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가문의 비밀
[신기한 경험?]
진은 마법진의 영향으로 보았던 것들을 짧게 설명했다.
물론, 자신이 지구에서 온 것이나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빼놨지만.
모든 설명을 들은 로메른은 잠시 시간을 달라고 하더니, 곧장 해답을 내놓았다.
[대충 뭔지는 알 거 같은데?]
‘정말?’
[어. 조금 복잡한 이야기가 될 거 같은데…… 일단 최대한 단순하게 설명해 볼게.]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 네가 본 건 우리가 회귀하지 않았을 때의 기억이 아닐까?]
‘그러니까…… 너희가 회귀를 안 했던 세계가 멸망하게 될 때의 기억이란 거야?’
[그렇지! 이걸 또 바로 이해하네. 그거야. 시간선이 두 개 있다고 생각하면 돼. 우리가 회귀한 지금과 회귀하지 않은 과거.]
시간선?
요약하자면 간단한 이야기였다.
‘너희가 회귀하지 않았을 때 난 혼자서 마법을 익혔다는 거야?’
[그렇지. 만약 우리가 아니었다면 네가 죽을 때만 기다리고 있었을까?]
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지. 어떻게든 살려고 하지 않았겠어?’
기왕에 얻은 두 번째 기회.
진이 그 기회를 날려 먹을 리 없었다. 애초에 게으를 수 있는 건, 정령들이 있기 때문이었으니까.
[내 생각은 그래. 우리가 회귀한 다음 많은 사건이 변했지만, 그 중심에 있는 건 너야. 그런 너의 기억이 혼동된 게 아닐까 싶은데.]
로메른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진의 생각처럼 로메른은 설명을 이어 나갔다.
[현재, 네 기억 중에 빠지거나 봉인된 부분은 없어. 애초에 그런 게 있었다면, 내가 눈치챘을 거야.]
‘그것도 그렇네. 그럼 한 가지만 더. 난 마법사의 재능이 없는데 어떻게 익혔을까?’
[그것도 대충 감이 와.]
‘진짜!?’
[어.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않아? 한 가문에서 특별한 인물들이 이렇게 많이 나왔을까?]
그 말대로였다.
넷째 형과 둘째 형은 물론이고, 진 본인만 해도 특별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 비밀이 바로 네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어.]
‘대체 무슨 비밀인데?’
[여기서 비밀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밖에 없지 않아?]
그제야 진은 로메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수호자가 붙을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 가문에 숨겨져 있었다.
‘그 물건이 이 모든 일의 핵심이라는 거지?’
[그래. 바로 그거야.]
물론, 모든 의문이 해결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그럼,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바로 시작하자.’
진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 *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잠에 빠진 것처럼 모두가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역시, 생각대로네. 이건 직접 위해를 끼치는 마법진이 아니야. 시간을 벌기 위한 마법진이지.]
시간을 벌기 위한 마법진.
로메른이 그렇게 판단한 것도 이해가 됐다. 수호자가 이 마법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벌써 해결돼도 됐어야 한다.
한데, 여전히 마법진이 유지가 되고 있다는 건.
‘이 마법진이 최후의 보루라는 거네. 지원군이 와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최후의 보루.’
그렇다면 기사단장은 이 마법진이 사용되지 않게 사전에 막는 게 그의 역할이자 임무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렇겠지. 나조차도 쉽사리 깨울 수 없을 정도였어. 뭐, 시간이 있다면 깨울 수 있었겠지만.]
지원군이 와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깨어날 수 없는 꿈 마법.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한 마법진이었다.
‘그런데도 지원군이 오지 않았다는 거네.’
[그렇지. 원래라면 진작 와서 해결해야 했을 텐데…….]
그 이유가 무엇일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왕국이 이렇게나 개판인데 지원군이 오긴 힘들겠지.’
[하긴 그것도 그렇네.]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왕국 전역이 지식의 해방의 공격을 받고 있어서 쉽사리 지원을 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일단 아버지랑 형이 괜찮은지 확인부터 하자.’
진은 거침없이 안쪽으로 들어왔다. 시종들이나 경비병들이 쓰러진 위치를 보니 마법진이 발동되기 전에 특별한 소란은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너무 평화로워 보이는데?’
당황해서 이리저리 움직인 흔적이 없었다.
심지어, 아버지와 첫째 형은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다가 마법진이 발동되어 쓰러지신 거 같았다.
‘뭐지?’
진은 아버지와 형의 안전을 확인한 뒤, 곧장 밖으로 나왔다.
