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89화 (89/210)

089. 목줄을 채워요

흑마법사를 되살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면의 담긴 힘으로 로메른이 뚝딱 영혼들을 소환했다.

‘이렇게 바로?’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 로메른이야.]

재수 없지만, 그 말이 딱이었다.

흑마법사의 극에 도달한 자.

그게 바로 로메른이었다.

[어허! 가만 있어!]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로메른의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일까?

<죽은 자의 영혼을 소환하는 건 금기일 텐데!>

<……너희들은 누구길래 이런 역천(逆天)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냐!>

너무 멀쩡한 상태로 되살아났다.

“지금 누가 누구한테 이런 힘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거야? 지식의 해방이? 성자한테?”

아주 어처구니가 없는 놈들이었다. 지식의 해방이야말로 금지된 지식을 제일 많이 사용한다.

한데 고작해야 흑마법사의 금기를 어겼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또 네놈이구나.>

<우리의 일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성자 놈!>

녀석들은 그런 말을 하더니,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후회할 것이다! 세뇌는 하지 못했지만, 지상에 인간 마왕이 강림할 것이다!>

<나의 영혼을 태워서라도! 성자 넌 늦었다!>

한데, 진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내버려 두면 되는 거야?’

[어. 이미 소환하면서 쫙 훑어봤어.]

‘……그게 가능한 거였어?’

녀석들은 이미 소환된 순간, 모든 정보가 털린 상태였다.

[원래라면 몇 가지 문제가 있긴 했지만, 리치가 있으니까.]

‘편리하네.’

[뭐, 지금이니까 사용할 수 있는 거긴 해.]

다른 경우엔 사용하기 힘들 단 말이었다. 뭐, 이렇게 편리한 힘을 맘껏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곤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좋아. 정보는 쓸 만한 거 있어? 대체 이놈들은 지식의 해방에 왜 투항한 거야?’

[그냥 뻔하디뻔한 놈들이야.]

‘뻔하다고?’

[재능이 부족한 흑마법사.]

그 말을 듣자마자 녀석들이 무슨 욕망을 이루기 위해 지식의 해방에 투항했는지 감이 왔다.

[한심한 놈들이야. 제대로 벽도 마주해 보지 않은 놈들이 편리한 길을 선택하다니…… 정말이지 역겨운 놈들이야.]

부족한 재능을 무엇으로 채웠을까?

당연히 금지된 지식으로 채웠을 것이다.

그 금지된 지식의 활용은 그리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었을 것이다. 로메른이 역겹다고 할 정도면, 이놈들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을 것이다.

‘죽어도 싼 놈들이네.’

[흑마법사의 수치 같은 놈들이야. 이딴 놈들 때문에 흑마법사가 위험하다는 말이 나오는 거야!]

로메른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 외에 중요한 정보는?’

[없어. 그래도 녀석들이 아예 쓸모가 없는 건 아니야.]

‘왜?’

[기다려 봐. 재미난 일이 일어날 테니까. 적어도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야지.]

로메른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녀석들의 영혼이 벌써 절반이나 불탄 상태였다.

<크아아아아! 난 세상에 내 이름을 남길 것이다!>

섬 하늘에 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불길하게 빛나는 붉은 색 마법진.

그곳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마왕이 강림하리…… 어?!>

진의 품으로 빨려 들어왔다.

로메른은 진의 품으로 들어와 가면을 밖으로 꺼냈다.

[크. 달다. 달아!]

이 섬에서 벌어진 모든 일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저, 저 힘이 어찌하여 저곳으로!?>

진은 그런 그들에게 한마디 해 줬다.

“꺼어억. 잘 먹을게.”

그러자 격렬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 성자! 네놈을 저주할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걸작을…….>

녀석들은 마지막 말까지도 하지 못한 채 모든 영혼이 불타 사라졌다.

로메른이 들고 있는 가면엔 피라도 떨어질 것처럼 새빨간 기운이 잔뜩 모여 있었다.

