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83화 (83/210)

083. 거래

자신은 돈에 굴복한 게 아니다!

정글러는 그렇게 생각했다.

신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걱정도 됐고, 게다가 부족 회의를 하는 동안 마을에서 기다리게 하는 게 오히려 좋았다.

물론, 그건 그의 생각이었다.

‘돈이 답이라니까.’

[그렇지! 안 된다? 그건 골드가 부족했던 거지.]

‘역시 로메른이 뭘 좀 아네.’

진과 로메른이 보기엔, 골드에 넘어온 게 확실했다.

“(정글러들은 손님에게 박하지 않다! 부어라! 마셔라!)”

“(우리 정글러들은 손님을 환영한다!)”

뭐? 정글러들은 손님에게 박하지 않다고?

정글에 교역하는 상인들이 이 말을 들었다면 거품을 물었을 것이다.

[애초에 정글 부족들은 굉장히 폐쇄적이고, 손님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 이게 이상한 일이라니까.]

[하지만 영리한 이들일세. 결국 부족을 움직이는 건 골드. 그 골드를 거부하지 않았으니.]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천박하거나 모자란 건 아니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했을 뿐이다.

‘뭐, 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싫은 건 아니야. 덕분에 편하게 왔고, 이렇게 환영도 받았으니까.’

애초에 중립 마을을 들리지 않고 곧장 정글 부족 마을로 왔으면, 하늘에서 내려오기도 전에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음식을 먹으며 잠시 기다리고 있는 사이.

“(회의가 끝났다. 따라와라.)”

어느새 회의가 끝나고, 진을 데리러 왔다.

“다들 쉬고 있어. 금방 다녀올 테니까.”

“알겠습니다. 주인님.”

노바와 아이들에게 기다리라고 말한 뒤, 진은 정글러와 함께 거대한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이자다.)”

정글러들이 원형으로 둘러앉아 진을 바라봤다.

“(진 세인트다. 난 사제이며, 귀족이고, 정령사다.)”

진은 간단히 자신을 소개했다.

진의 소개에도 그들은 고개만 끄덕일 뿐, 놀라는 이들은 없었다.

[이미 진 네 정체가 뭔지는 확인했을 거야.]

‘이쪽도 나름대로 왕국 정보가 돌고 있나 보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상석에 앉아 있는 곰 같은 사내였다.

“(신병에 관해 알고 있다던데?)”

“(그렇다.)”

진의 대답에 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우리의 신과 신병에 관해서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는 말을 돌리지 않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봤으니까.)”

“(……뭐?)”

“(누군가 정글러들의 신물을 밖으로 빼돌리고 있다. 그것 때문에 밖에는 난리도 아니었어.)”

진의 말에 그의 표정이 더욱 싸늘하게 변했다.

“(너의 목적은 우리의 신병을 치료하는 게 아니구나.)”

“(당연하지. 애초에 너희는 신병에 걸려 죽어 가는 게 축복일 텐데, 치료받을 생각도 없잖아.)”

“(알면서도 신병을 치료해 주겠다고 접근한 것인가?)”

“(어. 신병 치료가 필요한 사람도 있지 않아? 내 제안이 매력적이니까 날 부른 거 아니야?)”

그렇다고 이들에게 신병 치료가 필요 없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걸 어떻게?)”

그가 깜짝 놀라 진에게 물었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그보다, 내 목적부터 말해 줄게.)”

“(좋다. 말해 봐라.)”

“(너희들의 신물이 왕국 쪽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게 내 목적이야.)”

“(신물을 밖으로 빼돌리는 범인을 찾겠다는 건가?)”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로 그거야.)”

곰같은 사내가 고민에 빠졌을 때, 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너희도 알고 있지? 누군가 신물을 빼돌리고 있다는 걸.)”

“(……의심은 하고 있으나, 확신하진 못하고 있다.)”

이쪽도 나름대로 의심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워낙 양이 많으니까. 확신하지 못한 거겠지.]

이를테면 ‘광산’이 이들에겐 신물이었다.

