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70화 (70/210)

070. 후작을 구하다

갑작스러운 왕의 호출이었지만, 진은 짐작 가는 일이 있었다.

‘지식의 해방 때문에 부르는 거 같은데…….’

진이 해먹에 누워 뒹굴거린다고 다른 이들까지 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이번에 합류한 세이라 수녀가 정보를 보내 주었고, 그 정보는 로메른이 확인한 뒤 진에게 알려 주고 있었다.

‘지식의 해방이 왕국을 도발했다고 했지?’

[어. 왕국 도시 곳곳에 벽보가 붙었어.]

지식의 해방이 이렇게나 대놓고 움직였으니, 왕국 측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를 칼로 쓰려는 거 같지?’

[그렇겠지. 지식의 해방과 제대로 싸우고 있는 건 우리밖에 없으니까.]

‘이것도 영감님 덕이라고 해야 하나…….’

영감님은 진을 진정한 성자라 생각하기에, 진이 욕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오해였다.

그것도 아주 큰 오해!

‘후. 배상금 이야기를 들었을 땐 피를 토하는 줄 알았는데…….’

영감님은 우리 성자님은 욕심이 없다며 과감하게 배상금을 거절했다.

그 어마어마한 골드를 단칼에!

‘그 덕에 이런 제안이 온 건가.’

왕에겐 진은 최고의 선택지다.

욕심도 없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심지어 정령사라 산골에 있는 걸 더 좋아하기까지 하니, 밀어준다고 해도 문제 생길 일이 없는 완벽한 인재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번 기회에 후작 처리하자.’

[후작을?]

‘어차피 하려고 했던 거잖아. 안 그래도 준비 중이었었고. 생각해 보면 지금이 딱 좋지 않아?’

[그건 그렇지.]

흡혈귀와 리치가 납치한 후작.

무려 후작급 귀족이었다.

리치 덕분에 후작을 납치할 수 있었지만, 원래라면 진은 물론이고 교단조차 손대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영감님이 국왕을 통해서 일을 진행한 게 아니지.’

영감님도 국왕과 배상금으로 공격하길 합의했을 뿐, 실질적인 처벌을 요청하진 못했다.

‘문제는 그런 양반을 납치했다는 거지.’

진이 성자라고 해도 후작급 귀족을 납치해서 심문 중이라곤 절대 말할 수 없었다.

그럼 정말 큰일이 일어난다.

‘모든 귀족을 적으로 돌리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나마 다행인 건 납치 과정이 완벽했다는 점이었다.

후작이 호위 기사들과 도시 밖으로 나왔을 때 납치한 덕분에, 후작가에서는 후작이 외출 중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여기서 시간을 더 끌면 문제가 생길 거야.’

후작가에서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움직이는 순간부터, 일이 복잡하게 돌아갈 게 분명했다.

‘왕성 가는 길에 마무리하고 가자.’

[알겠어. 그럼, 리치한테 연락해 놓을게.]

기왕 왕성에 가는 거, 선물 하나를 가져갈 생각이었다.

* * *

늦은 새벽.

관문 도시 유카에 특별한 일이 벌어졌다.

쿠우웅-!

도시 사람들은 처음에는 지진이 난 줄 알았다.

“지진이야! 다들 광장으로 나가!”

“집 안에 있지 마! 무너진다고!”

자다가 깬 사람들이 허겁지겁 밖으로 나왔을 때, 놀라운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세상에…….”

“저건 대체…….”

빈민가 쪽에서 신성하고 새하얀 빛이 하늘 높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늦은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주위가 보였던 이유는 저 빛 때문이었다.

덕분에 가장 바빠진 건, 관문을 지키는 경비대 측이었다.

“다들 빨리빨리 움직여!”

“예!”

그들은 빈민가에 들어서자마자 묘한 장면을 목격했다.

“신이시여.”

“저희를 보살피소서.”

“신께서!”

빈민가에 사는 이들이 밖에 나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경비대원들이 주위를 보며 당황하고 있을 때, 경비대장이 입을 열었다.

