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72화 (72/210)

072. 어? 어?!

어두운 지하.

벽에 걸린 작은 횃불 덕에 서로의 얼굴만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한 사내는 한참을 맞았는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전쟁에 13회 참여. 죽인 사람은 셀 수도 없고. 얼씨구, 주인으로 삼기 싫다고 죽인 기사만 8명이 넘네?”

진이 서류를 넘기며 무심히 말했다. 그러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대체 누구시길래 이러시는 거예요. 절 여기로 어떻게 데려오신 거예요.”

그 말에 진이 뒤에 서 있는 검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야. 내가 누구냐?”

그러자 검성이 앞으로 나섰다.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지만…… 그대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으니.]

검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목검으로 그 남자를 후려쳤다.

“아악! 뼈! 뼈 맞았어요! 대체 어떻게 때리시는 거예요!”

검의 자아를 때린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모든 검을 지배하는 ‘검성’이라면 그 불가능이 가능해진다.

“커억! 그만! 그만해 주세요!”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지.]

검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매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 손속이 얼마나 대단한지, 목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녀석이 몸서리를 쳤다.

인간이 아닌 검의 자아라 그런지 자비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어진 매질이 끝나고, 진이 그에게 다가갔다.

‘생각이랑은 너무 다른데.’

천둥의 검 바즈라.

이름만 들어보면 자아는 뭔가 번개 같은 이미지였는데, 막상 데려와 보니 후덕한 이미지였다.

검성의 말로는 자아가 비대해져서 살이 찐 거라고 하는데, 대체 그게 뭔 개똥같은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앞으로 네 주인이야.”

진은 친절하게 설명해 줬지만.

“주인은 이렇게 선택하는게…….”

녀석이 거부 의사를 펼치자마자 진이 소리쳤다.

“예!!! 라고 하면 되는데, 선택? 그건 네가 만든 선택이지. 어디서 이빨을 털어! 검성!”

진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친 뒤 검성을 부르자, 녀석이 진의 바지 끄덩이를 잡았다.

“아, 아닙니다.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맞을 때마다 자아가 깎여 나갑니다.”

역시 괜히 검성이 아니었다.

그의 매질은 효과가 확실했다.

검성 이름만 듣고도 녀석은 질질 짜기 시작했다.

“야, 이거 봐 봐.”

진이 한쪽 벽을 가리키며 말을 하자, 보물전에 있는 폭풍의 검이 보였다.

“이야. 검이 진짜 이뻐. 근데 저 친구가 부수면 부술 수 있을 거 같다니까? 보물전에 들어왔으면 하나 가져 나갈 수 있는 거 알지?”

검의 정령도 패는데 검을 부수는 게 불가능할까? 전혀 아니었다.

‘검의 자아’엔 저 검이야 집이며 몸이고, 자식이나 마찬가지다.

그걸 깨달았는지 녀석의 눈이 사정없이 떨렸다.

“저,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예요.”

“너는 나한테 왜 그러시는 거예요.”

녀석은 진의 말에 겁이라도 먹은 듯 바싹 굳었다. 진은 낮은 목소리로 녀석에게 말했다.

“너 지금부터 세계수 해라.”

어두운 지하에서 ‘부당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다.

* * *

진은 상쾌한 얼굴로 보물전을 나왔다. 그의 손에는 책이었던 것이 들려 있었는데, 남들이 보기엔 흡사 쓰레기나 마찬가지였다.

보물전 관리자는 그것을 빤히 바라보며 진을 불렀다.

“······세인트 남작님?”

“예.”

“그걸 들고 나오신 겁니까?”

“예.”

“저길 들어가시고 그걸요?”

“예. 정말 좋은 물건을 얻었습니다.”

“······세상에.”

그의 심정이 이해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왕이 몰래 열어 준 진짜 보물전.

그런 엄청난 곳에 들어가서는 이런 쓰레기를 들고 나왔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걸 뭐라고 보고해야 하나.”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지만, 진은 못 들은 척 그에게 되물었다.

“예?”

“아, 아닙니다.”

