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말릭 수준……?!
‘저 각설이 같은 놈. 죽지도 않고 또 왔네.’
[각설이? 그게 뭔데?]
‘있어. 그런 게…….’
진의 머릿속에 노래 한 곡이 재생되는 기분이었다.
[와. 진! 이거 보여? 역시 살해의 업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가? 성장 속도가 미쳤는데?]
‘……어떻길래?’
진은 눈을 사용하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거 뭐야?’
겉으로 보기엔 걸레짝이나 다름없는 몸이었는데, 그 내부는 전혀 달랐다.
[마나가 제대로 안정됐어. 게다가 저번에 봤던 불균형도 많이 바로잡혔고. 와 이게 가능하네.]
‘……지옥에서 돌아온 각설이네.’
진이 표정을 굳히며 말릭을 빤히 바라보자, 녀석의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제 성장이 보이시나 봅니다?”
말릭의 질문에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대충 보여. 웬만하면 죽었으면 했는데, 용케 살아 돌아왔네?”
“진 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이 너무 멋져서 제가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역시 미친놈이다.
몸의 상처만 봐도 몇 번은 죽을 고비를 넘겼을 것이다.
“대체 그런 괴물이 그곳에 있는 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아니. 애초에 제가 상대한 건 무엇이었습니까?”
“왜? 이제 와서 그게 궁금해?”
“보통이라면 궁금하지 않았겠지만, 이 녀석과의 전투는 너무나 황홀해서 기억해 두고 싶어서요.”
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오래전 악마 중의 하나가 인간의 부탁을 받고 만든 괴물이야.”
그것도 꽤 고위 악마가 소환한 괴물.
녀석이 날뛰기 전에 봉인이 되어 유명하진 않지만.
[미래에는 저 녀석이 풀려나서 난리가 났었어.]
말릭이 처리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문제가 됐을 만한 녀석이었다.
“이름 따윈 없어. 이름을 얻기 전에 봉인되었고, 너한테 죽었으니까.”
진의 말에 녀석은 눈을 반짝였다.
“그럼, 제가 최초 발견자입니까?”
“뭐?”
“제가 이름을 지어 줄 수 있는 최초 발견자인지 여쭤 보는 겁니다.”
대체 괴물이랑 뭔 짓을 했길래 이름까지 지어 줘!?
‘로메른. 이 괴물 끔찍하게 생겼다고 하지 않았어? 여성체 모습을 하고 있는 거 아니지?!’
[어. 아니야. 여성체는 무슨, 키메라에 가까운 녀석이라 오히려 끔찍하게 생겼을 텐데?]
뭐지 괴물 성애자였나?
아니지. 이런 편협한 사고방식은 옳지 않다.
“그래. 네가 이름을 지어도 돼. 어차피 너밖에 기억하지 못할 녀석이니까.”
“흠. 진 1호로 하겠습니다.”
“……뭐?”
진짜 미친놈인가?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왜 붙인단 말인가!?
“진 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 1호란 뜻입니다. 어차피 저만 기억할 테니 이렇게 기억하겠습니다.”
와. 그러니까 2호, 3호…….
앞으로도 계속 달라는 거지?
진은 여러 가지 상념이 떠올랐지만, 미친놈을 정상인이 이해할 수 없는 법.
“알아서 해라.”
“진 1호. 넌 훌륭했다.”
녀석은 아련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바로 미친놈식 멕이기인가?
‘아. 말릭 이 새끼 죽었으면.’
진이 애써 울컥하는 감정을 삼키려고 할 때.
[푸하하하. 미친! 진 1호래. 진 1호기, 편안한 곳에서 쉬어라!]
로메른이 웃음을 터트렸다.
‘…….’
진은 애써 못 들은 척 하늘을 바라봤다.
‘날씨 좋네…….’
[흐음. 그대는 이런 날씨를 좋아하는 겐가? 우중충한 것이 비가 올 거 같은데…….]
‘아 쫌!’
그렇게 만담이 펼쳐지려고 할 때.
“진 님. 이제 제 검이 진 님께 닿을 거 같은데, 한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미친놈이 눈을 빛내며 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자꾸 기어오르네?”
“이젠 올라가 볼 만한 거 같으니까요. 물론, 못 올라가 갈 거 같아도 기어올랐을 겁니다.”
