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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의 정령 천재-99화 (99/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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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신이다.

이 세상을 만들었으나, 책임 도지지 않고 모든 이를 외면한 신.

난 모든 걸 바로잡으려 했다.

더는 외면하지 않고 세상의 절망과 마주하려고 했다.

영락하였기에 힘도, 기억도, 무엇하나 제대로 된 게 없지만, 내겐 수많은 사제들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라면,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수녀원에서 힘을 모았다. 많은 이들의 믿음과 신앙을 통해 힘을 회복했다.

그렇게 숨을 죽인 채, 힘을 모으고 있을 때 기회가 찾아왔다.

성자, 신의 사도.

그가 자신을 찾아왔다.

그와의 대화는 흥미로웠다.

그는 자신을 빠르게 회복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영락하며 잃어버린 것들을 단숨에 찾게 해 줄 방법을 알고 있었다.

물론, 성자의 방법은 몇 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나의 사도가 열어 준 길이다.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성자는 신이 내려준 이정표이며, 지침이며, 도움이다.

-저 성자는 내가 만든 것이다.

신이 만든 성자.

신을 대신해 움직이는 성자.

자신은 신이기에 성자를 믿었다.

그 결과.

“눈이 불경한데?”

-아, 아닙니다! 주인님!

성자에게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상황이 펼쳐졌다.

“왜? 성자야. 시험이라면 이제 그만하자꾸나. 같은 개소리 해 보지?”

-아닙니다! 주인님!

이놈은 성자가 아니다.

자신이 이딴 끔찍한 놈을 성자로 임명했다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세상이 얼마나 타락했으면, 이딴 놈이 성자가 됐을까.

참으로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세상은 무슨 자꾸 헛소리 할래?”

성자를 내가 만들어서 그런지 귀가 참 밝았다. 이걸 즐거워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너 아직도 자기가 신인 줄 아는 거야?”

-……주인님. 제가 비록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제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자신의 진지한 말에 성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성자한테 주인님이라고 불러도, 신은 신이다?”

저 이죽거리는 표정에 자신은 없던 감정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열받는다. 진짜.

“왜, 열받아?”

진짜 귀신같은 놈.

그런 생각과는 달리 용암 골렘은 양팔을 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주인님!

“이야. 이래도 자기가 신은 아니라고 말 안 하네. 공포에 굴복해서 성자를 주인님이라 불러 놓고?”

-그건…….

솔직히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물이 답을 알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물은 정말로 답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저 성자가 원하는 답을.

“그치? 물이 확실히 답을 알고 있지?”

-……그렇습니다.

“다행인 줄 알아. 만약에 답을 계속 몰랐으면 환상과 거짓의 악마 단탈리안한테 팔아먹으려고 했으니까.”

-……주, 주인님? 성자가 악마랑 거래한다니요?!

상상 초월이다. 이게 성자라고!?

성자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이고, 신이시여.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되죠. 악마 또한 신께서 만드신 창조물인데요. 그건 너무 인간다운 생각 아니냐?”

-…….

난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 * *

진은 고개를 숙인 채 시무룩해 있는 용암 골렘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게 어떻게 신이야.’

[기분이 싱숭생숭하네요. 교단 최대의 적이었는데…….]

[우리가 저딴 녀석한테 휘둘렸던 거야?]

[허어. 이거 참.]

정령들 또한 진과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신이라는 녀석이 무력에 굴복한 것도 모자라 마치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했다.

신비롭고 대단한 껍데기를 치우고 보니 녀석은 신과 거리가 멀었다.

인간의 신앙과 믿음으로 만들어진 가짜 신다웠다.

‘이제 저 녀석한테 현실을 일깨워 주자고.’

[알겠어. 준비할게.]

진은 그렇게 로메른과 대화를 나눈 뒤, 가짜 신에게 말했다.

“넌 신이 아니야.”

-…….

녀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네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설명해줄게.”

진은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탄생의 비밀을 말해 주었는데도, 녀석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제가 또 속을 것 같습니까?

냉랭한 목소리로 이딴 말을 할 뿐이었다. 녀석의 이런 반응은 오히려 진에겐 좋은 일이었다.

“좋아. 믿지 못한다는 거지?”

-당연합니다.

녀석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시험해 보자. 넌 정보 집합체라고 내가 말했지? 우리 쪽에서 정보를 추가하면 네가 바뀔까, 안 바뀔까?”

-정보는 지식일 뿐, 제 존재가 그걸로 이루어져 있진 않습니다.

“그럼 해 볼래?”

-……무엇을 말입니까?

“정보를 추가해 보자고.”

효율에 미친 로메른과 진이 녀석을 설득하기로 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건 녀석의 동의가 필요했다.

정보로 이뤄져 있는 존재이기에, 강제로 정보를 박아 넣을 순 없다.

