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84화 (84/210)

084. 소녀는 기다렸다

신녀는 쓰러진 상황에도, 진을 통해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흐릿하고 그 존재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무엇인지는 느껴졌다.

거대한 나무.

그 나무는 신비로웠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나무.’

분명 나무가 느껴지는데, 이상하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세상에.’

그 나무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문자.

알 수 없는 내용.

무엇하나 읽을 순 없지만, 그 장엄함은 느낄 수 있었다.

지식이 주는 경이.

지식은 서로 연동되어 있었고,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심지어, 고정되고 낡은 지식도 아니었다. 지식과 정보가 실시간으로 수정되었다.

낡은 지식은 곧장 퇴출당하고, 곧이어 새로운 지식으로 채워졌다.

‘보여.’

나무의 존재를 꿰뚫고, 존재의 이름이 보였다.

그 이름은 바로, ‘위키 나무’.

‘위키 나무?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어…….’

그녀는 지금까지 많은 것을 훔쳐보았다. 한데, 이런 건 처음이었다.

위키 나무.

그 나무는 하나의 세계를 휘감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 무엇도 휘감고 있지 못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 모든 지식이 담겨 있지만, 계속 지식은 늘어나고 있었다.

모순된 정보가 계속 충돌한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봐 놓고도, 이게 뭔지 알 수 없었다.

‘모르겠어.’

그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정의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

그게 바로 '위키 나무'였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신의 힘.’

너무 경이롭기에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와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었다.

신.

그 존재를 보았을 때 지금과 비슷했다.

그러자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어째서 진 님에게서 이런 게 보이는 거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볼 수 있는 그녀에게 ‘호기심’은 낯선 감정이었다.

한데, 진을 향한 ‘호기심’이 용솟음쳤다.

‘알고 싶어. 보고 싶어.’

그런 그녀의 눈앞에 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남작가에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이.

병약하고 작은 소년.

그 소년은 하루하루 지식을 탐미하며 살아갔다.

‘저분은 진 님이 아니야.’

똑같이 생겼지만, 달랐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에는 보였다.

‘크윽!’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이 퍼졌다.

‘대체.’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장막 너머에 있는 진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결과 흐릿하게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쓰러져 있는 진.

그 진의 몸으로 무언가 들어오는 모습. 그 무언가에서 그녀는 진을 보았다.

‘저게 진 님이었어.’

저 육체의 원래 주인이 아닌.

중간에 들어와 육체를 차지한 존재가 바로 그녀가 본 ‘진’이었다.

‘이제야 알겠어.’

위키 나무란 말도 안 되는 존재를 사용하고, 인간의 몸에 들어와 인간 행세를 하는 진의 정체.

그 정체를 그녀가 깨달았다.

‘저분은 신이야.’

드높은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의 몸에 들어온 신.

그게 바로 그녀가 생각한 진의 정체였다.

‘날 구하러 오신 거야.’

평생을 기다렸다.

독에 취해 몽롱한 정신으로 하루하루 죽어 갔다.

많은 걸 보지만, 자신의 미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고독했다. 자신은 외톨이였다.

나갈 수도 없었고, 포기하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누군가 자신을 구해 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사람 중에 이곳에 들어와 자신을 구할 자는 없다는 걸.

그러니 초월적 존재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신이 나타나 자신을 구해 주길.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기도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지금, 그런 자신의 바람이 닿은 듯했다.

‘신께서 오셨어.’

신이 그녀를 찾아왔으니까.

* * *

한편, 진은 로메른이 치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와. 이건 좀 신기하네.]

‘뭐가?’

[신녀의 힘이 뭔지 알았어.]

‘오. 진짜?’

진의 물음에 로메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무슨 힘인데? 진짜로 신의 힘을 사용해서 꿰뚫어 본 건 아니지?’

[그럴 리가 있어? 애초에 땅 안에 있는 저 물질이 신이라는 것도 웃긴 거야.]

‘하긴 그건 그렇지. 그럼 어떻게 된 거야?’

[극의에 도달한 마법사들은 모두가 똑같은 걸 보게 돼. 진리의 도서관이란 건데…….]

왠지 설명이 길어질 거 같은 분위기였다.

‘간단하게 요점만 말해.’

[독을 환각제로 변환해서 각성상태를 만든 다음 강제로 진리의 도서관을 열어서 훔쳐본 거야.]

