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77화 (77/210)

077. 이게 왜 여기서 나와

진의 영지로 귀족들의 방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조금 놀라운 점은 ‘남자’만 온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잘 부탁드려요.”

면사포 혹은 가면을 쓴 여성분들이 종종 방문했다.

‘탈모는 남성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네…….’

탈모는 남자의 병이라고 생각한 건 선입견이었다.

남자들만큼 심한 상태는 아니지만, 탈모로 고민하는 여성들도 많았다.

그중엔 특이 케이스도 있었다.

[어? 이 사람은 탈모가 아니라 독에 중독된 거 같은데?]

[상태를 보니까 확실해요. 독에 중독돼서 머리의 모근이 죽은 게 확실해요. 정말 끔찍한 독이네요. 신체 전체가 뒤틀렸어요.]

머리 대부분이 빠진 한 여성은 독에 중독된 상태였다.

탈모의 원인이 하나는 아닐 줄 알았지만, 독까지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곳에 오시는 분들은 모두 찰스 백작님의 보증을 받으셨기에, 전 신분을 물어보지 않습니다.”

뭐, 이미 머리에 숲이 심어진 이상 그의 신분을 알아내는 게 어렵지 않기도 하지만.

아무튼, 독이란 특수 상황이니 신분을 확인해야 했다.

“한데, 지금은 여쭤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누구십니까?”

진의 물음에 그녀는 진을 빤히 바라봤다. 가면 속에 있는 눈동자가 반짝였다.

“제 신분을 알아야 하는 이유부터 듣고 싶어요.”

그녀는 이유를 먼저 물었다.

반응을 보니 적대적이거나 불쾌해 보이지는 않았다.

“탈모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한데, 환자분의 경우는 보통의 이유와는 궤가 다릅니다.”

진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독인가요?”

그녀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알고 계셨습니까?”

진이 멍하니 되묻자 그녀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제가 누군지 모르시는 모양이네요.”

“예?”

“아니에요. 그럼, 제가 누군지부터 설명해 드릴게요. 달란 백작가의 장녀 ‘달란 소나’입니다.”

그 말에 먼저 반응한 건 로메른이었다.

[어!? 달란 백작가? 거기 독이랑 영약 제조로 유명한 곳이잖아.]

[맞아요. 그런데 달란 백작가에 여식이 있었나요? 못 들어봤어요.]

[허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일세.]

‘대체 얼마나 유명하길래 딸이 있는지 없는지 알 정도야?’

[독이란 분야만 한정하면 흑마법사들보다 위에 있는 가문이야. 게다가 영약 제조 기술을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가문 중에 하나기도 하고.]

생각보다 유명한 가문인 거 같았다.

“달란 백작가라면 독으로 유명한 가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맞아요.”

독으로 유명한 가문에서 독에 중독된 사람이 나왔다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혹시, 독을 연구하다가 중독되신 겁니까?”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머리가 급격하게 빠지게 된 건 최근이지만 그전에도 머리가 빠졌었거든요.”

“급격하게 빠지게 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입니까?”

“새로운 연구를 시작한 다음부터예요. 가문의 비법을 통해 일차적으로 치료하고, 교단의 치료까지 받아서 독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짐작은 하셨던 모양이군요.”

아까 평온했던 얼굴을 생각해 보면, 그녀는 미리 짐작하고 있던 게 확실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어요. 그만큼 지금 연구하는 물건이 특이해서요.”

대체 어떤 물건이길래?

그런 의문이 떠올랐지만, 그 의문을 해결하는 건 좀 뒤로 미뤘다.

“몸 상태를 제대로 확인해 보고 싶은데, 잠시 괜찮겠습니까?”

“예. 부탁드려요.”

진은 곧장 로메른을 불렀다.

‘어떻게 된 거야. 교단에서 치료를 받았다는데?’

[아까 말씀드렸듯 신체의 근본이 뒤틀렸어요. 교단 쪽에서도 추기경급은 돼야 알아차렸을 거예요.]

은밀하고 치명적인 독.

‘로메른. 이거 무슨 독인지 알겠어?’

[모르겠어. 뭔가 쌓인 걸 보면 독인 게 확실한데, 정확히는 모르겠네.]

로메른이 모를 정도의 물건.

그녀가 연구하는 물건이 뭘지 더 궁금해졌다.

“신체 전반이 뒤틀렸습니다. 독이라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입니다.”