* * *

[쓰읍. 이거 루나 주긴 좀 아까운데.]

로메른의 말에 루나가 곧장 끼어들었다.

[동료끼리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에요.]

‘루나? 피의 정령이 이 기운이랑 연관이 있어?’

로메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도 담겨 있긴 해. 인간의 모든 걸 힘으로 바꾼 거니까.]

‘끔찍하네.’

[뭐, 우리한텐 끔찍하게 도움이 되는 물건이지.]

로메른은 그렇게 말한 뒤, 루나를 불렀다.

[딱 피만 빼먹어. 나머진 내가 쓸 거야.]

[알겠어요.]

루나는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와.]

로메른이 가면을 건드리자, 묘한 틈이 생겼다.

[피만 먹고 나올게요!]

루나는 서둘러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하. 루나가 가장 먼저 성장할 줄은 몰랐는데.]

‘루나가 성장할 만큼의 기운이 담긴 거야?’

[아까 말했지? 이거 인간의 모든 것을 힘으로 바꾼 거라고. 루나가 성장하고도 한참 남아.]

‘하긴, 섬에 있는 모든 죄수의 힘이라면 그럴 만도 하네. 남은 건 어디다 쓰게?’

[네 몸을 개조할 거야.]

‘이걸로 가능해? 영기(靈氣) 안 모아도 되는 거야?’

[어. 육체 구성에는 영기보다 이게 더 좋아.]

설마 저 기운이 진의 육체 개조에 들어갈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오. 좋지, 좋아.’

육체가 강해지는 건, 무조건 좋다. 남들한테 다 짬 때려도 건강한 육체는 무조건 이득이다.

[그래. 저 괴물 놈 생각하면 더 강해져야 돼. 여기서 격차를 확 벌리는 거야.]

로메른은 진의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말릭이 진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말릭?’

[어. 가면 때문이라고 해도, 살해의 업을 다루고 있었어. 아까 그 눈 봤지?]

조금 전 봤던 이질적인 말릭의 눈이 떠올랐다.

확실히 뭔가 이상하긴 했다.

문제는.

‘살해의 업이 다루고 싶다고 다룰 수 있는 거였어?’

[몰라. 내 상식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아. 살해의 업을 지닌 놈들은 살인귀로 살다가 죽기 마련이거든.]

‘……상정 외의 성장이란 소리야?’

[어. 대충 어떻게 된 건진 감이 오는데……. 애초에 이렇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

쓸 만한 사냥개 말릭.

괴물에 목줄을 채워 세상에 도움 되게 사용하고 있었다. 한데, 녀석의 성장세가 범상치 않았다.

‘네 생각은?’

[충분히 통제할 수 있어. 솔직히 말해서, 말릭이 아무리 성장한다고 해도 우리가 항상 앞서 있을 거야. 검을 쓰는 이상 검성을 넘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기도 하고.]

로메른은 그렇게 말한 뒤,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다만, 저런 위험을 굳이 끌고 가야 할까?]

‘죽이자?’

[고민 중이야.]

통제되는 위험이지만, 굳이 위험을 근처에 둘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로메른과 진이 고민하고 있을 때.

“진 님.”

말릭이 진에게 다가왔다.

한데, 녀석은 조금 기묘한 자세로 다가오고 있었다.

항복한다는 듯 양손을 든 채로.

“왜?”

진이 표정을 찌푸린 채 녀석에게 묻자, 녀석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지금 하고 계신 생각을 거둬 주실 수 없겠습니까?”

녀석은 자신을 죽일지 말지 고민하는 중인 걸 아는 것처럼 말했다.

“……내가 뭔 생각을 하는 줄 알고?”

“좀 웃긴 이야긴데, 제 죽음이 자꾸 보입니다.”

녀석은 그 말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대체 그 이야기의 어디가 웃긴 걸까? 하여간 미친놈이었다.

“죽음이 너무 선명해 오싹오싹합니다. 보통 도망칠 길은 보이기 마련인데, 그것마저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죽음은 처음입니다.”