기사들의 연무장도 들리고, 남작가 곳곳을 둘러보며 다녔다. 역시나 다른 곳들도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기사단장만 없네.’
유일하게 자리를 비우고 있는 사람은 기사단장이 유일했다.
‘그 수호 중인 물건은 어디 있는 거야?’
[마법진의 흐름을 보면…… 지하에 있어.]
‘지하?’
남작가에서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곳은 딱 두 곳뿐이었다.
지하 감옥과 창고.
‘둘 중에 어디야?’
[지하 감옥 쪽이야.]
진은 로메른과 함께 지하 감옥으로 이동했다.
남작 성의 뒷면에 입구가 있는 지하 감옥. 그 지하 감옥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여기가 맞는 거 같네.’
진은 천천히 지하 감옥으로 내려갔다. 들어가자마자 로메른은 빛의 구슬을 띄웠다.
내부가 환하게 보였다.
감옥에 갖힌 죄수는 없었다.
그저 퀴퀴한 냄새와 함께 이동할 때마다 먼지만 일어날 뿐이었다.
그렇게 지하 감옥 맨 끝에 도달했을 때.
‘아무것도 없잖아?’
지하 감옥엔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히 지하 감옥에 숨긴 건 아니지. 이쪽에 눈을 사용해 봐.]
로메른은 한쪽 벽면을 가리켰다.
진은 눈을 사용해서 한쪽 벽을 확인했다.
[정말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네. 지금 해제가 돼서 이정도로 보이는 거지. 원래라면 나도 작정하고 찾은 게 아니면 못 찾았을 거야.]
로메른의 말대로 해제가 됐다는데도, 눈을 발동해야 그 이질감이 미약하게나마 확인됐다.
‘들어가면 되는 거지?’
[어. 다 해제돼서 아무것도 없어. 그냥 들어가기만 하면 돼.]
진은 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치 벽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진의 몸이 그대로 통과됐다.
그제야 내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와. 이건…….’
마법진이 가득한 공동.
이곳이 있는 걸 몰랐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공간이었다.
[공간 확장에 보강에 숨김에…… 미쳤는데? 이건 진짜 대단해.]
대체 이렇게 까지 숨기려고 했던 건 무엇일까?
진은 천천히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껏 찾았던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기사단장.’
그는 침입을 깨닫고 이곳으로 달려온 것 같았다.
물론, 그는 조금 늦은 상태였다.
중심부로 가기도 전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기사단장이 가지 못한 중심부에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저 양반이 왜 여기 있어?’
남작가에 있기엔 이상했던 강자.
정보길드의 지부장 얀드레.
그가 중앙에 쓰러져 있었다.
* * *
진은 그에 관한 기억을 떠올렸다.
모든 일을 의심하는 반쯤은 편집증적인 성격. 이러한 정신병이 당연한 정보 길드의 지부장이라는 건 명확히 기억났다.
‘우리 썩 좋은 관계 아니었나?’
적어도 나쁜 관계는 아니었다.
서로 주고받고 도움을 나누다가, 어느 순간 거래를 그만둔 건.
‘더 쓸 만한 패가 생겼으니까 그런 거였는데.’
정보길드가 주던 도움은 이제 흡혈귀와 늑대인간들이 대신해 주고 있었다.
정신병을 달고 있는 집단을 굳이 옆에 둘 필요가 없었다.
‘이쪽도 켕기는 게 있으니까.’
오해와 착각으로 이득 본 게 적지 않은데, 정보 길드가 옆에 있으면 이러한 일이 적어졌을 테니까.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대체 이 양반이 여기 왜 있는 거야?’
그의 모습을 보니 뭔가 훔치러 이곳에 들어온 건 아닌 거 같았다.
훔치러 왔으면 멍청하게 홀로 왔을 리가 없었다.
‘대체 뭐 하는 양반이야.’
대체 무슨 이유로 이곳을 침입했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진이 그를 보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로메른은 전혀 다른 것을 보며 놀라고 있었다.
[미친. 이게 아직도 남아 있었어?]
‘뭔데 난리야?’
진은 고개를 돌려 로메른이 보고 있는 걸 바라봤다.
‘돌멩이?’
아니. 돌멩이보다는 유리 조각이라고 하는 게 맞았다.
깨진 검은색 유리 조각.
[돌멩이라니!]
뭐, 반응을 보아하니 꽤 대단한 물건인 모양이었다. 진은 눈의 힘으로 그 돌멩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미친…….’
