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82화 (82/210)

082. 친구를 환영한다

진이 먼저 살펴본 건, 리치 쪽이었다.

‘저거 바다의 지배자가 되라고 보냈더니…….’

그곳엔 상상도 못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뭐야. 왜 저런 상황이 펼쳐진 거야.’

진이 떨떠름하게 묻자, 로메른이 대답해 주었다.

[우리가 준 지팡이는 언데드의 지배력만 엄청나게 올려 주는 건 알고 있지?]

‘알지. 만들 때 옆에 있었는데.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이 언데드 지배력이랑 연관이 있다고?’

지배력이란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게다가 저 녀석이 특별한 언데드인 걸 생각해야지.]

‘특별한 언데드?’

[미모 후작의 동반자로 선택된 언데드잖아.]

‘그렇지.’

[계약만 해도 힘을 받는데, 동반자가 된 이상 영향을 받지 않겠어?]

‘……그때는 이런 이야기 없었잖아.’

[나야 몰랐지.]

로메른은 모른단 말을 당당히 했다.

[솔직히 악마랑 리치가 연애할 줄 내가 알았겠어? 알고 있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듣고 보니 그랬다.

애초에 리치와 악마의 사랑은 상정 외의 상황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이런 꼴이 펼쳐졌다는 거야?’

[그렇지 않을까?]

원래라면 확실히 대답하는 로메른이 이렇게 자신 없이 말하는 이유는 당연했다.

지금 펼쳐진 꼬락서니가 그만큼 믿을 수 없는 광경이기 때문이었다.

‘저걸 부럽다고 해야 하나.’

유령선의 선원들은 리치 주위에 잔뜩 몰려 있었다.

리치가 언데드들을 데리고 있는 건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뭔가 좀 달랐다.

<다들 안 떨어져!? 어디서 수작질이야!>

미모 후작이 이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유령선 선원들에게선 언데드 지배자에 대한 경이가 아닌, ‘사랑’의 감정이 느껴졌다.

달그락-. 달그락-.

안대를 쓴 해골이 리치에게 은근슬쩍 다가가자 미모 후작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애꾸 너! 내가 가까이 오지 말랬지!>

달그락-.

녀석은 시무룩한지 고개를 푹 숙이고 뒤로 물러섰다.

<대체! 당신은 왜 이렇게 매력적인 거예요!>

“그대를 만난 덕분이지.”

<그, 그런 입에 발린 소리 한다고 제가 좋아할 거 같아요!?>

“질투하는 모습도 아름답구려. 내 사랑은 그대만을 향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흐, 흥! 두고 보겠어요.>

뭐지.

이곳은 지옥인가……?

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바라봤다.

‘이놈은 바다의 지배자가 되라고 보냈더니. 하렘을 차리고 앉았네?’

[……나름대로 지배자는 지배자 아니야?]

‘인생 진짜. 커플들 다 죽었으면…….’

화끈한 해상 전투물을 보게 될 줄 알았는데, 이쪽은 로맨틱 코미디가 절찬 상영 중이었다.

<너희들 당장 안 떨어져!? 저번 주만 해도 얼굴도 없던 것들이 어디서 얼굴을 만들어 왔어!>

미모 후작은 유령선 위를 날고 있는 유령들에게 소리쳤다.

‘그러고 보니, 유령치곤 묘하게 이쁜 거 같은데?’

[……스스로 바꾼 거 같은데?]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리치는 연애질만 하고 있는 게 아니란 점이었다.

“또 왔군. 우리 함대에 복속되고 싶으면 당장 올라와라!”

<또, 또 늘었어! 그만 오라고! 우리 자기는 내 거야! 쳐다보지도 마!>

사랑에 빠진 언데드들이 리치의 함대에 알아서 복속되고 있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사랑이라더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적어도 바다는 사랑에 의해 변해 가고 있었다.

‘더러운 사랑. 커플들 다 죽어라!’

[허허. 자네가 그러니까 커플이 아닌걸세.]

‘아 검씨는 쫌!’

[허허허.]

검성은 오랜만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내가 더러워서 안 본다.’

아무튼 리치 쪽은 문제없이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

* * *

진은 곧장 ‘말릭’의 시점으로 넘어갔다.

