨습니까?”

유일하게 엘프 마을의 지도자 플로나만 기다렸다는 듯 진에게 다가왔다.

“잘 지냈어요?”

“예. 어머니시여. 무탈하게 돌아오신 걸 보니 기쁩니다.”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올 줄 알고 있었나 봐요?”

“예. 어머니시여. 열매가 맺혔으니 당연히 오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열매의 처분은 제게 맡겨 주실 수 있어요?”

“당연한 일입니다. 어머니 나무이신 진 님이 저 열매의 주인이십니다.”

뭐 특별히 설득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래도 사용처를 납득가게 설명해 주는 게 서로에게 좋았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요. 전 저 열매를 다시 어머니의 나무에 되돌려 줄 생각이에요.”

“어머니의 나무에 되돌려 준단 말씀이십니까?”

그녀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예. 아직 열매를 맺을 만큼 성장한 상태가 아니에요. 나이로 따지면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에요.”

진의 설명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의 말대로 어머니의 나무에서 이렇게 빨리 열매를 맺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으니까.

“참 행복한가 봐요. 여러분의 사랑과 보살핌이 있으니 어린대도 열매를 맺을 수 있었을 거예요.”

“아! 어머니의 나무께선 정녕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저희에게 보답해 주기 위해 열매를 맺으시다니…….”

그녀는 나지막이 탄성을 터트리며 말했다.

“고생했어요. 어머니의 나무께선 여러분이 얼마나 수고했는지 잘 알고 계십니다.”

나무의 인정이 뭐가 대단한가 싶지만, 사제가 신의 인정을 받은 것과 다를 게 없는 상황이었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어머니의 나무시여,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보답해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오직 어머니 나무를 위해!”

“어머니의 나무시여! 영원하소서!”

진의 말을 들은 엘프들이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사위가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해진 순간, 진은 플로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러니, 이걸 어머니의 나무께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세계수의 열매가 진의 손에 들어왔다.

“작업은 안쪽에서 할게요.”

“예. 어머니시여.”

진은 엘프들의 기대를 등에 업고 나무 안으로 들어왔다.

[허어. 그대는 정말 대단하군. 세계수의 열매란 보물을 되돌려 줄 생각을 하다니.]

검성이 나지막이 감탄을 터트렸지만, 진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무슨 개소리야? 먹을 수 있으면 먹어야지. 나무한테 이걸 왜 돌려줘?’

[그, 그게 무슨 소린가!?]

‘앞으로 열매 생길 때마다 내가 가져가면 불만이 나올 거야. 이래 놓으면 엘프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지 않겠어?’

[행복은 그런 게……!]

검성은 그 말을 끝으로 로메른에게 연행됐다.

[아. 검씨! 헛소리하지 말고 나와. 이쪽 바쁘니까! 진, 빨리 가서 확인하자!]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세계수 안으로 들어갔다.

* * *

로메른은 과일 안쪽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어루만지기도 하면서 열매를 확인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과일을 확인한 로메른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진. 이거…….]

표정만 보면 꽤 심각한 일이 벌어진 거 같았다.

‘왜? 안 좋아? 심각해?’

[진짜 세계수 열매에 가까워.]

한데, 정작 대답은 나쁜 소식이 아니었다.

‘오오. 대박이잖아. 근데 왜 표정이 그렇게 죽상이야?’

[……좋아할 일인지 모르겠네. 아까 내가 말했지? 혈화목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근데 맺었잖아?’

[그게 문제야. 이 가짜가 진짜 세계수가 되는 중인 거 같아.]

그 말에 진도 멈칫했다.

‘가짜가 진짜가 된다? 어떻게?’

[음…… 확실하진 않아. 일종의 이론이 있긴 한데. 들어 볼래?]

이론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말이 길어졌다.

‘핵심만 부탁할게.’

[이 가짜 세계수는 비록 가짜긴 하지만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세계수야.]

‘그렇지?’

[거기에 정령을 잃은 엘프들이 이곳에 와서 정령을 받는 건 저번에 말해 줬지?]

‘……그래?’

[또 대충 들었구만. 아무튼 유일한 세계수를 엘프들 대부분이 인식하고 숭배하는 상황이야.]

‘비록 가짜지만?’

[어. 지금은 진짜인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중요하지.]

그저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뚝딱 세계수가 되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데, 로메른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가 잡은 위신만 봐도 그래. 네 형 몸에서 나온 특수한 힘과 쌓인 신념이 만나서 가짜 신이 된 거잖아. 이것도 비슷해.]

‘특별한 힘 따위는 없잖아.’

[왜 없어. 우리가 만든 가짜가 특별한 힘 그 자체인데.]

생각해 보면 그랬다.

베이스는 혈화목이지만 로메른에 의해 신성하게 변했고, 핵물질을 심어 엄청난 힘마저 보유했다.

