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힐링이야 킬링이야
엄숙한 분위기의 청문회장.
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청문회를 시작합니다.”
청문회 대상은 로메른을 비롯한 정령들이었다. 녀석은 짜증이 난 표정으로 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무슨 청문회!]
[여긴 대체 어딜 따라 하신 거죠? 왠지 숨이 막히는 분위기네요.]
[허허. 청문회라니…….]
이곳은 힐링을 사용하고, 기절한 다음 꿈에서 만든 장소였다.
“조용!”
진의 말에 정령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진은 참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데!”
고생한 드워프들을 위해 힐링을 사용했는데, ‘힐링 광선포’가 나갔다.
“이게 힐링이냐!”
심지어 그 힐링 광선포를 맞은 드워프들은 비명을 질렀다.
이미 힐링의 영역을 아득하게 벗어난 물건이었다.
“기운도 통제하지 않고 뭐 한 거야!?”
진 혼자서 사용했는데, 저런 결과가 나왔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진은 혼자가 아니었다.
흑마법, 성법, 검술. 각 분야의 최강자 3인의 지원을 받았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건 청문회가 열리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거 통제한 건데?]
한데,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나왔다.
“……그게?”
[우리가 통제 안 했으면 과다 힐링으로 애들 팔이 생기고 그랬을걸?]
이게 힐링이냐? 킬링이지!
심지어 로메른만 일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
[성법을 최대한 전개했어요. 치료와 활력으로 복합 전개해서……]
[기운의 날카로운 부분은 내가 제어했다네. 원래라면 힐링을 맞고 구멍이 났을게야.]
루나와 검성도 힐링을 통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거 같았다.
“그럼, 원래대로라면 힐링을 맞고 몸에 구멍이 나면서, 과다 힐링으로 팔이 생겼다는 말이야?”
[뭐, 확실하진 않지만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겠지?]
미친.
진은 목 끝까지 튀어나오려고 하는 이 말을 억지로 삼켰다.
“힐링인데?”
[첫 사용을 힐링으로 한 게 다행이야. 파괴나 정신 쪽 사용했으면 진짜 대참사 일어났을걸?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출력이 상상 초월이야.]
세상에…….
“우린 대체 뭘 만든 거야?”
이쯤 되니 두려울 정도였다.
[최종 병기? 아니. 애초에 드래곤 하트를 이런 미친 방법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너 말곤 없을걸?]
최종 병기.
진은 이딴 걸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니다. 영화에서 봤던 완성본 모습은 이게 아니었다.
“아니. 완전 좋다고 동의할 땐 언제고!?”
[뭐, 이보다 좋은 활용법이 없긴 하니까. 좋다는 말도 틀린 건 아니지.]
여기까진 뭐 차차 개선하면 될 일이긴 했다.
문제는 이보다 더 심각한 게 있다는 점이었다.
“좋아. 그럼 난 왜 기절한 거야?”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 힐링을 사용한 반동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돼. 지금 육체로 그 반동을 견디는 건 어려워.]
“……힐링에 반동이 있어?”
그야말로 상상 초월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성법의 가장 기초라고 할 수 있는 ‘힐링’에 반동이 있다니!
[……그러게. 이건 나도 깜짝 놀랐어. 지금 육체로는 반동을 견디기 어려워.]
“검성의 칼질도 견디는 육체가…… 힐링을 못 견뎠다고?”
[그렇게 들으니 내 검술이 하찮게 느껴지는구먼.]
결국, 진이 드래곤 하트를 써먹으려면 반동을 견뎌야 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몸의 스펙이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이지만.
“생각해 보니 열받네. 왜 내가 견뎌야 해?”
[……뭐?]
진은 그렇게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어째서 이 고통을 온전히 자신이 견뎌야 하는가!
“고통은 나눠야지!”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그걸 왜 나눠!?]
진의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행복은 독점하고, 고통은 주위에 나눠야 하는 법이다.
“각 나왔어.”
* * *
진이 쓰러져 있는 사이.
대장간엔 광기가 가득했다.
“힘이 용솟음친다!”
“힘이 넘쳐서 토할 거 같다!”
“두드린다! 만든다!”
힐링 광선포를 맞은 드워프들은 굉장히 흥분한 상태였다. 몸에 들끓는 에너지에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덕분에, 묘한 상황이 펼쳐졌다.
“영감이 떠올랐다!”
“뭐든 만든다!”
흡사 야만인들이 사냥감을 뜯어먹듯, 드워프들은 야만인처럼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었다.
“오오오! 검에서 빛이 난다!”
“신성 무기!”
“나도 만들었다!”
그렇게 제작된 무구들은 뭔가 이상했다. 신성력을 잔뜩 머금다 못해 빛을 뿌릴 정도였다.
