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 대지+피+빛=용암?!
[그러니까…… 화산이 폭발하면서 나오는 용암으로 골렘을 만들자?]
‘그렇지!’
골렘. 판타지의 거대 로봇.
화산도 처리하고, 거대 로봇도 손에 넣고 일석이조였다.
[어떻게?]
‘……응? 그건 네가 생각해야지.’
[아니. 그런 걸 갑자기 말하면 뚝딱하고 나오냐!?]
‘매번 나오지 않았나?’
솔직히 말하자면, ‘로메에몽! 해결책 꺼내 줘!’ 하면 언제나 앞주머니에서 해결책을 꺼내 줬던 거 같은데?
진이 이제 와서 왜 이러냐는 듯, 한 표정으로 로메른을 바라보자 녀석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용암으로 골렘 만드는 거? 가능해. 근데, 화산 폭발하는 용암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심지어 그 화산폭발을 막을 정도로 거대한 녀석을?!]
‘어려운 거야?’
[당연히 어렵지! 게다가 골렘은 그리 뚝딱 나오는 게 아니야. 끔찍할 정도로 비효율적이라고! 너 왕국에서 골렘 본 적 있어?]
‘그러고 보니 없는 거 같은데?’
[당연하지! 손 많이 가고, 복잡한데, 막상 결과는 시원찮으니까 당연히 사용을 안 하지!]
‘그래서 안 된다는 거야?’
[아…… 안 된다고 말해야 하는데, 또 발상은 나쁘지 않아 가자고 사람 미치게 하네.]
너 정령이야.
이 말이 목 끝까지 나왔지만, 진은 필사적으로 참았다. 지금 이런 농담을 할 때가 아니었다.
‘너희들이 생각해 낸 방법은 뭔데?’
[……용암을 이용해서 정령을 소환하면 어떨까 했어.]
‘정령? 나한테 용암 친화력이 있었어?’
[아니. 없어. 그래서 쓸모없는 방법이나 마찬가지야. 친화력 만들자고 괜한 모험을 하고 싶지도 않아.]
‘그럼, 결국 방법이 없는 거야?’
[잠깐만 기다려 봐.]
로메른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용암은 몇 가지가 섞여 있는 힘이야. 이를 테면, 불과 대지의 힘. 결국 암석이 녹아서 만들어지는 게 용암이니까.]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지의 힘은 검성이 맡아 주면 돼. 불은 빛의 힘을 분리해서 사용하면 될 거 같고…… 뭐, 원래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우리한텐 성서에 저장된 가짜 세계수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로메른은 빛의 정령.
순수한 빛은 ‘열’을 가지고 있다.
분리해서 열만 뽑아낸다는 건, 효율이 떨어지는 일이지만 그건 짝퉁 세계수의 막대한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
[거기다 중심핵으로 루나의 힘을 사용하면…….]
로메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뭔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골렘을 만드는 건 불가능해.]
‘여전히?’
[어.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부족해. 하지만, 다른 건 만들 수 있겠어.]
‘다른 거?’
로메른이 제시한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골렘 형상을 한 물건을 만들고, 조종은 정령들이 하는 거야.]
골렘에 들어가야 하는 수많은 마법과 준비를 생략한 채, 일단 골렘 형태로 만든 뒤 정령들로 조종한다는 계획.
‘오. 그게 가능해?’
[해 보면 될 거 같은데? 이 계획의 가장 좋은 점은 네가 위험할 게 없다는 점이야. 덕분에 우리가 맘껏 움직일 수 있겠어.]
‘너희들만 내려가면 된다, 이거지?’
[어. 우리만 딱 보내 주고 결과만 기다려.]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 폭발은 분명 막아야 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걸 필요까진 없었다.
게다가.
‘합체라니. 로메른 네가 뭘 좀 아는구나.’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셋이 힘을 합쳐서 거대 골렘을 조종한다. 이건 합체기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필요한 게 있어.]
‘말만 해. 뭐든 지원해 줄게.’
[루나. 내가 이야기한 거 들었지? 피 얼마나 필요하겠어?]
[거의 한계까지 필요할 거 같은데요?]
[피 좀 뽑아 갈게. 다른 건 우리가 뽑아내도 골렘을 만들려면 피는 꼭 필요해.]
큰 힘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
진은 쿨하게 승낙했다.
‘뽑아 가.’
[안 아프게 뽑아 드릴게요.]
그녀의 손길에 진의 몸에서 피가 빠져나와 구슬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정령들의 합체 로봇 제작이 시작됐다.
* * *
아포 화산 근방은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피의 사냥을 즐겨라!”
“축제다!”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고, 곳곳에 유혈이 낭자했다. 흡혈귀들의 피해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곳곳에 쓰러진 흡혈귀들의 시체가 보였지만, 사냥엔 위험이 따르기 마련.
