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75화 (75/210)

075. 드루와

‘명예 감찰 대장’의 권한.

여태껏 한 번도 써먹어 보지 않아서 그 진짜 힘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직접 사용해 보니 권한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이게 감찰부의 힘이야. 이러니까 국왕이 너한테 승작이 의미 없다고 생각한 거야.]

로메른의 말대로 감찰부의 권한은 정말이지 엄청났다.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면 됐다.

수색하고 싶으면 들쑤시면 된다.

진이 아무리 깽판을 쳐도, 덤비는 녀석들은 없었다.

오히려 진과 얽히지 않으려고 녀석들은 최선을 다해 협조했다.

‘상황에 따른 즉결 심판마저 가능하다니…….’

수사 대상이 귀족일 경우엔 신경을 써야 하지만, 평민 쪽은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선조치 후보고’ 해도 문제없었다.

그 덕분에 빠른 속도로 수금을 할 수 있었다.

‘이거지!’

산더미처럼 쌓인 골드와 보석들.

이걸 옮기는 것도 일이었는데, 그건 전혀 문제없었다.

“가져가세요.”

“……세상에.”

괴도 세인트를 통해서 집으로 보내면 끝이었다.

물론,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것을 내어줄 순 없다!”

“지식의 해방을 위해!”

순식간에 여러 곳이 털리자, 막바지에는 녀석들이 날뛰거나 공격을 하는 일도 있었는데.

“처리해.”

“나 처리한다!”

노바와 아이들에 의해 추풍낙엽처럼 쓸려 나갔다.

오히려 진의 수사가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며칠간 수금을 하러 다닌 결과.

촤르륵. 촤르륵.

만화에서나 보던 골드 속에서 수영하기가 가능해졌다.

진의 팔이 골드를 가르며 골드 속을 헤엄쳤다.

‘미쳤다, 미쳤어!’

이 짜릿함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얼마나 짜릿한지, 마치 몸이 욱신욱신한 기분…….

[그거 기분 탓 아니야. 어떤 미친놈이 골드 속을 헤엄쳐! 당연히 몸이 욱신거리지!]

만화는 만화일 뿐이었다.

이 딱딱한 골드를 헤엄치는데 몸이 멀쩡할 리 없었다.

진은 조용히 골드 속에서 나왔다.

‘좋아. 이제 1단계는 완성이지?’

[뻘쭘하긴 한가 봐? 딴소리하는 거 보니까.]

‘……뭔 소리야?’

모른 척 넘어가면 될 것을 굳이 지적한 로메른이었다.

녀석의 마수에서 구해 준 건 루나였다.

[예. 골드는 이제 충분할 거 같아요.]

[하긴 이 정도면 골드로 할 수 있는 일 대부분은 가능하지.]

루나 덕에 화제는 자연스럽게 2단계로 넘어왔다.

‘그렇지? 그럼 2단계 시작할까?’

이 계획은 정령들이 세운 계획이 아니었다. 계획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건 ‘진’이었다.

[난 찬성일세. 진 그대는 역시 선인이었어. 이 계획에 한해서 난 적극적으로 그대를 돕겠네.]

검성이 이런 말을 할 정도로 2단계 계획은 정말 아름다운 계획이었다.

‘그럼 시작한다.’

수금이 끝났으면 이제 돈을 쓸 차례다.

* * *

왕국의 모든 도시에 벽보가 붙었다. 지식의 해방이 벽보를 붙였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이번에 벽보를 붙인 건 ‘교단’이었다.

“허어. 저건 대체…….”

벽보에 적힌 내용을 요약하면 간단했다.

<지식의 해방을 찾아가려고 했다면, 교단을 먼저 찾아와라. 우리가 해결해 주겠다. 금지된 지식이 아닌 정당한 힘으로.>

사람들은 벽보를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저게 무슨 말이야?”

“어려움이 있으면 교단으로 찾아오란 소린가?”

“지식의 해방인지 뭔지 가지 말고 교단을 찾아오라는 거 같은데?”