그곳에 있는 핵물질 전부가 신물의 일부니, 가져간다고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 거래를 했으면 해.)”

“(거래?)”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내가 이곳에 올 때 적당한 대가를 치렀듯이. 범인을 찾는 동안, 이 정글을 맘껏 누비게 해 주면 돼.)”

“(그 대신 ‘그분’을 치료를 해 주겠다는 말인가?)”

“(어. 그것도 선불로 치료부터 해줄게.)”

“(치료한 다음 움직이겠단 소린가?)”

“(어. 내가 이곳에 올 때도 난 골드 먼저 줬어. 그것과 똑같아.)”

그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 동의하나?)”

여기서 동의하지 않으면 자신이 범인이란 소린데 싫다고 할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없겠지.’

그런 진의 생각처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을 확인한 뒤 그가 진에게 물었다.

“(치료에 준비가 필요한가?)”

“(아니. 준비는 필요없어.)”

“(그럼, 바로 시작하지. 그분께는 내가 직접 안내해 주겠다.)”

“(좋지.)”

진은 그와 함께 움막에서 나왔다.

* * *

가마를 탄 진이 곰 같은 사내 뒤를 따랐다.

가는 동안 대화는 없었다. 그저 그는 길을 안내했고, 진은 뒤를 따를 뿐이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산 중턱.

그곳엔 거대한 움막이 하나 서 있었다.

“(저곳이다. 내가 안내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아직 도착하려면 꽤 남았는데, 그의 안내가 끝났다.

[여기서부터 방사능 시작이네.]

로메른의 말에 진이 눈을 발동하자, 녹색 연기가 스멀스멀 땅에서 뿜어지는 게 보였다.

“(알겠어. 여기부턴 우리끼리 갈게.)”

“(이유를 묻지 않는 건가?)”

“(대충 보여.)”

진의 말에 그가 진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소문대로인지 지켜보겠다.)”

그 말에 진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소문은 좋은 거밖에 없지 않아?’

[……뻔뻔하게 그걸 자기 입으로 말한다니.]

진은 곧장 아이들에게 말했다.

“용수. 최대한 빠르게 가자. 날아갈 거야.”

“예. 주인님.”

진이 성서에 손을 올린 채 용수바람에게 힘을 전해 주자, 곧이어 가마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출발하겠습니다.”

“어. 가자.”

진의 가마는 순식간에 하늘을 날아, 산 중턱에 있는 움막으로 날아갔다.

“(……하늘에서 날아왔다는 개소리가 진짜였군.)”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가 조용히 읊조렸다. 그는 진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돌려 정글 안으로 사라졌다.

‘와. 이거 뭐야. 미쳤는데?’

진은 하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탄식을 터트렸다.

‘이건 너무하잖아.’

산 아래쪽과는 달리 위에는 녹색 연기가 자욱했다.

[자세히 보면, 이게 어디서 나왔는지 보일 거야.]

로메른의 말대로 자세히 바라보니, 이 연기는 산의 땅 속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거야?’

아무리 봐도 이곳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방사능에 오염된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저쪽 봐 봐.]

로메른은 움막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어?’

신기하게도 움막쪽에는 연기가 옅어져 있었다.

[저러니까 살 수 있는 거야. 일단 들어가자.]

‘알겠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의 가마는 움막 근처에 도착했다.

“다들 기다리고 있어.”

“예. 주인님.”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한 뒤, 공장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아, 미친…….’

움막이 괜히 이곳에 설치된 게 아니었다. 움막 안 바닥에선 방사능이 줄기차게 뿜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뿜어진 방사능이 움막 안에 갇혀 있기에 움막 주위는 방사능이 옅어 보인 것이다.

[몸 걱정은 하지 마. 이미 조치 끝났으니까. 게다가, 이쪽도 나름대로 조치해 놓은 거 같은데?]

‘조치?’

[바닥에 금색 선 보이지? 저거 금이야. 독을 억제하는 방법은 이쪽도 알고 있었나 보네.]

