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4. 성자 임명식?
용암 골렘이 거대한 몸을 드러내고,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뭔가 이상했다.
‘왜 안 움직이지?’
용암 골렘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진은 성서 위에 손을 올리고,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왔다.
그리고, 천천히 용암 골렘이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뜨거운 열기가 확 풍겨왔다.
‘골렘이라 투박하긴 해도, 원래 로봇은 투박해야 멋있지.’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멋지긴 멋졌다. 그렇게 용암 골렘이 있는 지척까지 다가가니 정령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붙잡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만 잔소리해요!]
[허어. 잔소리하면서 놀지 말고, 똑바로 하게!]
[놀긴 누가 놀아!]
멋들어진 골렘의 모습과는 달리, 정령들은 다급한 말투로 싸우고 있었다.
‘개판이네. 개판이야.’
상황을 보아하니, 형태 유지만 간신히 하는 거 같았다.
“다들 괜찮아?”
[이게 괜찮아 보여!? 다 듣고 있으면서 뭘 물어봐?!]
[떠들지 말고 똑바로 붙잡아요! 이거 무너지면 대참사에요!]
‘대체 문제가 뭔데?’
[뭔가 부족해. 우리의 힘이 완벽한 용암의 힘이 아니라 그런 거 같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알면 이러고 있겠냐! 나도 몰라. 애초에 이런 건 현자의 영역이지 내 영역이 아니야!]
이제 와서 그런 말 하면 어떻게 하냐!
이 말은 할 수 없었다.
로메른은 자신의 전공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진의 아이디어만 가지고 이만큼 결과를 내 주었다.
‘대충 상황은 알겠어. 일단 유지는 가능하다는 거지?’
[유지만 가능한 게 문제야.]
유지는 되는데,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봉인하자.’
[……뭐?]
로메른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어하는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당장 붙잡아요!]
용암 일부분이 흘러내리려고 하고 있었다.
[아, 미친!]
[정신 똑바로 차려요!]
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차피 성자 임명한다고 교황청에 추기경들 잔뜩 있을 텐데, 그냥 이거 봉인하면 안 돼?’
용암 골렘을 우리가 만들고, 봉인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넌 진짜 미친 쪽으로 똑똑해.]
하지만,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야말로 모든 걸 해결할 회심의 한 수였다.
‘솔직히 성자가 싸지른 똥은 교단에서 치워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로메른은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그쪽에서 치워 줘야지.]
‘이 상태를 유지하는 건, 교단 쪽에서 사람들이 올 때까지 가능하지?’
[가능해.]
그렇다면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좋아. 나쁘지 않네.’
[이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솔직히 말하면, 거대 로봇이 있다고 써먹을 수 있을까?
그것도 용암으로 된 거대 골렘을?
만화나 영화에서 거대 로봇이 등장하는 건, 적의 거대 로봇이 나올 때뿐이다.
‘다 이유가 있는 거지. 이건 움직여도 문제야.’
[……뭐, 그렇긴 하지.]
숲은 불타고 도시는 무너진다. 이 골렘이 움직이는 것만으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성자 임명을 늦춘 이유도 쫙 설명되잖아. 그림 좋네.’
[어? 그건 또 뭔 소리야?]
진의 얼굴엔 진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 * *
교황청엔 묘한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성자 임명을 받으러 오던 성자가 갑작스럽게 늦는다는 연락을 보내 왔다.
이건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성자 임명식에 늦는다면 그 이유를 보고해야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성자 임명식으로 고위 사제들이 교황청에 모여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한 추기경에 의해 그 보고는 생략되었다.
“예비 성자님께서 늦으신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모두 기다리게.”
진의 가장 큰 지지자.
영감님이 상황을 일축했다.
“늦을 만한 일이 있으니 늦으시겠지.”
그런 영감님의 말에 모두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사제들은 불만을 터트리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그저.
