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97화 (97/210)

097. 쉔 플린트

가짜 신.

이 말만 들으면, 마치 신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말도 안 되는 일처럼 보이지만, 진은 가짜 신을 만든 경험이 있었다.

‘짝퉁 세계수.’

[그것도 엄밀히 따지면 위신(僞神)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어.]

짝퉁 세계수에는 자아가 있고, 그 자아는 자신이 세계수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은 실제로 엘프들을 지키며, 세계수로의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비록 가짜로 시작했으나, 반쯤은 진짜가 되어 버린 세계수.

‘우리가 찾아야 하는 위신이 짝퉁 세계수랑 비슷하단 소리야?’

[만들어지는 과정은 다르지만, 그 내용물은 비슷해. 결국 가짜가 진짜인 줄 알고 있는 거니까.]

‘스스로 자신을 신이라 생각한다는 거지?’

[어. 지가 진짜 신인 줄 알고 있는 거야.]

어째서 이 위신이 위험한지 알 것 같았다.

진은 자신이 성자지만 가짜인 걸 알고 있다. 그러니 성자로 보이기 위해 최대한 선을 지킨다.

‘이런 놈들이 진짜 위험해.’

하지만, 자신이 진짜인 줄 아는 이들에겐 이런 게 없다.

하물며 자신이 ‘신’인줄 알고 있는 녀석에겐 자신의 뜻이 곧 신의 뜻일 터.

‘자신이 진짜 신인 줄 알고 있다면, 다른 사제들이 모시는 건 ‘거짓된 신’일 테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교단이 개판이 되는 것도 이해가 됐다.

‘좋아. 이건 무조건 사냥해야겠네.’

진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방법은 있어?’

[그것도 나름대로 생각해 놨어.]

역시 로메른이었다.

벌써 계획이 세워진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진은 애써 미루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이 놈 잡으면 우리 형 괜찮아지는 거지?’

솔직히 말하면 우리 형이라 할 만큼 관계가 깊지 않았다.

남이라고 해도 큰 차이가 없다.

오직 몸뚱이에 남아 있는 몇몇 기억만이 좀 신경이 쓰일 뿐.

그런데도 진이 굳이 신경을 쓰는 건 조금 이기적인 이유에서였다.

‘첫째 형과 아버지가 슬퍼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아.’

첫째 형과 아버지는 진을 지원해주고, 믿어 주었으며, 자유를 주었다. 그 두 사람을 위해서였다.

[어. 신경 쓸 필요 없어. 결과적으로는 완벽하게 괜찮아질 거야.]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 없었다.

‘뭐부터 하면 돼?’

[일단 정찰부터 하자.]

‘정찰? 생각해 둔 게 있나 본데?’

[어. 교단이 네 형을 이곳으로 보낸 이유가 생각한 게 맞는지 확인해 봐야 할 거 같아.]

진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파아아앗-!

로메른의 몸에서 밝은 빛이 뿜어지더니, 쉔이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진은 쓰러지는 쉔을 받아 침대에 눕혔다.

[진. 바로 시작할게.]

‘그래.’

다음 일을 진행하기 위해선 쉔이 잠들어야 했다.

그렇다고 쉔이 잠들 때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건, 진과 로메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빠른 방법을 두고 굳이 돌아갈 필요 없다.

이게 바로 방에 들어오자마자 그를 재운 이유였다.

‘그냥 꺼내서 형 머리맡에 두면 돼?’

[어. 그러면 돼.]

진은 품에서 유리구슬 하나를 꺼내 쉔의 머리맡에 두었다.

‘난 그냥 옆에 앉아 있어도 되지?’

[응. 굳이 같이 누울 필요 없어.]

진은 곧장 의자를 가지고 와서 쉔이 누워 있는 침대 옆에 앉았다.

[그럼 바로 들어가자.]

‘어.’

로메른의 말과 함께 진 또한 잠에 빠져 들었다.

진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캬. 이게 아직 남아 있었네.’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역시 마티니에서 몰디브 한잔하는 거지.’

[그 개소리는 여기 올 때마다 하네.]

로메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형은?’

[잠깐만 기다려 오고 있어.]

그런 로메른의 말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쉔의 모습이 보였다.

“형! 여기야!”

“진?!”

쉔이 깜짝 놀라 달려왔다.

멀리 있을 땐 몰랐는데, 가까이 오니까 뭔가 이상한 게 보였다. 그의 몸 주위로 파란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저건 뭐야?’