녀석은 그렇게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뒤.

“역시, 진 님은 무서운 분입니다. 지독할 정도로 철저하시군요.”

감탄을 터트렸다. 정말이지 감정변화 하나는 미친놈이 확실했다.

“전 진 님을 따라다니는 게 즐겁습니다. 진 님의 뒤를 밟으며 제 성장을 확인하는 것도 즐겁고요. 이번에 나름의 목표도 생겼습니다.”

“……결론만 말해.”

“저 좀 살려 주시죠.”

뭐가 이렇게 당당하지?

“말투.”

진의 말에 녀석은 곧장 말투를 바꿨다.

“살려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까 말했던 목표는 뭔데?”

일단, 이야기를 더 들어 보기로 했다.

“제 안에 뭔가가 있습니다. 전부터 느끼긴 했지만, 이번처럼 확실하게 느껴진 건 처음입니다.”

“그래서?”

“전 언제나 제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 줄 아니었는데, 아니었습니다. 이 녀석은 절 도와주기도 하지만, 통제하려고 합니다.”

녀석의 말에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나름대로 ‘살해의 업’을 파악한 모양이네.]

말릭 녀석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녀석을 죽여 보고 싶습니다.”

“……뭐?”

“죽음을 보여 주는 이 녀석에게도 죽음을 선사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게 목표란 소리야?”

“그렇습니다.”

진짜 광인의 말이나 다름없었다.

자신 안에서 뭔가 느껴지는데, 그걸 죽이고 싶다는 건.

“자살하고 싶다?”

이런 뜻이 아닐까?

한데, 전혀 아닌 모양이었다.

녀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 녀석만 죽이고 싶은 겁니다. 진 님을 따라다녀야 하는데 벌써 죽을 순 없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개소리일까?

그 답을 준 건, 정령들이었다.

[이거 설마…….]

로메른은 뭔가 감을 잡은 듯 입을 열었고.

[재능이 대단하긴 하구나. 그러니 저런 드높은 목표를 잡은 거겠지.]

검성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알아듣게 말해 줘.’

진의 말에 검성이 입을 열었다.

[저자가 목표로 하는 건, 자신의 운명. 업을 베고 싶다는 걸세.]

‘운명을? 아니. 그게 베고 싶다고 벨 수 있어?’

진이 보기엔 개소리였다.

[왜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군. 지하에서 내가 공간을 베어 낸 것과 그리 다를 게 없다네.]

‘……미친.’

[죽음의 힘으로 살해의 업을 죽인다…… 허허. 이건 또 신기하구나.]

웃을 일이 아니야, 이 양반아!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진 알고 있어?”

“……제가 가야 할 길마저 알고 계신 겁니까? 역시 진 님이시군요. 알고 싶지만, 직접 알아내고 싶습니다. 조언은 해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진은 말릭의 성향이 어떤지 대충 감이 잡혔다.

‘살려 둬도 되겠어.’

[어? 왜?]

녀석의 성격이 저런 이상, 진에겐 위험하지 않다.

‘말릭은 도달할 목표보다는 과정을 즐기는 놈이야.’

생각해 보면 녀석은 언제나 그랬다.

굳이 세부 사항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가서 몸으로 겪으며 그 과정을 만끽했다.

녀석에겐 목표는 그저 이정표일 뿐, 그는 이정표까지 향하는 과정이 진짜 목표였다.

‘로메른 네 말대로라면 녀석과 나 사이엔 언제나 좁히지 않는 차이가 있을 거야.’

[그렇지. 솔직히 말해서 직접적으로 위험하진 않아.]

게다가, 녀석의 목표가 살해의 업을 죽이는 거라면.

‘살해의 업이 사라진 녀석도 위험할까?’

[살해의 업이 없는 말릭?]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차라리 밀어주자.’

[밀어주자고?]

‘살해의 업 다룬 거 어떻게 한 건지 감이 잡힌다고 했지?’