이쪽은 그래도 예상하던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이거지.’

뭐, 그렇다고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지만.

‘오오. 싸운다, 싸워.’

박진감 넘치는 전투가 시작되고, 진이 즐거워했던 것도 잠시.

‘이 미친놈 진짜…….’

말릭이 싸우는 모습을 본 진은 깜짝 놀랐다.

발검술.

말릭이 검집에서 검을 빼는 순간, 적의 목이 떨어졌다.

녀석은 그 칼질은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는지 평온한 얼굴이었다.

[기본에 한해선 완숙을 넘어 체화됐다고 봐도 되겠군. 살해의 업을 타고났다더니 과연 기재로다.]

검성이 이런 말을 할 정도라면, 말릭은 실시간으로 빠르게 성장 중이란 뜻이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죽은 녀석의 몸이 녹아 없어지더니, 어떠한 액체가 말릭을 향해 날아왔다.

‘저게 저번에 말한 거야?’

[어. 보이지? 저 액체가 상대의 힘이야.]

‘진짜 지독한 마법이야.’

이 섬에는 악마가 만든 특수한 마법이 걸려 있었다. 누군가를 죽이면 그 힘을 흡수할 수 있는 끔찍한 마법.

[그런 마법이 악명 높은 범죄자들이 가득한 섬에 걸려 있는데, 이 꼴이 안 나는 게 이상한 거지.]

덕분에 죽고 죽이는 배틀로얄이 섬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서로서로 힘을 빼앗기 위해 스스럼없이 살인한다.

[진짜 이곳이야말로 지옥이지.]

로메른이 그렇게 말했지만, 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사람에 따라 다른 거 아니겠어?’

[뭐?]

‘말릭 이놈 봐 봐. 웃고 있어.’

진의 말대로 말릭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맞네. 이 녀석한텐 여기가 천국이겠네.]

‘뭐, 그래서 보낸 거긴 하지.’

[그렇지. 아무튼 이쪽은 무조건 막아야 돼.]

‘그놈 때문에?’

[어. 여기서 최후의 1인이 되는 녀석은 진짜 위험해. 동쪽 바다는 정말 끔찍하게 변할 거야.]

서로를 죽이고 죽여, 최후의 1인이 되어 죄수들의 모든 힘을 흡수한 괴물.

그 괴물을 막기 위해서 말릭을 보낸 것이다.

물론, 이 계획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만약에 말릭이 최후의 1인이 되도 괜찮은 거지?’

[걱정하지 마. 가면 쪽 봐 봐.]

로메른의 말대로 가면 쪽을 확인했다.

조금 전 말릭을 향해 날아왔던 액체는 말릭에게 흡수되지 않고, 가면에 흡수되고 있었다.

[그 힘은 고스란히 가면에 담길 거야.]

‘제대로 작동하는 거 맞지?’

[어. 맞아.]

‘후. 다행이네.’

[만약에 말릭이 죽으면, 저 가면에 담긴 힘이 일시에 터져서 괴물이 태어나는 걸 막을 테고.]

‘살아도 그 힘은 가면에 담겨 있을 테니, 우리가 회수할 수 있다?’

[그렇지!]

말릭이 살아 돌아오든, 배틀로얄을 하다가 죽든 어쨌든 진에게 이득인 상황이었다.

그때 검성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자네들이 검을 사용하지 않다보니 한 가지 간과한 거 같군.]

‘또 왜.’

[말릭이 수많은 전투를 한 경험은 사라지지 않을 터인데, 그건 괜찮은 겐가? 그대들이 검술에 이렇게 무지할 줄은…….]

이 양반이 누구를 빙다리 핫바지로 보시나.

‘로메른. 말해 줘. 우리의 완벽한 계획을.’

[후후. 영감탱이야, 우리가 그걸 몰랐겠냐?]

[……기억이라도 지울 셈인가?]

그런 멍청한 짓을 할 리가 없었다.

[가면에 성령이 담겨 있어. 노바와 아이들의 경험을 흡수하는 거 봤지? 그거랑 똑같아.]

[……솔직히 말하겠네. 자네들이 질리는구먼.]

