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81화 (81/210)

081. 프로페서 진

초능력.

이 세상에 없는 힘.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진이 잘 알고 있는 힘.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지구에는 초능력 관련 콘텐츠가 넘쳐났다. 공부만 하던 진도 대충 알 정도로 말이다.

‘난 하늘을 날고 싶었는데.’

공부만 하던 시절.

진이 바라던 건 모든 것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었다.

자유를 향한 갈망.

그래서 진은 하늘을 날고 싶다고 생각했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하늘을 난다고 해결될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냥 하늘을 난다면 자유로워질 것 같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중2병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나 지금은 그때 그 생각은 꽤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나설 차례군.”

전통적인 초능력물에서는 언제나 모두를 이끌고 도와주는 ‘존재’가 등장한다.

“프로페서 진. 출동이다.”

[또 이상한 짓 하네. 하여간 가끔 보면 대체 뭔 생각하고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니까.]

로메른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지만, 진으로선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진은 성서를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진 님. 엘프들을 준비시켰습니다.”

세계수 밖에는 엘프들의 지도자인 플로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했어요. 플로나.”

진이 그녀에게 부탁한 건 간단했다.

특이한 힘을 각성한 엘프들을 모아 달라는 것. 진의 부탁대로 엘프들이 세계수 앞에 모여 있었다.

“플로나.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예. 어머니시여.”

“날 프로페서라고 소개해 줄래요?”

“예?”

플로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깜짝 놀라 진을 바라봤다.

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말아요.”

모르겠다는 얼굴의 그녀를 뒤로 하고, 진은 엘프들의 앞으로 나섰다.

진이 나오자마자, 엘프들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시여!”

장엄하고 엄숙한 모습이었지만, 진에겐 이제 익숙한 광경일 뿐이었다.

‘딱 좋네.’

진은 주위를 둘러보고 곧장 입을 열었다.

“이야기가 좀 길어질 테니, 다들 바닥에 앉으세요.”

너무 갑작스러워서일까 엘프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얼른요.”

진이 다시 한번 채근하자, 엘프들이 바닥에 앉았다.

진이 입을 열었다.

“모두 축하합니다. 이곳에 계신 여러분들은 조금 특별한 힘을 손에 넣었습니다.”

진의 말에 모여 있는 엘프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들이 여태 배웠던 것과는 그 궤가 다른 힘. 이 힘을 어머니의 나무께서 내려주신걸 확인한 셈이었다.

“이 힘은 여러분이 지금까지 다뤄 왔던 힘과는 조금 다를 겁니다. 마법처럼 지식을 쌓아 결과를 도출하는 힘도 아니며, 수련을 통해 극으로 나아가는 힘이 아닙니다. 그저 사용할 수 있을 뿐이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힘은 뭔가 이상했다.

마치 신체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지만, 이 힘을 어떻게 발동하냐고 묻는다면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니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신의 힘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진은 엘프들을 둘러보다가, 낯익은 엘프가 있어 앞으로 불러냈다.

“룬타. 앞으로 나와 보세요.”

수비대장인 룬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진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얼굴엔 존경심과 경의가 가득했다.

“이번에 생긴 힘은 무엇이죠?”

“이런 힘입니다.”

콰드드득.

묘한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그의 몸에 변화가 생겼다. 마치 바위처럼 그의 피부가 변화했다.

“어머니께서는 제게 모든 것을 막을 수 있는 단단함을 주셨습니다.”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클래식하네.’

이를테면 ‘석화’ 능력 정도 되는 힘이었다.

‘게다가 수비대장이 석화 능력을 얻었다면…… 어떤 능력이 생길지 결정하는 건 욕망이겠네.’

그가 평소에 간절히 원하던 ‘욕망’이 능력이 됐다는 뜻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자꾸 전문가라 그러기에 그냥 하는 소린가 했더니…….]

로메른은 깜짝 놀라 진에게 물었다.

‘그냥 딱 보면 딱 나오는 거 아니야?’

[……직관으로 이걸 도출해 냈다고?]

진은 대충 얼버무리자고 한 말이었는데, 녀석은 뭔가 오해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게 뭔데?’

[이건 똑똑한 건지, 멍청한 건지 진짜 모르겠네.]