[어. 가면의 쌓인 힘 때문인 게 확실해.]

그렇다면 이야기가 빨라진다.

‘그 힘으로 안전장치를 만들 수 있겠어?’

말이 안전장치지, 언제든 말릭을 죽일 수 있는 목줄을 달아 두자는 소리였다.

[오호. 안전장치 겸 지원이네?]

로메른은 진의 계획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나쁘지 않아. 육체 개조에 들어가는 힘도 아니니까 팍팍 줘도 상관없어.]

‘그래? 더 좋네.’

[가면이랑 비슷한 지원 정도면 충분할 테고…… 안전장치를 심는 거야 이건 내 전문이지.]

로메른은 신이 난 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말릭의 표정이 풀어졌다. 이미 죽음에서 벗어난 걸 알고 있는 거 같았다.

“그래. 살려 줄게.”

“감사합니다. 정말이지 조마조마했습니다.”

조마조마한 것 치고는 롤러코스터라도 타고 온 것처럼 스릴을 만끽한 표정이었다.

“가면이 없어도 그 힘을 사용할 수 있게 지원해 줄게.”

“지원까지 해 주신단 말입니까?”

녀석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 좋아할 필요는 없어. 목줄이기도 하니까.”

“그건 상관없습니다. 목줄이 있으나 없으나, 어차피 전 진 님을 당해 내지 못하니까요.”

하여간 주제 파악 하나는 빨랐다.

[준비됐어!]

어느새 준비를 끝낸 로메른이 소리쳤다.

“편히 앉아.”

“네.”

말릭을 일단 앉혀 놓은 뒤.

[진. 말릭 녀석 머리에 손 올려 줘.]

‘알겠어.’

진은 말릭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곧이어, 진의 손을 통해 말릭의 머릿속으로 이질적인 기운이 흡수되기 시작했다.

“-----!”

말릭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진은 눈을 발동해 녀석의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확인했다.

녀석의 머릿속에 불길한 느낌의 붉은색 구슬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건 녀석이 ‘살해의 업’을 다룰 수 있게 도와줄 거야. 언제든 우리가 터트릴 수도 있고.]

‘괜찮네.’

잠시 후, 구슬이 완벽하게 만들어졌을 때.

말릭은 그대로 기절했다.

진은 곧장 입을 열었다.

“철수하자!”

알카트라에서의 모든 일이 끝났다.

돌아가는 길에 몸도 개조하고, 가면에 담긴 말릭의 경험도 흡수하면 이번 여행은 ‘완벽’했다.

* * *

왕국의 어딘가.

로브를 깊게 눌러쓴 이들이 원탁에 모여 있었다.

“지식의 해방을 위해.”

가장 상석에 있는 이가 입을 열자.

“지식의 해방을 위해.”

나머지 이들이 똑같이 대답했다.

잠시 후, 상석에 있는 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또 실패했다?”

“그렇습니다.”

실패한 것 치곤 이들의 표정은 담담했다.

“이걸로 확실해졌군. 성자는 우리의 계획을 알고 있다.”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성자가 계획을 알고 있다는 건 확인했지만,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배신자나 첩자가 생길 수가 없는 구조에서 어떻게 계획을 알아냈는지 그건 알 수가 없었다.

“재밌군.”

한데, 상석에 앉은 이는 오히려 이런 상황이 재밌다는 듯 말했다.

“현재 성공한 계획은?”

“세계급 마법을 위한 준비가 유일합니다.”

“그 외에는?”

“모두 아직 진행 중입니다.”

“계획을 전부 폐기한다.”

그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세계급 마법의 발동도 앞당긴다.”

“그렇게 되면 마법의 영향이 세계급이 되긴 힘들 겁니다.”

“오히려 더 좋다. 국가급 마법을 준비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계획을 폐기하며 여유가 생긴 이들에겐 마음껏 활개 치라고 전해라.”

“……계획 없이 말입니까?”

“그래.”

그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계획이 없어도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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