“그런가요? 제 몸 상태에 관해서 자세히 적어 주실 수 있을까요? 독을 연구하는 데 꼭 참고하고 싶어요.”

이 와중에 탐구심을 불태우는 건 진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연구자라면 저래야지. 탐구심도 있고, 열정도 있는데 왜 이름을 못 들어봤지? 이상하네.]

놀랍게도 로메른은 그녀의 태도를 높이 샀다.

물론, 진은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저들만의 세계였다.

“예. 적어 드리겠습니다. 그보다 지금은 몸에 집중하겠습니다. 소나 님은 지금 위험한 상태입니다.”

진의 심각한 표정에 그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

“연구한 기간과 몇 가지를 조합해서 생각하면 이 독이 주는 피해는…….”

그녀는 홀린 듯 종이에 수식과 데이터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피를 토해도 난 하나의 수식을 남긴다. 죽어도 내 책상에 앉아 펜을 든 채 죽을 것이다. 이 말에 딱 맞네. 요즘 애들 같질 않네.]

[허허. 자네 마음에 쏙 든 모양이군. 후학들의 저런 모습이 우리의 식은 열정을 뜨겁게 만드는 법이지.]

그 모습을 본 두 꼰대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인생 진짜…….’

여기서 나만 정상인이야!?

그런 거야!?

* * *

그녀의 몸을 치료하는 건 금방 되지 않았다. 몸 전체가 뒤틀려서 나름대로 대공사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덕분에, 다른 이들이 탈모 치료를 받는 동안 그녀는 침대 위에 누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가 멍하니 시간을 보낸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 독은 신체의 근원을 파괴하고 뒤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는 거네요.”

자신의 몸 데이터를 쌓아 가며 연구 자료를 차곡차곡 모으고 있었다.

그녀의 연구에 관한 집착은 정말이지 질릴 정도였다.

그것과는 별개로, 그녀의 치료는 진에게도 꽤 도움이 되고 있었다.

“신체 전부가 문제가 생긴 거기 때문에 조금 과격한 치료가 될 수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괜찮아요. 말씀해 주신 내용만 봐도 이게 얼마나 지독한 독인지 제가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녀가 허락한 다음, 처음으로 두피라는 영역을 넘어 더 안쪽으로 나아갔다.

[머리에 심은 뿌리를 이용해서 몸을 강제로 복원시킬 거야.]

뿌리는 그저 두피에만 있지 않고, 몸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나중에 그녀 몸을 해부하면 몸 안에 뿌리가 가득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무슨 끔찍한 생각을 하는 거야. 그저 혈관에 섞여 있는 정도야. 색깔까지 바꿀 거니까 애초에 걸릴 일도 없어.]

로메른은 나름의 방법을 생각해 놓은 상태였다.

“몸 전체가 마취된 건, 마취 독을 연구할 때 외에는 처음이에요.”

며칠간이나 이어진 치료였지만, 그녀는 생각 외로 즐겁게 치료를 받았다.

‘뭐, 모르는 게 약이란 거지.’

[오. 딱 맞는 말이네.]

온몸에 뿌리가 퍼지고 있다는 걸 모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지. 오히려 알면 더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럴지도.]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모든 탈모 치료가 끝난 건 물론이고.

“몸은 어때요? 이질적으로 느껴지거나 하는 곳 있어요?”

“아니요. 정말 상쾌해요. 원래 아프던 목이랑 허리까지 시원한 거 같아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누가 치료했는데 당연한 일이지.]

[맞는 말이에요.]

최고의 흑마법사와 성녀가 치료한 몸인데, 어딘가 문제 있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모르면 알려 줘야 하는 법.

“혹시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하셔도 괜찮아요. 제 목숨을 구해 주셨잖아요.”

그녀는 염치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진이 부탁하기도 전에 흔쾌히 허락했다.

“앞으로도 계속 연구를 이어가실 생각이십니까?”

“증상을 알았으니 예방대책을 세우고 다시 연구에 들어갈 생각이에요.”

“위험할 겁니다.”

“독을 연구하는 건 언제나 위험을 동반해요. 이번엔 머리가 안 빠졌으면 좋겠네요. 머리가 빠지는 건 정말 충격이었거든요.”

그녀는 그 말을 하고 배시시 웃었다.

“제가 도움을 드리면 어떻습니까?”

“……예?”