고작해야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크기였는데, 담고 있는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압도적인 마나.
푸른 마나가 쌓이고 쌓여, 마치 심연처럼 짙은 검은색을 이루고 있었다.
[악룡 르네바의 드래곤 하트야.]
‘……뭐? 드래곤?’
진의 머릿속에 드래곤에 관한 지식이 있었다. 한데, 그건 신화일 뿐이었다.
‘드래곤이 진짜로 있었다고?’
[어. 지금이야 멸종해서 신화나 전설 취급되지만, 예전에는 실제로 존재했어.]
‘그 드래곤의 심장이 저 유리 조각이라는 거지?’
[맞아. 플린트 가문에서 유독 특별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 이유가 바로 저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이곳에 저걸 숨겨두었다고 아무런 영향이 없을 리 없잖아. 남작 성에서 태어난 이들은 이 드래곤 하트의 영향을 받아 태어난 거야.]
그러니 플린트 남작가가 특별한 것이다.
[다만, 너무 특별하다 보니 몸에 무리가 가는 거지. 너희 넷째 형이나 네 몸만 해도 그래.]
뭐, 그거야 지금은 치료됐으니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보다 진이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그래서 저거 써먹을 수 있는 거야? 저거 내 심장에 이식하면 나 바로 대마법사 되는 거 아니야?’
저 힘을 온전히 몸에 담을 수만 있다면, 지식의 해방이고 나발이고 문제가 될 게 없었다.
[……그건 또 뭔 개소리야?]
한데, 로메른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저걸 어떻게 심장에 이식해? 애초에 발상부터가 글러 먹었어. 내가 생각하는 최강의 육체를 만들어도 저건 몸에 못 담아.]
‘……뭐?’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활용법은 장비를 만드는 정도인데? 아니면 이곳처럼 마법진을 만들던가.]
아니. 그렇게 써먹기엔 아쉬웠다.
덕분에, 진의 머릿속엔 재미난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외부에 심장을 하나 더 만들면?’
[……뭐?]
‘장비로는 가능하다며. 저걸로 외부에 심장을 하나 더 만들면 어때? 이를테면…….’
진은 자신의 가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에 붙여 놓으면 심장이나 다름없지 않아?’
[……넌 진짜 미쳤어. 미치도록 천재적이야!]
로메른은 감탄을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될 거 같아. 외부 심장으로 구동을 하면, 지팡이나 그런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녀석은 홀린 듯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로메른! 정신 차려. 지금 성공 가능성을 점칠 때가 아니야.’
[그게 뭔 소리야?]
‘일단, 저걸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지도 모르는 거 아니야?’
[……아, 맞네.]
이건 수호자의 물건.
기사단장의 허락이 필요했다.
‘기사 단장이 저걸 쉽게 내어줄까?’
[죽일까?]
‘아니. 그러면 더 복잡해지지. 수호자가 지원군으로 오기로 했다면서. 나중에 문제가 생길 거야.’
[그럼 어쩌자고?]
‘뭘 어째 본인이 직접 주게 만들어야지.’
[본인이 직접 주게 만든다고?]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 게다가 저쪽도 무슨 용무로 왔는지 확인해야 하지 않아?’
진은 정보 길드 지부장을 가리켰다.
[그것도 그렇네. 정보 길드 사람이니까 쉽사리 정보를 뱉지 않을 텐데…… 이거 또 귀찮아 지겠네.]
‘아니. 그것도 걱정 없어.’
지금 이 상황은 진에게 굉장히 유리한 상황이었다.
‘일단, 마법진 유지하는 건 문제 없는 거지?’
[어. 상관없어. 어차피 저 드래곤 하트가 마법진을 유지하는 거니까.]
그럼 진의 생각대로 진행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 같았다.
‘일단, 내 이야기부터 들어 봐.’
진은 품에서 꿈 구슬을 꺼냈다.
‘이걸로 저 양반들이 보고 있는 과거로 갈 수 있을까?’
[……깨워서 설득하고, 물어보는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한다?]
‘바로 그거야.’
로메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진짜 진 너의 잔머리는 못 당하겠네.]
녀석은 그렇게 말한 뒤, 진이 원하는 대답을 해 주었다.
[잠깐만 시간을 주면, 충분히 가능해.]
‘우리가 작업해야 하는 거 두 사람인 거 알지? 빨리 준비해.’
[알겠어! 루나 나 좀 도와줘!]
[알겠어요.]
모두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