[말했잖아. 네 형 몸에 문제가 있다고. 그게 보이는 거야.]

대체 어떤 문제이길래.

그런 진의 생각과는 달리 넷째 형은 꿈에서도 해맑았다.

“진! 여기 너무 아름다워! 꿈이라도 꾸고 있는거 같아!”

“예리한데?”

“응?”

진의 말에 쉔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여기 꿈속이야, 형.”

“여기가…… 꿈이라고?”

쉔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주위를 둘러봤다.

“마지막으로 나는 기억이 뭐야?”

“어…. 어!?”

그제야 쉔은 이게 꿈이란 걸 실감한 거 같았다.

“나 분명히 너랑 방에 들어왔는데…….”

“맞아. 여기서 보려고 형을 잠깐 재웠어.”

“날 재웠다고? 어떻게?”

음. 솔직히 말하면 진도 잘 모른다. 뭐, 로메른이 어떻게 하니깐 잠들었겠지.

“나 성자잖아 형. 그 정도야 간단하지.”

그러니 이런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

“아. 맞네. 역시 우리 진 대단해.”

쉔이 순수해서 통한 게 아니었다. 성자는 교단에 있어서 그런 존재기에 자연스럽게 믿은 것이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형.”

“그럼?”

“형이 말했던 가짜 신을 잡으려고 이리로 부른 거야.”

“진짜?!”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목소리를 꿈에서 들었다고 했지?”

“어. 맞아. 자고 있는데 목소리가 들렸어. 근데 그게 꿈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어.”

형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꿈이 분명해.]

[맞아요. 위신이라곤 해도 실제로 목소리를 들었다면, 몸에 문제가 생겼을 거예요.]

이쪽엔 전문가들이 있었다.

“꿈이 맞을 거야. 신의 목소리를 들으면 몸이 많이 아프거든.”

“몸이 아파?”

“응. 위대한 분의 목소리를 듣는데, 연약한 인간이 아무런 피해가 없을 리 없잖아.”

“그, 그래? 그걸 네가 어떻게…… 설마!?”

쉔은 묘한 오해를 한 것 같았지만, 적절한 오해였다.

“어. 형. 난 들어 본 적 있어. 성자잖아.”

“진 정말 대단해…….”

형은 많이 놀랐는지 멍하니 대답했다.

우선, 차근차근 하나씩 해결해야 한다.

진은 형이 있는 곳에 선베드를 하나 만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의자에 형은 화들짝 놀랐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진이 먼저 편하게 앉자 쉔은 쭈뼛쭈뼛 선베드 위에 앉았다.

“날씨 좋지?”

“어. 정말 좋아.”

“바닷소리도 들어 봐. 꿈이긴 해도 이만한 휴가가 또 없다니까?”

“맞아. 여긴 너무 평화롭고 좋은 거 같아.”

진은 형과 잡담을 나누면서, 로메른과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네 형의 몸은 특별해.]

‘특별하다고?’

귀여움이 도를 넘어선 거?

[아니. 그런 거 말고. 네 형이 외모는 그냥 날 때부터 저런 거고.]

아니. 똑같은 자식인데, 난 왜 이러고 형은 왜 저래!

억울함이 좀 느껴졌지만, 진은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뭐가 특별한 건데?’

[네 형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났어.]

뭔가 설명이 길어질 분위기였다.

‘간단하게 부탁해도 되지?’

[이게 간단히 되려는지 모르겠는데…… 남자와 여자는 타고나는 기운이 다르다는 거, 혹시 알고 있어?]

진의 몸뚱이엔 저런 정보가 없지만, 지구의 정보에는 있었다.

남자는 양의 기운.

여자는 음의 기운.

한의학의 ‘음양 이론’이 있던 걸 기억했다.

‘대충 알고 있어.’

[아. 그래? 그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어. 네 형은 타고나는 기운이 너무 강했어. 그것도 극단적으로.]

‘그게 문제가 되나? 아니. 그보다 어렸을 때 형은 별다를 게 없었는데?’

[그래. 그게 문제야. 큰 기운을 타고나는 사람들은 보통 어렸을 때부터 그 재능을 드러내. 한데, 네 형 봐. 특별한 재능은 없어 보이지?]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잡담을 나누며 해맑은 미소를 짓는 넷째 형. 얼굴 외에는 특별한 재능은 보이지 않았다.

[타고난 기운은 남자의 것인데, 육체가 문제야.]

‘……육체?’