“어떤 물건에서 그런 독이 뿜어져 나오는 건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진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설마 거절인가?’

한데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 그건 제가 너무 죄송한 일이에요. 이미 제 생명을 구해 주셨는데, 연구까지 도와주신다니…….”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귀족답지 않게 진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있었다.

‘이게 무슨.’

[천생 연구원이네.]

그게 뭔데 이 연구쟁이들아! 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이 기회를 놓칠 필요 없었다.

“괜찮습니다. 절 소나님의 연구실에 초대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정말 감사해요.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 * *

달란 백작가까지 가는 길은 그리 심심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물어볼 게 정말 많았다.

“그 물건은 어떻게 얻게 되신 겁니까?”

“셋째가 찾아온 물건이에요.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이었는데, 고맙게도 제게 연구를 부탁했어요.”

그녀가 한 가지 정보를 풀면, 회귀자 정령들이 정보를 추가해 주었다.

[달란 백작가의 가문을 계승한 게 셋째일걸?]

[맞아요. 장자 계승을 따르는 달란 백작가에서 셋째가 가주가 돼서 중앙 정계가 시끄러웠던 게 기억나요.]

[난 그자를 만나 본 적이 있었다네. 총명하나 영악하고, 주제를 알지만, 욕망이 가득한 이였지.]

장자계승인 가문에서 가주가 된 셋째. 벌써부터 구린 냄새가 풀풀 풍겼다.

“신기한 물건인데도 연구를 넘기다니 우애가 좋으신 모양입니다.”

“예. 예전과 같진 않지만, 역시 착한 아이예요. 저라면 동생들에게 연구를 넘기진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같이 연구하고 있어요.”

이런 그녀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로메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셋째 녀석, 머리가 좋은데? 장녀와 공동연구를 진행하면 장남이 개입할 수 없을 테니까. 나쁘지 않은 전략이야.]

[그렇네요. 그녀의 몸 상태를 보면 곧 죽었을 테니, 연구 자료도 온전히 그의 차지가 되었겠죠.]

요약하자면 그녀는 셋째에게 이용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썩은 냄새가 벌써 풀풀 풍기는 거 같네.’

가주가 되는 셋째.

갑자기 등장한 연구 재료.

위화감이 잔뜩 느껴졌다.

‘만약 지식의 해방과 이미 접촉 중이라면?’

어디서 연구 재료가 왔는지, 어떻게 가주가 될 수 있었는지 모든 의문이 해소된다.

“정말 어떤 물건일지 기대가 되네요.”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전 이런 독은 정말 처음이었거든요.”

대체 어떤 물건일지 정말 기대됐다. 이 기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해소됐다.

며칠 뒤.

그녀와 함께 달란 백작가의 영역에 들어왔다. 그녀의 연구소는 영지 외곽에 마치 격리된 것 같은 장소에 있었다.

“들어오세요.”

귀족이라면 일단 가문에 들러 인사부터 하는 게 먼저였는데, 그녀는 연구할 생각에 신나서 진을 안쪽으로 이끌었다.

‘확실히 귀족이랑은 거리가 머네.’

내부는 겉모습과는 달리 조금 놀라웠다.

사방에 항독 마법진이 잔뜩 새겨져 있었다.

‘저거 가격만 해도 얼마야.’

[오. 삼중 구조로 알차게 짰는데?]

‘대단한 거야?’

[대단하기보다는 비싼 거야.]

그래도 독을 다루는 연구소라고 대비는 철저하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그녀가 뭘 연구하는지 볼 수 있었다.

“이거에요.”

그걸 본 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고, 자기도 모르게 두어 걸음 물러섰다.

‘미친…….’

미쳤다. 저걸 여기서 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애초에 저건 독이 아니었다.

“돌멩이에서 독이 뿜어진다는 건 전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어요.”

돌멩이에서 뿜어지는 독.

애초에 저건 독이 아니었다.

‘연녹색 돌멩이.’

지구에서 저렇게 생긴 돌멩이를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 돌멩이도 독을 뿜어낸다.

‘……우라늄?’

방사능을 뿜어내는 돌멩이.

그녀는 독에 당한 게 아니다.

‘피폭된 거네.’

방사능에 피폭됐을 뿐이었다.

[미친. 저게 여기 왜 있어!?]

놀란 건 진만이 아니었다.

[저 끔찍한 물건이 여기 왜 있냐고!]

로메른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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