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74화 (74/210)

074. 진, 일한다!

말릭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간단했다.

“지식의 해방으로 보이는 놈들이 네가 있던 곳에 왔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정보는?”

“별다를 정보는 없었습니다.”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좀 아쉽긴 했지만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전투 직후 마주친 녀석들을 제압해서 정보를 빼길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

‘뭐, 거기서 녀석들을 만났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정보야.’

원래라면 말릭을 보낸 곳에서 문제가 터지는 건 한참 뒤의 일이다.

그런 곳에 지식의 해방이 왔다는 건, 일을 서두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알겠어. 며칠 도시에 머물면서 쉬고 있어. 다음 목적지 정해지면 바로 말해 줄 테니까.”

그 말에 녀석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말릭을 보낸 뒤, 진은 곧장 로메른을 불렀다.

‘이야기 들었지?’

[이거 골치 아파졌는데.]

로메른의 말대로였다.

회귀자들의 가장 큰 힘은 ‘미래 정보’였다.

언제 어디서 문제가 터질지 아는 힘. 이중에 ‘언제’가 변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어디서 문제가 터지는지는 알고 있다는 거지.’

그러니 지금까지 세웠던 계획은 모조리 폐기해야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도 게으름을 부릴 순 없었다.

‘로메른. 지금까지 세워 뒀던 계획 전부 폐기하고, 가장 위험한 일부터 우선순위를 다시 정해.’

[알겠어.]

‘루나랑 검성도 도와줘.’

[알겠어요.]

[허허. 알겠네. 자네, 할 때는 하는 남자였구먼.]

일해 줄 사람을 구했으니, 이제 진은 기다릴 차례였다.

‘정리 끝나면 불러.’

[알겠어!]

[알겠어요.]

로메른과 루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검성은 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네는?]

‘어? 나? 기다려야지. 미래 지식은 너희가 가지고 있잖아.’

[그건 그렇군.]

‘검씨, 놀지 말고 일해.’

진은 그렇게 말한 뒤 해먹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할 때 하기는 무슨…….]

검성의 구시렁거리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진은 살포시 무시해 주었다.

“아. 날씨 좋다.”

이건 게으름 부리는 거 아니다.

계획이 세워지기 전까지 기다리는 중이었다.

* * *

며칠 뒤.

연무장에선 대련이 한창이었다.

쾅!

목검과 목검이 부딪쳤다곤 믿을 수 없는 소리가 퍼져 나왔다.

대련하고 있는 두 남자의 표정은 정반대였다.

말릭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짙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노바는 뭐가 그렇게 기분이 나쁜지 표정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검과 검이 오갔다.

목검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상처가 서로의 몸에 새겨졌다.

박빙.

둘의 실력은 박빙이나 마찬가지였다. 비슷할 정도의 상처가 서로의 몸에 새겨져 있었다.

물론, 완전히 박빙이라곤 할 수 없었다. 노바의 몸에는 용수바람이 걸어 준 버프가 걸려 있었다. 거기에 성령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순수 실력만 놓고 보면, 말릭이 노바보다 위라는 뜻이었다.

그래서일까.

말릭의 미소는 점점 짙어졌다.

노바의 표정은 점점 굳어 갔다.

그렇게 대련이 점점 더 과열되고 있을 때.

“말릭 님. 남작님께서 부르십니다.”

진의 호출이 들어왔다.

말릭은 옅은 흥분을 애써 털어 내며, 검을 거뒀다.

“다음엔 제가 한 발 더 나아가 있을 겁니다.”

“어림없는 소리. 다음엔 네 뼈를 산산조각 내 주마.”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말릭은 상쾌한 표정으로 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훈련이다!”

뒤쪽에서 노바의 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말릭의 얼굴엔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다음에 만날 땐 그는 더 강해져 있을 것이다.

‘즐겁다.’

게다가 진을 만나면 더 즐거운 것을 줄 것이다.

그의 걸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빨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진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왔어?”

“예. 진님.”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어.”

“어디입니까?”