‘대체 성자 임명을 미룰 만큼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모두들 그 일이 무얼지 궁금해했다. 덕분에, 교황청에 묘한 분위기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 궁금증은 오래지 않아 풀렸다.
“예비 성자님께서 보내신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서신에 모든 상황이 적혀 있었다.
“……이게 무슨.”
그곳엔 충격적인 사실이 적혀 있었다.
“이대로라면 왕국의 절반은 화산에 피해를 봤을 겁니다.”
“그건 직접적인 피해일 뿐입니다. 화산재가 날려 왕국 전체를 뒤덮었을 것이고, 타국으로 날아가 외교 분쟁마저 발생했을 겁니다.”
“만약 그렇게 됐다면…….”
지옥 같은 일이 펼쳐졌을 것이다.
화산에 의해 왕국이 무너지고, 왕국은 타국으로부터 정치적 압박을 받는다. 자칫 잘못하면 전쟁마저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뒷내용은 더 충격적이었다.
“용암 골렘이라니!?”
“만약 거대한 용암 골렘이 왕국으로 걸어왔다면…….”
“재앙 그 자체였을 겁니다.”
지식의 해방은 단순히 화산만 터트리려고 한 게 아니었다.
화산을 터트리고, 용암을 이용해 골렘을 만들 끔찍한 계획을 세워 둔 것이다.
덕분에, 영감님의 말은 재조명받게 되었다.
“추기경님의 말씀대로 성자님께선 늦을 만한 이유가 있으셨습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세! 당장 사제들을 모으게!”
영감님에게 자신의 말이 맞고 틀리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진짜 중요한 건 ‘진’이었다.
“성자께서 홀로 용암 골렘을 묶고 계신다!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홀로 적을 묶고 있는 진.
그 진만을 걱정할 뿐이었다.
물론, 그 골렘을 진이 만들었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 * *
며칠 뒤.
교단의 고위 사제들을 비롯한 대규모 사제들이 아포 화산에 도착했다.
그들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저것은…….”
압도적인 크기의 용암 골렘.
서신에 거대한 용암 골렘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들이 생각한 거대함과 실제는 전혀 달랐다.
“대체 성자님께선 무엇과 싸우고 계신 거란 말인가…….”
사제들이 그 크기에 압도되어 중얼거리고 있을 때.
“뭣들 하는 게냐! 당장 움직여라! 악을 앞에 두고, 사제가 굳으면 어쩌자는 게냐!”
영감님의 호통에 사제들은 정신을 차렸다. 그런 영감님의 목소리를 들은 건 사제들만이 아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영감님의 목소리를 들은 노바와 아이들이 마중을 나왔다. 아이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
곧장 안내를 시작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무거운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용암 골렘에 놀라 당황했을 뿐,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건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주인님께서 벌써 며칠째 저것을 막고 계십니다. 서두르겠습니다.”
노바의 간절한 목소리가 그런 분위기를 한층 더 강하게 만들었다.
“걱정하지 말게.”
영감님은 노바의 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노바는 뒤를 돌아 고개를 숙인 뒤, 다시 사제들을 안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허어…….”
진의 모습은 참혹했다.
피를 토한 듯 옷의 앞섬과 입 주변엔 피가 잔뜩 묻어 있었고, 전에 봤을 때와는 달리 굉장히 수척했다.
건드리면 쓰러질 것같이 위태로워 보였다.
“서, 성자님!”
영감님은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소리쳤고, 사제들은 그 참혹한 모습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추기경님.”
노바가 나지막이 영감님을 불렀다.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단호한 노바의 목소리가 영감님의 정신을 일깨웠다.
슬픔과 안타까움이 가득하던 영감님의 눈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곳엔 분노와 함께, 의지가 깃들었다.
“사제들은 봉인을 준비해라.”
영감님의 목소리에 사제들이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져온 성물을 배치하고, 성법을 준비했다.
그동안 영감님은 진을 바라봤다.
‘신이시여. 제게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시옵소서.’
그건 기도였고, 바램이었다.