흡혈귀들은 쓰러트린 적들의 피를 마시며, 죽은 이들을 위로했다.
그렇게 사방에 낭자한 피들이 전부 흡혈귀들에게 흡수되었을 쯤.
“모두 철수한다!”
“철수!”
흡혈귀들의 몸이 박쥐로 변화하더니 밤하늘에 녹아들며, 사라졌다.
이와 비슷한 광경이 다른 곳에서도 펼쳐져 있었다.
‘제법 즐거운 놈들이었다.’
지식의 해방으로 보이는 이들이 길목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말릭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도 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진 님이 했던 이야기가 뭔지 이제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
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휘두르는 방법.
그 방법을 이번 전투로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길은 내가 만든다.’
힘은 그저 편리한 도구일 뿐, 길을 만드는 건 자신이었다.
그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화산 바깥쪽에서 무언가 날아오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철수다.’
말릭은 쩔뚝쩔뚝 그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임무는 여기까지였다.
‘후. 이곳을 벗어나려면 한참 걸리겠군.’
그때, 그의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말릭은 조용히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진 님의 가마꾼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맙군.”
그의 말에 아이들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전처럼 혐오의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진 님에게 힘을 받은 다음부터였나.’
그 힘을 받고 나서부터, 아이들은 그를 예전만큼 적대하지 않았다.
‘제법 단단한 목줄이긴 한가 보군.’
뭐, 상관없었다.
그에겐 저들의 적대도, 차고 있는 개 목걸이도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곧 화산이 폭발한다.”
노바가 말릭에게 말했다.
“화산이라…….”
자신이 무언가를 죽이기 위해 싸우듯 진님은 불가능과 싸웠다.
“기대되는군.”
“가자.”
노바는 말릭의 말에 대꾸도 해 주지 않았다. 그저 말릭과 함께 복귀할 뿐이었다.
앞장서는 아이들 뒤에서 따라가는 말릭은 그제야 그들의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안에서도 제법 재밌는 전투가 있었나 보군.”
이번에도,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짐인 말릭을 데리고, 빠르게 이 지역을 벗어날 뿐이었다.
그렇게 진을 제외한 모두가 철수했다.
* * *
화산의 가장 깊은 곳.
노바와 아이들이 열지 못한, 두꺼운 철문 뒤에는 한 남자가 분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감히!”
밖에서 더는 연락이 들어오지 않았다. 화산과 연결된 마법진이 전부 파괴됐다.
이것이 뜻하는 건 하나뿐이다.
“끝인가.”
계획을 서둘러 진행하면서 수많은 문제가 생겼다.
세계급 마법을 목표로 했는데, 그것은 왕국급으로 축소가 되었고.
그마저도 카운터 마법에 의해 모두 실패했다.
“이렇게 실패할 계획이 아니었다.”
자신은 세계급 마법을 완성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한데, 그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졌다.
다시 이 계획을 가동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너무나 아득했다.
저들은 자신의 꿈을 희망을 무너트린 것이다.
“너희가 자초한 것이다.”
그러니 저 녀석들은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모두 재로 돌아갈 것이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계획이 실패한 시점에 이 마법진은 폭발했을 것이다.
똑같은 결과로 보이지만 하나가 다르다.
“화산이 모든 걸 삼키리라! 너희도 나와 똑같은 절망을 맛봐라!”
화산 폭발의 범위를 더 키울 수는 있다.
그의 몸에서 마나가 뿜어져 나와 마법진에 흡수된다. 한데, 그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마나가 모조리 흡수됐음에도, 끝나지 않았다. 그의 몸의 생기마저 모두 마법진에 흡수됐다.
“크…… 하…… 하핫!”
그는 죽어 가면서도 웃었다.
절망이 가득한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면, 파괴하겠다.
오직 이 생각뿐이었다.
쿠궁-. 쿠궁-.
곧이어 마법진에서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끝이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꼴같잖은 마법진 발동시키면서 더럽게 오래 걸리네.]
정령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노골적으로 비웃는 듯한 표정의 정령이.
‘저건…… 성자의 정령!?’
그는 목숨까지 다 바쳤으나, 만족스러운 죽음을 얻을 수 없었다.
‘설마…… 이걸 막으려고?’
찝찝한 기분을 느끼며.
‘성자! 이 저주받을 놈아!’
그는 눈을 감았다.
[괜찮은 거예요?]
[어. 상관없어. 생각대로만 되면 별 차이 없어.]
로메른은 그렇게 말한 뒤, 빠르게 지시했다.
[루나. 아까 뽑은 피 정제 끝났어?]