교황청의 신성 대장간에서 명품을 만들어 냈을 때나 나오는 물건들이 이곳에선 계속해서 생산됐다.
“으아아아! 3일째 망치를 두드려도 힘이 넘친다!”
“자고 싶다! 그런데 몸에 힘이 넘친다!”
“걸작이 계속해서 나온다!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
그야말로 혼돈과 광기가 가득한 대장간.
하지만, 제작의 결과물들은 그 어떤 무구들 보다 신성하고 고결했다.
그렇게 신성 무기 양산이 진행되고 있을 때, 진이 깨어났다.
“남작님! 괜찮으십니까?”
진을 간호하고 있던 마리아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어. 괜찮아. 고생했어.”
“아닙니다.”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아니라고 했지만, 진은 그녀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힐링 때문에 몸에 힘이 넘칠 텐데, 전부 참고 간호해 준 거잖아.”
진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나 간호하고 있기 답답했을 텐데, 얼른 나가 봐. 힘이 넘치는 데 가만히 있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으니까.”
로메른을 통해 대장간에 어떤 난리가 났는지 전부 들었다. 마리아 또한 그런 상태인데도 참고 진을 간호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남작님.”
그녀는 진에게 꾸벅 인사한 뒤, 황급히 방을 나섰다.
‘든든하네.’
새삼스럽게 그녀가 든든하게 느껴졌다. 진은 상념을 털어 내고, 곧장 방을 나와 밖으로 나왔다.
‘로메른. 사람 없는 곳으로 가자.’
[알겠어.]
진은 곧장 사람이 없는 한적한 숲으로 이동했다.
[대체 어떻게 하려는 거야? 고통을 분담한다는 건 또 무슨 소리고?]
로메른은 정말 궁금한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뭐, 그렇게 대단한 생각은 아니야. 그저 약간의 아이디어지.’
진은 적당히 자리를 잡은 뒤.
‘일단 갑옷부터 불러내 봐.’
[알겠어. 기다려 봐.]
진의 심장 쪽에 달린 드래곤 하트가 빛을 내더니.
철컥. 철컥.
이내 상반신을 감싸는 갑옷이 되었다.
‘처음엔 전신 갑옷으로 만들어서 충격을 분산하면 어떨까 했어.’
이 계획엔 큰 문제가 있었다.
[어려워. 상체 갑옷을 만든 것만 해도 기적이야.]
‘알아.’
압도적인 운이 투입되고 나서야 간신히 만들어진 상체 갑옷. 이걸 전신 갑옷으로 개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니, 좀 더 간단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이럴 때 우리가 써먹을 수 있는 게 있지 않아?’
[써먹을 수 있는 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진은 곧장 루나를 불렀다.
‘루나. 내 몸 안에 피의 구슬 만들 수 있지?’
[예.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에요.]
그렇다면 문제가 될 게 없었다.
[갑자기 몸 안에 피 구슬을 왜…… 너 설마!?]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자 로메른도 감을 잡은 거 같았다.
[용골이를 써먹을 생각이야?!]
‘어. 정답이야.’
진의 계획은 간단했다.
‘몸 안에 피의 구슬을 만들고, 내 피부 위로 갑옷처럼 용암 골렘을 소환하는 거야.’
[……형태 조절이 문제긴 한데, 그거야 수정하면 되는 거고.]
로메른은 그렇게 중얼거린 뒤.
[……되겠는데? 녀석한테 정보도 주입했으니까. 마법진 각인도 어려운 게 아니야.]
실시간 변형과 대응을 할 수 있는 생체 갑옷.
오버 테크놀로지의 정수!
‘어때? 나의 완벽한 계획이.’
진은 의기양양하게 로메른에게 물었다. 한데, 로메른의 반응이 이상했다.
[용골이의 본체는 어마어마한 크기니까 충격을 받아도 버티겠지. 이것까지 고려한 거야?]
전혀 아니었다. 아픔을 나누기 위한 발버둥이었을 뿐이었다.
로메른은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쓸데없는 이야기는 됐고, 곧장 시작해 보자.’
[와. 이걸 대답 안 해주네.]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진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빨리 들어와!]
모든 정령이 진의 몸으로 들어왔고, 피의 구슬에 자리를 잡았다.
[그럼, 시작한다.]
로메른의 말과 함께, 진의 몸 위로 이글거리는 용암이 나타났다.
[갑옷 형태로 고정한다!]
‘투구까지 만들어!’
[알겠어!]
용암이 점점 진의 몸을 뒤덮었다. 울퉁불퉁한 용암이 수축하더니 마치 압축되듯 점점 얇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돌을 붙여놓은 것처럼 투박한 모습이었지만, 이내 갑옷처럼 변했다.