“한눈 팔지 마라. 우리는 저 빛을 조사한다.”

“예!”

경비 대장의 말에 대원들은 언제 당황했냐는 듯 대답했다.

“다시 출발한다.”

경비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뿜어져 나오는 곳에 도착했다.

낡고 허름한 집.

주위 건물과 다를 것도 없는 빈민가의 건물이었다.

주위 건물과 다른 점이라면 천장이 부서져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선두로 진입한다.”

“예. 대장님.”

그렇게 막 경비 대장이 안으로 진입하려고 하는 순간, 빛이 사라졌다.

“……당황하지 마라. 곧장 진입한다.”

그렇다고 경비대의 일이 변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곧장 내부로 들어왔다.

“…….”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온 것과는 달리, 실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치열한 전투의 흔적만이 보였다.

“대장님. 이쪽에 지하실이 있습니다.”

“이런 집에 지하실이 있다고?”

빈민가 주택에 지하실이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것도 꽤 깊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가자.”

이내 경비대장은 지하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건 지하실이 아니었다.

‘비밀 통로’에 가까웠다.

“대장님. 이쪽에 이런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몬스터의 피군.”

통로의 곳곳엔 몬스터의 피와 전투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도시 내부에 몬스터가 있었단 소린가?’

대장은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이곳과 수도는 지척이었다.

흔적만 봐도 꽤 많은 몬스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게 만약 풀려났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게다가, 남아 있는 흔적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거기서 떨어져라!”

“예!?”

“흑마력의 흔적이다. 이 정도로 끈적이는 기운은…….”

흑마법사가 사용한 흑마력이 통로 곳곳에 묻어 있기까지 했다.

‘대체 이곳에 무엇이 있었단 말인가…….’

그렇게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니, 이번엔 더 특별한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부서진 실험 도구와 타 버린 양피지들은 마치 마법사의 실험실을 연상케 했다.

“실험 도구 쪽으론 다가가지 마라.”

어떤 실험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이 가지 않는 게 현명했다.

“한 명은 나가서 마법사님을 모시고 와라.”

“예. 대장님.”

“우린 안으로 들어간다.”

경비대장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여기서 일어난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요즘 떠들썩하던 지식의 해방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통로의 끝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걸 마주할 수 있었다.

“다들 경계할 필요 없다. 신성력이다.”

몬스터나 흑마법이 아닌, 신성력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그 신성력을 뿜어내고 있는 이는 경비대장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세인트 남작님?”

‘예비 성자’라 불리고, 감찰부의 권한을 지닌 남자.

왕명을 받고 수도로 향하던 그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일까?

“…….”

한데, 세인트 남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대체…….’

그런 그의 시야에 세인트 남작의 오른팔이 눈에 들어왔다. 저주에라도 당한 듯 시커멓게 변한 팔.

그 팔을 보자마자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이 잡혔다.

‘그는 적이 아니다. 이곳까지 혼자 내려온 것이다.’

누구와 싸운 걸까?

그 물음은 쉽게 나왔다.

‘지식의 해방.’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곧장 부하를 불렀다.

“교단 사제를 불러와라. 예비 성자님께서 저주에 걸리셨다고 말하면 될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데려와라.”

“예, 예!”

경비대장은 빠르게 움직였다.

“주위에 적이 있는지 확인해라.”

“예!”

경비대원들이 안쪽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곧이어 경비대원들은 무언가를 찾은 듯 소리쳤다.

“대장님. 안쪽 감옥에 한 사람이 갇혀 있습니다!”

“신분 확인해라!”

경비대장의 말에 곧이어 대답이 나왔다.

“메, 메사니 후작님이십니다!”

“뭐?!”

당황한 것도 잠시 그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지식의 해방이 후작을 납치했고, 세인트 남작이 그것을 구하러 온 것인가!?’

그는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종족을 가두고 착취하던 후작. 그 후작을 구하기 위해 남작이 직접 온 것이다.

‘그를 구하고 싶지 않았을 터인데…….’

