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09화 (109/210)

109. 비밀 병기.

진의 영지는 떠나기 전과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예전엔 도시 주요 시설만 둘러싸고 있던 성벽이 마을 외곽까지 확장되었고, 곳곳에 도로까지 깔려 있었다. 그건, 진의 영토만 그런 게 아니었다.

엘프들의 영지 또한 영향을 받았다. 곳곳에 성벽이 설치되어 있었고, 사막 전사를 막는 성벽은 한층 더 두껍고 높아져 있었다.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변화가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 정도 변화가 있을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오호. 저 성벽 조립식인 거 같은데?]

‘……조립식?’

[어. 이러니 성벽 설치가 빠르지.]

왠지는 모르겠지만, 성벽에 관한 발전은 집착적일 정도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대체 뭐라고 말했길래 성벽에 이렇게 집착하는 거야?]

로메른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진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아니. 내가 뭔 말을 해.’

이건 진이 시킨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진이 건축에 관해 뭘 안다고 이런 일을 시킬까.

‘……지하에 오래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뚫려 있는 게 불안한 뭐 그런 거?’

[흐음. 가능성 없는 건 아닌데.]

‘뭐, 깊게 생각할 필요 없지 않아?’

[어. 상관없지. 도시 방비가 좋아서 손해 볼 건 없으니까.]

성벽이 발전한다고 나쁠 게 없었다. 게다가 성벽에만 미쳐 있는 것도 아닌 거 같았다.

‘저거 다 밖에서 온 마차들이지?’

[그렇겠지. 깃발 대충 훑어봤는데, 대부분 상단 마차던데?]

‘무구 제작도 시작했나 보네.’

두꺼운 성벽과 잘 깔린 도로.

그곳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무구.

상단들이 줄지어 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보니까 잘 돌아가는 거 같네. 이러면 바로 작업 들어가도 되겠는데?’

도시는 기대 이상으로 잘 돌아가고 있었다. 하늘을 날고 있던 진은 곧장 영주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영주의 집무실.

한 드워프가 서류 더미 앞에 앉아 열심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마그마.”

지하에서부터 진의 왼팔을 자청하던 ‘마그마’. 그가 영주 대리를 하고 있었다.

“보스!?”

그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 나 없는 동안 도시는 잘 굴리고 있던 거 같네.”

“예.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습니다.”

서류에 치이고, 일에 치일 텐데도 녀석의 얼굴엔 생기가 넘쳤다.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도와줄 만한 일이 있어?”

물론, 진짜 도와주려고 물은 건 아니었다. 마그마 녀석도 그걸 알고 있었다.

“아닙니다. 보스 손까지 빌릴 일은 애초에 만들지 않겠습니다.”

진짜 지하에서부터 느낀 거지만, 녀석은 유능하다. 상사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는 녀석이다.

“좋아. 그대로만 해.”

“감사합니다. 보스.”

“단, 지식의 해방과 관련된 일은 바로 도움 요청해. 이쪽은 자연재해라고 생각해도 돼.”

“예. 명심하겠습니다.”

당부까지 했으니 영주로서 할 일은 끝이었다.

“필요한 게 있어.”

“말씀해주시면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대장간에서 특별한 물건을 제작할 거야. 대장장이들 준비시켜.”

“소재만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쪽 전문가들을 모으겠습니다.”

진은 나지막이 말했다.

“드래곤 하트.”

“……예?”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렸다.

특별한 소재일 거라곤 생각했지만, ‘전설’ 속 물건이 튀어나올 거라곤 생각지 못한 거 같았다.

물론 그걸 진이 신경 써야 할 건 아니었다.

“갑옷을 만들 거니까 무기 쪽 말고 갑옷 장인들 위주로 모아.”

“아…… 예!”

“비밀리에 작업할 거니까 외부 인원 있으면 전부 내보내고. 이 작업이 최우선 사항이야.”

“아, 알겠습니다!”

마그마는 거듭된 진의 당부에 진짜 드래곤 하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아는 어디 있지?”

“지금 시간이면 영지를 돌아다니며 정책을 확인하는 중이실 겁니다.”

마그마가 영주 대리란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아니었다.

마그마 위에 마리아가 있었다.

“마리아 작업실에 있을 테니까, 마리아 불러 와.”

“예. 알겠습니다.”

