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6. 관광 명소
신녀가 움막에서 해방된 건, 와이파이의 효과 중 일부일 뿐이었다.
[정착 완료했어. 우리 쪽 짝퉁 세계수랑도 연결 끝났고.]
‘이러면 세계급 마법이니 뭐니 하는 거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어. 세계급 마법이 발동되면 이쪽의 힘을 활용해서 카운터 마법이 발동될 거야.]
세계급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건,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다.
지식의 해방을 찾고, 마법진을 찾은 다음, 그 마법진을 무너트려야 가능하니까.
‘사용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포기할 놈들이 아니라는 거지.’
세계급 마법이 아닌, 산발적인 테러를 하게 되면 그건 더 골치가 아파지게 된다.
‘그러니까 카운터 마법이 딱이야.’
[동의해. 이러면 저쪽에서 열심히 준비한 걸 우리가 쏙 빼먹을 수 있으니까.]
녀석들이 세계급 마법을 발동하는 순간,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질 테니까.
‘그럼, 세계급 마법은 이걸로 마무리된 거지?’
[어. 끝이야. 나중에 세계급 마법이 발동할 때 우린 구경이나 하면 돼.]
세계급 마법에 관한 준비는 이걸로 끝이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정글러들을 왕국 안에 잘 녹아들 수 있게 해 주기만 하면 된다.
[그건 어떻게 하게? 말이 쉽지 이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이건 필연적으로 정치력이 필요한데…….]
그건 정공법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정직하게 일했다고, 쉽게 쉽게 가자.’
[쉽게? 이게 쉽게 될 일이야?]
‘어. 쉬운 방법이 있어. 그것도 우리에게 도움이 될 방법이.’
[그래?]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왕국이 정글러들을 버리지 못할 이유를 만들어 주면 되는 거잖아?’
[그렇지. 그게 핵심이긴 해.]
‘관광 명소를 하나 만들자.’
[……뭐?]
관광 명소.
그것도 왕국에서 함부로 손대지 못할 만한 관광 명소를 만들면 될 일이다.
‘성지 순례할 때 꼭 들려야 하는 곳. 뭐 그런 관광 명소면 왕국 쪽에서 손대지 못하지 않겠어?’
[교단 쪽과 연관된 장소?]
교단에게 중요한 장소면 왕국은 쉽게 손대지 못한다.
게다가, 교단이 중요하게 생각해 오가는 사제들이 많으면 왕국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으음. 말이 안 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그게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아?]
‘뭐, 적당히 커다란 동상 같은 거라도 만들면 되지 않겠어? 신성력도 좀 뿜뿜 해 주면 딱이겠네.’
진은 로메른이 화내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로메른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확실히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네. 뭘 만드느냐가 중요할 거 같긴 한데……. 만들 만한 게 있어.]
‘……있어?’
[어. 지금 성서에 각인시킬 페이지가 부족한 건 알지?]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메른의 말대로 성서는 거의 꽉 찬 상태였다.
원래라면 남아돌아야 정상인데, 반절이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짝퉁 세계수가 문제였다.
[와이파이처럼 성서도 연동할 수 있는 걸 만들면 되지 않겠어?]
‘성서의 자리도 확보한다?’
[그렇지. 어차피 여기엔 지하에 묻혀 있는 광물 때문에 에너지가 넘치잖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야.]
진이 대충 던진 아이디어에 로메른이 구체적인 계획을 덧붙였다.
[아예 책 모양으로 만드는 건 어때요? 교단의 상징으로 성서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요.]
[오. 그러면 더 느낌 있지. 거기다가 검성의 솜씨라면…….]
‘검성?’
[칼을 쓰는 것은 글씨를 쓰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네. 내가 명문으로 제법 유명했었지.]
‘그래?’
[예. 검성이 써 준 글귀가 비싼 값에 팔리고 했으니까요.]
[허허. 허명일세.]
대충 각이 보였다.
‘로메른. 내가 말한 거 가능할 거 같아?’
[가능하다 뿐이야? 더 재미난 것도 가능할 거 같은데?]
‘오오.’
[일단 땅부터 좀 알아봐 줘. 나머지는 우리가 준비할게.]
‘알겠어.’
관광 명소이자 성지 순례 필수 코스 만들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 * *
며칠 뒤, 밖으로 나온 진은 아이들을 찾았다. 한데, 용수바람을 제외한 아이들은 보이질 않았다.
“다들 어디 갔어?”
“정글러들에게 배움을 청하러 갔습니다. 주인님.”
“배움?”
“예. 사막 부족과 정글러들은 유사한 부분이 많아서 각 배움에 맞는 스승을 찾아갔습니다.”