이 대륙에서 가장 특별한 나무가 바로 ‘짝퉁 세계수’였다.

‘그렇게 가짜가 진짜가 되어 가는 중이란 거야?’

[뭐, 이론일 뿐이야. 어째서 그렇게 변하는지는 좀 더 연구해 봐야 할 거 같아.]

진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가짜가 진짜가 된다.

듣기만 하면 엄청 대단한 거 같지만, 그다지 달라질 게 없었다.

이미 진짜처럼 이용하고 있었다.

로메른같은 연구자에겐 중요한 일이겠지만, 사용자인 진에겐 그다지 달라질 게 없었다.

‘대충 알겠어.’

[대충 아는 건 또 뭐야?]

‘그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까.’

[중요한 거?]

진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래서 이 열매는 쓸모가 있어? 없어?’

진짜 중요한 건 결국 이 열매의 쓸모였다.

[있어. 특급 영약이라고 봐도 좋아.]

‘오오!’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좋은 생각? 이젠 그 말 나올 때 좀 무서운 거 같기도 하고…….]

‘보통 영약 먹으면 몸이 좋아지잖아? 난 특히 더 좋아질 테고.’

[그건 그렇지. 검성이랑 성녀까지 있으니까.]

그렇다면 놀라운 일이 가능해진다.

‘영약 먹고 강해지고, 드래곤 하트로 힐링 쏴서 열매 만들고, 다시 그걸 영약으로 만드는…… 무한 동력!’

이 무한 동력만 가능하다면 세상에 그 무엇이 두려우랴!

기고만장한 진의 말에 로메른이 대답했다.

[어. 음. 발상은 좋은데 불가능해. 똑똑한 거 같으면서 의외로 멍청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왜! 이 완벽한 계획이 왜 불가능해!?’

[일단, 네 몸이 용암 골렘의 40%만큼 거대해지거나 단단해져야 돼.]

로메른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만약 네 몸이 단단해졌다고 치자고, 그럼 가능할까? 아니야. 세계수가 열매를 맺는 건 점점 어려워져. 첫 열매기 때문에 고작 힐링으로 맺힌 거야.]

하긴 그렇게 열매를 만들기 쉬웠다면, 세계수 열매 양산이 안 될 이유가 없었다.

[짝퉁 세계수를 버리고, 성장을 도모할 만큼 우리가 급한 건 아니잖아? 게다가 나무만 유지하면 엘프가 통으로 들어올 텐데.]

무엇하나 틀린 말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저 영약을 먹으면 네가 성장하는 게 아니야.]

‘그럼?’

[나랑 검성.]

‘둘이?’

[어. 우리가 만든 나무다 보니까 땅의 기운과 신성력이 가득해. 네가 먹는 것보다 우리가 먹는 게 훨씬 효율적이야.]

아아. 무한 동력의 꿈이여!

하긴 세상이 그렇게 쉬울 리 없었다.

진은 곧장 침대에 누웠다.

‘그럼, 난 쉬면 되지?’

둘이 열매를 먹는다면, 진이 따로 할 일은 없었다.

[어. 쉬면 돼. 근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루나는 꽤 오래 걸렸잖아.’

[루나의 도움을 받을 거거든. 그럼, 다녀온다. 쉬고 있어!]

그 말과 함께 루나가 움직였다. 그녀는 거대한 피 구슬을 만들었다.

대체 뭔가 싶었는데.

[이곳에서 성장을 촉진할 거예요.]

저것 때문에 빨리 나온다고 말한 것 같았다.

곧이어 로메른과 검성 그리고 열매까지 루나가 만든 피 구슬 속으로 흡수됐다.

진은 침대에 누워 그 구슬을 구경했다.

‘오우.’

정령들이 들어간 다음부터 구슬에선 번쩍번쩍 빛이 나오고,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퉁-.

가장 먼저 나온 건, 들어갈 때와는 전혀 다른 모양의 열매였다.

잔뜩 빨아먹힌 것처럼 겉은 쭈글쭈글했고 홀쭉해졌다.

구슬에서 나온 건 열매만이 아니었다. 구슬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억났어!]

로메른이 소리쳤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플린트는 빈 플린트야!]

빈 플린트.

마탑으로 향한 셋째 형의 이름이 로메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 미치광이!]

그것도 범상치 않은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나와. 나와서 이야기해.’

진의 말에 구슬이 깨지고, 중급 정령이 된 로메른과 검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논문이 발표되기 전에 당장 출발해야 돼!]

소년에서 청년이 된 로메른은 더욱 천사의 모습에 가까워져 있었다.

한데, 검성은 여전히 영감이었다.

[허허. 진정하게.]

그저 새하얀 수염이 더욱 길어진 정도의 변화였다.

‘마탑으로 가야 한다고?’

[어. 빈 플린트의 논문을 막아야 돼.]

플린트 가문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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