그런 금색 선은 이상한 모양을 그리듯 곳곳에 깔려 있었다.

‘뭐야 이거? 마법진도 아닌거 같은데.’

[주술 계열이야. 독을 억제하고 변형해서 정순하게 만드는 거 같은데…….]

방사능을 변형해서 정순하게 만든다?

‘……미쳤네.’

그 발상을 진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 만나러 가보자고.]

진은 움막 내부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움막 가장 중앙에는 한 여인이 무릎을 꿇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너무 어리잖아.’

족장이 ‘그분’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이렇게 어릴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한창 뛰어놀 나이에 이딴 곳에 처박아 두는 게 말이 돼?’

그때.

“(상냥하시네요.)”

그 아이가 몽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신녀님.)”

진의 말에 그녀가 눈을 뜨며 말했다.

“(예. 진 님. 반갑습니다.)”

무언가에 취해 있는 듯 아이의 눈은 살짝 풀려 있었다.

“(당신의 곁에는 대단한 분들이 계시네요. 그 격이 너무 드높아 제 눈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요.)”

이게 무슨 소리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너희의 본모습을 본 건가?’

[격의 차이가 있으니까 못 봐.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보다 무늬만 신녀는 아닌 모양인데?]

‘그래?’

[어. 대화 좀 더 나눠 봐.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확인해 볼 테니까.]

‘알겠어.’

진은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에게 말했다.

“(제 정령들이 그렇게 느껴지셨나요?)”

“(저분들은 정령이란 범주로 묶을 수 있는 분이 아닌 거 같은데…… 죄송해요. 보이지 않아요.)”

로메른의 말대로 제대로 본 건 아닌 거것같았다.

“(제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알고 있어요. 절 치료하고, 그자들을 막으러 오신 거죠?)”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이미 진이 왜 왔는지 알고 있었다.

“(예. 맞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신께서 그 모습을 보여 주셨어요. 그저 바라면 알 수 있답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신녀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능력이었다.

“(대단하시네요.)”

“(진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 고작해야 보고 알 뿐, 행동하진 못하니까요.)”

그녀는 마치 진을 잘 안다는 듯 말했다.

“(절 잘 아시는 거 같습니다.)”

“(예. 진 님은 ‘열쇠’이시니까요.)”

“(열쇠요?)”

“(거대한 문이 있어요. 그 문을 열 수 있는 건, 열쇠인 진 님뿐이세요.)”

이게 대체 무슨 개소리지?

“(어. 그건 비유적 표현인가요?)”

“(전 보이는 걸 말씀드렸을 뿐이에요.)”

아 이래서 점쟁이들이란.

진은 질문을 바꿨다.

“(그럼 그 문 너머엔 뭐가 있는 겁니까?)”

“(원래라면 안 될 일이지만, 치료해 주러 오셨으니 괜찮을 거 같네요. 봐 드릴까요?)”

“(제 치료를 믿으십니까?)”

“(네. 진님이 절 치료해 주신 걸 이미 봤거든요.)”

“(그럼 봐 주시겠습니까?)”

“(조금만 뒤로 물러나 주시겠어요?)”

진은 고개를 끄덕인 뒤, 뒤로 두어걸음 물러섰다.

그녀는 다시 눈을 감고, 무언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미친.’

땅 아래에서 엄청난 방사능이 뿜어져 나오더니, 모조리 그녀에게 흡수되었다.

잠시 후, 그녀가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안광은 형광 녹색을 띠고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거대한 문.)”

그녀의 분위기, 목소리, 표정, 행동, 그 외 모든 것들이 아까와는 전혀 달랐다.

“(그 거대한 문 너머.)”

그녀는 코에서 한 줄기 코피가 흘러나왔다.

“(그곳엔.)”

코에서 흐르는 피의 양이 범상치 않았다. 점점 더 많은 양의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현자가 있다.)”

현자?!

그 양반이 여기서 왜 나와?!

그녀는 그 말을 한 뒤.

“커헉!”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마치 보면 안 될 것을 본 사람처럼, 그녀의 눈에선 피가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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