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71화 (71/210)

071. 진짜 보물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진은 왕과 함께 마차를 타고 왕성까지 이동했다.

그야말로 파격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는데, 이렇게까지 해 준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수도의 턱밑에 숨어 있는 지식의 해방을 발견하다니, 그대는 왕국을 위해 정말 큰일을 해 주었다.”

진과 둘이서 대화할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알고 있다. 감찰부만 하더라도, 숨기 좋은 곳만 수색했지, 이리 가까운 곳은 찾을 생각을 못 했으니.”

어. 음.

오해였다.

그저 수도를 가는 길에 작업할 수 있는 곳이 유카밖에 없었을 뿐이다.

[허. 그대는 이것을 노리고 유카에 작업한 것이었구나. 이리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찌 그런 사기나 다름없는 일을…….]

[내가 말했지? 진이 게을러서 그렇지, 일하면 진짜 확실하게 한다니까.]

왕 때문에 정령들까지 오해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잖아. 심리의 허를 찔렀을 뿐이야.’

아무튼 내가 한 거임!

남을 속이려면 자신부터 속여야 하는 법.

그냥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진의 겸손에 왕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운이라…….”

운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왕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나 연달아 운이 발생하면…….

“그 운조차 그대의 실력이다.”

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차 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어느새 마차는 왕성에 거의 다 도착했다.

“그대와 대화를 더 나누고 싶지만, 시간이 없구나.”

왕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진 세인트 남작. 난 그대를 지식의 해방을 찌르는 검으로 사용할 생각이다.”

왕은 돌려 말하지 않았다.

‘진짜 날 얼마나 청렴결백한 인간으로 보면,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을 하는 거야?’

이건 영감님이 뿌린 씨앗이었다.

이것저것 다 거부한 덕에,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다.

‘역시, 영감님은 빛이야.’

진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폐하.”

“그대에게 힘을 실어 주겠다. 알현실에서 포상 이야기가 나오면, 모든 포상을 거절하고 보물전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라.”

왕의 말에 진은 예전에 로메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하. 여기에 모든 보물이 있으면, 기분 좋다고 들여보내겠어? 진짜 보물전은 따로 있어.]

힘을 실어 주려고 하는 지금 보물전이 나왔다면, ‘진짜 보물전’에 들여보내 줄 생각인 것 같았다.

“예. 폐하. 명을 따르겠습니다.”

진은 준다는 걸 마다할 사람이 아니었다.

* * *

알현실에서는 생각한 대로의 일이 벌어졌다.

“진 세인트 남작은 메사니 후작을 구해 냈으며, 수도 근처에 도사리던 위협을 처리했다.”

이건 귀족파에게 보내는 경고였다. 귀족파의 일원인 메사니 후작을 구했으니, 처신 잘하라는 경고.

덕분에, 귀족파 일원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진 세인트 남작을 백작으로 임명한다.”

하지만, 승작 이야기가 나오자 귀족파도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아. 생각 같아선 꿀꺽하고 싶은데…….’

여기서 승작을 받아들여 봐야 좋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빠르게 성장한 진은 귀족들은 시기할 테고, 그 시기를 견디며 백작이 된다고 해도 좋을 게 없었다.

‘명예 감찰대장의 직책이 있는 나한텐 명예뿐인 자리야.’

명예 감찰 대장의 직책이 백작위보다 못할까?

전혀 아니었다.

그렇다고 예비 성자인 진이 백작 작위로 이득을 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걸 왕도 알고 있어.’

그러니 모든 포상을 거부하고, 보물전을 선택하라고 말한 것이다.

‘그쪽이 훨씬 좋지.’

그쪽은 명예가 아닌 실익을 챙길 수 있는 곳이었다.

실제 스펙을 올릴 수 있는 장소.

진은 생각을 정리하고 곧장 입을 열었다.

“폐하. 이 포상을 거두어 주셨으면 합니다.”

설마하니 승작을 거부할 줄 몰랐는지 알현실은 침묵에 빠졌다.

“승작을 물러 달라?”

“그렇습니다. 폐하.”

“……허. 그대가 청렴한 건 알고 있었으나 이건 생각지 못했군.”

귀족들도 대체 이게 뭔 상황인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왕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포상으로 금은보화를 내려도 그대는 거부하겠지.”

“그렇습니다. 폐하.”

그때, 귀족 하나가 입을 열었다.

“폐하. 진 세인트 남작이 원하는 걸 들어주시면 어떻습니까?”

이 타이밍에 이런 말이 나온다?

미리 준비해 둔 게 확실했다.

“좋은 방법이다. 세인트 남작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 보아라.”

진은 짜인 각본대로 움직였다.

