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91화 (91/210)

091. 기적, 기적, 기적!

메뚜기 떼의 등장에 당황했던 것도 잠시, 이게 실질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추수 직전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큰일이었겠지만, 겨울이 끝나가는 지금 그다지 문제가 될 건 없습니다.”

“맞습니다. 봄 작물들은 쓸려나가겠지만, 백성들이 굶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메뚜기 떼들은 자고로 휩쓸고 지나가기만 할 뿐입니다. 보관 중인 식량 일부가 피해를 본다고 해도, 일부일 뿐입니다.”

이런 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학자들의 의견이었다.

덕분에, 이야기의 방향은 전혀 전혀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건, 역모다. 역도들을 잡을 방법을 찾아라.”

지식의 해방은 위협적인 조직에서 역모 단체가 되어 버렸다.

회의가 이렇게 진행되고 있는 사이, 상황은 묘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진즉 떠났어야 할 메뚜기 떼들이 도시에서 떠나질 않았다.

단순히 이들이 머물러서 문제가 아니었다. 메뚜기 떼들이 도시에 머물면서 온갖 것들을 찾아 먹어 치우기 시작한 게 진짜 문제였다.

“각 상단의 곡물창고가 털리고 있습니다!”

“메뚜기 떼들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막고 싶어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 녀석들은 나무마저 갉아 먹는 치악력을 지녔습니다! 일반적인 메뚜기 떼들이 아닙니다!”

그 덕에 회의 방향이 다시 한번 틀어지기 시작했다.

“……메뚜기가 먼저겠군.”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이건 무시할 수 없었다.

지식의 해방에 먼저 집중했던 건, 위험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대로라면 왕국민들이 굶어 죽고, 지식의 해방이 내건 벽보에 힘이 실리게 된다.

그 해답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왔다.

새벽이 돼서 끝난 회의.

왕은 여전히 집무실에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때, 한 소녀가 방문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신녀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그 손님은 다름 아닌 정글러 대표로 왕궁에 방문한 신녀였다.

“좋은 소식이 있어서 왔습니다.”

발음은 어눌하지만, 그 어법은 왕국민들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좋은 소식이라…… 그게 무엇입니까?”

왕의 물음에 신녀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이 모든 문제는 금세 해결될 것입니다.”

다른 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왕에게 했다면 고초를 겪어도 할 말이 없었겠지만 신녀는 달랐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셨습니까?”

이 사건이 터지기 전 왕은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정치적이었으나 선을 넘지 않았고, 정글러의 이권을 위해 움직였지만, 화합하고 상생이 목표였다. 게다가 때때로 보여주는 새로운 관점에 왕은 여러 번 놀랐었다.

왕은 그녀를 존중했다.

정글러의 대표로서.

그런 그녀가 이런 말을 했으니, 왕이 그녀에게 되물은 것이다.

“성자께서 정글에 도착하셨습니다. 성지에서 어둠을 밝히실 겁니다.”

마치 선문답 같았다.

왕은 그녀가 정치인에 가까운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그녀는 사제와 비슷했다.

“진 세인트 남작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분이 정글에 오신 게 느껴집니다. 정글의 힘과 그분의 힘이라면 빛을 가져오실 겁니다.”

장난을 하는 것도, 희망을 읊조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눈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제야 왕은 이게 정치적인 말이란 걸 깨달았다.

‘정글러들의 가치를 증명하겠다는 뜻인가.’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켜보겠습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둘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 * *

‘괜히 왕이 아니네. 이 양반 대단한데?’

진의 시선은 한 서신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건 감찰부에 소속된 이들만 볼 수 있는 서신이었다.

‘원래라면 귀족들의 반대로 감찰부 권한을 늘리는 건 불가능했을 텐데…. 날치기로 이걸 통과시켰네?’

[지식의 해방 덕분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어?]

감찰부의 권한이 확장되는 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물론, 진에게 이런 복잡한 정치 사정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아무튼, 나한텐 이득이네.’

진에게 이득이냐 아니냐.

이게 진짜 중요했다.

[이젠 성자로 다니는 것보다 감찰부로 다니는 게 훨씬 편하겠는데?]

아무리 감찰부라도 넘을 수 없는 선이 있었는데, 그 선이 사라졌다.

