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92화 (92/210)

092. 썩어도 준치

지식의 해방 쪽에서 사용하는 마법을 계속 카운터 치고, 빨아 먹을 거 전부 빨아먹은 다음.

마법진을 폭발시켜 지식의 해방 쪽 녀석들에게 피해까지 입힌다.

이게 진이 그린 그림이었다.

한데, 그 그림이 조금씩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성자가 되기 위해 교황청으로 가는 도중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진. 이거 마법진 자폭은 쉽지 않겠는데?]

‘뭐? 왜?’

이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이미 지식의 해방 쪽 마법진에 접속한 상태였다.

다른 마법을 발동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자폭시키는 거라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법적 문제는 아니야. 녀석들이 마법진을 설치한 장소가 문제야.]

‘왕국 외곽 지역이라고 하지 않았어? 사람도 살지 않는 곳이고, 별로 위험한 지역은 아니라고 했잖아.’

애초에 위치가 어디인지 확인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이제 와서 위치가 문제가 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세계급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진은 하나가 아니야. 작은 마법진들을 연동해서 거대한 하나의 마법진을…….]

‘핵심만 설명해.’

[힘을 뿜어내는 출격 마법진 위치가 생각지도 못한 곳이야.]

‘대체 어딘데?’

[화산. 그것도 용암과 가까운 곳이야. 자칫 잘못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거야.]

‘미친.’

괜히 로메른이 문제라고 한 게 아니었다.

‘아니. 왜 마법진을 그딴 데 설치한 거야!?’

[그러니까…….]

로메른도 이건 예상 못 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일단…….’

이제 와 그 이유를 따지는 건 비효율적인 짓이다. 그보다 다른 것들을 확인해야 했다.

‘회귀 전에 저 화산이 터진 적 있어?’

[내 기억엔 없어.]

[제 기억에도 마찬가지예요.]

로메른과 루나의 말을 듣고, 진의 얼굴에 화색이 떠오를 쯤.

[이걸 잊은 겐가? 회귀 거의 직전에 터졌던 걸 똑똑히 기억하네.]

[어? 그랬나?]

검성은 화산이 터진 걸 기억하고 있었다. 진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터질 수 있는 화산이라 이거지?’

[그렇다네. 외곽에 있는 화산인데도 불구하고 왕국의 중심부까지 피해가 있었다네.]

‘터지면 대규모 피해라는 거고.’

이건 정보를 모으면 모을수록 절망적이었다.

‘지식의 해방이 이걸 모를까?’

[알겠지. 그러니까 그곳에 마법진을 설치했을 거야.]

당연했다. 지식의 해방과의 싸움에서 진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건 모두 정령들 덕분이었다.

정령들이 있기에 싸울 수 있는 적. 그게 바로 지식의 해방 녀석들이었다.

‘녀석들은 벼랑 끝까지 몰린 상태인데…….’

여기서 녀석들이 선택할 방법은 뭐가 있을까?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다.

‘스스로 터트릴지도 모르겠네.’

[그럴 확률이 없다고는 말 못 하겠어.]

만약 진이 지식의 해방이었다면, 화산을 터트렸을 것이다.

‘만약에 터지면 막을 수 있어?’

[아니. 불가능해. 지금까지 카운터 칠 수 있었던 건 모두 마나로 만든 것들이라 가능한 거였어.]

‘화산은 그냥 자연이라 이거지?’

[어. 화산폭발은 그저 자연현상일 뿐이야. 그것도 재앙에 가까운.]

마법으로 막을 수 없는 자연의 재앙.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용수바람!”

진이 소리치자, 마부석에 있던 용수바람이 입을 열었다.

“예. 주인님.”

“조금 늦을 거 같다고 교황청에 전서구 보내.”

“예. 바로 보내겠습니다.”

이건, 누굴 보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직접 간다.’

[직접 가는 건 좋은데, 결국 터질 때 이걸 어떻게 막을지가 제일 중요해. 그 방법을 찾지 못하면 못 막아.]

로메른의 말에선 미약한 기대가 묻어났다.

이번에도 진이 뭔가 색다른 발상을 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거 같았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생각해야지. 두뇌 풀가동 해 볼게.’

지금부터 생각해야 했다.

[……후. 일단, 우리도 방법을 찾아볼게.]

그래. 지금은 그 방법뿐이다.

“워프 게이트가 있는 대도시로 최대한 빠르게 가자!”

“예. 주인님.”

마차가 속도를 올려 질주하기 시작했다.

* * *

감찰부의 권한이 얼마나 확대됐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고 싶습니다.”

감찰부 인장를 보여주며 말하자.

“아이고, 감찰부 소속이셨군요. 이번에 바뀐 정책 덕에 감찰부 소속이시면 얼마든지 마음껏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원래라면 워프게이트 이용은 꽤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디로 가는지, 목적은 무엇인지, 허가는 받았는지…… 등등.