“따로 일정이 없으면 바로 돌아가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아. 예. 곧장 돌아가셔도 상관없습니다. 왕께서 워프 게이트를 개방해 주셨으니 돌아가실 땐 그걸 이용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진은 고개를 숙이고, 곧장 밖으로 향했다.

보물전 관리자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곧장 왕을 찾아갔다.

“폐하. 보고를 드리기 위해 보물전 관리관이 찾아왔습니다.”

“들라 해라.”

“예. 폐하.”

보물전 관리관은 왕을 마주하기 전까지도 뭐라고 보고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냥 본 대로 말하자.’

왕이 자신에게 내린 명은 진 세인트 남작이 어떤 물건을 가지고 나왔는지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보고하라.”

“예. 폐하. 진 세인트 남작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보물전 내부에 있었습니다.”

“허허. 이번엔 신중하게 고른 모양이군. 목걸이와 방패 중 무엇을 가지고 나왔지?”

진 세인트 남작의 성정을 봤을 때 검을 들고 나오는 건 힘들었을 터, 둘 중의 하나가 확실했다.

한데, 보물전 관리자 입에서 생각도 못한 게 튀어나왔다.

“둘 다 아닙니다. 다 부서진 책을 가져 나왔습니다.”

“······책?”

“그 특별 관리 외 물건 중에 하나를 가져나온 것 같습니다.”

“······저번처럼 이번에도 쓸데없는 물건을 가지고 나왔단 말이냐!?”

왕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람이 아무리 욕심이 없어도 그렇지, 진짜 보물전에 들어가서 역사적 가치만 있는 쓰레기를 들고 나오다니!

이건 왕의 입장에선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이었다.

“허허.”

그러자 실소가 흘러나왔다.

“폐, 폐하?”

“허허.”

“······.”

보물전 관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 뒤 왕의 집무실에서 빠져나왔다.

“……아무리 청렴해도, 이건 아니지!”

문 뒤에서 뭔가 들린 것 같지만, 왕궁 생활에선 들은 것도 못 들은 척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었다.

‘같은 생각입니다. 폐하.’

솔직히 자신도 왕과 같은 기분이었다.

* * *

왕궁을 빠져나온 진은 워프게이트를 야무지게 써먹었다.

곧장 영지로 돌아가지 않고 성서를 제작하는 가장 가까운 곳에 들려서 성서 커버를 맡긴 다음에야 영지로 돌아왔다.

꽤 돌아서 오긴 했지만, 영지로 돌아오는 길은 지루하지 않았다.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건 오만이다. 너의 자아가 비대해진 것은 모두 너의 오만 때문이다.]

<전 사람이 아니라 그저 검의 자아일 뿐인…….>

[어딜 어른이 이야기를 하는데 말대꾸를 하는 것이냐!]

<아니. 제가 살기는 더 오래 살았을 텐데…….>

[이노옴!]

잠시 후, 곡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헛소리를 했습니다!>

[당장을 모면하기 위해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내 모를 것 같으냐! 이노옴!]

<아니 저보고 대체 어쩌라는…….>

[네놈의 자아에 새겨 주마!]

<이! 어차피 때릴 거였으면서!>

[이제 내 탓을 하는 것이냐? 이것이 다 자아가 비대하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꼰대 검성과 오만한 검의 자아 바즈라. 둘을 구경하느라 지루할 틈이 없었다.

놀랍게도 꼰대 검성의 교육은 효과가 있었다. 물론, 잔소리에 감화된 건 아니었다.

<내, 내 자아가!>

검성에게 맞을 때마다 비대하게 부푼 자아가 깎여 나갔다. 그렇게 깎여 나간 자아를 로메른이 챙긴 뒤.

[배신하지 못하게 이런 걸 박아놔야 한다니까.]

특별한 것으로 탈바꿈시켜 녀석에게 박아 넣었다.

덕분에, 영지에 도착할 때쯤엔 자아는 180도 변해 있었다.

‘바즈라. 너의 역할은 뭐지?’

<주인님 말을 듣는 것입니다.>

‘훌륭하네.’

