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95화 (95/210)

095. 신의 계획

용암 골렘의 봉인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봉인이 끝나자마자, 사제들은 봉인을 할 때보다 더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서 성자님을 모셔라!”

진을 마차에 태운 다음, 추기경들이 돌아가며 신성력을 쏟아부었다.

“신성력이 빠르게 흡수되고 있습니다!”

“몸 상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증거다. 계속 신성력을 부여해라!”

“예. 알겠습니다.”

“어찌하여 자신의 몸조차 돌보지 않으셨단 말인가······.”

그런 추기경들의 생각과는 달리.

진은 신성력을 만끽하고 있었다.

‘아. 뜨끈하네. 좋다 좋아.’

애초에 기절하지도 않았고, 몸이 안 좋지도 않았다. 수척하고 좋지 않아 보이는 몸은 그저 연출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신성력은 어디로 흡수되고 있는 것일까?

[확실히 추기경들의 신성력이 다르긴 하네. 정말 진해. 순도도 높고.]

로메른이 진의 몸속에서, 신성력들을 모조리 흡수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추기경들과 사제는 이런 결정을 내렸다.

“복귀할 때까지 신성력이 끊이질 않게 유지해라.”

교황청에 도착할 때까지 신성력을 든든하게 챙길 토대가 마련됐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교황청에 거의 다 도착했을 쯤.

“서, 성자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진이 눈을 떴다.

“신께서 도우셨구나.”

“완벽하게 회복되신 것으로 확인됩니다.”

“허허. 다행이다. 다행이야…….”

“이제 깨어나셨는데, 성자님을 혼란스럽게 하면 안 될 것이야.”

추기경들을 비롯한 사제들은 화색을 띠며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분위기가 좀 진정됐을 때.

“성자님.”

영감님이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추기경님.”

“어디까지 기억나십니까?”

“간신히 전서구를 보내고, 그 골렘을 붙잡아 둔 것까지는 기억이 납니다.”

영감님은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쭉 설명해 주었다.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이야기를 전부 들었다.

뭐, 전부 알고 있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설명이 끝나고.

“모두 성자님께서 붙잡아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닙니다. 교단에서 이리 딱 맞춰서 와 주셔서 잘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진의 말에 영감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모두 신의 뜻이었습니다.”

“예?”

진은 모르는 척 되물었다.

“신께서 세우신 거대한 계획을 추기경 모두가 봤습니다. 신께서 성자님을 선택하셨다는 걸 모두가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잘 모르겠습니다.”

진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하자, 영감님은 괜찮다는 듯 말했다.

“모르셔도 괜찮습니다. 이미 그 거대한 계획은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그런가요?”

“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영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교황청에 도착했습니다!”

진이 타고 있는 마차는 어느새 교황청 내부로 들어왔다.

* * *

교황청에 온 다음부터 진은 바쁘게 움직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몸이 회복됐다곤 해도, 휴식을 취하시는 게 좋습니다. 번거로운 일들은 이 노구가 전부 해결하겠습니다.”

영감님이 귀찮은 과정을 전부 떠맡아 주셨다.

‘진짜 영감님은 빛이야.’

덕분에, 진은 손님방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쉬면 됐다.

‘안 그래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긴 했어.’

[확인해 보게?]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대로 됐는지 확인해 봐야지.’

[알겠어. 잠깐만 기다려.]

용암 골렘을 교단 쪽 힘으로 봉인한 이유는 간단했다. 신성력은 이쪽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이었다.

용암 골렘은 봉인이 되어 있지만, 안에 담긴 힘을 사용할 수는 있는 묘한 상태였다.

[준비됐어.]

진의 옆으로 붉은색 구슬이 떠올랐다. 용암을 만들 때 사용했던 그 구슬과 같은 구슬이었다.

‘좋아.’

진은 성서를 펴서, 빨간색 구슬이 있는 페이지를 찾았다.

용암 골렘을 각인하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차선을 택했다. 중심핵이 되는 ‘피 구슬’을 각인했다.

‘찾았다.’

진은 구슬을 각인된 페이지에 손을 올렸고, 그와 동시에 정령들은 빨간색 구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무것도 없는 구슬 주위로 용암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오. 합체기가 진짜 되네?’

[합체기는 또 뭐야. 촌스럽게.]

