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 해결을 부탁해
솔직히 말하자면, 진은 우라늄이니 핵이니 정확히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흔히 만화나 영화에서 보면, 핵과 관련된 건 연녹색 빛을 띠었으니 대충 짐작한 것이다.
‘그래도 상황이 완벽히 맞아떨어져.’
방사성 물질에 피폭당한 것을 독이라고 생각했다면 앞뒤가 딱 맞았다.
‘저 물건 알아?’
[당연히 알지. 저건 ‘성화(聖火)’라 불리는 물건이야.]
‘성화?’
성스러운 불이란 뜻이었는데, 돌멩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어. 애초에 여기서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저건 정글 깊숙한 곳에 사는 부족들의 신물이니까.]
‘……저게 신물이라고?’
핵물질을 숭상하는 부족이라니.
진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저건 가공된 거야. 저걸 뽑아낼 수 있는 광석이 있어. 그 광석을 정제하면 저게 나와.]
‘……저걸 정제한다고?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중독이 되는데?’
[저 중독을 막을 수 있는 몇 가지 금속이 있어. 보통 금을 사용해. 금으로 저걸 감싸면 뿜어져 나오는 독을 막을 수 있어.]
‘금?’
[성화를 어디에 담아서 가져왔는지 물어봐.]
진은 고개를 끄덕인 뒤, 소나에게 물었다.
“저 돌멩이를 처음 받았을 때, 혹시 금으로 만들어진 상자에 담겨 있었습니까?”
“어? 어떻게 아셨어요?”
그녀는 깜짝 놀라서 진에게 되물었다. 로메른의 예상대로였다.
[젠장. 확실한 거 같네.]
‘심각한 거야?’
[이게 성화라고 불린다고 했지? 왜 성화라고 불리는지 알아?]
진이 대답하지 않고 기다리니 녀석이 곧장 설명을 이어갔다.
[저 광석이 잔뜩 모인 광산 중앙에는 거대한 불이 피워져 있어.]
‘불?’
[광석이 일정량 이상 모이면, 거대한 불을 만들어 내. 더 정확히 말하면 불보다는 거대한 ‘에너지’지만.]
역시 진의 생각대로 이건 ‘핵물질’ 비슷한 무언가 같았다.
[여기까지는 괜찮아. 그다지 위험하지 않아. 그저 불을 뿜어낼 뿐이고, 광산에 들어간 놈은 죽기 마련이니까. 문제는 그 광석을 정제할 때 생겨.]
눈앞의 녹색 빛을 내는 돌멩이.
저 돌멩이가 바로 광석에서 정제해 만들어 낸 물건이었다.
진은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라면 이건 최종 병기나 마찬가지였다.
‘설마, 폭발물로 사용할 수 있는 거야?’
[그게 뭔 개소리야? 저걸 폭발물로 어떻게 사용해?]
‘어. 음. 무기화하는 거 아니야?’
한데, 로메른의 반응은 진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뭐 독으로 이용하냐 그런 말이야?]
‘아니. 혹시 저 돌멩이에 담긴 힘을 일시에 터트려서 거대한 폭발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너 어디 가서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 마. 진짜 될 거 같아서 무서우니까.]
‘그런거 아니지? 저게 폭발하고 나서, 땅에 수백 년간 독이 내려앉고 그런 지옥도가 펼쳐지는 거.’
[묘하게 구체적이네? 잠깐만, 진짜 될 거 같기도 한 거 같은데?]
녀석은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 입을 다물었는데, 진은 곧장 끼어들었다.
‘거기까지! 하지 마! 그런 끔찍한 생각!’
[아. 뭔가 떠오른 거 같았는데…….]
‘넣어 둬. 그런 끔찍한 물건이 이 세상에 왜 필요해?’
[하긴 그것도 그렇지. 애초에 저게 사용된 방향을 생각하면, 폭발물로 써먹는 건 좀 약하지.]
산넘어 산이었다.
폭탄으로 쓰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는데,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사용법이 있는 모양이었다.
‘대체 저걸 어떻게 사용했길래?’
[네가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용됐어. 일순 그 힘을 터트리는 게 아니라, 광석에서 에너지를 뽑아냈어.]
‘……뭐?’
그제야, 로메른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됐다.
[그렇게 뽑아낸 에너지를 마나로 가공해서 이 미친놈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막대한 마나가 있다면, 세상마저 바꿀 수 있다. 그게 ‘지식의 해방’ 손에 있다면?
[세계급 마법을 발동했어.]
‘세계급?’
[별로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그저 세계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마법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거 살벌하게 끔찍하잖아…….’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마법.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전염병이나 저주, 하다못해 운석을 떨어트렸다면 그때부터는 판타지가 아니라 아포칼립스 세상이 되는 것이다.
