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98화 (98/210)

098. 가짜 신 활용법

무언가 나타났다.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느껴지긴 하는데…….’

진의 몸을 짓누르는 위압감과 압박감.

가짜 신이라고 해도 ‘신’을 칭하는 녀석다운 힘이었다.

‘진짜 온 거야?’

[어. 보이지 않지만, 이곳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왜?

사제들을 현혹하기엔 오히려 어떠한 형상을 띄고 있는 게 유리하다.

한데, 이 신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 진의 머릿속에 한 정보가 스쳐 지나갔다.

‘신께선 어디에나 존재하며, 어디에도 없다.’

성서에 나와 있는 구절. 애초에 신의 모습은 성서에도 묘사되어 있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자신이 진짜로 신이라고 생각한다면, 보이지 않는 게 정답이다.

진은 고개를 돌려 넷째 형을 바라봤다. 형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고.’

진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신이시여.”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취했다.

“당신의 가장 가까운 종. 성자 진 세인트가 인사드립니다.”

곧이어, 반응이 나왔다.

주변 공기가 떨리고, 형용할 수 없는 압박감이 진의 몸을 휘감았다.

전율. 환희. 쾌감. 행복.

다양한 감정이 진의 몸속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느새 눈물이 흘러나오고, 상기된 몸이 덜덜 떨린다. 진의 얼굴엔 환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신이시여…….”

이걸 가짜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런 의문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쓸데없는 감정 치운다.]

로메른이 움직이자 머릿속이 맑아졌다. 몸은 여전히 전율로 떨리지만, 정신은 선명했다.

하지만.

-나의…… 아이야…….

음성이 들려오자 다시 한번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 진짜. 귀찮게 하네.]

로메른은 귀찮다는 듯 솟구치는 감정을 배제했다.

“예. 신이시여.”

로메른이 감정을 배제했지만, 겉으로 보기엔 진은 감격에 겨워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처럼 보였다.

-네가…… 성자구나…….

신의 손길이 느껴졌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 같은 따듯한 손길이.

그 손길 한 번에.

마음이 녹아내린다.

의심과 경계가 사라진다.

‘사제들한텐 마약이나 마찬가지겠네.’

물론, 진에겐 소용없었다. 로메른이 감정을 칼같이 배제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사제들은 이걸 막아 낼 수 있을까?

‘절대 못 막지.’

신앙이 없는 진조차도 신앙이 생길 것만 같았다. 이건 사제들이 참을 수 있는 종류의 유혹이 아니다.

‘형은 이걸 어떻게 견딘 거야?’

[네 형의 힘으로 만들어진 거니까. 그다지 영향이 없었겠지. 뭐, 나중에야 영향을 받았겠지만. 지금이야 약하니까.]

‘미친. 이게 약한 거라고?’

[어. 약한 거야. 가짜가 진짜와 근접하게 변했을 때는 재앙 그 자체였으니까.]

[그러니까 다행이라고 한 거예요. 이건 반드시 이번에 처리해야 해요.]

진도 그 말에 동의했다.

이건 진짜 위험하다.

진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몸의 떨림이 어느 정도 진정됐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께서 지상에 내려오신 목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성자로서 최선을 다해 돕겠나이다.”

-그저……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을 뿐…….

다른 사제들이라면 감격에 겨워 몸을 부들부들 떨었겠지만, 진은 아니었다.

‘그래서 목적이 뭐냐고.’

오히려 말을 빙빙 돌려 대니 짜증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럼, 그 소임을 제게 맡겨 주시겠습니까? 성자로서 신께서 원하시는 일을 행하겠습니다.”

-성자라…… 해도…… 부족하다…… 내가…… 해야 한다…….

“직접 말씀이십니까?”

-……수많은 이들의…… 기도를 외면했다…… 세상에…… 절망과 타락이…… 만연하게…… 방관했다…… 바로 잡아야 한다…….

“어떻게 말입니까?”

-이미 늦었다…… 썩은 부위를…… 도려내야 한다…….

진은 헛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런 게 신이라고?’

감격스러운 감정을 배제하고, 그저 저 가짜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좀 이상하다.

‘수많은 희생과 피가 흘러야만 가능한 일이야.’

전지전능한 신이.

이 땅에 완벽한 사제를 만들어 놓은 신이.

