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04화 (104/210)

104. 플린트 남작가

둘째 형의 초조해 보이는 반응을 보고 있자니, 진의 심증은 더욱 확실해졌다.

‘둘째 형은 무언가를 알고 있어.’

릴 플린트는 굳은 표정으로 진에게 다가와 말했다.

“진. 그 검신의 힘 지금 사용할 수 있어? 사용할 수 있으면, 나 좀 도와줘.”

형은 도와 달라고 말했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데? 이 마법진은 대체 뭐야?”

“……너 이게 보여?”

형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어. 보여. 그것도 확실하게.”

“이게 보일 리가 없는데…… 그렇게 단순한 마법진이 아니야.”

형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주민들만 해도 아무것도 모른 채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 대단한 마법진을 진이 알아봤으니 형이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단순한 마법진이 아닌 건 나도 알아.”

마법진에 관한 분석은 로메른이 하고 있는 중이였다.

[고위 마법진이야. 게다가 요즘에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기도 하고. 아. 이쪽은 현자가 전문인데…… 아무튼, 굉장히 오래전에 만들어진 마법진이야.]

‘오래전에? 그럼, 이 마법진이 남작가에 계속 있었다는 거야?’

[아마도 그렇겠지. 대체 어떻게 숨겼길래 내가 못 본 거지? 굉장히 고위 마법사의 작품같은데…….]

진은 로메른에게 들은 이야기를 형에게 말했다.

“마법진의 양식을 보니, 굉장히 오래전에 만들어진 거 같은데?”

“……너 마법도 사용할 줄 알아?”

형은 혼란스러운 듯 진을 바라봤다. 뭐, 이 정도 혼란이야 쉽게 무마할 수 있었다.

“내가 검을 알아서 그 검결을 해석했어?”

“……미친.”

형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성자는 뭐가 달라도 다른가 보네. 좋아. 설명해줄게. 원래라면 이걸 말해 주는 건 안 될 일이지만, 뭐 성자니깐 괜찮겠지.”

표정과 반응을 보니 나름대로 납득한 거 같았다. 형은 천천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첸 스승님이 해 주신 이야기야.”

“기사단장님?”

남작가에 어울리지 않는 강자.

기사단장 첸.

그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어. 스승님께 들어서 난 이 마법진에 관해 알고 있었어.”

“잠깐만.”

뭔가 이상했다.

“아버지나 첫째 형이 아니라, 기사단장님에게 들었다고?”

“어. 아마 아버지나 형은 모르고 있었을걸?”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었지만, 슬슬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플린트 남작가에 비밀이 있는 게 아니었다.

“이 땅에 뭔가 있는 거야?”

“정답이야. 우리 집이나 다름 없는 저 남작성은 특별한 목적으로 설계된 건물이야.”

그게 대체 뭔 소린가 싶었는데.

[과연, 그래서 건물이 저 모양이었구나? 이쪽 지역에 맞지 않는 건축 양식이라 뭔가 이상하다 싶었더니.]

로메른은 이해가 된다는 듯 말했다. 뭐, 지금 이런 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급하지 않아? 핵심만 말해 줘.”

지금 들어야 할 건 이런 게 아니었다. 형도 진의 말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물건을 지키기 위해 설치된 마법진이야. 첸 스승님은 그 물건을 지키기 위해 오신 거였고.”

어째서 그가 남작가를 선택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살기 좋아서 이런 곳에 왔을 리 없지.’

노후를 위해 남작가의 기사단장을 선택하는 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설마…… 그쪽인가?]

‘그쪽?’

[수호자. 비밀 결사대 비슷한 거야.]

‘적이야, 아군이야?’

[아군에 가까운 이들이야. 이들이 수호하는 것들은 위험한 물건들이 대부분이니까.]

진이 둘째 형에게 물었다.

“기사단장님은 수호자야?”

진의 물음에도 형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역시…… 성자도 수호자인 거지?”

대신, 묘한 오해를 하기 시작했다. 진이 뭐라고 대답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거짓말해도 돼. 엄밀히 따지면 녀석들은 조직이 아니야. 그저 수호자 지위를 대대로 물려줄 뿐이야.]

그럼 이야기는 빨라진다.

“어. 무언가를 수호하진 않지만.”

“하긴 성자는 세상 자체를 수호할 테니 지키는 물건이 없는 게 당연하겠지.”

검산에서도 느낀 거지만, 둘째 형은 창의력 대장이었다.

‘이걸 이렇게 해석한다고?’

[진짜 난 릴 플린트가 마음에 들어. 저 모자란 듯 똑똑한 게 아주 누구랑 똑같네.]

[허허. 그게 누구인지 난 알겠군.]

진은 정령들의 말을 사뿐히 무시했다.

“저 마법진은 어떤 마법진이야?”

“나도 정확하게는 몰라. 그저 마법진이 발동되면 들어가는 건 가능해도 나갈 수 없다고 들었어.”

들어가는 건 가능하지만, 나갈 순 없다.

[일종의 봉인 마법진인가? 아니. 그런 거 치곤 형식이 좀 다른데…….]

아무래도 정보가 더 필요해 보였다.

“그럼, 마법진이 발동된 다음엔 어떻게 하라고 들은 거 없어?”

“마법진은 최후의 수단이야. 애초에 내가 지키고 있을 때 발동됐다면 나도 마법진 안에 있었을 거야.”

“해제 방법은?”

“……그건 몰라. 스승님은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건 상황이 심각해 보였다.

‘기사단장이 해제 방법을 알고 있다면 이걸 왜 해제하지 않았을까?’

[내부에 뭔가 문제가 생긴 거겠지.]