‘대처 방법은? 이런 큰일이 있었다면 대처 방법이 있었을 거 아니야.’
[몇 가지가 있긴 한데…… 아, 이게 벌써 나타날 줄은 몰랐어. 이게 벌써 나타나면 안 되는데.]
말이 길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은 별다른 방법이 없다?’
[미안.]
‘인생 진짜…….’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 * *
제일 먼저 할 일은 다른 게 아니었다. 돌멩이의 주인인 소나부터 설득해야 했다.
“소나님. 제 이야기를 잠깐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성자님.”
그녀는 잔뜩 기대한 얼굴로 진을 바라봤다.
이 광석에 관한 다른 정보를 알려 준다고 생각한 거 같은데, 미안하게도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물건은 세상을 멸망시키는 물건입니다.”
“……예?”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인지 그녀는 멍하니 되물었다.
“애초에 세상에 나와선 안 되는 물건입니다.”
“이게 무언지 알고 계신 건가요?”
“예.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이 물건에서 중요한 건 독이 아닙니다.”
“다른 용도란 말씀이세요?”
연구자라 그런지 이해가 빨랐다.
“그렇습니다. 셋째 공자는 이걸 어디서 얻었다고 했습니까?”
“오지를 여행하는 상인에게 구매했다고 들었어요.”
“그건 좀 이상하군요.”
“이상하다고요?”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어떤 광석을 특수하게 정제해야만 뽑아낼 수 있는 광물입니다. 게다가 금으로 만든 상자에 담겨 있다는 건, 여기서 뿜어지는 독을 막는 법을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아!”
그녀는 의문이 해결된 듯 감탄성을 터트렸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돌멩이를 가져온 셋째는 멀쩡한데, 자신만 독에 걸린 상황이다 보니 독이라고 확신하지 못한 것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걸 셋째 공자에게 전달한 겁니다. 셋째 공자께서 위험한 곳에 발을 담그고 있으신 거 같군요.”
“……그 아이가.”
그녀는 이런 쪽으로 생각도 해 보지 못했는지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셋째 공자는 야망이 큰 분이십니까?”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저 제가 보기엔 가문을 정말 사랑하는 아이일 뿐이니까요.”
“사랑이란 감정은 때때로 정말 위험합니다. 사랑하면 갖고 싶어지는 법이고, 집착하게 되는 법이니까요.”
그녀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렸다. 진은 곧장 결론을 이야기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셋째 공자에게 ‘지식의 해방’이 접촉한 것 같습니다. 이걸 연구해 주는 조건으로 아마 가주 자리를 약속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동생이 그럴 리 없다고 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녀가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눈과 귀가 없는 게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아니었다.
‘만약 그 아이가 가주가 되고 싶어서 움직였다면…….’
모든 상황이 설명된다.
“여기까지 확인했으니, 저는 이것을 공식적으로 보고할 책임이 있습니다. 아마 감찰부와 이단 심문관들이 쏟아져 들어올 겁니다.”
“그, 그건 안 돼요!”
가문에서 이 일을 정리하는 것과 외부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와 정리하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제가 해 볼게요. 저에게 시간을 주세요.”
“그럼, 전 제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제발, 제발 부탁드릴게요. 부탁만 들어주시면 무엇이든 해 드릴게요.”
그녀의 얼굴에선 간절함이 느껴졌다. 정치적인 이유나 가문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순수하게 동생을 위하는 누나의 마음이었다.
그 아름다운 마음을 보며, 진은 계산기를 때리고 있었다.
‘무엇이든 들어준다고?’
영약을 제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가문의 연구원이?
게다가 가장 좋은 점은 이게 아니었다.
‘나 대신 일해 주면 완전 고맙지.’
진이 할 일을 살포시 짬 때린다는 점이 너무나 좋았다.
감찰부와 교단에 보고한 뒤, 그들과 함께 백작가를 수색하는 일련의 과정은 완전 귀찮은 일이다.
[허어. 측은지심이 발동한 줄 알았더니. 이런 생각을 할 줄이야. 자네는 대체…….]
검성이 혀를 쯧쯧 찼지만, 진도지지 않고 곧장 말했다.
‘부끄러워서 그래 부끄러워서! 원래 남자들은 좋은 일 하고 아닌 척 하는 법이야!’
[아……. 이 늙은이가 눈치가 없었군. 흠. 선의로 행한 일은 자랑해도 되는 법이라네.]
꼰대 물리쳤다!
검성의 말을 들은 로메른과 루나가 웃음을 터트린 건 덤이었다.