“저번에 들어갔던 보물전 입장을 허락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귀족파 귀족들들은 전에 진이 어떤 물건을 들고 나왔는지 기억을 떠올렸다.

돌맹이와 석판.

보물전에 들어가서 쓰레기를 들고 나왔었다. 이건 들여보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폐하. 허락해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귀족파 귀족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흐음. 그가 세운 공에 비해 너무 부족하다.”

“그렇다고 원하지 않는 걸 억지로 안겨 주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귀족파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왕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네. 진짜. 저러니까 왕 하는 거구나.’

왕은 이런 상황이 펼쳐질 줄 알고 판을 만든 것이다.

이 상황 덕에 진은 귀족파의 견제로부터 해방됐고, 왕은 귀족파의 의견을 들어주면서 자기가 의도한 대로 상황을 움직였다.

“진 세인트 남작에게 보물전 입장을 허하겠다.”

“감사합니다. 폐하.”

귀족파 귀족들, 진과 왕.

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 * *

진짜 보물전은 전혀 생각지 못한 장소에 있었다.

“이곳으로 내려가시면 됩니다.”

보물전 내부에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설마 보물전 안에 진짜 보물전이 있었을 줄이야.’

이러니 국왕이 이곳을 몰래 개방해 준 것이었다.

여기서 뭔가를 묻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뒤 들어가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진은 진짜 보물전 내부로 진입했다.

‘어. 음.’

진짜 보물전 내부는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고급 아티펙트가 곳곳에 널려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무슨 생각했는지 알겠는데, 그럴 리 있겠어? 진짜 보물은 소수일 수밖에 없어.]

로메른의 말이 맞았다.

진짜 귀한 보물이 산처럼 쌓여 있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한번 둘러볼게.’

진은 그리 넓지 않은 보물전 내부를 둘러봤다.

‘오. 이건 뭔가 있어 보이는데?’

마치 봉인하듯 쇠사슬에 묶여 있는 검 한 자루. 딱 봐도 좋은 검인 게 느껴졌다.

진의 말에 대답한 건 로메른이 아닌 검성이었다.

[천둥의 검이라 불리는 바즈라 라는 칼이라네.]

‘오. 천둥의 검? 어떤 검이길래 그런 이명이 붙은 거야?’

[흐음. 그리 좋은 검은 아닐세.]

‘좋은 검이 아니라고? 이름만 들어보면 천둥과 번개를 뿜어낼 거 같은 검인데?’

[파괴력을 따지면 수위를 다투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네.]

‘단점?’

[검의 자아가 너무 강해서 주인을 까다롭게 고르고, 설령 주인을 정한다고 해도 쉽게 말을 듣지 않는다네. 그 덕에 이렇게 반쯤 봉인된 걸세.]

이야기만 들어보면 반쯤은 마검 같은 느낌이었다.

‘이 검 써 본 적 있어?’

[써 보긴 했지만, 내게 맞는 검이 아니라 그리 오래 쓰진 않았지.]

괜히 검성이 아닌 모양이었다.

‘주인으로 인정받았다는 거지?’

[솔직히 말하면 제대로 인정받은 건 아니라네. 반쯤 강제로 인정을 받았지.]

결과만 놓고 보면 저 검을 다뤘다는 뜻이었다.

‘오. 나쁘지 않은데.’

[허허. 검을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저 검을 탐내는 건가?]

진은 고개를 저었다.

‘저 검이 탐나는 건 아니야.’

[그럼?]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어. 뭐 요건 더 생각해 봐야 할 거 같아. 일단 둘러보자고.’

진은 검에서 떨어져 다른 것들을 살펴봤다.

[저건 두 번째 목숨이라 불리는 모르스 방패일세. 소유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공격조차 막아 주는 방패지.]

[오. 이 목걸이가 여기 있었구나? 이것도 꽤 좋은 물건이야. 사용자의 써클을 튼튼하게 해 줘. 뭐, 그래 봐야 내가 개조한 심장보단 못하지만.]

[이건 예전엔 교단의 보물이었어요. 두 번째 성배라 불리는 물건으로 사기를 신성력으로 바꿀 수 있는 물건이에요. 제가 알기론 왕의 장례식 때 사용하는 거예요.]

물건이 몇 개 없는 대신 하나하나가 강력한 물건들이었다.

그렇게 구경을 하며 보물전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가니,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보였다.

‘여기가 말했던 그곳이지?’

그곳엔 잡동사니가 가득 쌓여 있었다.

[어. 바로 여기야. 우리가 가져갈 건 여기에 있어.]

다 부서진 석판.

걸레짝이나 다름없는 갑옷.

부러진 검.

쓸데없이 두껍고 화려한 책.