굳이 이런 방법을 선택할까?

‘이런 편한 방법을 선택하는 게 신이라고?’

저런 건 신이 아니었다.

[그런가요? 변하지 않는 세상에 절망한 수많은 사제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저 말에 감격했다?’

[예. 더럽고 타락한 게 눈에 보이는데, 정치적 상황 때문에 손도 대지 못한 게 수두룩했으니까요.]

오히려 사제들이 너무 깨끗했기에, 저 신의 말을 따른 것이다.

오직 세상을 위해서…….

‘됐어. 어차피 이번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이딴 놈한테 경의를 느꼈다는 게 치욕스러울 정도야.’

[……그런가요? 믿을게요, 진.]

일단, 확인이 먼저였다.

‘로메른. 짧고 간략하게 저 녀석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설명해 줘.’

[쉽게 말하면 수녀원에 있는 수녀와 사제들의 신앙과 믿음이 모여서 만들어진 거야.]

‘결국 저 녀석의 베이스는 인간들의 생각이란 거지?’

[어. 맞아. 개념이 복잡한데 이해했나 보네?]

이쪽에서나 복잡하지, 지구에 있던 지식을 생각하면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일종의 사념과 정보로 이뤄진 생명체 같은 거지?’

[……그렇지. 가끔 보면 똑똑하다니까.]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완벽히 똑같진 않지만 큰 틀은 비슷했다.

“신이시여. 계획이 있으십니까?”

-회복해야 한다…… 아직 난…… 불완전하다…… 저 아이가…… 회복의…… 열쇠다…….

“회복에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될 텐데, 그만큼 많은 이들이 고통받지 않겠습니까?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

진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악당 같은 미소였다.

* * *

솔직히 말하면, 이 가짜 신은 죽이기 아까웠다. 아니. 애초에 죽이기도 까다로웠다.

개념과 정보로 만들어진 존재.

이런 존재를 죽이기 위해선 개념 그 자체를 없애야 했다.

당연히 진은 그에 관한 계획은 물론 때려잡을 방법까지 세워 놨지만.

‘그딴 귀찮은 짓을 왜 하고 있냐?’

굳이 그런 복잡한 방법을 취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진은 ‘아포 화산’에 와 있었다.

신을 옮기는 게 문제긴 했는데, 그것도 간단하게 해결됐다.

‘형, 몸은 괜찮은 거지?’

[어. 괜찮아. 다른 존재가 몸에 들어와서 일시적으로 기절했을 뿐이야.]

쉔의 몸에 신을 담아 왔다.

그렇게 화산에 도착한 진은, 봉인지에 도착해 입을 열었다.

“신이시여. 도착했습니다.”

-이곳에…… 내 육체가…….

“그렇습니다. 신을 담을 만한 육체가 있나이다.”

-과연…… 나의 성자다…….

그 말에 진의 얼굴엔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래…….

진은 짝퉁 신에게 양해를 구한 뒤, 곧장 로메른에게 말했다.

‘얼마나 걸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다른 거면 몰라도 저 녀석이 들어가는 틈만 만들면 되니까.]

[맞아요. 엄밀히 따지면 그는 악하거나 삿된 존재가 아니니까요.]

‘알겠어.’

곧이어 로메른과 루나가 작업을 시작했다.

잠시 후.

[끝났어! 바로 집어넣으면 돼!]

신에게 육체를 줄 시간이 되었다.

“신이시여. 준비가 끝났나이다.”

-드디어……!

기대 가득한 짝퉁 신의 목소리를 들으니 벌써부터 진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다만, 길을 열어 드리는 게 제 한계입니다. 송구하게도 직접 들어가셔야 합니다.”

-문제…… 없다…….

대답을 들은 진이 로메른을 바라보자 녀석은 곧장 움직였다.

[그럼 연다!]

연다는 로메른의 말과는 달리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진은 곧장 눈의 힘을 사용했다.

그제야 작은 틈이 보였다.

-나의 아이야…… 기다리거라…….

곧이어 넷째 형의 몸이 들썩이더니, 바람이 일면서 무언가 그 틈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정령들이 곧장 움직였다.

[바로 시작해야 돼!]

[알겠어요!]

로메른의 말에 루나가 곧장 피의 구슬을 만들었다.

[검성! 빨리 들어와!]