그러자 세인트 남작이 가지고 있는 나머지 칭호가 떠올랐다.

예비 성자.

어째서 교단이 이 남자를 예비 성자로 뽑았는지 알 것 같았다.

‘정말 대단하구나.’

그는 떨리는 눈으로 세인트 남작을 바라봤다. 그곳엔 상처를 입은 ‘성자’가 앉아 있었다.

* * *

왕의 집무실.

감찰대장이 왕의 부름을 받고, 유카에서 있던 일을 보고하고 있었다.

“세인트 남작이 공을 세웠군.”

왕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던졌다.

“세인트 남작의 상태는?”

“신성력이 워낙 많아서 큰 위험은 아니라고 합니다. 다만 저주가 너무 강해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저주가 강했다?”

“지하에 시체가 없었는데, 시체를 제물로 바쳐 저주를 사용한 것 같다고 합니다.”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복까진 며칠이나 걸리지?”

“3일 정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최대한 그의 편의를 봐주도록, 회복 전에는 올 필요 없다고 전해주게.”

“예. 폐하.”

왕은 보고서를 넘기며, 다시 한번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후작가에선 메사니 후작이 납치된 걸 알고 있었나?”

“확인 결과, 외출 중인 걸로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때때로 며칠간 떠나는 일이 있어서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다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왕의 입가가 비틀렸다.

“가주가 목적지를 밝히지 않고 때때로 외출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가문에도 숨겨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정말 모르고 있었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철저히 확인하도록.”

지식의 해방과 연관이 있다는 추기경의 말은 지금 이 상황만 봐도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지식의 해방이 후작을 납치한 이유는 뭔가?”

“후작이 비밀 자금을 만들어 둔 것 같습니다. 그걸 캐내려고 했습니다.”

정말 뻔하지만, 그렇기에 확실히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게다가, 꼬리를 잘라 내려고 한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후작이 지식의 해방과 깊게 연관된 것 같습니다.”

“후작은?”

“후작의 저항이 꽤 거셌던 것 같습니다.”

“정보를 말해 주는 순간 죽을 걸 알았던 거겠지.”

“그렇습니다. 한데, 지식의 해방이 극단적으로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한 거 같습니다. 금지된 흑마법을 사용해 정보를 빼내려고 했습니다.”

금지된 흑마법은 지식의 해방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확인하면 확인할수록 증거만 확실해졌다.

“결과만 이야기하도록.”

“한계 이상으로 버텼는지 후작은 백치에 가까운 상태입니다.”

“우리 쪽에서 정보를 빼내는 방법은?”

“안타깝게도 현재 상태에선 어렵습니다.”

“아쉽게 되었군.”

그나마 다행인 건 후작이 살아 있었다는 점이었다.

정보를 빼냈다면 굳이 후작을 살려둘 필요가 없었을 터, 지식의 해방 쪽도 정보를 얻지 못한 게 분명했다.

“흠.”

왕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현재 지식의 해방 쪽 상황은 어떻지?”

“감찰부 전원이 투입된 상태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아직 얻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현재 지식의 해방을 대상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 건 진뿐이었다.

‘진 세인트. 이자를 내 칼로 사용한다면…….’

원래도 칼로 사용하기 위해 부른 것이었지만, 그 평가가 더더욱 상승했다.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진은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이었다. 그것도 자신에겐 위협이 되지 않는 칼.

“원래 준비했던 것보다 더 많은 권한을 줘도 되겠군. 세인트 남작에게 더 큰 권한을 내줄 생각이니 준비하게.”

“명을 따릅니다.”

진에게 더 많은 힘을 실어 줄 수록.

‘지식의 해방은 나보단 세인트 남작을 공격하겠지.’

진 세인트 남작.

그는 자신의 칼이자 방패였다.

왕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3일 뒤 진이 몸을 회복하고 수도에 도착했을 때.

‘……미친. 뭔가 준비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를 준비할 줄은 몰랐다.

“어서 오게. 진 세인트 남작.”

“폐하를 뵙습니다!”

왕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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