용암은 바닥으로 흘러내리지 않고, 형태를 이루더니 작은 용암 골렘이 되었다.

‘멋진데?’

진의 감상에 로메른이 답답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멋진데? 그 말로 끝날 게 아니지! 너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르지?]

‘뭐?’

[넌 지금 정령술의 새로운 지평을 보고 있는 거야. 셋의 힘이 합쳐져서 용암의 정령이 된 거나 마찬가지니까.]

‘……어. 음. 대단한데?’

[에라이.]

진의 영혼 없는 반응에 로메른이 중얼거렸다.

‘아무튼 이제는 용암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지?’

[뭐, 결론만 말하자면 그렇지.]

진에게는 이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써먹을지가 중요할 뿐이었다.

‘파괴에 특화된 힘이 손에 들어왔으니까. 든든하긴 하네.’

[뭐 그건 그렇지. 사실 피나 빛 대지 쪽이 전투에 적합한 힘은 아니니까.]

개인 지식을 이용해 극한까지 활용해서 이 정도지 로메른의 말대로 정령들의 힘은 전투에 특화된 힘은 아니었다.

그런 진과 정령들에게 제대로 된 ‘힘’이 손에 들어온 것이다.

‘몇 가지만 더 시험해 보자. 일단, 이 용암이 주위에 피해를 안 줘야 하니까…….’

일단은 수련이 필요한 힘이었다.

그렇게 영감님이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이, 진은 침대에 누워 작은 용암 골렘을 구경했다.

* * *

다음 날 아침.

곧장 성자 임명식이 거행됐다.

이건 놀라운 일이었다.

원래라면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압박 면접이라고 했나?’

[뭐, 정식 명칭은 다르긴 한데, 그게 더 어울리네.]

추기경들과 교황에게 압박 면접을 받아 마지막 심사를 받아야 했고, 그 면접 내용을 가지고 다시 토론하게 된다.

그 과정이 통째로 날아갔다.

면접을 보기도 전에 추기경들은 만장일치로 성자 임명에 동의했다. 덕분에 하루 만에 성자 임명식이 진행된 것이다.

그런 복잡한 과정이 있는 것 치고, 본 행사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애초에 청렴한 교단 쪽에서 휘황찬란한 행사를 진행할 리 없었다.

“그대는 성자가 되어…….”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잠시간 설교를 듣고.

“그럼, 최초의 신상 앞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성자 임명식을 끝내겠습니다.”

기도 한번 하면 임명식은 끝이었다.

허례허식이라곤 없는 교단의 성자 임명식.

신상 앞에서 기도하는 것도 최초의 성자가 신상 앞에서 기도하며 신의 힘을 받았다는 전설 때문에 포함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게 전설이 아니란 말이지?’

[예. 저번에 말씀드렸듯 최초의 신상엔 대단한 힘이 숨어 있어요.]

최초의 성자가 신의 힘을 받았다는 전설은 단순히 전설이 아니었다.

성자 임명식에서 진짜 중요한 건, 바로 이 기도였다.

지금까지 진행했던 모든 계획은 여기서 완성된다.

‘교단은 왜 모르는 거야?’

[최초의 신상이란 상징성 때문에 조사하거나 연구하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세계의 멸망이 다가오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됐어요. 게다가 발동 조건이 까다롭기도 하고요.]

‘발동 조건?’

[예.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필요한데, 그 신성력을 신상에 쏟아부을 만한 일은 없으니까요.]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거야?’

[예. 그러기 위한 준비는 모두 끝냈어요.]

[치료할 때 챙긴 신성력 있잖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진은 천천히 최초의 신상 앞으로 걸어갔다.

너무 오래되어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는 신상.

그저 사람의 형태만 보일 뿐, 자세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다들 실수하지 말고 제대로 해.’

[알겠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저 기도만 하고 끝낼 생각은 없다. 이때를 위해 그려 둔 그림이 있었다.

진은 성자 그 이상의 성자가 될 생각이었다.

진은 신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곧이어, 양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추기경들과 교황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진의 몸에서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빛의 정령이 나오더니, 그대로 신상 안으로 들어갔다.

“저것은 대체…….”

추기경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려고 할 때, 영감님이 끼어들었다.

“지켜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신상에서 변화가 생겼다. 신상에서 엄청난 신성력이 뿜어져 나왔다.