‘하긴 그게 아니면 해제하지 않았을 리 없지.’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들어가야 되는 거지?’

이건 들어가는 거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 진짜. 하필 남작성에서 이 난리가 나서…….’

차라리 다른 곳이었다면, 마법진을 밖에서 공략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에 첫째 형과 아버지가 있는데 마법진을 함부로 뒤흔들 수 없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어. 직접 들어가야 돼.]

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로메른이 이런 말을 할 정도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 들어가자.’

진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형. 난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야.”

“나도 같이 갈게.”

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형은 밖에서 해 줄 일이 있어.”

“밖에서?”

“어.”

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이곳을 주시하고 있는 이들이 있을 거야. 그들을 색출해줘.”

“……적이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침입조가 적의 전부일 리 없었다.

“남작가 내부는 내가 외부는 형이 해결하는 거야.”

“알겠어.”

“그럼, 형 믿고 들어간다.”

“조심해. 진.”

진은 형의 말을 들으며, 남작가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마법진이 시작되는 정문에 도착하자마자 진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진. 부탁한다.”

릴 플린트는 정문을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 *

진은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몽롱하며, 비현실적인 느낌.

그런 진의 눈에 생각지도 못한 게 보였다.

작고 어린 모습의 진.

어렸을 적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리운 과거의 모습.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질감과 함께 진실을 깨달았다.

‘아니. 저건 내가 아니야.’

진이 이 육체에 들어오기 전 모습이었다. 저건 진짜 자신의 과거가 아니었다.

그런 의문이 떠오르자 모든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럼 이건……?’

의문이 하나 떠오르자 또 다른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애초에 내가 왜 이런 걸 보고 있지?’

그러자 몽롱했던 정신이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난 마법진 내부로 들어왔어.’

그렇다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마법진의 효과란 뜻이었다.

가장 먼저 몸을 점검했다.

‘내가 하늘을 날고 있는 건가?’

아니.

하늘을 날고 있는 게 아니었다.

‘육체가 느껴지지 않아…….’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시점이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게 무슨…….’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모르겠을 때는 물어보면 될 일.

‘로메른! 루나! 검성!’

속으로 아이들을 불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진은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애들이랑 연락은 안 되는 거 같고.’

그렇다면 간단하다.

‘정신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건데. 정신 마법 비슷한 건가?’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이들이 있으니 육체가 위험할 리 없다는 점이었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

지금 진이 할 수 있는 일은 상황을 지켜보며,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진의 시선이 어린 진에게 고정되었다.

“오늘은…….”

어린 진은 침대 옆에 책을 산더미 같이 쌓아 놓고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내 어렸을 때랑 하는 짓은 똑같네.’

물론, 진은 부모님의 강요로 억지로 공부했고 저 아이는 스스로 원해서 한다는 게 다르긴 했지만.

한데, 곧이어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인가?”

어린 진은 손을 움직여 마나를 움직였다.

‘염동력?’

어린 진은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저건 기초적인 마나 운용에 불과했지만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내 기억 속에는 저런 게 없는데?’

육체에 남은 기억 대부분은 잡학에 가까운 지식이었다.

역사, 전설, 신화, 예절 등등. 이런 잡학에 가까운 지식들이 진을 빠르게 적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지만.

‘마법은 없었단 말이지.’

마법은커녕 마나에 관한 지식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한데, 녀석은 능숙하게 마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때때로 심장이 아픈지 가슴을 부여잡긴 했지만.

‘확인해 보자.’

진은 녀석이 보고 있는 책들의 제목을 확인했다.

흑마법개론.

백마법개론.

마법진의 구조와 형태.

성법에 관한 고찰.

인체의 구조와 기능.

등등.

진의 머릿속에 전혀 없는 지식과 관련된 책들이었다.

‘혼란을 주는 종류의 마법진인가?’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았다.

그때 어린 진의 목소리가 진에게 들려왔다.

“난 살아남을 거야.”

어린아이의 목소리지만, 그 말은 어린아이답지 않았다.

‘살아남는 게 목적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책들의 규칙성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잠깐만…… 설마 자기 몸을 치료하려고 저 책들을 모은 거야?’

그렇다면 저런 책을 저렇게 열심히 보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 다만,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 육체가 마법에 관한 재능이 있었다고?’

아버지나 첫째 형은 진이 마법에 관한 재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저 책은 누가 구해 준 거지?’

기초 이론서라고 해도 구하기 까다로운 책이었다. 심지어 학파나 종류가 너무 달랐다.

‘대체 뭐지?’

한데,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침대 위에서 책을 보던 어린 진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 이렇게 됐나?”

벌써?

저건 누구한테 말하는 거지?

“내 기억에서 나가.”

나가라고?

어떻게?

녀석의 주위로 마법진 수백 개가 떠오르더니 고정된 시야가 뒤흔들렸다. 그리곤, 마치 몸이 쭉 뒤로 밀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정신이 점점 흐릿해졌다.

“여기까지 온 걸 보니 잘하고 있나 보네.”

어린 진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진은 어딘가로 튕겨나갔다.

잠시 후.

진이 눈을 떴을 땐.

[기억 재생 마법진이라니. 이거 까다로운데?]

[위험하진 않은 거예요?]

[어. 전혀 상관없어. 그저 어렸을 때 기억을 재생할 뿐이야. 녀석 아팠다고 하니까 아마 침대에 누워 있지 않을까?]

로메른과 루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됐어. 일어났어.’

진이 머릿속으로 생각하자.

[진?!]

로메른이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그보다 이 마법진에 관해 설명해 봐. 아주 신기한 경험을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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