이러한 제한 덕에 감찰부는 물론이고 진조차도 워프게이트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고, 목적이 드러나니까. 한데, 그 과정이 모두 사라졌다.

‘이거 하나는 진짜 좋아졌네. 앞으로는 편하게 워프게이트 이용하면 되겠어.’

감찰부의 권한 확대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진은 벌써 혜택을 보고 있었다.

덕분에 화산과 가장 가까운 도시 ‘칼립토’에 오는 데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뒷골목으로 가자.”

진은 칼립토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뒷골목으로 향했다.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리 직접 와서 일한다고 해도, 모든 일을 진이 할 필요는 없었다.

“이거, 일족의 귀한 손님이 오셨구먼.”

진이 만나러 온 것은 흡혈귀였다. 진은 만나자마자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냥터가 하나 생겼는데, 참여하시겠습니까?”

“오호. 사냥터라…… 이거 우리에게도 기회가 올 줄은 몰랐군.”

서로 복잡한 설명은 할 필요가 없었다. 인간이라면 지역마다 지배자가 다르겠지만, 흡혈귀들은 다르다.

“제법 위험한 사냥터입니다.”

“우리에게 위험한 만큼 녀석들에게 치명적일 테니 더 좋군.”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것 같으면서도, ‘원한’이 들어가면 전혀 달라진다. 그들은 그때부터 ‘흡혈귀’란 하나의 생물로써 움직인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네. 그대가 이렇게나 좋은 선물은 가져왔는데 부탁까지 하는 건 염치가 없다는 걸 알고 있네.”

그런데도 이런 부탁을 한다는 건?

“괜찮습니다.”

그만큼 이들에겐 중요한 부탁이란 뜻이었다.

“그, ‘천상의 피’라는 녀석을 먹어 볼 수 있겠나? 고 녀석이 얼마나 자랑을 하던지…….”

선생님? 그게 부탁이라고요!?

무슨 부탁을 할지 심각하기 고민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게다가 천상의 피는 뭐야 진짜.’

성자가 준 피라 천상의 피인가?

진짜 흡혈귀들의 센스는 어딘가 망가진 게 아닌가 싶었다.

“이 천상의 피가 포상으로 걸리면, 엉덩이 무거운 놈들도 참석할 걸세.”

엉덩이 무거운 놈들?

그 대답은 로메른이 해 주었다.

[어? 고위 흡혈귀들도 참석한다는 소린 거 같은데?]

그렇다면 나쁠 게 없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얼마든지!”

그는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진을 바라봤다.

‘루나.’

[예. 잠깐만 기다리세요!]

루나가 밖으로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용수바람이 물주머니를 가지고 왔다.

‘기분이 묘하네.’

영화 속에서처럼 뒷골목에서 위험한 거래를 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은 물주머니를 받은 흡혈귀의 반응 때문에 더 강해졌다.

“흐으으으. 괜히 천상의 피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군!”

물주머니의 뚜껑만 열고 냄새만 맡았는데, 그의 눈은 반쯤 풀려 있었다.

‘저번보다 더 반응이 격한 거 같은데?’

[루나도 이제 중급 정령인데, 그때 만들었던 것보다는 훨씬 좋은 게 당연하지.]

하긴, 그것도 그랬다.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입을 열었다.

“바로 시작하실 수 있겠습니까?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목적지만 말해 주게.”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아포 화산 쪽입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는 겐가?”

진은 고개를 저었다.

“지도 있으십니까?”

로메른이 각 위치를 전부 알고 있었다.

“여기 있네.”

그가 준 지도에 빠르게 표시했다.

“아군 식별은 우리가 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다만, 어디부터 향할 것인지만 알려주면 좋겠군.”

“그건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 목적지는 이곳입니다.”

진이 화산을 가리켰다.

“이곳에 위험한 시설이 있습니다. 저희는 그걸 처리하러 갈 생각입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어떤 일인지 감이 오는 군. 알겠네. 그럼, 결행은 언제 할 생각인가?”

“오늘 저녁입니다.”

“좋군.”

흡혈귀와 성자가 손을 마주 잡았다.

“잘 부탁합니다.”

“그런 말 하지 말게. 우리에게 기회를 줘서 고맙네.”

거래 성립이었다.

* * *

어둠이 내려앉은 깊은 밤.

한 사내가 숲에서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른 와라. 와서 날 즐겁게 만들어라!’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말릭이었다. 녀석의 얼굴엔 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잠시 후.

말릭이 서 있는 곳과 반대 방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어떤 미친놈들이…….”

“감찰부 쪽 녀석들이 냄새를 맡은 게…….”

“흔적을 보면 흡혈귀들의 소행인데…….”

“헛소리들 하지 말고, 서둘러라. 화산에 있는 본부에 보고해야 한다.”

그 말을 들은 말릭은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흡혈귀들의 공격이 시작됐나 보군. 지금부터 시작이다.’

말릭이 할 일은 간단하다.

화산으로 향하는 이들을 전부 막아라.