<주인님께서 만족하시니 저도 만족스럽습니다.>

그 말을 들은 로메른과 검성이 입을 열었다.

[드디어 오만을 버렸구나. 이 자아가 검에 있었다면, 검을 써도 좋았겠어. 로메른, 고생했다.]

[아니야 검성 네가 고생했지. 이제 세계수에 집어넣어도 문제가 없겠어.]

마치 제자를 키운 스승처럼 둘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히, 히익!>

약간의 단점이라면 바즈라가 로메른과 검성의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키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 단점은 사소한 문제일 뿐이었다.

영지에 도착한 진은 곧장 엘프의 영역으로 넘어와 짝퉁 세계수에 들어왔다.

[그럼, 바로 집어넣을게.]

‘어.’

짝퉁 세계수에 드디어 자아가 생긴다.

* * *

오랜만에 진이 방문했다는 소식을 들은 플로나는 반가운 기분이 든 것도 잠시.

마지막 보고를 들은 순간, 곧장 세계수로 향했다.

‘급하게 어머니의 나무 안으로 들어가셨다고 하던데…….’

혹시나 어머니의 나무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관리했지만…….’

어머니의 나무는 진 님이 계시면 잘 응답해 주지 않으셨다. 그러니 관리해드린 게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머니의 나무께서 아프시면 하나가 되신 진 님에게도 문제가 생겼을 텐데…….’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 때문인지 그녀의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그렇게 세계수 근처에 도착했을 때,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건…….”

그녀는 멍하니 어머니의 나무를 올려다봤다.

두근. 두근.

마치 나무에서 심장이 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소리에 맞춰 그녀의 심장도 뛰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그런 감각을 느끼는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엘프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다들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느껴져.”

이건 그들이 변하면서, 잃어버린 것 중의 하나였다.

“어머니의 나무가 느껴져.”

어머니의 나무를 보고도 못 알아봤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어머니의 나무가 느껴졌다.

그 속에서 강렬한 의지가 느껴졌다.

진 님을 향한 감사함.

진 님을 향한 존경심.

진 님을 향한 충성심.

진 님을 향한······.

진 님을 향한······.

…….

어머니 나무께서는 온통 진 님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머니의 나무가 곧 진 님이었다.

어머니 나무를 엘프들에게 가져와 준 것은 진 님이었다.

어머니 나무의 감각이 점점 더 강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어머니 나무의 생각이 자기 생각처럼 느껴졌다.

“아아. 진 님!”

“진 님!”

“어머니 나무 진 님이시여!”

어느새 엘프들은 소리치며 진을 불렀다. 그들의 목소리에 어머니의 나무가 동조한다.

그 감정은 더욱 강렬해졌다.

“진 님! 진 님!”

“진 님! 진 님!”

어느새 엘프들은 소리 높여 진을 부르고 있었다. 숲속엔 진을 부르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한편, 어머니 나무 안에 있는 진은 조금 다른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데!?’

그냥 짝퉁 세계수에 자아를 넣는 작업일 뿐이었는데, 지금 나무 밖에는 진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어. 음. 간단히 말할게. 이거 더는 짝퉁 아닌 거 같은데?]

‘뭐?’

[이게 진짜 세계수 역할을 하는 거 같다고.]

‘그러니까, 짝퉁을 너무 잘 만들어서 진퉁이 되어 버렸다? 이 말이야?’

[엘프와 교감하는 게 진짜 가능한 건 세계수밖에 없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데?!’

그러자 상상도 못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우리가 너무 팼나 보다. 이 자아가 지가 진짜 세계수인 줄 아는 거야.]

‘······.’

진은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는데.

[역시 스스로 그렇다고 믿으면 무엇이든 가능한 법일세. 과연 내 제자군.]

검성은 만족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 * *

진 님! 진 님!

멀리서 익숙한 이름이 들려온다.

“하하.”

온몸에 상처가 가득한 남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오자마자 또 설레게 만드시는군.”

말릭 테스.

그는 죽지 않고, 진의 영지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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