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01화 (101/210)

101. 답을 찾다

검산. 이곳은 정말 놀라웠다.

절벽 곳곳에는 칼로 새겨진 흔적들이 즐비했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모여서 그것을 바라봤다.

그 흔적들을 바라보다가 명상을 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토론을 하거나, 검을 들고 숲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저마다 방법은 다르지만, 검술을 향상시킨다는 목적을 위해 모두가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다.

‘이런 곳이 유지되다니…… 신기하네.’

진이 보기에 이곳은 정말 놀라운 장소였다. 물론, 이런 생각은 이곳을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와있는 모두가 경비이며, 관리자일세. 검을 사용하는 이들에겐 신성한 장소이지.]

‘그 정도야?’

[세상 모든 검사를 적으로 돌린다고 했다는 말은 농담이 아닐세.]

그런 검성의 말은 금세 확인할 수 있었다.

“비켜라! 벌써 며칠째냐! 그 자리를 얼른 비우고 물러나라!”

녀석의 말을 들어 보니, 며칠간 기다리다가 터진 거 같았다.

그 모습을 본 진은 깜짝 놀랐다.

‘저딴 녀석도 며칠을 기다릴 정도라고?’

저 철딱서니 없는 녀석조차도 며칠을 기다린 걸 보니 검산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었다.

물론, 철딱서니 없는 귀족가 도련님은 금방 진압됐다.

“읏!”

소란에 주위에 있던 이들이 무서운 눈으로 녀석을 바라봤다. 그 눈초리가 얼마나 살벌한지 녀석은 깜짝 놀라 침음성을 흘렸다.

게다가.

“도련님!”

그 모습을 본 기사들이 그 녀석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 기사들의 눈도 다른 이들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러자 녀석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왔다.

‘오호. 이런 식이라 이거지? 감 잡았어.’

[그대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일단 올라가는 걸 목표로 해야 하는데…… 올라가는 방법은 뭐가 달라?’

[뭐, 입구에서와 그리 다르지 않다네.]

‘그럼, 일단 같은 편부터 찾자.’

[같은 편이라니?]

‘있어 봐.’

진은 눈의 힘을 사용해 주위를 둘러봤다.

이곳에 검을 사용하는 이들이 모인다면, 진이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이 원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검결을 연구하는 중인데 미안합니다.”

진은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여기 분위기를 보면, 굉장한 실례였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표정을 찌푸린 채 진을 바라봤고, 이내 그 표정이 놀라움으로 변했다.

“서, 성자님?”

“안녕하십니까. 성기사님.”

그는 다름 아닌 교단의 성기사였다.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목소리를 조금만 낮춰 주시겠습니까?”

진은 주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커다란 목소리 때문에 주위에 있던 이들이 눈을 흘기고 있었다. 그는 곧장 주위에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의 깔끔한 사과에 진과 성기사를 흘기던 시선이 사라졌다.

“죄송합니다. 성자님.”

“아닙니다.”

진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뒤 벽에 새겨진 검결을 가리켰다.

“그보다, 이 검결을 연구 중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는 답답하다는 얼굴로 검결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곧장 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한데, 성자님께서 이곳은 어찌…….”

진이 정령사임을 알고 있으니 하는 말이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라면 전 이곳에 있으면 안 됩니다. 세상에 펼쳐진 혼란을 수습해야 하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이곳이었습니다.”

진의 말에 그의 표정이 변했다.

그런 그의 반응은 당연했다.

성자가 자기도 모르게 이곳에 왔다면, 그건 ‘뜻’을 받아 온 것이니까.

“그분의 뜻을 받으신 겁니까?”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다만, 제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주위를 둘러보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절 찾으신 거고요?”

“예. 마치 자석에 이끌린 듯 성기사님이 계신 곳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와 떨어진 장소.

게다가 안쪽 절벽이기에 쉽사리 보이지도 않는 곳이다. 이런 곳에 이끌린 듯 찾아왔다는 건.

“신께서 인도하신 걸지도…….”

성기사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좋아. 여기까진 잘 먹혔네.’