“아무렴. 정체조차 모를 지식의 해방 따위를 찾아가느니, 교단을 찾아가는 게 맞지!”

주민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부패하거나 타락한 사제들이 없는 교단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수군거리며 그냥 지켜보다 지나가는 이들도 있었지만, 뚫어져라 벽보를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교단이라면…….”

원한, 욕망, 분노, 절망.

강한 감정을 가지고, 지식의 해방을 찾아 가려고 했던 이들.

그들이 하나둘 교단을 향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찾아온 이들은 ‘생존’이 문제인 이들이었다.

당장 먹을 게 없으며, 살아가기 힘든 이들. 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이들.

그런 이들이 교단으로 밀려 들어왔다.

원래라면 재정 문제 때문에라도 이들을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지금은 그런 게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여러분들을 고용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도움을 요청할 테니, 그 안내를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교단에서는 단순히 그들에게 골드나 식량을 주고 보내지 않았다. 앞으로 일하며 먹고살 수 있도록 일자리를 내주었다.

“그 이후에도 일거리는 계속해서 드릴 테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게다가 그 일자리는 단기 일자리가 아니었다. 장기적으로 사람들을 고용해 도와줄 생각이었다.

여기엔 막대한 골드가 투입되어야 하지만 그다지 문제될 게 없었다.

“성자님께서 너무도 많은 이들을 구하시는구나.”

진에겐 수금한 골드가 있었다.

이 정도론 티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효과 또한 나타났다.

교단의 이런 정책이 진이 한 일임을 아는 귀족들은 가만히 있질 못했다.

괜히 가만히 있다가 지식의 해방이라고 낙인이 찍히면 골치가 아파진다.

“교단에서 저희 영지민을 위해 좋은 일을 해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이 기부금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갑작스레 기부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진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 정책이 유지되는 데 영주님의 도움이 있었다는 걸 영지민들에게 알리겠습니다.”

협찬을 받았으면 광고를 해 줘야 하는 법.

“허허. 그렇게 많은 금액도 아닌데…….”

덕분에 영주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돌아갔다.

물론, 이렇게 말이라도 통하는 영주들만 있지는 않았다.

중앙의 귀족들은 그나마 말이 통하고, 상황을 읽을 줄 아는 눈을 갖고 있었다. 의외로 더 큰 권력을 지니고 있는 중앙의 귀족들은 대놓고 선을 넘는 경우가 없었다.

한데, 외곽에 있는 쥐꼬리만 한 권력을 가진 귀족들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미친놈들이었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영지에 있는 교단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넘어온 사건들.

진은 그 사건들을 보며 혈압이 높아지다 못해 터질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

‘초야권?! 초-야권!?’

[진짜 미친놈인데? 피해자만 50명이 넘어.]

초야권이란 미개한 법이 폐지된 지 벌써 1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한데, 시골 도시에선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다.

‘피해자만 50명이면 신랑이랑 그 가족까지 생각하면 최소한 수백 명이 원한을 가지고 있겠네.’

정말 신기한 점은 이렇게 문제가 있는 곳은 난리가 나는 장소란 점이었다.

[어. 여기선 몬스터 습격으로 쑥대밭이 된 곳인데?]

안 봐도 뻔한 이야기였다.

원한이 쌓인 이들이 지식의 해방에 들어가서 몬스터 습격이 일어났을 것이다.

‘이게 어떻게 아직도 소문이 안 났을까?’

지방에 있는 작은 영지라?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 철저하게 은폐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이것과 비슷한 걸 최근에 본 적이 있었다.

도시급 노예 시설이 있는데도 소문이 나지 않은 후작가와 똑같았다.

‘여긴 감찰부 보내자. 아무리 귀족이라고 해도 초야권 행사는 선 넘었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곳은 중세시대나 마찬가지였기에, 원래라면 심한 처벌까지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지식의 해방이 얽힌 것 같다면 어떻게 될까?

‘영주직 몰수되고 영지민들의 원한이 풀리겠지.’