‘자, 잠깐만. 그게 가능한 거야? 마법사의 극의에 도달해야 가능한 거라며?’

[그러니까 신기하다고 한 거야. 자격이 되지 않으면 막대한 대가가 필요한데, 그걸 광물의 힘으로 대체했어.]

하긴, 다른 것도 아니고 핵이라면 엄청난 힘을 내뿜으니 불가능해 보이진 않았다.

‘이런 게 가능한 거야?’

[의도하고 만든 건 아닐 거야. 소가 뒷걸음치다가 이걸 발견한 뒤에 계량한 거겠지.]

‘세상에…….’

[게다가, 그녀가 마법사들처럼 지식을 원한 것도 아니고 그저 훔쳐보기만 했을 테니까.]

‘훔쳐본다고?’

[어. 아까 너를 보고 잘 아는 것처럼 말했잖아. 널 훔쳐본 거야.]

‘흠.’

이 진리의 도서관을 이용해 뭔가 대단한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미래를 보거나 할 수는 없는 거야?’

[있지. 근데 미래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해?]

‘갑자기 철학적인 질문인데?’

[철학은 무슨 그냥 사실을 말할 뿐이야. 진리의 도서관으로 예측한 미래를 보는 건, 혼선만 만들 뿐이야. 별로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아니야.]

‘불확실하다?’

[어. 괜한 선입견만 만들고, 변할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을 닫아 버릴 수도 있으니까.]

‘자세히 아네?’

로메른의 정보는 이상할 정도로 많았다. 그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진리의 도서관에 도달한 마법사들이 미래를 엿볼 생각을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러네.’

[내가 회귀하기 전엔 끔찍한 일이 많았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잡아 죽이고 했으니까.]

‘……미래에 범죄를 저지를 테니까?’

[어.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많은 부작용이 있었어. 그러다가 결국 미래를 보는 게 소용없다는 결론이 난 거고.]

그저 미래를 보면 개꿀일 것 같아 던진 질문이었는데,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가 오갈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아까 신녀가 했던 이야기는 신경 쓰지 마.]

덕분에, 여태 애써 꺼내지 않고 있던 주제가 튀어나왔다.

‘현자 이야기?’

거대한 문 뒤에 현자가 있고, 진이 그 열쇠라는 묘한 이야기.

[어.]

‘하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전혀 달라지긴 하지.’

다음 정령이 현자라는 뜻도 되지만, 반대로 현자가 적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내가 기억하는 현자는 뭔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녀석이었지만, 나쁜 놈은 아니었어.]

‘그래?’

[어.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친 녀석이니까.]

‘흐음. 뭐, 일단 넘어가자. 지금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래. 차라리 그게 낫겠네.]

어차피 현자가 소환되는 건 한참 뒤의 일이다. 지금 고민한다고 뭐가 해결될 상황은 아니었다.

진은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럼 그녀의 기술을 써먹을 방법은 없네?’

[뭐 그렇다고 아무 쓸모가 없는 건 아니야.]

‘방법이 있어?’

[그녀가 어떤 미래를 보느냐에 따라 다를 거 같긴 한데. 일단 치료부터 하고 확인해 보자.]

‘알겠어.’

그 말을 한 뒤, 로메른은 치료에 집중했다.

그녀를 치료한 방법은 전과 같았다.

짝퉁 세계수의 씨앗을 그녀의 몸에 심어서, 내부를 고치는 방법.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머리카락이 없다는 게 다르네.’

[그래서 내부에 더 많은 뿌리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어. 그만큼 치료도 빨라졌고.]

그녀의 머리는 풍성했기에, 머리카락까지 만들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아 그녀의 치료는 끝났다.

[깨운다.]

‘어. 알겠어.’

로메른이 그녀의 몸을 건드리자, 신녀가 깨어났다.

“(치료는 끝났습니다. 몸은 어떠십니까?)”

한데, 그녀의 반응이 이상했다.

선망의 눈빛을 담아 진을 바라봤다.

‘얜 또 왜 이래?’

* * *

그 후, 기묘한 상황이 이어졌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예, 예!)”

처음 선망의 눈빛을 담아 진을 바라본 후, 그녀는 진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마치, 그 행위 자체가 불경이라는 듯이.

“(혹 문제가 있으신 겁니까?)”

이상하게 생각한 진이 질문을 던지니.

“(전혀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완전히 이상한 반응.

진은 대충 감이 잡혔다.