[형태 고정!]
-새로운 형태를 등록합니다.
-형태가 고정됩니다.
갑옷이 진동하며 몸 전체가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충격을 되돌립니다.
-본체가 손상됩니다.
[충격 완화 마법진 새겨!]
-충격 완화 마법진을 보충합니다.
…….
용골이와 로메른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떨림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형태 고정 완료.
-상체 갑옷과 동기화 완료.
이내 떨림이 멈췄다.
결합을 끝낸 진의 모습은 일반적인 풀 플레이트 갑옷과 전혀 달랐다. 일반적인 갑옷처럼 두껍고 둔해 보이지 않았다.
신체의 굴곡이 그대로 느껴졌고, 오히려 날렵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용암 덕분에 들어간 검은색과 붉은색의 조화는 갑옷을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느낌이 이상한데?’
자신의 몸인데도, 자신의 몸처럼 느껴지지 않는 감각.
[너의 아이디어를 참고했어. 외부 심장처럼 팔과 다리에는 외부 근육을 달면 어떨까 해서.]
‘……외부 근육?’
[어. 몸과는 달리 이쪽을 변형시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
진은 그 말을 듣고, 제자리에서 힘차게 뛰어올랐다.
쿠-웅!
큰 진동과 함께 진의 몸이 하늘 높이 튀어 올랐다.
원래라면 할 수 없는 움직임.
‘미친…….’
갑옷을 만들랬더니 로메른은 파워 슈트를 만들었다.
[생각보다 힘 출력이 높지 않은데? 이쪽은 더 연구해 봐야겠어.]
‘……여기서 더 좋아진다고?’
[당연하지. 이건 시제품일 뿐이야. 연구를 통해 개선하는 건 당연하지.]
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땅에 착지했다.
쿠-우웅!
한쪽 무릎을 꿇고, 왼손을 땅에 대는 슈퍼 히어로 랜딩.
‘크! 이거지!’
진은 묘한 쾌감을 느꼈는데.
[무릎에 안 좋게 뭔 쓸데없는 짓이야? 그냥 착지할 수 있었잖아?!]
정말 낭만이 없는 녀석이었다.
‘이게 멋있는 거라니까.’
이제 딱 하나만 더 실험해 보면 끝이었다.
‘드래곤 하트를 직접 써 보자.’
[어디다 써 보게?]
지금까지 쌓인 데이터대로라면 사용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뿐이었다.
‘안전하게 힐링 사용하자. 허공에 뿌리긴 좀 아깝고…… 아! 세계수에 쓰는 건 어때?’
[오. 나쁘지 않은데?]
그렇다고 해서 세계수가 있는 곳까지 직접 갈 필요는 없었다.
[잠깐만 기다려!]
로메른의 말과 함께.
드드드득. 드드득.
땅에 미약한 진동이 일더니, 이내 커다란 뿌리가 땅에서 튀어나왔다.
[세계수 뿌리야. 여기다 쓰면 세계수에 흡수될 거야.]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 팔을 뻗고, 양발을 땅에 고정했다.
‘준비됐어.’
[그럼, 사용한다.]
진의 가슴이 빛나더니, 오른쪽 손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첫 시도와는 달라진 점이 있었다.
‘몸에 통증이 느껴지긴 하는데, 버틸 만해.’
힐링을 사용했다고 기절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본체가 충격을 받습니다.
-본체가 손상됩니다.
-본체가 파괴됩니다.
-손상률 7%
…….
-손상률 12%
용암 골렘의 본체가 빠르게 손상될 뿐이었다.
‘미친…….’
고작해야 3초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용암 골렘의 본체가 12%나 파괴됐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손상된 건 자동으로 회복되니까. 다만…… 생각보다 손상이 너무 빠른데?]
‘그래도 이 정도면 사용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잠깐만 기다려봐. 손상도를 좀 더 계산해 볼게. 이거 확인이 필요하겠어.]
‘알겠어. 그럼 힐링 유지하면 되는 거지?’
그렇게 진과 로메른이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엘프 마을엔 난리가 났다.
“어머니의 나무에서 빛이 나고 있습니다!”
“저건 도대체!?”
“대체 무슨 일이…….”
세계수가 빛을 뿌리며 주위를 밝혔다.
처음엔 단순히 나무가 더 커지고, 가지가 자라고, 꽃이 필 뿐이었다.
한데, 그 시간이 더 이어지자.
“저, 저길 보십쇼!”
“어머니께서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어머니의 열매라니!?”
“대, 대체 이게 무슨!”
세계수에서 열매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영약 중의 영약이라 불리는 세계수의 열매가!
진이 쏜 힐링이 영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