“왕국에서 강자가 제일 많이 있는 곳이 어딘지 알아?”

“왕궁 아닙니까?”

“다들 그런 착각을 하는 데 전혀 아니야. 왕국에서 제일 강한 이들이 많은 곳은 이쪽이야.”

진은 테이블 위에 놓인 지도를 가리켰다. 한데, 진이 가리킨 곳은 영 엉뚱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다에 뭔가 있는 겁니까?”

진은 바다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봐 봐. 여기 섬이 있잖아. 동쪽 바다에 있는 ‘섬’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있지 않아?”

동쪽 바다에 있는 섬.

잠시 고민하던 말릭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알카트라.”

왕국의 지옥이라 불리는 특수 감옥.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모아 놓은 소굴.

들어가는 건 가능하지만, 나오는 건 죽어서도 불가능하다는 사상 최악의 감옥.

그곳이 바로 알카트라였다.

“알고 있는 거 같으니까 다른 설명을 하진 않을게.”

진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넌 이걸 쓰고 그곳에 수감될 거야.”

진은 철로 만들어진 가면을 하나 꺼냈다. 머리 전체를 감싸는 특수한 가면이었다.

말릭은 그 가면을 살펴봤다.

가면 안쪽에는 마법진 같은 게 잔뜩 그려져 있었다.

“일종의 아티팩트라, 쓰고 있어도 불편하진 않을 거야.”

물론 불편함을 없애 주는 기능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진은 굳이 그것까지 설명해 주지 없었다. 말릭 또한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전 가서 무슨 일을 하면 되는 겁니까?”

“네가 할 일은 간단해. 살아남으면 돼.”

뭔가를 할 필요도 없이 그저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는 건 너무나 단순한 목적이었다.

말릭은 대충 감이 잡혔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터지나 보군요.”

“어. 심각한 일이 터질 거야. 아마도 넌 살아남지 못할 게 확실하고.”

진의 말에 녀석은 웃음을 터트렸다.

“저번에 보낼 때도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이번 일도 기대가 됩니다.”

“이번에도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어?”

“대략적인 테마만 알려 주셔도 충분합니다.”

말릭의 말에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배틀로얄.”

진의 대답을 들은 말릭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가면을 썼다.

“전 준비됐습니다.”

진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진짜 미친놈인가. 이걸 고민도 하지 않고 수락하네.’

[말릭한테는 그게 즐거움일 테니까.]

알고 있었는데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카트라는 그만큼이나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하여간 이러면 동쪽은 해결된 거지?’

[어. 동쪽은 해결이야.]

알카트라에서 시작된 작은 불꽃이 왕국의 동쪽 바다를 전부 태우게 된다.

말릭은 그 불꽃을 막기 위해 간 것이다.

‘말릭이 실패해도 상관없는 건 확실하지?’

[어. 걱정 안 해도 돼. 녀석이 죽으면 가면에 새겨진 마법진이 발동할 거야.]

저 가면에는 수많은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자폭 기능이었다.

[만약에 말릭이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우리한테는 이득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릭에게만 좋은 일을 해 줄 순 없는 법. 이번에는 그에 따른 대비책까지 완비해 두었다.

‘말릭 놈 등골 빨아먹는다.’

결과적으로 말릭이 살든지 죽든지 어쨌든 이득인 상황인 데다, 진이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자.’

왕국을 감싸고 있는 바다는 동쪽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서쪽에도 바다가 있었다.

물론 진은 그쪽 일도 남에게 짬 때릴 생각이었다.

[어. 잠깐만 기다려 녀석을 부를게.]

잠시 후, 허공에서 리치가 걸어 나왔다.

“진 님. 부르셨습니까?”

“지식의 해방을 곤란하게 할 만한 일이 있는데. 관심 있어?”

진의 물음에 리치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수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리치의 마지막 복수는 지식의 해방이었으니까.

진은 곧장 지도를 꺼내 서쪽 바다를 가리켰다.

“서쪽 바다에서 지식의 해방이 일을 꾸미고 있어.”