‘성자님께서 꽃을 피우실 때까지 제가 도와드릴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옵소서.’
영감님이 간절함을 담아 기도하는 사이, 봉인 준비가 끝났다.
“추기경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알겠네.”
영감님을 비롯한 추기경들이 앞으로 나서서 봉인 의식을 시작했다.
추기경들의 몸에서 신성력이 뿜어지자, 사제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봉인 의식이 발현되기 전까지 이렇게 쭉 신성력을 뿜어내야 하기에, 이 일은 추기경은 돼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른 사제들이라면 입조차 뻥긋 못할 상황이지만, 이들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성자 임명식이 이번에 이뤄지게 된 이유는 이 봉인 의식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감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추기경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명식이 아니었다면, 추기경급 사제가 부족해 대규모 봉인의식이 이렇게나 바로 진행되지 못했을 겁니다.”
“옳습니다. 어쩌면 성자께선 버티지 못하셨을 수도 있었겠군요.”
그 말대로였다.
이렇게 준비가 바로 되고,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는 건 모두 ‘성자 임명식’ 때문이었다.
그러니 추기경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공교롭군요. 어쩌면 이 모든 일은 신께서 계획하신 일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녕 저분께서는 성자가 맞다는 겁니까? 성자님을 위해 신께서 계획을 준비하셨단 겁니까?”
그 질문에 대답한 건 영감님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없다. 추기경이 이렇게 모이는 일은 오직 ‘성자 임명식’ 때뿐이다.
“저분은 성자님이 아니라고 아직 의심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영감님의 말대로였다. 진의 자격을 의심하는 사제들이 있었다.
진이 부제이긴 하지만 신을 모시는 사제가 아니기에 벌어진 의심이었다. 물론, 그 의심은 진이 한 일들 덕에 빠르게 사라졌지만.
“성자께선 많은 것들을 증명하셨습니다.”
다른 걸 다 빼놓는다고 해도, 이번에 왕국 전체의 뿌려진 재앙을 막는 것을 많은 사제가 보았다.
진은 스스로 성자에 걸맞은 업적을 이뤄 냈다.
“맞습니다.”
이젠 한 치의 의심조차 없이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신께서 저분을 성자로 선택하신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거대한 저 괴물을 막기 위해, 성자는 자신을 희생한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
“성자께서 성자 임명을 미루고 이곳에 올 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상상이나 되십니까?”
“허어.”
“성자라는 허명보다는 세상을 구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신 겁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오셨단 겁니까?”
“저희가 늦었다고, 그만두고 도망치셨을 거 같습니까?”
“……그렇군요.”
그러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이 성자라는 것을.
“이 자리야말로, 성자 임명식이 아닌가 합니다.”
영감님의 말대로였다.
모든 추기경이 인정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성자 임명식이 있을까?
“어쩌면 이조차도 신께서 계획하셨을지 모를 일입니다.”
영감님은 신의 거대한 계획의 한 단면이나마 훔쳐본 기분이 들었다.
물론, 착각일 뿐이었지만.
“봉인 시작하겠습니다!”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쇠사슬이 용암 골렘의 몸을 옥죄었다. 그 위로 교단의 봉인 성법이 덮어 씌워졌다.
빛의 감옥. 악마조차 봉인할 수 있는 대규모 봉인 성법.
그 성법이 화산에서 발동됐다.
엄숙하고 신성력이 난무하는 이 의식은 어째서인지 진의 성자 임명을 축하하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영감님이 소설 하나는 기똥차게 쓰신다니까.’
눈감고 힘든 척하고 있던 진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진! 됐어! 이거 써먹을 수 있어!]
[봉인을 이렇게 활용하다니, 전 상상도 못했어요.]
'열심히 만들어 놓고 그냥 봉인하긴 아쉽잖아.'
게다가, 원래라면 크기 때문에라도 써먹지 못할 용암 골렘이 봉인된 덕분에 활용이 가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