“어차피 주기적으로 기어오를 생각이었다?”
“그렇습니다.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절 교육해 주시길.”
교육해 달라는 녀석의 눈빛이 아니었다. 지옥에서 돌아온 사냥개가 이빨을 드러냈다.
“기다려.”
진은 그 말을 한 뒤.
‘로메른. 저놈 치료해 줘.’
[완벽하게 치료해 줄게!]
말릭을 치료해 주었다.
“바로 하자.”
“감사합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대련이 시작됐다.
* * *
말릭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진을 바라봤다. 그는 처음 봤을 때와 전혀 변한 게 없었다.
‘이만큼 성장했는데도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진은 자신보다 강하다. 한데, 겉으로 봐서는 자신보다 강한 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진을 분석하기 위해 다른 정령사도 만나 봤다. 그들이 사용하는 힘이 뭔지 확인도 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리 확인해 봐도 여전히 그에게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자신보다 강하다.
그렇기에 말릭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가 너무 드높은 곳에 있기에 자신의 눈에는 이런 것만 보이는 것이다.
‘닿을 수 있을까?’
그에겐 닿을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재밌는 것이다.’
그는 선인이었다. 아니. 선인인 척하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을 이용해야 한다.
벽처럼 느껴지는 진과 맘껏 싸울 기회였다.
‘날 시험해 본다.’
또다시 벽을 느끼겠지만, 결국 자신이 패배하겠지만.
‘즐겁군.’
그마저도 즐거웠다.
그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진이 보여 줄 테니.
스릉-
말릭은 검을 뽑았다.
그리고 놀라운 것을 목격했다.
‘……검?’
진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마치 검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체…….’
저번엔 압도적인 육체 능력으로 자신을 찍어 눌렀다. 그게 진의 힘인 줄 알았는데.
‘검을 든다고?’
말릭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좋다. 좋아!’
그저 육체 능력으로 찍어 누를 때와 달리, 이제 자신은 검을 뽑아야 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목검을 들면 죽을지도 모르니까. 그냥 아무것도 안 들고 할게. 아무것도 안 들고 있다곤 해도 내가 들고 있는 검 정돈 볼 수 있지?”
말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절망하지 마라.”
절망? 자신은 그딴 걸 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감정을 느끼지도 않으니까. 오히려 그의 머릿속엔 환희가 가득했다.
‘즐겁구나. 즐거워!’
진짜 ‘진’은 진 1호기 따위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집중해.”
진의 목소리에 그의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온몸의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소름이 끼쳤다.
“감각은 괜찮네.”
대체 어떻게?
여전히 그에게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의념까진 아직 못 보는 모양이네. 그럼 이건 보여?”
그 순간, 그의 눈에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살기로 만든 수많은 선. 그런 선이 그의 주위에 가득했다.
‘이건…….’
그 선은 모두 진에게서 시작되고 있었다. 아니. 진이 들고 있는 가상의 검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이곳에서 움직이는 순간 자신은 죽는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환상? 아니. 그가 일부러 보여 준 것이다.’
모든 선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피할 방법은 단 하나.
움직이지 않는 것.
비무는 이미 시작과 동시에 끝난 상황이었다.
‘이게 사람이 가능한 일인가? 검으로 가능한 일인가?’
얼마나 드높은 경지에 올라야 가능할지 엄두도 나지 않았다.
마법사가 마나를 점유하고 자신의 지배력을 보이듯 그는 검으로 자신의 ‘영역’을 만들었다.
‘즐겁다.’
원래라면 너무 나 커다란 차이에 절망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즐거웠다. 자신을 감싼 이 수많은 살기가 황홀했다.
‘그에게 베여 보고 싶다.’
그의 살기가 마치 진미처럼 느껴졌다. 저것을 맛보고 싶었다.
그가 한 발짝 움직이려고 하는 순간.
‘……!’
주위에 있는 살기에 그는 마치 팔이 베인 감각이 들었다.
아니. 분명 베였다. 진짜로 움직였다면 베였을 것이다.
‘하하.’
그저 감각으로 느꼈을 뿐인데, 그의 등 뒤가 축축했다. 머리론 이 상황이 너무 즐거운데, 몸이 겁을 먹었다.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여기서 끝낼 순 없다.
‘방법을 바꾼다.’