“어떤 일입니까?”

“유령 함대 들어봤어?”

“못 들어 봤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해 줄게. 전설 비슷한 거야. 서쪽 바다를 지배한 유령 함대. 오래전 서쪽 바다의 지배자라 불리던 함대야.”

굉장히 유명한 전설이었다.

서쪽 바다에서 배가 사라지는 일이 생기면 유령 함대를 만났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전설.

“전설이 아닌 겁니까?”

“어. 실존하는 함대야. 일종의 봉인 비슷하게 되어 있는데, 지식의 해방 쪽에서 이 봉인을 풀 거야.”

진은 그렇게 말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이미 봉인을 풀었을 수도 있겠네. 확실하진 않아.”

봉인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이미 풀린 상황일 수도 있었다.

물론,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지식의 해방에게서 그 유령 함대를 뺏는 거야.”

“제가 말입니까?”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계획은 그가 리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리치의 힘이면 유령 함대를 삼키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거야.”

“언데드 지배는 제 전문 분야가 아니기에 준비가 필요합니다.”

로메른이 있는데 그걸 몰랐을 리 없었다. 그래서 따로 준비한 물건이 있었다.

진은 지팡이 하나를 꺼냈다.

“아무것도 없이 보낼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어. 이거 받아.”

“……이건.”

감정이 없는 리치가 동요할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었다.

“세계수로 만든 지팡이야. 흑마력과 신성력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지팡이지.”

엄밀히 따지면 짝퉁 세계수 가지로 만든 물건이지만, 뭐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지팡이에 새겨진 마법진.

그게 진짜 중요했다.

“거기 새겨진 마법이 언데드의 지배력을 높여줄 거야. 몇 가지 다른 기능도 넣었는데, 그건 직접 확인해.”

“미모 후작만큼이나 아름다운 마법진입니다. 대체 어떻게 이런 마법진을……. 여기에 새겨진 섬세한 터치나 마법진의 조화는 그야말로 신의 작품입니다.”

무덤덤한 말릭과는 달리, 마법에 조예가 있는 리치는 마법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로메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법 보는 눈이 있네.]

역시 전문 분야라 그런지 로메른은 시크하게 중얼거렸다.

‘로메른. 오랜만에 멋있는데?’

[됐어. 별것도 아닌 거로 호들갑 떨지 마.]

‘오. 끝까지 멋있어.’

진의 말에 로메른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래?]

그 말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녀석도 내심 좋긴 한 모양이었다.

“서쪽 바다를 잘 부탁해.”

“예. 진 님.”

나머지 절반 서쪽마저 리치에게 짬 때렸다.

‘이러면 후방은 해결이지?’

[어. 바다 쪽은 끝.]

‘그럼, 우리도 슬슬 움직이자.’

상황이 이런데 진도 가만히 놀고 있을 순 없었다.

진이 해먹에서 몸을 일으켰다.

* * *

며칠 뒤.

상단 ‘너스마이’의 본점.

콰-아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정문이 박살 났다.

“웬 놈들이냐!”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상단을 경호하는 용병들이 무기를 꺼내 들고 정문으로 달려왔다. 그런 그들의 눈에 들어온 침입자들은 고작해야 다섯밖에 되지 않았다.

“하. 다섯이서 이딴 짓을 벌이다니. 정말 간도…….”

그는 말을 채 끝내지 못했다.

야만인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나서서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감찰부 출두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본점 전체에 울려 퍼졌다. 곧이어 그 야만인 뒤에 서 있던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지금부터 움직이는 놈은 지식의 해방과 얽힌 것으로 간주하겠다.”

지식의 해방이란 말이 나오자, 용병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수색해.”

그의 말과 함께, 네 사람이 본점 안으로 달려갔다.

‘역시 이건 직접 해야지.’

세이라 수녀가 후작의 자금을 추적하고, 괴도 세인트가 직접 확인해 지식의 해방 쪽 자금을 담당하는 위장 단체를 찾아냈다.

이건 녀석들의 자금을 끊는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그럼, 수금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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