이젠 귀족가 아무 곳이나 가서 ‘감찰부다! 문 열어!’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러면 얻을 건 다 얻었나?’

[어. 신녀가 언질도 넣어줬고, 감찰부 권한 확장이란 생각지도 못한 것도 얻었으니까.]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시작하자는 진의 말에 대답한 건, 로메른이 아니었다.

[좋아요.]

중급 정령이 된 루나.

그녀가 대답했다.

‘아 깜짝아! 이젠 불쑥불쑥 튀어나오지 말라니까.’

아직 조그마한 검성과 로메른과는 달리, 그녀는 중급이 되며 폭풍 성장했다. 전에는 소녀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아이와 어른의 경계선에 걸쳐 있는 느낌이었다.

[겉모습만 달라진 게 아니에요. 사용할 수 있는 힘의 크기도 달라졌어요.]

‘그거야 이번에 확인해 보자고.’

[기대하셔도 좋아요. 기적을 보여드릴게요.]

진은 가마에서 일어나, 성지 중앙으로 걸어갔다. 성지를 방문한 사제들의 시선이 진에게 모인다.

저들이 바로 관객이었다.

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교묘하구나.”

조용한 읊조림이 성지에 있는 모두에게 들렸다.

“그렇기에 무도하다.”

진의 목소리에 담긴 엄청난 신성력에 사제들은 온몸이 떨려왔다.

성자는 분노하고 있었다.

“지식의 해방은 왕의 죄 때문에 이런 재앙이 벌어진 것이라 말했다.”

왕을 끌어내기 위해 지식의 해방이 사용한 방법은 민심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죄를 지었기에 재앙이 강림했다.

그러니 왕을 물러나게 해야한다.

왕국민을 선동하고 뒤흔들기에는 완벽한 방법이었지만, 이 이야기엔 허점이 존재한다.

“그 재앙은 누가 내리는 것인가. 죄를 지었기에 벌을 내린다면, 그것은 천벌이라는 것인가?”

천벌은 신이 내리는 벌이다. 하지만, 교리에 따르면 신은 천벌을 내리지 않는다.

“신은 인간을 벌하지 않으신다. 이 땅에 사제를 보내 죄를 짓지 않게 가르침을 전파하신다. 사제들이여 그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들의 이야기를 뒤틀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그들은 우리를 부정했다.”

진의 목소리엔 한층 더 강한 분노가 담겼다.

“신의 선한 의도를 뒤틀었고, 사람들에게 신은 천벌을 내리는 분이란 인식을 심어줬다.”

진이 소리쳤다.

“그렇다면, 그들이 모시는 신은 무엇인가! 죄를 짓는다고 천벌을 내리는 그들의 신은 대체 누구인가!”

하나의 결론이 나온다.

“사교도들이다. 사특한 것을 신으로 모시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억측이며 끼워 맞추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그게 아니라면 대체 누가 이런 끔찍한 벌을 내린단 말인가.”

선동과 날조와 싸우기 위해선, 이쪽도 선동과 날조를 해야 하는 법. 팩트로 싸울 필요 없다.

“이는 성전(聖戰)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먼저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이제 지식의 해방과 교단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왕국을 위협하는 불순한 조직을 상대하는 것과 사특한 신을 모시는 이들을 상대하는 건, 전혀 다르다.

곧이어 진의 표정이 변했다.

가득하던 분노가 사라졌고, 형형하던 눈은 어느새 감겨 있었다.

“나의 아이들아.”

진이 입을 열지도 않았는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진의 목소리지만, 어딘가 달랐다.

조금 전처럼 엄청난 신성력이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모두 압도가 되었다.

마치, 신의 목소리처럼.

“난 결코 너희를 벌하지 않는다.”

사제들은 전율을 느꼈다. 모두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믿어라.”

진의 말과 함께 성서 조각상에서 엄청난 신성력이 하늘로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 믿음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그리고, 기적이 펼쳐졌다.

신성력이 메뚜기 떼를 휩쓸자, 메뚜기 떼들이 산화했다. 마나로 만들어진 마충이 마나로 되돌아갔다.

이것도 놀랍긴 했지만, 진짜 기적은 그다음이었다.

메뚜기 떼가 사라진 곳에서, 빵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식량을 갉아 먹던 메뚜기 떼가 사라지고, 하늘에서 빵이 비처럼 쏟아졌다.