“원래라면 절대 안 되는 일이지만, 소나 님이라면 믿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절대로 이 일을 정치적으로 사용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어요. 오빠나 아빠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시 게 철저하게 감시할게요.”
안전장치까지 마련했으니.
“알겠습니다. 전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다녀오세요.”
“감사합니다! 역시, 성자님이 최고예요!”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꾸벅 고개를 숙인 뒤,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진의 일을 대신 해 줄 동안, 진도 할 일이 있었다.
‘시간은 벌었으니까 이거 어떻게 할 건지 당장 계획을 세워.’
[알겠어. 다들 모여 봐.]
당연히 그 생각은 진이 하는 게 아니었다.
* * *
소나는 연구실에서 나오자마자 곧장 영주인 달란 백작을 만나 사정을 설명했다.
“……이런 일이 있었어요.”
“흐음.”
백작은 대답하지 않고, 한참을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제이를 불러와라!”
제이. 가문의 대공자.
그가 영주의 부름을 받았다.
“아버지. 절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네가 저번에 했던 말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었구나. 열등감에 휩싸여 한 말인 줄 알았더니…….”
“……예?”
“네가 했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를 소나가 하더구나.”
“소나가 말입니까?”
대공자가 깜짝 놀라 소나를 바라보자 그녀는 더 놀란 얼굴로 대공자를 보고 있었다.
“소나가 이번 일을 어찌…….”
소나는 특별한 아이였다.
가문 제일의 기재로 그야말로 ‘천재’란 단어가 어울리는 아이였다.
그런 그녀의 재능은 여자란 이유 하나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녀의 재능을 알지 못했다.
만약, 그녀에게 작은 욕심이라도 있었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졌겠지만 다행히 그녀는 ‘정치적’ 욕심이 없었다.
‘달라진 것인가?’
만약, 그녀가 욕심을 낸다면?
자신이 아무리 대공자이더라도 막을 수 있을까?
대공자에겐 셋째가 해결되니, 소나라는 새로운 문제가 나타난 꼴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생각일 뿐이었다.
“지금 그런 걸 생각하실 때가 아니에요. 전 셋째 때문에 나섰을 뿐이에요.”
그녀의 말에 대공자는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못난 놈.”
게다가 그런 그의 생각을 읽은 건 소나만이 아니었다. 백작이 꾸짖듯 그에게 말했다.
“이 일은 내부적으로 해결할 것이다. 안개를 움직인다.”
그리고 백작은 그 누구도 생각지도 못한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을 지휘하는 건 ‘소나’다.”
“……네?”
“예?! 그건 제가……!”
둘의 상반된 반응에 백작의 표정이 변했다.
“조용!”
그의 말에 둘은 입을 다물었다.
“왜? 셋째를 위한다더니 자신 없는 게냐? 내가 나서거나 제이가 나서면, 네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텐데?”
백작은 마치 도발하듯 그녀에게 말했다. 그는 소나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해 볼게요. 대신 이번뿐이에요.”
진이 뒤처리를 짬 때린 결과.
달란 백작가의 후계 구도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편, 연구실에 남은 진은 이 상황도 모르고 느긋하게 누워서 쉬고 있었다.
[발생 시점을 생각하면…….]
[그 발생 시점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아. 그렇네. 그럼 이 물질의 성질과 변화를…….]
[시기적으로 생각할 때 얼마나 많이 모았을지 예측해 봐야 해요.]
[그것보다는 적들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게…….]
진이 보기엔 정령들은 쓸데없는 토론을 주고받고 있었다.
‘잠깐, 다들 포인트를 잘못 잡고 있는 거 아니야?’
[뭐?]
‘결국, 그 세계급 마법이니 뭐니 하는 게 문제잖아?’
[……그게 그리 간단히 정리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뭐 그렇지.]
‘우리도 세계급 마법을 쓸 만큼 힘을 가지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
어차피 사전에 막는 게 답이 못이지 않는다면, 카운터를 칠 수 있으면 될 일이었다.
[어떻게?]
‘예를 들면…….’
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충 떠오르는 것을 던졌다.
‘내가 저걸 먹으면? 슈퍼 파워가 생기지 않으려나?’
방사능 물질을 먹으면 슈퍼 파워가 생기는 건, 국룰이었다.
한데, 로메른의 반응은 냉정했다.
[……넌 닥치고 있어.]
당연히, 정령들의 토론엔 도움이 되지 않았…….
[아니. 잠깐만요. 아예 쓸모없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아요? 발상은 나쁘지 않은데요?]
어? 선생님.
그냥 던져 본 말인데요?
[아예 관점을 바꿔 봐요.]
뭔가 새로운 일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