주위의 가득한 선을 따라 한다.
작은 틈만 만들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한 걸음이 쌓이면 그와 칼을 마주할 수 있다.
그의 살기가 날카롭게 정제된다.
‘내게 필요한 건 저런 영역이 아니다.’
애초에 저 영역은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건 저것과 정반대였다.
‘단 하나의 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단 하나의 선.
그 선을 이용해 틈을 만들고, 그를 벤다.
‘그를 베고 싶다. 그의 피를 뒤집어쓰고 싶다!’
미칠 듯한 살기가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러자 살해의 업이 움직인다. 살해의 업 위로 살기가 모이고 정련됐다.
그렇게 날카로운 ‘선’이 하나 만들어졌다.
‘벤다.’
자신 주위의 가득한 선을 베어 낸다!
그가 뻗은 선이 주위의 선과 충돌한다.
영역을 포기한 단 한 번의 칼질이 진의 영역을 부쉈다.
‘된다. 닿을 수 있다!’
그가 그런 감정을 느낀 순간.
“호오.”
진이 웃으며 한 걸음 다가온다.
그러자, 주위의 영역이 변했다. 선이 복잡하게 움직이고 뒤섞였다.
‘……어?!’
말릭이 베어 낸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니, 이젠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도 모르게 계속 변화하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진이 말릭에게 다가왔다.
말릭은 움직이지도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절망이 그에게 다가온다.
‘아아…….’
육체가 절망에 젖는다.
간신히 서 있을 뿐, 움직일 의지가 사라졌다. 한데, 그의 머리는 전혀 다른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환희. 즐거움. 행복.
저항할 수 없는 압도적인 공포.
‘이거다!’
그 공포가 ‘살해의 업’을 자극한다. 살해의 업이 미친 듯이 날뛰며 그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진의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말릭은 한 걸음 더 성장했다.
하지만, 모든 것엔 끝이 있는 법.
진이 들고 있는 허상의 검이 말릭의 심장을 찔렀다.
“다신 기어오를 생각하지 마라.”
싸늘한 진의 말이 그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교육 감사합니다.”
말릭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진은 더러운 걸 봤다는 듯, 한 걸음 물러섰다.
그 모습에 말릭은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절망적인 패배를 겪었지만,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다.
“진짜 미친놈인가.”
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와 떨어지고 있었다.
* * *
‘야 검성! 이 미친놈아!’
[흐음. 그것이 대련을 하다 보니 흥이 나기도 하고, 그의 자질이 아까워…….]
‘흥!? 자질?! 진짜 미쳤나, 말릭을 왜 성장을 시키냐고!’
의도치 않은 사고였다.
검성도 있으니 대련으로 찍어 누르려고 벌인 일이었는데, 어처구니없게 말릭은 실시간으로 성장했다.
[저거 진짜 괴물 같은 놈이네.]
로메른이 이런 말을 할 정도면 보통이 아니란 소리였다.
[엄밀히 따지면 내가 성장시킨 게 아닐세. 그가 알아서 성장한 것이지.]
‘아니. 그냥 휙 서걱! 하고 끝내면 되는 걸. 뭔 개똥폼을 쳐 잡더니…… 아오 이 겉멋충아!’
[거, 겉멋충이라니!?]
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간, 검씨 넌 뭐하나 토해 낼 각오해.’
[……끄응. 알겠네.]
검성도 자기가 잘못한 건 알고 있는지 잘못을 시인했다.
그렇게 검성을 구박하고 있을 때.
“진님. 한 가지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연무장에 누워 있던 말릭이 입을 열었다.
“뭔데.”
“동굴에서 나올 때 녀석들을 마주쳤습니다. 그 가짜 녀석들을 만나는 것도 예상하신 거였습니까?”
말릭이 가짜 녀석들이라고 부르는 건, ‘지식의 해방’을 뜻했다.
그런 지식의 해방을 만났다?
전혀 예상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대답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확률은 반반 정도 됐지.”
“호오. 그럼 제가 정보를 얻어 올 것도 예상하셨겠군요.”
어!? 정보를?
이런 속마음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 튀어나왔다.
“당연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말이나 해.”
“하하. 그것도 그렇군요.”
말릭은 지식의 해방을 만났을 때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제가 녀석들은 만난 건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동굴을 나왔을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