진은 그렇게 지시한 뒤, 곧장 마리아의 작업실로 향했다.

* * *

빙의 능력을 갖고 있는 마리아.

그녀의 재능은 정말이지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와. 세상에…….’

마지막으로 왔을 땐 연금술 장비만 있던 마리아의 작업실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대장장이용 도구나 각종 세공 용품은 물론 마법진이나 여러 논문에 대한 자료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빙의 능력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달라지는데…… 정말 열심히 했나 보네.]

‘전투 능력이 좀 아쉽긴 하지만, 이 정도면…….’

제작 계열의 끝판왕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영혼의 지식을 체화시키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말로만 들으면 쉬워 보이지만, 길고긴 시간 동안 노력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남작님.”

작업실 문 밖에서 마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처럼 고저 없는 목소리였지만, 진에겐 조금 다르게 들렸다. 그녀는 진의 복귀를 환영하고 있었다.

“들어와.”

그녀는 진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어. 마리아 너도 잘 지냈나 보네.”

진은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도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멈추지 않고 계속 노력하고 있었구나. 고생했어.”

“아닙니다. 남작님.”

아니긴, 저 무표정 아래 즐거워하는 얼굴이 진에겐 그대로 보였다.

“특별한 물건을 제작할 생각인데 네 도움이 필요해.”

드래곤 하트로 외부 심장을 제작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로메른이 실패 확률이 더 높다고 했을 정도의 난이도. 이걸 성공시키기 위해 로메른은 기묘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전설의 겜블러 카라스. 그 영혼 아직 가지고 있지?”

확률 싸움인 도박에서 운으로 그 확률을 조종한 카라스.

“이번 성공은 너한테 달렸어.”

실패 확률이 높다면, 그 확률 자체를 높이면 될 일이었다.

마리아가 바로 비밀 병기였다.

“준비가 필요해?”

“아닙니다. 지금 바로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그럼, 대장간으로 가자.”

“예. 남작님.”

비밀 병기가 왔으니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진과 마리아는 대장간으로 향했다.

* * *

제작은 곧장 시작되었다.

원래 제작은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다.

하지만 진의 머릿속에 도안이 있었고, 로메른의 머릿속에 설계 방법이 있었다.

사전에 필요한 준비는 벌써 끝난 상태였다.

“얇은 갑옷. 활동에 불편함 없어야 해. 심장이 있는 갑옷 가운데에는 이게 들어갈 거니까 자리 비워 두고.”

진은 말을 할 때마다, 테이블 위에 있는 양피지에 로메른이 갑옷의 도안이 그리기 시작했다.

“허어. 이런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갑옷이라니…….”

“연결과 이음새가 완벽합니다. 이건 갑옷의 혁명입니다.”

“나머지는 마법을 처리한다니…….”

“역시…… 보스!”

드워프들은 도안을 보면서 감탄을 터트리다가 묘한 결론을 내어놓았다.

“암. 보스의 갑옷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 말대로야. 보스께서 입을 갑옷인데!”

“역작이 탄생하겠어.”

진이라면 당연히 이런 갑옷을 설계할 수 있고, 이 정도 갑옷을 입어줘야 한다는 결론.

그런 분위기는 진이 품에서 그 물건을 꺼내면서 더 커졌다.

“가운데 구멍에 들어갈 건 바로 이거야.”

드래곤 하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 드래곤하트!”

“이런 엄청난 기운이라니!”

“이게 아직도 남아 있었다니!”

“역시!”

진은 그 모습을 보면서, 뭐랄까 묘한 기분을 느꼈다.

‘역시는 무슨 역시야. 이쯤 되니까 좀 무서운데?’

지금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거 같은 분위기였다.

“이미 설계부터 과정까지 정령들에게 말해 두었으니. 정령들의 뜻을 따르면 돼.”

“예! 보스!”

대답과 함께 대장장이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을 더 크게 지펴라!”

“더 강한 화력이 필요하다!”

그 순간.

“요, 용암?!”

“저게 무슨!?”

중앙 화덕에 용암 골렘이 나타나더니, 불이 있을 자리에 용암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불은 신경 쓰지 마. 필요한 온도가 있으면, 근처 정령들에게 바로바로 말해.”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대장장이들은 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일 안 해?!”

“예, 예! 보스!”