“오. 그래?”
그렇다면 다른 아이들을 방해할 필요는 없었다.
“넌?”
“전 신녀님께 배움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정글러 중에 주술사에 가까운 이는 신녀뿐이다.
문제는, 신녀는 엄밀히 따지면 주술사가 아니었다.
“배울 게 있어?”
“주술이 아닌 상황을 보는 눈에 관해 배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건 배울 만했겠네.”
“예.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신녀는 자리를 비운거야?”
“주인님께서 나오시기 좀 전에 황급히 떠나셨습니다.”
“황급히?”
무슨 일이 생각나 싶었는데.
“(전 여기 있습니다. 신이시여.)”
단아한 모습의 소녀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
그녀를 본 용수바람은 왜 떠났는지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왜?”
“아닙니다.”
용수바람은 씩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대체 뭐야?
한데, 답은 가까운 곳에서 나왔다.
[머리를 빗고, 옷을 갈아입은 것 같네요. 진이 나올 줄 알고 있었던 거 같은데요?]
그 말에 진이 신녀를 빤히 바라보자, 신녀가 허둥거리며 입을 열었다.
“(단정한 모습으로 뵙는 게 맞는 거 같아서 잠시 단장을…….)”
어린 나이답지 않게 철두철미한 신녀가 이런 모습을 보여 주니, 그 모습이 또 색달랐다.
진은 피식 흘러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좀 같이 가야겠다.)”
“(예! 신이시여.)”
진은 그렇게 말한 뒤, 용수바람을 바라봤다.
“같이 갈래?”
“예. 주인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럼 날아가자.”
“예. 주인님.”
진은 곧장 용수바람에게 힘을 준뒤, 신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예! 신이시여!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그녀는 작은 손으로 진의 손을 꼭 붙잡았다.
곧이어 셋의 몸이 떠올랐다.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중립 마을과 정글러들의 마을 사이로 가자.”
“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셋의 몸은 하늘을 가르며 나아갔다. 신녀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환하게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왕국 쪽 사람들이 더 들어와도 되는 곳은 어디지?)”
“(중립 마을보다 더 안쪽으로 말씀이십니까?)”
“(그래. 위치를 정해 주면 그곳에 무언가 만들 생각이다. 그걸 만들어야 왕국 쪽에 녹아들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엔 사람이 오갈 수 있어야 합니까?)”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갈 수 있어야 하지만, 너무 안전한 곳은 안 된다. 정글러의 도움으로 안전히 오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럼, 저쪽은 어떠십니까?)”
그녀가 가리킨 곳은 정글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강이 있는 곳이었다. 위치 또한 마을과 마을 사이로 딱이었다.
“(정글의 강은 위험하지만, 저희 정글러들은 안전히 건널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쁘지 않군.)”
그때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진. 강 위에는 어때?]
‘강 위? 섬이라도 만들겠다는 거야?’
[아니. 말 그대로 강 위에 떠 있는 거지. 하늘에 떠 있는 정도는 되어야 신비롭지 않겠어?]
‘……완전 멋있겠는데?’
진은 곧장 신녀에게 물었다.
“(강 위는 어떠냐.)”
“(예?)”
“(강이 흐르는 허공에 만드는 것이다. 멀리서도 볼 수 있을 테고, 가까이서 보기 위해선 정글러들의 도움을 받아야겠지.)”
신녀의 머릿속에 그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의문은 이내 사라졌다.
신께 불가능은 없으니까.
“(좋은 거 같습니다.)”
“(며칠 걸릴 거 같은데, 구경이라도 할 테냐?)”
진의 말에 신녀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지루하고 별로 재미는 없을 것이다.)”
“(아닙니다. 신께서 하시는 대업을 옆에서 볼 수 있다면 크나큰 영광일 것입니다.)”
“(그래. 알겠다.)”
이내 셋은 강가로 내려왔다.
* * *
용수 바람과 신녀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진을 바라봤다.
자고로 이럴 때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 줘야, 부하들의 사기가 올라가는 법이다.
‘검성. 일단 내 의자부터 좀 만들어 줘.’
그러자 진의 뒤로 흙이 뭉치더니, 거대한 의자가 만들어졌다.
마치 왕좌처럼 보이는 멋들어진 의자.
진은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은 뒤, 신녀를 불렀다.
“(잡아라.)”
진은 손을 내밀었고, 신녀는 하늘을 날아올 때와 마찬가지로 꼬옥 손을 붙잡았다.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손을 놓지 마라.)”
“(예. 신이시여. 절대로 놓지 않겠나이다.)”