등등.

쓸모없는 물건들이 멋들어지게 장식되어 있었다.

‘이게 보물이라 이거지?’

[어. 신화와 전설에 얽혀 있거나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보물들이야.]

가지고 나갈 보물은 앞에 있던 멋들어진 것들이 아니다. 여기서 하나를 가지고 나갈 생각이었다.

‘좋아. 우리가 가져갈 건 뭐야?’

[이거예요!]

루나는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루나가 가리킨 곳에는 굉장히 오래된 책 하나가 있었다.

‘와. 이건 톡 건드리면 바스라지겠는데?’

딱 봐도 굉장히 오래된 물건이었다.

[예. 건드리는 순간 내부에 있는 종이는 바스러질 거예요.]

내부의 종이가 바스러지는 책.

그 책은 뭐가 남을까?

‘설마 우린 책 커버만 쓰는 거야?’

[네. 이 책이 가치 있는 건 책 커버 때문이니까요.]

피라도 잔뜩 머금은 듯 거무튀튀한 색의 커버.

얼른 보기엔 흑마도서 같은 느낌이었다.

‘불길해 보이는 책인데.’

루나가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정반대의 책이에요. 이건 성자께서 사용하시던 ‘성서’니까요.]

‘성자가 사용하던 성서?’

[예. 책 커버에 묻은 건 성자님의 피예요.]

‘이게 왜 왕국에 있는 거야?’

이건 교단에 있어야 할 물건이었다.

[과거 성자께선 대륙의 평화를 위해 죄를 지으셨기 때문이에요. 실질적으론 교단에서 제명되셨어요.]

‘꽤 복잡한 이야기가 얽혀 있나 보네.’

[예.]

‘오케이. 알겠어. 이야기까진 안 풀어 줘도 돼.’

복잡한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길기 마련. 굳이 들을 필요 없었다.

‘어쨌든 이걸 챙기면 된다는 거지?’

[예. 맞아요. 저희가 제작하고 있는 성서가 더욱 강력해질 거예요.]

칼이니 방패니 하는 것들을 진이 가져나간다고 스펙 업이 되는 게 아니었다.

이 성서야말로 진이 성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물건이었다.

지금 제작되고 있는 성서는 그저 성법이나 신성력을 강화하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진이 잠시 생각하고 있자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망설이는 거 아니지? 성서가 완성되면 훨씬 좋아. 성서를 이용해서 우리의 힘을 강화할 수 있으니까.]

‘알아. 저번에 이야기했잖아.’

정령사인 진이 성장하기 위해선 정령의 힘이 강해져야 한다.

애초에 성서는 ‘성자 진’이 아니라 ‘정령사 진’을 위해서 만드는 물건이었다.

‘잠깐 생각 좀 한 거야.’

진은 손을 뻗어서 그 책을 잡았다.

책에 손을 대자마자 루나의 말처럼 종이가 바스러지고 책 커버만 남았다.

[빨리 나가자!]

로메른은 신이 나서 소리쳤지만, 진은 이대로 나가기 아쉬웠다.

‘잠깐만 기다려 봐.’

[어? 왜?]

진은 조금 전 보았던 검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이 검의 자아가 강하다고 했지?’

[에고 소드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지.]

‘그걸 검성은 제압할 수 있고?’

[……그렇지. 그대가 그렇게 말하니 왠지 불안해지는군.]

‘제압할 수 있다는 건, 팰 수도 있다는 뜻이지?’

[……가능은 하겠지만, 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군.]

의미가 없을 리 없었다.

‘로메른. 우리 짝퉁 세계수에 자아가 없잖아?’

[어. 사실 자아라고 부르긴 뭐하지. 거의 본능에 가까운 거니까.]

자아가 없기 때문에, 로메른이 짝퉁 세계수와 합체해야 일을 한다.

‘여기 있는 자아는 어때?’

[뭐가? 어!? 잠깐만! 너 설마…….]

로메른은 진의 말을 이제야 이해한 거 같았다.

‘이 자아, 가져갈 수 있어?’

[정말 미친 소리긴 한데, 가능할 거 같은데?]

‘저 검에서 자아가 사라지면 문제가 생기나?’

[봉인이 되어 있지 않다면 문제가 생겼겠지만, 지금은 상관없어. 뭐, 주인 선택을 못 한다는 문제가 생기긴 하겠지만.]

‘그건 내가 신경을 써야 할 문제는 아니잖아?’

[그렇지. 어차피 주인 선택 안 하는 녀석이니까. 그냥 거부했다고 생각하겠지?]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 없었다.

‘뭐해. 시작하자.’

[좋지!]

기왕 보물전에 온 거 하나는 더 가져가야 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