[예. 거의 다 끝났어요.]
쿠궁-. 쿠궁-.
[이 소리 들리지? 최대한 빠르게 해.]
[알겠어요.]
로메른은 곧장 검성을 바라봤다.
다음 일은 검성이 해 줘야 했다.
[우리 둘이 힘을 합칠 날이 올 줄은 몰랐네.]
[허허. 우리 같이 싸운 전우 아니었나?]
검성의 말에 로메른은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할게. 우리 둘의 힘을 합치는 술식을 짜기엔 시간이 부족해. 그러니까 검성 네 도움이 필요해.]
[말해 보게.]
[검술로 두 가지 힘을 합쳐 줘.]
[흐음. 그대도 알고 있겠지만, 검술로 힘을 합치는 건 술식으로 짜는 것보다 완벽하지 않다네.]
[알아. 그래도 더 많은 힘을 자연스럽게 융합하는 건, 검술 쪽이 훨씬 더 안정적이잖아.]
게다가, 검술의 가장 좋은 점은 따로 있다.
[그 외에 힘을 합칠 방법이 있어?]
현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대가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르게 나올 수도 있으니. 그건 감수하게.]
[그 정돈 알고 있어. 대신 확실히 하나로 합쳐.]
[허허.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 그건 걱정하지 말게.]
그렇게 둘의 대화가 끝날 쯤.
[준비됐어요!]
중심핵이 되어 줄 물건이 완성됐다.
쿠우우웅!
거대한 소리와 함께, 지하에 있던 용암이 출렁거린다.
[일단 이리로 다 들어와!]
루나가 만든 중심핵으로 모두 들어갔다. 새빨간 구슬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구슬 주위로 힘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엄청난 힘이 구슬을 뒤흔들며 뿜어져 나왔다.
[일단, 한계까지 뿜어 보게.]
[알겠어! 열만 분리해서 뿜어 낸다!]
그 말과 함께 구슬 주위로 빛이 뿜어지더니, 이내 밝은 빛은 사라지고 그곳에 ‘열기’만 쌓이기 시작했다. 구슬 주위에 뜨거운 열기에 일렁였다.
그다음 검성이 움직였다.
드드드드득-!
동굴이 무너지며, 돌과 바위가 그 열기와 합쳐졌다. 열기에 돌들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지만, 완벽히 섞이지 못했다.
이건 용암이라 할 수 없었다.
그 위로 검성의 힘이 날아왔다.
검풍조차 일지 않을 가벼운 베기.
한데, 그 베기는 놀라운 일을 만들어냈다.
[경계를 베어 낸다.]
돌과 열기라는 섞일 수 없는 힘이 하나로 뒤섞이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냈다.
돌과 바위가 녹아내린다.
열기가 그 안에 모두 담긴다.
분명 뜨거운 열과 바위뿐이었는데, 대지의 힘과 열의 힘이 합쳐져, 용암을 만들어 냈다.
[루나! 피에 담긴 지배력 발휘해!]
용암이 만들어지면, 그 용암을 통제해야 한다. 그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진의 피로 만들어진 중심핵이었다.
진의 피가 용암을 지배한다.
원래라면 용암의 열기에 피가 녹아내려야 하지만, 이건 정령의 힘.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얼치기들처럼 실수하지 마. 힘을 하나로 모으는 거야.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만 와!]
그렇게 힘의 지배가 끝났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피와 빛, 대지의 정령이 합체하자 용암을 사용하는 ‘용암의 정령’이 되었다.
콰과과과광!
땅이 들썩이며 동굴 안으로 용암이 뿜어진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흡수해!]
터져 나온 용암은 마치 자석에 이끌린 듯 구슬을 향해 빨려 들어왔다.
[형태를 만들어!]
로메른이 이끄는 대로 검성과 루나가 지원해주었다.
콰아아앙!
용암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그 존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 * *
한편 진은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성공인가?’
화산 폭발의 전조를 보이기 시작한 지 벌써 몇 분이 된 거 같은데, 작게 터지기만 할 뿐 제대로 터지질 않았다.
‘아. 답답하네.’
정령들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때.
쿠구구구궁.
산이 떨리듯 흔들리고.
콰아아앙-!
일부가 터져 나갔다.
“……미친.”
터져 나간 곳을 본 진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산이 터져 나간 부분엔 상상 이상의 것이 보이고 있었다.
‘용암.’
그것도 그냥 용암이 아니었다.
일반 용암처럼 아래로 흐르지 않고,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골렘 머리?’
그 크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이거지.”
거대 로봇.
그 존재감만으로 진은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지식의 해방이 똥 뿌리듯 터트린 화산은 진의 거대 로봇이 되었다.
‘아 합체 로봇인가?’
뭐,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