[그냥 독특하신 분인 게 아닐까요?]

[허허. 그 말에 동의하네.]

진은 정령들의 대화를 애써 무시하며, 다시 룬타에게 집중했다.

“이 힘을 사용할 때 마나를 사용하나요?”

“아닙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 힘. 정말 이질적인 것 같지만, 이 능력은 일반적인 힘과는 다릅니다. 어머니의 나무께서 엘프들에게 준 축복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역시……!”

룬타는 감탄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대체 이 힘은 무엇으로 발동이 되는걸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진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켰다.

“그저 정신력으로 발동하는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죠.”

“정신력…….”

룬타는 곰곰이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잠시 후, 녀석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말씀을 듣고 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힘을 사용할 때마다…….”

룬타는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신력으로 발동되는 힘이라고? 정신력을 기운으로 변환한 거야? 아니, 이게 말이 되나?]

로메른은 룬타의 말을 들으며 계속 중얼거렸다. 녀석에겐 그게 중요하겠지만, 진에겐 아니다.

룬타가 이 힘이 정신력으로 발동되는 걸 납득하자마자 진은 다음으로 나아갔다.

“정신력을 사용해 활용하는 힘. 그럼 이 힘을 키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지 아시겠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배움을 청합니다! 어머니시여!”

그의 얼굴엔 존경이 듬뿍 묻어 있었다.

“정신력을 좌우하는 건 감정입니다. 강렬한 감정이 정신력을 강화하고 그 힘을 높여줄 겁니다.”

“어떤 감정이어도 상관없는 겁니까?”

진은 고개를 저었다.

“분노와 광기 같은 어두운 감정은 여러분을 좀먹을 겁니다. 그러니 행복한 감정을 다뤄야 합니다.”

“그래도 어두운 감정이 더 강렬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예. 일순 사용할 수 있는 힘은 어두운 감정 쪽이 더 클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잠깐일 뿐입니다. 어두운 감정은 우리를 파멸로 인도합니다.”

그는 진의 말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시여. 어머니의 가르침을 제가 사용해 봐도 되겠습니까?”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진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어머니시여! 저는 어머니를 만나 너무 행복합니다!”

“……예?”

“전 어머니를 믿으며, 따르고, 복종합니다!”

아니. 이 양반이 행복한 감정을 꺼내라고 했더니.

“믿습니다! 믿음이 곧 저의 행복! 어머니를 평생 모시겠습니다!”

진을 빤히 바라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무, 무섭잖아!’

짝퉁 세계수 덕에 근육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근육질이었다.

그런 근육질의 아저씨가 진을 보며 울면서 믿는다고 소리치면 무서운 게 당연했다.

“전 어머니를 믿습니다!”

대체 어떤 사고 과정을 거쳐야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믿음이! 날 강하게 한다!”

여기서 정석은 어린 시절 행복했던 인생을 떠올리는 것이었는데, 이런 끔찍한 선택을 하다니!

진은 그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한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콰드드드드득!

‘석화’ 능력은 고작해야 피부를 돌로 바꾸는 능력일 뿐이었는데, 주위에 흙과 돌들이 룬타의 몸 위에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머니시여! 믿습니다!”

이윽고 그는 2~3m는 되어 보이는 거대 골렘으로 변화했다.

[와. 너 이걸 유도한 거야?]

[세상에…….]

[허어. 그대는 정말이지…….]

정령들마저 깜짝 놀란 거 같았다. 물론, 지금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진이었다.

하지만 그걸 내색할 순 없었다.

“너의 믿음은 보답받았다.”

그저 모두 계획대로라는 듯 말할 수밖에.

“어머니시여!”

그는 감격한 듯 소리치고, 엘프들을 바라봤다.

“날 보라! 믿음이야말로, 힘이며! 진리고! 우리의 행복이다!”

룬타의 그 말에.

“우와아아아아!!”

“어머니시여!”

“믿음이 우리의 길이다!”

모든 엘프들이 광신도처럼 환호성을 지르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가 실시간으로 힘이 상승한 걸 확인했으니까.

룬타는 그 위에 기름을 뿌렸다.

“힘이 약한 녀석은 믿음이 부족한 거다! 믿어라! 그것이 답이다!”