‘그 진리의 도서관으로 과거도 훔쳐볼 수 있어?’

[음. 정보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좀 다르긴 할 텐데, 신녀가 그쪽에 특화됐으면 단편적인 정보를 봤을 수도 있어.]

‘아. 젠장.’

[설마…… 우리가 한 일들을 봤다고 생각하는 거야?]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 좋은 일 위주로 해왔지만, 구체적으로 따지면 ‘사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본 모습을 본 게 확실했다.

‘확인해 봐야 돼.’

비밀은 지켜져야 하는 법.

만약 알고 있다면, 입단속을 시켜야 한다. 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방법을 떠올렸다.

그녀에게 슬쩍 다가가 물었다.

“(너. 봤구나?)”

“(히, 히익!)”

그녀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조아리며 엎드렸다.

“(죄, 죄송합니다. 진 님이 너무 궁금해서 그만!)”

본 게 확실했다.

“(어디까지 봤지?)”

진의 날카로운 물음에 그녀가 벌벌 떨며 대답했다.

“(엄청난 지식이 적힌 거대한 나무. 위키 나무를 보았습니다.)”

“(……뭐?)”

위키 나무가 여기서 왜 나와!?

위키 나무는 진이 가장 좋아하던 사이트였다.

집단 지성으로 만드는 백과사전.

핸드폰으로 그곳을 둘러보는 게 나름의 취미라면 취미였다.

“(신의 나무를 훔쳐봐서 죄송합니다!)”

“(…….)”

진은 너무 놀라서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는데, 그녀는 그것을 오해했다.

“(거기에 적힌 것은 보았으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신이시여! 부디 자비를!)”

신?

이게 무슨…….

그때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짝퉁 세계수를 이야기 하는 거 같은데? 우리가 새겨 놓은 마법진을 본 모양이야.]

‘……뭐?’

이 친구는 또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제법 보는 눈이 있네. 눈이 있다면 신의 작품이나 다름없는 마법진으로 보였겠지. 신녀가 확실히 실력이 있어.]

[실제 성법도 섞여 있으니, 신성력을 느꼈을 수도 있겠네요.]

[각인은 내 검술로 했다는 것을 잊지 말게. 허허. 신의 경지에 달한 검술이라. 늙어도 칭찬은 기쁘구먼.]

정령들은 신이 나서 주접을 떨고 있었다. 여기서 진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누가 만든 마법진인데, 이런 반응은 당연하지!’

[고렇지!]

오해하게 내버려 두었다.

“(또 본 것은?)”

“(신께서 내려와 그 육체에 자리를 잡으시는 걸 보았습니다.)”

그 말에 로메른이 끼어들었다.

[저쪽에서 보는 건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지? 마법진으로 착각하고, 자신이 원하는 걸 본 증거야.]

로메른은 자신의 말이 증명됐다는 듯 말했지만, 진이 보기엔 아니었다.

신녀는 진이 육체에 들어온 순간을 본 것이다.

그럼 이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할까?

진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합격이다. 나의 아이야.)”

이런 개소리를 하며,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속으로 로메른을 불렀다.

‘로메른. 각인해 버려!’

[맡겨 둬!]

곧이어 진의 옆으로 성서가 떠오르더니, 그녀가 각인되기 시작했다.

“(넌 신의 대업에 함께하게 되었다.)”

“(하아아.)”

엄청난 고통이 느껴질 텐데도, 그녀는 행복한 표정으로 각인을 받아들였다.

그녀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의 품에 들어가는 걸 느꼈다.

물론, 누군가의 품은 아니었다.

그저 성서에 각인 될 뿐이었지만, 그녀는 그 속박이 너무 행복했다.

이제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렇게 각인이 끝났을 때.

“(전 당신의 신녀입니다.)”

그녀는 그 말을 하며 진의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

‘와. 이걸 믿네.’

[당연하지. 한평생 독에 취해 홀로 죽어가던 얘가 신을 만난 거야. 그것도 자길 치료해 주고, 함께해 주는 신을.]

‘……그런가.’

입맛이 묘하게 쓰긴 했지만, 앞으로 잘해 주면 되는 일이었다.

“(아이야.)”

“(예. 신이시여.)”

“(나의 물건을 밖으로 빼돌리는 자들을 찾아라.)”

“(예! 신이시여!)”

당연히 일은 짬 때려야 했다.

‘직접 찾는 거 너무 귀찮잖아.’

[와. 너는 지인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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