이런 방식으로 제자리에 앉아서 문제들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갔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이게 진짜 효과가 있네…….]

[허어. 로메른 그대가 한 이야기를 이제 이해했네. 진은 게으른 게 아니라 부지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능한 거였군.]

[내가 말했지? 진 이 녀석, 그냥 게으른 게 아니야. 유능하게 게을러.]

[과연 그렇군. 일을 찾아가서 해결하는 게 아니라. 찾아오게 만들다니. 과연 이러면 게을러도 이해할 수밖에.]

대체 저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칭찬인지 욕하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어쨌든 게으른 거 아니야?’

[오. 눈치도 빠른데.]

[허허. 그럼 본인이 부지런하다고 생각하는 겐가?]

‘어. 음. 그건 아니지.’

그렇게 평민들의 일을 하나둘 처리하고 있을 때, 문 밖에서 마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주님. 손님이 방문하셨습니다.”

“손님?”

“찰스 백작님이십니다.”

중세인 이 세상을 움직이는 건 누가 뭐라고 해도 ‘귀족’이다.

지식의 해방에 평민이 합류하는 것보다 귀족이 합류하는 게 훨씬 위험하다.

“들어오시라고 해.”

드디어 기다리고 있던 손님이 방문했다.

* * *

“처음 뵙겠습니다. 진 세인트 남작입니다.”

“윌링턴 찰스 백작입니다.”

찰스 백작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진. 저거 보여?]

‘어떤 거?’

[눈 사용해 봐.]

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발동했다. 그러자 묘한 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 저거 뭐야?’

[뭐긴 뭐야. 가발이지.]

찰스 백작은 굉장히 풍성하고 윤기 넘치는 장발이었는데, 그건 그의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가발?’

[와. 진짜 잘 만들었는데? 최소 중등급 이상의 아티팩트야.]

‘미친…….’

얼마나 많은 골드를 머리카락에 투자한 건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게 진이 그의 머리를 빤히 바라보자,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찾아온 이유를 꿰뚫어 보신 것 같군요.”

“……예?”

그는 진의 물음에 대답대신 행동으로 옮겼다. 그의 몸에서 마나가 뿜어져 나오더니, 가발에 전해졌고.

취이이잉.

묘한 소리와 함께, 가발이 그의 머리에서 스르륵 떨어졌다.

[와.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네. 걸려 있는 마법만 해도 6개가 넘어가는 거 같은데?]

진은 로메른의 말에 대답해 줄 정신이 없었다.

“저는 ‘숲’이라는 비밀 단체의 수장입니다.”

숲이란 단체명만 들어도 저 단체가 무슨 단체인지 추론이 가능했다.

‘머리카락을 숲으로 비유한 거네.’

그러니까 탈모인들의 비밀 모임이란 뜻이었다.

“저희에게 지식의 해방이 접촉해왔습니다.”

“……예?”

“금지된 지식으로 저희가 잃어버린 숲을 되찾아 준다고 하더군요.”

이게 무슨 코미디 같은 상황인가 싶었는데, 그런 장난을 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백작의 표정은 정말 진지했다.

“만약 예비 성자님께서 움직이지 않으셨다면 어쩌면 저희는 그들의 제안을 수락했을지도 모릅니다.”

코미디 같은 상황이지만,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저희에게 숲은 목숨만큼이나 큰 가치가 있습니다. 이 인공 숲을 만들기 위해 저는 권력을 쟁취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가발을 슬쩍 내밀며 말했다.

상황만 보면 웃기다.

탈모인들이 모여 만든 비밀 조직.

머리를 되찾기 위해 영혼마저 팔 각오가 되어 있다는 건 코미디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저 머리카락을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라고 바꾸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되찾기 위한 숭고한 여정.’

진은 그렇게 생각한 뒤,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숲을 되찾기 위해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진의 진지한 반응에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습니다. 모든 걸 제공하겠습니다. 저희에게 숲을 되찾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그 숲을 찾는 여정에 저희가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백작은 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그 손을 맞잡았다.

숲을 찾는 숭고한 여정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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