이제 중요한 건 이다음부터였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저, 정말이십니까?”

“예. 절 이곳에 이끄신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진은 검결이 새겨진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 * *

성기사 율린.

‘난 왜 이렇게 부족할 걸까.’

입구와 가장 가까운 최하층에 남은 건 동기 중 오직 자신뿐이었다.

‘어려워…….’

신을 모시고 신성력을 발휘하는 건 그에게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한데, 검을 사용하는 건 너무나 어려웠다.

-넌 사제가 어울려.

성기사 교육을 받으며 항상 듣던 이야기.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성기사보다는 사제가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하지만.

‘지키고 싶어.’

교단을 지키는 방패.

성기사가 되고 싶었다.

자신의 부족한 재능을 알기에,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다.

새벽까지 수련하다 여러 차례 쓰러지고 검을 휘두르다 너무 힘들어서 수십 번을 울었다.

한데, 결과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정말 안 되는 걸까?’

검산 최하층에 남은 그는 정처 없이 떠돌았다. 그러다, 안쪽 구석에 남겨진 검결을 하나 발견했다.

‘이건…….’

다른 검결과는 달리 이해가 됐다. 기초적이면서도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검결로 느껴졌다.

‘이걸로 하자.’

그래서 그 앞에 앉아 검결을 바라봤다.

물론, 첫 느낌과는 달리 눈곱만큼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다시 벽을 느낄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지나고.

“검결을 연구하는 중인데 미안합니다.”

그는 성자를 만났다. 심지어, 신을 뜻으로 이곳에 온 성자를.

‘내가 이 검결을 택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아시는 것처럼 전 검에 관해 잘 모릅니다. 한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모든 걸 알 수 있습니다.”

검을 알고 있을 리 없는 성자님이 검에 관해 알고 있었다.

“정말 좋은 검결을 골랐습니다. 성기사님과 딱 맞는 검결입니다.”

자신은 턱없이 부족한 재능을 지녔음에도 검결을 알아본 이유가 있었다.

“신께서 절 이곳에 이끄신 이유가 이제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성자님의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모두 신께서 계획하신 일이었다.

그다음부터는 놀라운 일의 연속이었다.

“허허. 이 검결은 처절하고, 처절하구나.”

성자님은 때때로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변했다.

“검이란 공평하지만, 때때로 불합리한 녀석이란다. 재능이란 녀석 때문이지.”

성자께선 검을 모르지만, 동시에 그 누구보다 검을 잘 알고 계셨다.

“이건 범인의 검이다. 가장 기초라 할 수 있는 세로 베기. 그것을 극한까지 갈고닦았구나.”

성자님께서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셨다.

“불합리함을 이기는 방법은 공평함을 이용하는 것이다. 들인 시간은 절대로 널 배신하지 않는다.”

성자께선 자신을 위로하는 것만 같았다.

“보아라.”

흙으로 만든 검을 들고, 성자께서 세로 베기를 하시자.

“이것이 극한까지 갈고 닦은 세로 베기란다.”

마치 태산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노력은 의지를 만들어내니, 그 의지를 검에 담는 것이다.”

성자님의 세로 베기가 끝났을 때. 원래 검결이 새겨져 있던 절벽에 성자님의 검결이 새겨졌다.

“이것이 네가 선택한 검결이란다.”

온몸에 전율이 퍼졌다.

그와 함께 깨달음이 내려왔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야.’

자신의 노력이 덧없지 않음을 깨달았다.

재능에 절망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 모든 것이 지금을 위해 존재했음을 깨달았다.

검을 뽑았다.

의지를 담았다.

세로로 베었다.

성자님의 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엉망인 검이지만.

“좋은 의지구나.”

자신은 한 발 더 나갔다.

재능을 뛰어넘을 방법을 손에 쥐었다.

고개를 돌려 성자님을 바라봤다.

성자님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자신을 바라보고 계셨다.

“어떠냐. 나와 함께 검산의 더 높은 곳까지 올라 보겠느냐?”

“아…….”