녀석들은 화들짝 놀라 일하기 시작했다. 한데, 녀석들은 힐끔힐끔 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뭐야 왜 이래?’

[대장장이들한테 제일 중요한 게 불이야. 그래서 대장장이들은 불의 신을 모시기도 하거든. 넌 지금 대장장이들한테 가장 필요한 걸 준 거야. 그것도 아무렇지 않게.]

온도 조절이 마음껏 되는 용암.

대장장이들에겐 이게 바로 기적이었다.

그렇게 기적과 함께 갑옷 제작이 시작됐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며칠 정도면 뚝딱 완성될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시간이 더 걸렸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설마…… 실패를 할 줄이야.’

[……시행착오가 있을 수도 있지!]

간신히 가공해 놓은 드래곤 하트와 갑옷을 결합한 순간, 반발 작용이 일어났다. 덕분에 작업은 처음부터 다시 진행됐다.

이건 진에게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메른이 실패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그만큼 드래곤 하트가 굉장한 거야. 이건 실패가 아니야! 시행착오라고!]

도대체 둘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지만, 로메른은 끝끝내 시행착오라고 우기며 작업을 이어갔다.

그렇게, 두 번째 시도할 때는 진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성서에 각인된 마리아의 힘을 진이 함께 사용했다.

전설의 겜블러 카라스를 빙의하고 있는 마리아. 그런 마리아가 각인된 성서의 힘.

둘의 힘을 합쳤다.

‘확률 조작 두 배로!’

[……내 계획을 꼭 그렇게 싸구려처럼 말해야겠어? 게다가 엄밀히 따지면 두 배도 아닌데?]

로메른이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진은 로메른의 말은 사뿐히 무시했다.

지금 중요한 건 결과였다.

“……결합이 되고 있어!”

“설마! 이번에야말로 성공하는 건가!?”

확률 조작 두 배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처음과는 달리, 드래곤 하트와 갑옷의 거부 반응이 심하진 않았다.

드드드드득.

갑옷이 진동하며 미약한 거부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점점 결합이 진척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법진 가동한다!]

드래곤 하트에서 빛을 내기 시작하더니 갑옷에 빼곡히 새겨진 마법진에 마나를 퍼트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허어. 저게 진짜 가능할 줄이야.”

“갑옷을 접는다니…….”

“두께도 그대로잖아?!”

갑옷이 접히기 시작했다.

[으아. 저걸 구현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알아?]

공간을 접어 두꺼워지지 않으면서도 갑옷이 접히는 기능.

철컥. 철컥.

그렇게 갑옷은 계속 접히기 시작하더니. 이내 드래곤 하트를 감싼 테두리만 남게 되었다.

드드드드득.

마지막으로 잘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 진동마저 멈췄다.

완성된 모습은 기묘했다.

손바닥만 한 원형 유리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갑옷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형태였다.

진은 그걸 들어 심장 위에 가져다 댔다.

척-

묘한 느낌과 함께 유리판이 가슴 위에 고정이 됐다.

진은 곧장 로메른을 불렀다.

‘로메른.’

[알겠어. 아…… 떨리네.]

곧이어 녀석이 움직이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철컥. 철컥.

접혀있던 갑옷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진의 상반에는 은빛 갑옷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 성공이다!”

그 모습을 드워프 하나가 소리쳤고, 이내 다른 드워프들까지 소리치기 시작했다.

“성공이라고! 완성했어!”

“기록에 남을 만한 역작이야!”

드워프들은 갑옷이 작동하는 것에 주목한 모양이었지만, 진과 로메른의 생각은 달랐다.

‘시작은 나쁘지 않네.’

[이제부터가 진짜야. 결국 드래곤 하트를 사용할 수 있어야 성공이니까.]

‘해 보자고.’

진은 손을 들고, 드워프들에게 말했다.

“고생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보스!”

“고생한 너희에게 포상을 내리마.”

그 말과 함께 로메른이 움직였다.

[힐링 사용할게!]

로메른이 드래곤 하트에 있는 마나를 끌어오며 힐링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진의 손끝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졌다. 그건 힐링이라고 하기보다는 파멸적인 ‘빛’이었다.

“으아아아! 치유된다!”

“이게! 치유인가!?”

힐링을 맞은 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이, 이게 무슨 힐링이야!?’

그게 진이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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