[크게 남자와 여자로 나누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사람마다 달라. 남자인데도 여자의 기운을 강하게 가지고 태어나는 이들이 있고, 그와 반대도 있어.]

‘예외가 있다는 소리구나?’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음과 양 또한 엄밀히 따지면 쉽게 구분하기 위한 구분법일 뿐, 환자에 따라 다른 처방을 내리니까.

[네 형은 남자의 기운을 가지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육체는 여자의 기운이 더 강해.]

힘은 불이지만, 그릇은 물이다.

물로 만들어진 그릇 안에 불이 담겨 있는 꼴이었다.

‘둘이 충돌했겠네.’

[정답이야. 그러니까 아무런 재능을 드러내지도 못한 거야.]

앞뒤가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대충 상황은 알겠어. 그럼, 교단에선 형을 치료하기 위해 데려갔다는 거야?’

[맞아. 네 형이 수녀원에 있는 건, 몸 안에 있는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서야.]

[수녀원 곳곳에 기운을 흡수하고 전달하는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어요.]

[수녀들이 생활하며 주위에 흩뿌리는 기운을 모아서 네 형한테 전해 주는 거야.]

‘정말 대단하네…….’

진은 감탄을 터트렸다.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과연 교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좋아. 네 말대로라면 형의 몸은 괜찮을 텐데, 뭐가 문제야?’

[문제는 두 기운이 충돌하면서 나타나는 힘이야.]

진은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이 잡혔다.

‘그러니까 형을 치료하기 위해 한 일이 위험한 힘을 만들었다는 거야?’

[맞아. 조금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이 힘을 만드는 방법이 있어.]

‘흑마법에?’

로메른이 알고 있다면, 당연히 흑마법 쪽일 것이다.

[어. 훨씬 끔찍한 과정이고 효율도 엄청나게 떨어지지만, 만들려는 힘은 같아.]

‘분위기를 보니, 금지된 지식 쪽이겠네.’

[어. 맞아.]

그 말에 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금지된 지식으로 무언가 사건을 만드는 세력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게 지식의 해방 쪽에서 벌인 수작이라는 거야?’

[다행히 그건 아니야.]

‘뭐? 금지된 지식이라며?’

[이건 미래에 내가 처음 발견하고 추가한 금지된 지식이니까.]

로메른은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고.

‘……뭐?’

[위신이 만들어지게 된 건 ‘선의와 우연’이 만나 벌어진 사고일 뿐이야.]

‘신이 만들어진 게 사고라고?’

[그래.]

진은 뭔가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한데, 로메른의 생각은 달랐다.

[그래서 이번 일은 큰 가치가 있어. 이 위신이 정확히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는 우리도 몰랐거든.]

[저희가 회귀 전, 위신을 위해 세웠던 계획은 나타나기 전에 잡는 게 아니었어요. 나타나는 순간 잡는 게 목표였어요.]

[우리조차 예상하지 못한 원인을 여기서 발견할 걸세.]

셋은 들떠 있었지만, 진은 뭐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제가 쉔 플린트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가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한 거 같은데, 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네요.]

‘형이?’

형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진의 반응 또한 달라졌다.

[난 이번에 확실히 알았어. 내가 알고 있는 ‘플린트’는 쉔이 아니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일세. 내가 알고 있는 플린트도 이자가 아닐세.]

한데, 로메른과 검섬은 형이 아니란 말을 했다.

‘그럼? 다른 형들을 알고 있다는 거야?’

[모르겠어. 기억이 잘 안나.]

[그건 나도 마찬가지일세.]

다른 형과 연관이 있는 걸까?

아니면 남작가가 문제?

진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상념이 떠올랐지만, 진은 그 생각을 접어 두었다.

‘됐어. 일단, 여기부터 해결하자.’

[그래. 그러자고.]

‘그럼 뭘 해야 하는데?’

[네 형 안에 있는 기운을 자극할 거야. 그럼,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겠지.]

‘……위신?’

[어.]

‘그래도 괜찮아!? 다른 준비는 필요 없어?!’

그 말에 로메른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 꿈속에서 너보다 강한 게 누가 있는데?]

없다.

그 누구도 이 꿈속에서 진보다 강할 수가 없었다.

‘그래. 시작하자.’

진은 그 말을 한 뒤.

“형. 잠깐만.”

형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으읏!”

그러자 형의 몸에서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주위로 뿜어지기 시작했고.

콰직. 콰직. 콰직.

뭔가가 꿈을 찢고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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