‘진 님이 주는 일은 언제나 최고다.’

뭔가를 할 필요도 없고, 이 길목으로 오는 녀석들만 잡아 죽이면 끝이었다.

말릭은 진에게 받은 힘을 발동했다.

녀석들을 감싼 수십 수백 개의 죽음이 보인다.

물론, 모두에게 같은 게 보이는 건 아니었다. 대장으로 보이는 이는 꽤 강한 녀석인지 몇 개 보이지 않았다.

‘시작하자.’

말릭은 걸음을 옮겼다.

그는 암살자도 아니고, 특별히 보법을 배운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조심한다고 하지만, 걸음에서 소리가 났고 기척이 느껴진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보이는 죽음을 따라 이동하자, 기척과 소리가 들리는데도 녀석들은 눈치채지 못 했다.

그나마 말릭이 지척에 다가와서야.

“뭔가……!”

대장만 어렴풋이 느꼈을 뿐이었다.

푹.

말릭의 검이 한 녀석의 가슴에 박혀 들어갔다.

“적……!”

녀석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푹.

말릭의 검이 다른 녀석의 가슴을 찔렀다.

‘동작이 굼뜨다.’

마법 계열. 그것도 전투 마법사가 아닌 거 같았다.

하지만, 그건 섣부른 생각이었다.

‘사라진다.’

그의 눈앞에 보이던 죽음이 빠르게 사라졌다.

수십 수백 개의 죽음이, 불과 몇 초 만에 흩어진다…….

그리고.

콰아아앙-!

거대한 마력이 말릭의 몸을 밀어냈다.

“감히!”

말릭이 물러나자, 새로운 죽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건 자신을 향한 죽음이었다.

“재밌구나.”

말릭이 씩 웃으며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페럴라이즈!”

말릭을 향해 마법이 쏟아진다.

자신의 죽음은 더 선명해졌다.

하나, 걱정할 필요 없었다.

‘길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죽음은 자신의 힘이다.

자신을 물어뜯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말릭의 검에 기묘한 기운이 맺히며, 모든 걸 베어 내기 시작했다.

* * *

화산 입구.

진은 홀로 입구에 서 있었다.

‘얼마나 걸리려나.’

[금방 걸릴 거야. 노바랑 아이들도 놀고만 있던 건 아니니까.]

외부에서 오는 적을 말릭에게 맡겼듯, 화산 내부에 있는 적은 노바와 아이들에게 맡겼다.

물론, 절대로 귀찮아서가 아니었다. 아. 그것도 좀 있긴 하지만, 아무튼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네 예상은 어때?’

[솔직히 말해 줘? 희망 사항 쏙 빼고?]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필요한 건 운에 기댄 낙관적 미래가 아니었다.

[이 상황까지 몰렸으면, 이거 무조건 터질 거야. 뭐, 화산을 터트리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아이들이 완벽하게 적을 상대한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터진다는 게 로메른의 결론이었다.

‘안 터질 만한 확률은?’

[전혀 없어. 그 정도로 무능한 놈들이 이 정도 일을 꾸몄을 거라곤 상상도 못하겠는데?]

맞는 말이었다.

거듭된 승리에 취해 적을 얕보면 안 된다. 지금이야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된 지식의 해방이지만, 이 녀석들의 정체를 정령들도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하긴,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고 이곳에 온 거니까.’

그러니 진이 할 일은 다른 게 아니었다.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진의 머릿속에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새로운 발상이 필요해.’

완전히 새로운 시각.

전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

‘어?’

뭔가 느낌이 왔다.

[왜? 무슨 아이디어 떠올랐어?]

‘아니. 이 재앙의 사이즈가 커서 문제라면 우리가 커지면 되는 거 아니야?’

[……뭐?]

‘거대화 같은 거 사용해서 우리가 커지면 화산 터진다고 해도 막을 수 있지 않겠어?’

[이건 또 무슨 새로운 개소리야. 사람이 어떻게 커져? 거대화 마법은 또 뭔데? 인간의 육체가 그렇게 함부로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주눅 들 필요 없다.

이건 아이디어이며, 발상이다.

대부분 개소리인 게 당연하다.

‘그럼, 다른 방법은?’

[뭐? 아니. 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너 현실 도피하면 안 된다.]

아니. 현실 도피가 아니었다.

이건 아이디어다.

내가 커지는 게 안 된다면?

‘거대 로봇.’

내가 탑승할 수 있는 거대 로봇을 만들면 된다.

‘왔다. 이게 답이야.’

[……뭐? 야. 괜찮은 거지? 너 정상이지?]

장난이 아니었다.

내 몸이 커진다…… 에서 시작된 생각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우린 거대 로봇을 만들 거야.’

[아니. 그게 대체 뭔데!]

세계도 구하고, 거대 로봇도 손에 넣을 것이다.

‘거대 로봇은 못 참지.’

물론, 로봇과는 굉장히 거리가 먼 게 만들어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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