“난 네가 정보 집합체라고 생각해서 봉인한 거야. 만약 아니라면,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지.”

-무엇을 말입니까?

“뭐긴 뭐겠어. 네가 신이라는 걸 인정한다는 소리야.”

조그마한 용암 골렘 몸에서 화르르 불이 피어올랐다.

-그렇다면 하겠습니다. 스스로를 증명하겠습니다. 어떠한 정보든 좋습니다.

“그래? 그럼 기다려 봐.”

그러자 로메른이 성령을 하나 꺼냈다. 노바의 등 뒤를 지켜 주는 노바의 성령이었다.

[노바의 사념이 잔뜩 묻어 있으니까. 이걸 주입해 보자고.]

노바는 진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녀석의 성격이 노바와 비슷해지면 나쁠 게 없었다.

“성령에 새겨져 있는 사념과 지식을 주입할 거야.”

-고작해야 유령에 쌓인 사념 정도라면 더더욱 제게는 소용없습니다.

녀석은 위풍당당하게 말했지만, 이게 녀석이 생각하는 유령과는 거리가 좀 멀 것이다.

“그럼, 집어넣는다.”

-받겠습니다.

녀석의 대답과 함께, 성령에서 반짝이는 것들이 용암 골렘에게 흡수되었다.

그리고, 변화가 생겼다.

-커어억!

용암 골렘이 바닥에 쓰러져, 뒹굴뒹굴하기 시작했다.

-내, 내가…….

녀석은 바닥을 뒹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니게 돼 버려!

구슬 위에 붙어 있던 용암이 후드득 쏟아지더니, 안쪽에서 빛이 점멸했다.

그리곤,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오직 주인님을 위해!

-세상을 위해서.

-세상은 주인님이 구한다!

-내가! 내가 해야 한다!

마치 노바와 가짜 신이 다툼을 벌이는 거 같았다.

곧이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주인님께서 가라사대 물은 답을 알고 있다 하셨다!

-비겁한 놈! 여기서 물을 꺼내다……꼬르르륵...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정령들은.

[……애들은 어른의 나쁜 점만 골라 배운다더니.]

[언행과 행동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겠어요.]

[그대가 바로 아이들의 거울일세!]

진에게 한마디씩 했다.

하지만, 진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역시, 노바야. 필요한 걸 이렇게나 잘 배우잖아.’

[너는 진짜 우리가 아니었어도 뭘 해도 해 먹었을 녀석이야.]

진의 말에 로메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노바와 가짜신의 친목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난 신이다! 다만, 주인이 있는 신일 뿐!

이딴 결과가 나오게 됐다.

끔찍한 혼종.

주인이 있는 신은 대체 무슨 신인데?! 이런 말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다른 정보를 집어넣을 건데, 괜찮지?”

-당연히 괜찮습니다. 주인님! 전 신입니다! 제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어쨌든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약간 미친 게 아쉽긴 하지만, 이 정도면 나쁠 게 없는데?’

[약간 미친 게 아닌 거 같은데? 어쨌든 시험해 보자.]

로메른은 곧바로 가공해 둔 정보를 녀석에게 넘겼다.

노바의 사념은 정보를 반항 없이 쭉쭉 받아들이기 위해서 넣었을 뿐, 지금 넣는 정보들이 진짜였다.

-성법 연산 정보를 획득했습니다.

-흑마법 연산 정보를 획득했습니다.

-마법진 제작 보조 정보를 획득했습니다.

-정령 융합 용암 제작의 연산 정보를 획득하였습니다.

…….

필요한 각종 지식을 용암 골렘 녀석에게 쑤셔 넣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러, 수녀원에 거의 다 도착할 때쯤엔 이런 변화가 생겼다.

“정화.”

진이 손을 뻗으며 말하자, 진의 주위를 날아다니는 작은 용암 골렘의 몸에서 빛이 나더니.

파아앗-!

정화가 발동됐다.

그 모습은 마치 사제가 아닌 진이 직접 성법을 발동한 것처럼 보였다.

‘크. 생각대로 됐는데?’

홀로는 성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진.

물론 로메른의 도움을 받으면 되는 일이지만, 이건 로메른이 없어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게다가, 용암 골렘의 장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각종 다른 지식을 주입하면, 제작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거 같은데?]

AI의 가장 좋은 점은 ‘정보’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녀석의 활용도는 정보를 주입하면 주입할수록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은 쓸모가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러면 형 몸도 해결할 수 있는 거지?’

당장만 해도 형의 몸을 치료하는 데 써먹을 수 있었다.

[어. 원래라면 시간 때문에 봉인만 하고 말았을 텐데, 이제 저 녀석이 있으니까 시간은 문제가 아니야.]

‘마무리하자고.’