그녀의 대답과 함께, 진의 성서가 촤르륵 펴지기 시작하더니 짝퉁 세계수가 그려진 페이지가 나타났다.
진은 그곳에 나머지 한쪽 손을 성서 위로 올렸다.
짝퉁 세계수의 힘.
신녀의 힘.
이 두 가지가 있다면, 이 정글에서 진은 ‘이적’을 행사할 수 있다.
핵물질을 감싼 짝퉁 세계수 뿌리가 엄청난 힘을 끌어오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녀의 몸이 떨려 왔다. 그녀의 몸이 그 진동에 공명하며, 중계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힘을 로메른이 끌어당겼다.
[이 정도 힘이라니…… 이렇게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건 정글에서만 가능하긴 하지만 그래도 엄청난데? 힘의 크기만 놓고 따지면, 내 전성기 때 보다 더 큰 힘이야.]
극의 달한 흑마법사조차 가질 수 없었던 거대한 힘.
[허허. 내가 나설 차례군.]
그 힘을 땅의 정령인 검성이 사용하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강변에 있는 흙과 모래들이 땅 위로 떠오르더니, 곧이어 강 위로 날아가 뭉치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신녀는 나지막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야말로 신의 이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놀라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일단, 반죽부터!]
[물을 제가 끌어올게요!]
피의 정령인 루나가 물을 다루는 건, 가능하긴 해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피의 속성을 전부 분리해서, 그중에 물을 사용해야 한다.
한데, 엄청난 에너지가 이런 복잡한 과정을 무시할 수 있게 만들었다.
루나의 손에 강물이 일어나 흙과 섞이더니, 이내 반죽이 되기 시작했다.
[진님. 피 좀 빌려주세요!]
‘가져가.’
[조금만 가져갈게요!]
그 말과 함께, 진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와 반죽에 섞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반죽이 점점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검성! 책 모양 잡아! 아까 내가 보여 줬지?]
[걱정 말게. 다른 건 몰라도 눈은 내가 그대보다 좋으니.]
곧이어 그 반죽은 거대한 책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진의 성서와 똑같은 모양.
내용마저 그대로 옮겨 가기 시작했다. 물론, 옮겨 적힌 건 짝퉁 세계수뿐이었다.
[진! 성서 가져간다!]
‘어. 가져가.’
진의 한쪽 손에 있던, 성서가 곧이어 진의 손에서 빠져나와 강 위로 날아갔다.
로메른은 남아 있는 모든 에너지를 성서에 담았다. 그러자 성서에 담긴 에너지가 빛의 힘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신성력을 성서 조각상에 그대로 때려 박았다.
“(아름다워요.)”
낮인데도 불구하고, 신성력의 새하얀 빛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신성력이 강에 반사되어 주변으로 아름다운 빛을 뿜어냈다.
“(이제 시작일 뿐이야.)”
폼은 이럴 때 잡아야 한다.
“(……이게 시작일 뿐인가요?)”
진은 고개를 끄덕인 채, 눈앞을 바라봤다.
그녀는 깜짝 놀랐는지 아직도 잡고 있던 진의 손을 꼭 붙잡았다.
정글에 관광 명소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 * *
한편 교황청에서는 긴급회의가 소집되고 있었다.
“예비 성자가 보낸 편지를 모두 확인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모두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성지.”
“과연, 예비 성자라 할 만한 업적이지만…….”
“위치가 참으로 문제입니다.”
“그렇습니다. 왕국도 아닌, 정글러들의 영역이니. 이거 참 문제입니다.”
성지의 발견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었지만, 위치가 너무 좋지 않았다.
정글러들에게 성지 사용을 허가받으려면 교단은 어디와 접촉해야 할까?
“정글러들과 협상하기엔, 여러 가지 문제가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소수 민족들과의 접촉은 왕국에서 격렬한 반응을 보일 겁니다.”
예민하고 예민한 문제였다.
“일단, 성지를 확인하는 게 먼저 아니겠습니까?”
한 추기경의 말에 다른 추기경이 나섰다.
“이미 성지를 확인하기 위해, 사제를 파견했습니다. 하지만, 확인하지 않아도 그곳이 대단할 거란 건 모두 아실 겁니다. 그 말도 안 되는 신성력의 유동을 느끼셨을 테니까요.”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데도 느꼈을 정도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이리 급하게 회의가 벌어진 이유가 있었다.
“방법은 하나뿐이겠군요.”
그 방법이 뭔지는 모두 알고 있었다.
“왕국과 정글러들의 중재를 우리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진이 원하던 최상의 결과가 나왔다.
만약 진이 이 상황을 보고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 제일 귀찮은 건 짬 때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