정령이 가지고 있다고 하기엔, 너무나 막대한 양의 신성력.

“신상에서 저만한 신성력이 뿜어지다니…… 이런 변화는 초대 성자님 외에는 없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다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것은…….”

추기경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 그의 말을 받은 것은 영감님이었다.

“그대의 생각이 맞는 거 같습니다. 신께서는 어째서 우리에게 계획을 보여 주신 걸까. 그 해답을 우린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저희는 제대로 보지 못한 거 같습니다.”

신성에서 흘러나오던 빛은 이내 부서지고 깨진 부분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상의 원래 모습이 드러났다.

시간이 지나 풍화되어 얼굴 부분이 손상된 게 아니었다. 신상은 원래부터 얼굴이 없었다.

추기경들과 교황은 그 아무것도 없는 얼굴에서, ‘자신’들을 보았다.

그제야, 최초의 신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신상은 신의 모습을 조각한 게 아니었다.

신을 모시는 사제의 모습이었다.

신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신이시여.”

곳곳에서 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제는 힘든 직업이다.

욕망을 절제하고, 금욕하고,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이 모든 걸 감내하는 이유는 하나다.

신을 모시고, 신의 뜻을 세상에 전파한다.

풍요로운 세상이 될 수 있도록.

하지만, 그건 힘든 일이다.

보람보다는 회의가 더 많이 찾아온다. 사제들은 매일같이 회의와 절망을 느낀다. 그런데도 사제직을 포기하지 않는 건, 이들이 그 누구보다 더 숭고하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정말 감사합니다.”

추기경과 교황은 신상을 보며,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최초의 신상.

가장 드높은 상징을 지닌 조각상은 바로 자기 자신들이었다.

신께선 자신들을 아끼고 계셨다.

“이것이 바로 신의 뜻…….”

어느새 추기경들과 교황의 얼굴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때, 변화가 생겼다.

그들의 몸 안에 있는 신성력이 밖으로 조금씩 흘러나오더니.

이내, 조각상 안으로 들어갔다.

“신이시여. 당신의 뜻을 따릅니다.”

제일 먼저 움직인 건 영감님이었다. 영감님은 무릎을 꿇고 신성력을 뿜어냈다.

그런 영감님의 신성력이 조각상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추기경들이 움직였다.

“당신의 뜻을 따릅니다.”

“신이시여. 미약한 저의 힘이 부디 도움이 되길.”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모두 무릎을 꿇고, 신성력을 뿜어냈다.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신상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런 조각상 위로.

“당신의 종이 뜻을 따릅니다.”

다시 한번 거대한 신성력이 흡수됐다. 그 신성력을 뿜어 낸 건, 다름 아닌 ‘교황’이었다.

교단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교황조차 신에겐 그저 종일 뿐이니.

잠시 후, 신상에 변화가 생겼다.

신상의 등 뒤로 거대한 날개가 튀어나왔다. 신상의 머리 위로 천사의 링이 생겨났다.

그렇게 나타난 링과 날개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제 나도 중급이다!]

너무나도 신성해 보이는 정령 하나가 신상에서 튀어나왔다.

[루나! 이 신상 끝내주는데?! 고작해야 신상에 담겼다고, 다른 사람의 신성력이 내 소유가 되다니!]

로메른은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게 바로 신상의 힘이에요.]

[이건, 법칙을 무시하는 거라고! 진짜 이런 미친 물건이 있었다니.]

[만능은 아니에요. 수백 년에 한번 사용할 수 있는 거니까…… 로메른 당신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효율이 끔찍하긴 하지만요.]

[그건 좀 아쉽긴 하네. 그래도, 중급 성장이 이렇게 쉽게 될 줄이야…… 계획대로 될 거라곤 생각했지만.]

루나와 로메른은 신이 나서 떠들었다.

“최초의 성자님께서는 신상 앞에서 기도한 뒤, 큰 힘을 얻으셨다. 그 전설은 사실이었습니다. 우린 전설을 목격한 겁니다.”

“신께서 그리신 그림은 이것이었군요.”

추기경들과 교황은 전율을 느꼈다.

“신이시여.”

그렇게 성자가 탄생했다.

‘야 로메른! 근엄한 척하라고!’

[알겠어. 잠깐 설레서 그런 거야!]

뭐, 진짜 성자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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