“믿음! 믿음!”

“우린 해답을 찾았다!”

뭐야 이거 무서워.

진은 이 속마음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진. 이건 내가 졌다, 졌어. 와. 행복한 감정을 던져서 이걸 이렇게 유도할 거라곤…….]

[그대는 정령사가 아니었더라도 어떻게 성자가 됐을 거 같기도 하네요.]

[허어. 차라리 게으른 게 다행이구나!]

정령들은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 * *

엘프들의 영역엔 믿음 열풍이 불었다.

믿으면 힘이 상승하고, 믿으면 모두에 존경을 받는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신’도 아니었다. 그들의 마을을 지켜주고, 자신들을 안아 주는 ‘어머니의 나무’를 믿는 일이니 어렵지도 않았다.

‘엘프들 눈이 반쯤 돌아갔다니까.’

진은 필요한 능력을 지닌 엘프 몇몇을 성서에 등록한 뒤, 곧장 엘프의 영역을 벗어났다.

물론 엘프들의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지금 좀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다들 적응됐어?”

“예. 주인님.”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 풍경을 감상했다.

‘크. 이 맛을 여태 모르고 살았다니.’

시원한 바람.

멀리까지 한눈에 담기는 풍경.

진이 타고 있는 가마와 아이들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런 활용이 가능할 줄은 몰랐네.’

단순히 진이 초능력을 빌려오는 정도를 생각했는데, ‘용수바람’덕에 다양한 활용이 가능해졌다.

[나도 깜짝 놀랐어. 내가 말했지? 주술사는 꼭 챙겨야 한다니까.]

놀랍게도 엘프들만 초능력을 각성한 게 아니었다. ‘용수바람’은 인간 중 유일하게 초능력을 각성했다.

게다가 그 능력마저 끝내줬다.

‘초능력의 복사라니.’

[진짜 별의별 능력이 다 있다니까.]

용수바람은 초능력을 복사할 수 있었다. 심지어 복사하는 걸로 끝이 아니었다.

‘복사야 그렇다고 쳐도 초능력을 다른 아이들에게 나눠 줄 수 있다니…….’

[덕분에 정글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겠는데요?]

‘어.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겠어.’

어차피 워프 게이트는 지식의 해방이 감시하고 있을 테니 이용할 수 없다.

그럼 육로나 해로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게 하늘을 날아가는 것보다 빠를 리 없다.

‘게다가 들킬 염려도 없고.’

심지어 하늘로 가면 지식의 해방 쪽 정보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동 경로를 들킬 일도 없었다.

‘뭐, 좀 지루하긴 하지만.’

하늘 위에서 보는 풍경이 멋진 것도 잠깐이지, 슬슬 지루해지고 있었다.

[심심하면 성서나 다뤄 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좋으니까. 아 그렇다고 짝퉁 세계수의 힘은 손대지 말고.]

짝퉁 세계수에는 막대한 에너지가 담겨 있었지만, 그건 지식의 해방을 엿 먹이기 위해 사용되는 중이었다.

‘알겠어. 대신 짝퉁 세계수 기능은 써먹어도 되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짝퉁 세계수가 쓸모없는 건 아니었다.

[어. 써먹어도 돼.]

짝퉁 세계수는 힘만 대단한 게 아니었다.

진은 짝퉁 세계수가 그려진 페이지에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놀라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볼 때마다 경이롭다니까.’

세계수와 연결된 모든 이들이 보였다.

‘진짜 프로페서 진이네.’

세계수의 힘을 받은 수많은 엘프들은 여전히 ‘믿음’ 열풍에 휩싸여 있었고.

‘오. 이 양반들도 보이는 거야?’

머리에 숲이 심어진 귀족들의 모습도 실시간 CCTV로 살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진이 원하는 건 이들이 아니었다.

‘와. 멀리도 있네, 멀리도 있어.’

가장 멀리 있는 두 존재.

짝퉁 세계수로 만들어진 지팡이를 들고 있는 리치.

짝퉁 세계수가 재료로 포함된 가면을 쓰고 있는 말릭.

두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이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장르의 영화를 찍는 중이었다.

‘팝콘이 어딨더라.’

정글까지 가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을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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