검성은 그 말을 하곤 입을 다물었다.

‘이 아름다운 계획을 몰라보는 검성이 불쌍해.’

[불쌍해!]

[저, 저!]

검성이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지만, 그 모습은 오히려 진과 로메른을 즐겁게 만들 뿐이었다.

‘또 싸우는데?’

[오. 저 녀석 살인마로 유명한 녀석이야. 검성! 와서 설명 좀 해 줘. 우린 봐도 잘 몰라.]

[크, 크흠. 그대들이 부탁한다면 해설 정돈 해 주지. 한데, 팝콘인가 하는 이 과자 먹어도 되겠나?]

‘그럼, 해설 위원이신데.’

정글을 가는 길이 그리 심심하진 않았다.

* * *

정글.

왕국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지만, 사실상 통치를 받지 않는 구역.

정글을 불태워 개간하려고 하기도 했고, 정복한다고 주위 영주들이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기도 했지만, 이 계획들은 모조리 실패했다.

정글이란 독특한 생태계.

정글에 득실거리는 몬스터.

정글을 신성한 땅이라고 여기는 야만족까지.

이 모든 제약을 이겨 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 정글을 포기할 순 없었다. 정글에서만 나오는 광물과 약초 그리고 몬스터의 가죽은 정말 가치가 높았다.

인간의 욕심은 때때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법.

야만족들과 영주들은 나름의 합의점을 찾았고, ‘중립지대’를 만들었다.

이 중립지대에서 야만족들과 영주들의 거래가 이뤄지면서 작은 마을이 하나 생겨났다.

중립지대 유일한 마을, ‘하프’.

이곳에 독특한 손님이 방문했다.

“……저, 저게 뭐야!?”

이제는 보기도 힘든 손가마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가마꾼도 있잖아!?”

“세상에…….”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랐다. 잘 놀라지 않는 야만족들조차 입을 떡하니 벌린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데, 더 놀라운 건 그 가마가 땅에 내려온 다음이었다.

“저거 사막 부족 아니야?”

“그럼, 사막 부족이 하늘을 날아다닌 거야? 이게 무슨 개소리야?!”

놀랍게도 하늘을 날아 가마를 이고 온 이들은 사막에 사는 야만인 사막 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었다.

그때 한 남자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그,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저거 봐 봐. 저거!”

그가 가리킨 곳에는 작은 깃발들이 걸려 있었는데.

“교단 깃발이랑 감찰부 깃발? 거기다 귀족가 깃발 같은데? 저건 대체 어느 귀족가야?”

“어!? 깃발이 3개라고?”

“왜? 알아?”

“……들어 본 적 있어. 깃발을 3개 걸고 다니는 마차가 있다고.”

“그게 누군데?”

그 대답은 전혀 다른 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하늘에서 내려와 미안합니다. 전 진 세인트 남작이란 사람입니다.”

손가마를 타고 온 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진 세인트?”

“설마…… 그 예비 성자로 불린다는?!”

“뭐!?”

주위에서 뭐라 수군거리든 진은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자기가 할 말을 할 뿐이었다.

“잠깐만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시겠습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모두의 시선이 진에게 모였다.

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정글의 축복을 받은 정글러들이여. 그대들의 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내가 왔다.)”

왕국인들은 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야만인들은 달랐다.

“(네가 우리의 신병을 어떻게 알지?!)”

야만인 중 하나가 진에게 물었다. 진은 성서를 펴고, 짝퉁 세계수가 각인된 페이지에 손을 올린 뒤.

녹색 기운을 살짝 보여 줬다.

그러자, 야만인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네, 네가 그 힘을 어떻게!?)”

“(그것은 여기서 말할 수 없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이곳에 눈과 귀가 많다는 것을.)”

그는 진을 빤히 바라봤다.

진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믿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회의가 필요하다. 기다려라.)”

회의? 그딴 걸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진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그에게 던졌다.

그는 주머니를 받자마자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날 골드로 살 셈인가? 우리 정글러들에게 골드는 그저…….)”

“(50개.)”

“(우리는 위대한 정글…….)”

“(100개.)”

그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진에게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친구를 환영한다.)”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골드였다.

“(바로 출발하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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