이제야 알았다.

어째서 성자님을 만났으며, 자신이 검결을 알아보았는지.

‘내가 바로 증인이었어.’

성자님의 행적을 기록하고, 역사에 기록을 남기는 ‘산증인’.

“따르겠습니다. 성자시여.”

자신의 운명을 깨달았다.

* * *

‘좋은데?’

[허어. 이거 죄를 짓는 기분이군.]

진이 세운 계획은 간단했다.

‘왜? 검결 옆에 발전된 검결을 남긴 건데.’

이 아무것도 아닌 듯해 보이는 작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건 내가 걸었던 길일 뿐일세, 오히려 발전을 한쪽으로만 하게 만들 걸세!]

‘검성의 발전 방향인데, 대륙에서 최고란 거 아니야?’

[끄응. 그건 그렇긴 하네만, 자유로운 발상이 사라진단 말일세.]

검성의 말대로 발전 방향을 미리 정해버리면,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는 게 어려워진다.

굳이 완벽에 가까운 발전 방향이 바로 옆에 있는데, 새로운 방법을 생각할까?

절대 그럴 리 없었다.

게다가 이 일의 가장 좋은 점은.

‘끔찍한 방향으로 검술이 발전하는 걸 막을 수 있으니까 문제도 해결되는 거 아니야?’

[허어. 이게 대체…….]

검성은 떨떠름한 반응이었지만.

[발전된 검의 방향은 결국 검성에게서 나왔으니. 다른 이들이 배운다고 해도 문제가 아니겠네요.]

[와 악독하다 악독해. 악독한데 우리한테 좋다는 것도 신기하네. 진짜 진 넌 여러 가지 의미로 천재야.]

로메른과 루나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보다 확실한 해결책은 없었다.

게다가, 성기사를 선택한 것도 정답이었다.

“성자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고마워요. 부탁할게요.”

잡일을 해 주는 성기사가 있으니 한결 편해졌다.

그렇게 성기사 율린과 함께 진은 검산을 올랐다.

물론, 그냥 올라가진 않았다.

[오! 진! 저쪽에 애꾸 녀석 보이지? 쟤 진짜 괜찮은 놈이야.]

‘그래?’

[의리도 있고, 믿을 수가 있는 녀석이야. 용병 놈치고는 꽤 괜찮은 녀석이라 기억하고 있어.]

[허어. 그 애꾸 용병단 말인가? 신용이 높기로 유명했지. 나도 기억하고 있다네.]

‘그럼, 그냥 갈 수 없지.’

진은 검산을 오르며 여러 사람을 도와주었다.

어차피 검결 옆에 검결을 계속 남겨야 했으니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겸사겸사 유망주 투자를 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진의 이런 도움은 선악을 가리지 않았다.

[저놈이랑 저놈 보이지? 몸에서 나는 피 냄새랑 원한 봐라. 저거 암살 쪽 출신자야.]

[저 친구는 변절자로 유명했던 자로군. 검의 수준은 높았으나 그 인성은 바닥과 같았지…….]

나쁜 놈들 또한 도움을 주는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놈들 말릭이랑 붙여 놓으면 재밌을 거 같지 않아?’

[……나쁘지 않긴 한데, 통제되겠어? 아니지. 말릭이면 되려나?]

‘마법 계약하면 되지. 그걸로 묶어 놓고 말릭한테 던져 주자. 그 사람 다음엔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난 찬성일세. 비록 미래에는 악인들이 되지만, 우리 쪽에서 선으로 이끌 수도 있을 테니.]

‘그럼, 저쪽도 도와주자.’

악인 드림팀.

선인 드림팀만큼 강력할 테니, 이쪽도 나름 괜찮은 패가 되어 줄 것이다.

이렇게 폭넓게 도와주다 보니. 묘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검산에 검신이 강림했다.>

그리고 이런 소문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불러왔다.

진이 산 중턱에 올랐을 때.

“검신께 도움을 청합니다.”

소문을 듣고 진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형?”

“어!? 진!?”

이곳에 온 목적인 형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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