[허허. 알겠네.]

곧이어 정령들이 그 구슬 안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성서에 각인 된 피의 구슬을 찾아 그곳에 손을 올린 뒤, 정령들이 들어간 피의 구슬을 잡았다.

[용암 골렘에 심어진 피의 구슬과 연동 시작한다!]

구슬에서 빛이 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로메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연동 완료! 육체 고정 시작할게!]

육체가 없는 개념상의 존재라면, 육체를 주면 될 일. 용암 골렘이 바로 가짜 신의 육체였다.

“로봇에 AI 탑재는 못 참지.”

이건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으며, 가장 빠르게 가짜 신을 처리할 방법이었다.

[검성! 다신 육체 밖으로 못 나가게 이거 잘라 내!]

[베어 내겠네.]

[루나! 봉인으로 용암 골렘을 압박해 줘!]

[알겠어요!]

정령들이 치열한 작업을 벌이는 동안, 진도 최선을 다해 구슬 위에 손을 올려 두었다.

그렇게, 치열한 작업이 끝나고.

-모두를 구원하리라!

봉인 안쪽에서 어마어마한 소리가 들려왔다.

‘성공이야?’

[어. 완벽해. 용암 골렘에 위신이 완벽하게 정착했어.]

‘봉인은?!’

[문제없어요. 애초에 용암 골렘 그 존재 자체를 봉인한 거라 빠져나올 수 없어요.]

‘그래도 가짜 신인데 신성력에 개입하는 거 아니야?’

[이젠 가짜 신이 아니에요. 용암 골렘이에요.]

‘좋네.’

그렇게 성공을 확인하고 있을 때.

-성자여! 봉인을 해제하라!

가짜 신은 봉인 해제를 원했지만, 진은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소환해 봐.’

[잠깐만 기다려.]

진이 손을 올리고 있던 구슬에서 용암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작은 용암 골렘이 되었다.

성서와 연동해서 소환한 이 용암 골렘은.

-나의 성자야.

봉인지 안에 있는 용암 골렘이나 마찬가지였다.

-봉인 해제하는 걸 보여 줄 생각인 게냐?

“내가 왜?”

갑작스러운 진의 반말에도 가짜 신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자식을 나무라듯 진을 부를 뿐이었다.

-성자야.

신기하게도 전과 같은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환희나 전율 같은 감정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용암의 뜨거운 열기가 조금 전해질 뿐이었다.

“야? 내가 니 친구냐?”

-…….

용암 골렘은 아무런 말도 없이 빤히 진을 바라보았다.

“일단, 좀 물어보자. 세상은 어떻게 구할 건데?”

-……날 시험하는 것이냐? 아이야. 교단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악을 멸하고, 선을 키우는 간단한 일이다. 썩은 부위가 더 퍼지지 않도록!

“악은 누가 정하고? 애초에 세상에 완벽한 선악이 있어?”

-그러니 내가 너희 곁에 내려온 거란다. 선과 악은 내가 구별해 주겠다.

“개똥같은 소리 하네. 루나!”

진이 소리치자 허공에 거대한 핏방울이 나타난 뒤, 빨간색이 점점 옅어지더니 이내 물방울이 되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말 알아?”

-그게 무슨…….

“알게 될 거야.”

용암 골렘의 몸이 떠오르더니, 이내 물에 처박혔다.

치이이이익-

물이 증발하는 소리와 함께.

-꼬로로록! 성…… 자! 꼬로로록!

신이 물 먹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녀석은 저항하지 못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녀석은 AI일 뿐, 용암 골렘의 몸을 구성하는 건 정령들의 힘이다.

본신의 용암은 봉인으로 막고, 소환한 뒤엔 정령들의 힘으로 통제한다.

녀석을 완벽히 통제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용암과 물이 만나는 과정이 한참이나 진행된 뒤.

진은 용암 골렘을 물에서 빼내고 물었다.

“어때?”

-감히! 사제인 네가!

“응. 아직 답을 모르는 구나? 루나!”

-꼬로로로록……!

화산에서 수녀원으로 복귀하는 동안, 이 과정이 쭉 이어졌다.

덕분에 진은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나의 아이야.

-성자야.

-성자님.

-성자 선생님!

물은 답을 알고 있었다.

-주, 주인님!

“이제 대화할 준비가 된 거 같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