“난 결코 너희들을 벌하지 않는다.”

빵의 빗속에서, 눈을 감은 진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신이시여!”

“기적을 보았나이다!”

“믿습니다!”

어느 사제들은 목소리 높여 신을 부르짖었다.

* * *

왕국 곳곳에서 정글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메뚜기 떼가 사라지고, 그곳에서 빵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도시에 머물러 위험하던 메뚜기 떼들. 한데, 이게 빵으로 변하자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전부 도시에 쏟아져서 먹지 못하거나 소실된 빵은 없습니다.”

빵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품으로 되돌아왔다. 게다가 이걸 나누는 것도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빵 분배는 교단에서 진행하겠습니다.”

주민들은 영주는 못 믿어도, 교단은 믿었다. 오히려 이쪽에서 움직여주는 것을 환영했다.

덕분에, 이런 말까지 나오게 됐다.

“아. 메뚜기 떼나 한 번 더 나왔으면 좋겠네.”

“나도 그 생각했다니까?”

“왕께서 죄를 짓긴 개뿔이. 빵을 내려주는 죄라면 많이 지으셨으면 좋겠는데.”

“벽보 그거 다 개소리라니까.”

물론, 이번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진은 여전히 성지에 있었다.

‘끝 아니지?’

[당연하지. 국가급으로 내려서 사용했는데, 아직 몇 번은 더 마법을 사용할 거야.]

‘그래 줘야지. 여기서 끝이면 재미가 없지. 절대로 저쪽 마법진 파괴하지 마.’

[당연하지.]

그런 진과 로메른의 예상대로 두 번째 국가급 마법이 발동됐다.

불길한 흑마력이 왕국 전체를 덮었다. 무덤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나고, 악령들이 형체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 일은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흑마력이 뿜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성한 빛이 다시 한번 왕국 전체를 감쌌다.

그 신성한 빛에 휩싸인 언데드들은 아무도 공격하지 않고, 모두 한곳을 향해 나아갔다.

왕국에서 감찰부 수색대가 파견되고, 언데드들의 목적지가 어딘지 알아냈다.

그곳에선 믿을 수 없는 존재가 있었다.

후광을 두르고, 신성력을 뿌리는 리치가 언데드들을 죽음으로 되돌리고 있었다.

이런 공격과 방어는 몇 번씩이나 계속해서 이뤄졌다.

“하늘에서 불덩어리들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던 불덩어리들이 신성력으로 변했습니다! 그 신성력들이 땅에 깃들어 올해는 풍년일 거라고 합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거나.

“대규모 저주가 발동됐습니다!”

“저주가 축복으로 변환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저주가 왕국 전체에 뿌려졌다.

이렇게 공방이 오가니, 모를 수가 없었다.

‘지식의 해방이 공격을 누군가 막고 있다.’

막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정글 쪽 성지입니다.”

“진 세인트 남작입니다.”

“교단이 남작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정글러들의 도움으로 성지가 문제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정글러와 교단. 그리고 진.

이들이 지식의 해방의 공격을 막고 있었다. 게다가, 왕이 좋아할 만한 서신 또한 도착했다.

-왕께서 감찰부의 권한을 올려주셔서, 곧장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호시탐탐 반발을 생각하고 있던 귀족들이 한방에 깨갱했다. 왕은 싫어하려야 싫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 왕국의 보물이구나!”

왕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교황청에서도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예비 성자께서 성자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성지에 지원 갔던 모든 사제가 증인입니다.”

“맞습니다. 각 교구에서 예비 성자를 성자로 선정해달라는 청원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계속된 보고를 교황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 * *

한편, 정글에 있던 진은 희희낙락 웃고 있었다.

‘정말이지 지식의 해방은 아낌없이 주네.’

그렇게 빼먹을 거 다 빼먹은 진은 로메른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로메른. 끝내자. 마무리해.’

[알겠어. 마법진 자폭시킨다!]

정글은 완벽하게 왕국과 융합이 됐고, 진은 왕의 총애를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상황이면 감찰부의 권한은 여전히 유지가 될거 같았다.

심지어.

“교황청에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이 시기에 교황청에서 서신이 왔다면,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진은 곧장 서신을 확인했다.

‘이제 예비 딱지 떼러 가자.’

예비 성자에서 진짜 성자가 되러 오라는 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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