수녀원 방문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 * *

넷째 형을 치료하는 방법은 2가지였다.

몸을 바꾸거나.

기운을 바꾸거나.

이 선택은 진이 마음대로 할 일은 아니었다.

선택은 오롯이 형의 몫이었다.

“체질을 바꾸면 내 키도 쑥쑥 크는 거야?”

형은 몸을 바꾸는 쪽에 관심을 보였다.

“어. 아마 그럴걸? 대신, 그런 변화가 생기면 수녀원에 더는 있지 못할 거야.”

“그, 그래?!”

“어. 당연하지.”

수녀원에 더는 있지 못한다는 말에 형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진. 나한텐 이곳은 고향이야.”

“알아.”

치료를 위해 형은 시간 대부분을 이곳 수녀원에서 보냈다.

집보다 더 집 같은 곳.

형에게 있어 이곳은 고향이었다.

“기운을 제거하면 어떻게 돼?”

“지금과 달라지는 건 없을 거야. 그 기운을 내가 가져갈 생각이거든.”

“진이? 내 기운을?”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인 형이었다. 형을 속일 필요까진 없었다.

“응. 형의 기운은 특별해. 그 기운을 좋은 곳에 사용할 생각이야.”

세상을 구하는 데 쓰니 좋은 곳에 사용한단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래?”

쉔은 조금 전, 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더 눈을 반짝였다.

“진에게 도움도 되고, 난 고향을 지킬 수 있네?”

“그렇지?”

“알겠어. 그럼 그렇게 할게.”

“괜찮겠어?”

“괜찮아. 내 선택이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형의 얼굴엔 확신이 떠올라 있었다.

“알겠어. 그럼, 치료할게.”

“고마워 진. 허무맹랑한 내 이야기를 믿고 날 도와줘서.”

“됐어. 가족이잖아.”

왠지 낯부끄러운 기분에 적당히 대꾸했지만, 그게 쉔에겐 감동인 모양이었다. 그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슬쩍 고였다.

“얼른 누워.”

“아, 알겠어.”

형이 눕자마자 로메른과 용암 골렘이 움직였다.

[대상의 육체의 맞춰서 H-431 마법진 도안 작성해.]

-H-431 마법진 도안을 작성합니다.

원래라면 로메른이 뭔가를 계산하고 끙끙 앓다가 작업이 시작됐을 텐데.

용암 골렘이 있으니 확실히 달랐다.

‘와. 빠른데?’

형 몸에 마법진을 새기고, 짝퉁 세계수의 씨앗과 피의 구슬을 이식하는 복잡한 과정이 착착 진행됐다.

“형. 내 성서에 형 좀 등록해도 돼?”

“응! 내가 영광이야!”

성서 등록을 끝으로 형의 몸은 완벽하게 치료가 됐다.

“몸은 어때?”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거 같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형의 몸은 달라진 게 없으니까.

그렇게 진과 쉔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로메른과 용암 골렘은 수녀원을 누볐다.

[이쪽 마법진에서 모이는 기운을 우리가 받을 수 있게 만들 거야.]

-에너지 전송 이해했습니다. 마법진을 작성하면 되겠습니까?

[그래. 그것부터 시작하자.]

로메른이 목표로 하는 건, 단순히 쉔의 몸에 있는 기운이 아니었다.

신을 만들고, 세상을 위험에 빠트렸던 금지된 힘. 남자의 기운과 여자의 기운이 충돌할 때 나오는 그 힘이 목표였다.

덕분에 로메른은 치료가 끝난 다음에도 수녀원을 누비며 일할 수밖에 없었다.

* * *

한편, 치료가 끝나고 로메른이 수녀원을 누비고 있을 때.

“형. 둘째 형이나 셋째 형이랑 혹시 연락해?”

“형들이랑?”

진은 넷째 형에게 다른 형들에 관해 질문했다.

‘플린트 가문을 알고 있는 게 우연일까?’

처음엔 우연일지도 몰랐다.

한데, 각기 다른 플린트를 기억하는 건 정말 이상했다.

‘게다가, 넷째 형의 일만 봐도 묘해.’

지식의 해방과는 연관되지 않은 독자적인 사건.

우연히 벌어진 재앙.

‘이 모든 게 정말 우연일까?’

아니. 만약 우연이라고 해도, 조사할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어. 형들이랑 연락하나 궁금해서.”

“둘째 형이랑은 했었어.”

“했었다고?”

“응. 근데 폐관 수련에 들어간다고 말한 다음부터 연락이 없어. 수련이 많이 힘든가 봐.”

“……폐관 수련?”

“응. 둘째 형이 검산에 있는 건 알지?”

검산이란 말에 검성이 반응했다.

[검산이라…… 그대의 형이 검산에 있다면…….]

이것 봐. 역시 플린트 가문에 뭔가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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