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69화 (69/210)

069. 전문가님을 모시다

세이라 수녀와 진은 조금 특별한 곳에 와 있었다.

고해성사실.

보통 사제나 수녀들이 사람들의 고해를 듣는 곳이지만, 오늘은 반대로 수녀인 세이라가 고해를 하는 쪽에 앉아 있었다.

“저를 찾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한데, 전 특별할 게 없는 일개 수녀일 뿐입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순수한 얼굴로 말했다.

그 모습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전혀 당황하질 않네?’

무려 성자가 그녀를 콕 집어서 찾아왔는데, 그녀는 평온해 보였다.

‘루나, 네 말이 맞는 거 같은데?’

세이라 수녀를 찾아온 건, 루나가 알려준 기억 때문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세이라 수녀는 꼭 필요한 ‘인재’였다.

[세이라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런 거 같네.’

아니.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잘못이라고 생각했다면 애초에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신께서 저를 당신께 보내셨습니다.”

“……신께서요?”

굳이 여기서 말을 빙빙 돌리면서 그녀와 수 싸움을 할 필요가 없었다.

진은 성자였다.

진이 하는 일이 곧 신의 뜻이다.

“절 당신에게 보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진의 얼굴만 빤히 바라봤다.

‘먼저 이야기해 봐라, 이거지?’

어차피 이쪽은 세이라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고 있었다.

“당신은 교단의 힘을 이용해 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진의 말에도 그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전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모두를 위해 새로운 방법을 선택했을 뿐입니다.”

“누군가는 당신에 행동으로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죄를 범한 이들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들은 죄인입니다.”

“그걸 우리는 ‘사적 처벌’이라고 합니다. 교단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선을 행하고 세상을 위해 살아가는 사제들이 보기엔, 세상은 오물투성이다.

하지만 세상을 위한답시고 사제들이 사적 처벌을 남발한다면 세상은 엉망이 되고 만다.

‘가장 부패하고 더러운 건 귀족들이니까.’

사적 처벌을 경계하는 건, 사제들의 폭주를 막기 위한 장치였다.

“당신이 무슨 일은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귀족가의 재산을 훔쳐 빈민들과 평민들을 위해 사용하고 있을 겁니다.”

진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체 그걸 어떻게…….”

[당연한 일이에요. 세이라 수녀는 정말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했어요. 나중에 밝혀진 것도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어요.]

그렇기에 지금은 이런 개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진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아무리 숨겨도 신께는 숨길 수 없는 법입니다.”

“신께서 제가 행한 일을 보고 있으셨단 말인가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진에게 물었다. 진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신께선 모든 걸 보고 계십니다.”

“……신이시여.”

이제부터 진짜 본론이었다.

“대체 이런 멍청한 짓을 왜 하시는 겁니까?”

“……예?”

생각지도 못한 말 때문일까. 그녀는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메이 백작가의 따님도 가담하고 있죠? 괴도 세인트가 그분인 걸 알고 있습니다.”

“…….”

세이라 수녀가 직접 도둑질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목표물을 정해 줄 뿐, 실제 움직이는 건 한 귀족가의 여식이었다.

‘괴도가 뭐야 괴도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그래도 나중에는 대륙급 괴도가 돼요. 괴도 세인트는 부패한 귀족을 세상에 밝히고 그들의 재산을 훔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줬어요.]

지가 홍길동이야?

천사소녀 네티야?

아주 어처구니가 없었다.

“근본적인 것부터 물어보겠습니다. 훔쳐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준다고, 세상이 바뀝니까?”

“그게 무슨…….”

그녀가 반박하려고 할 때, 진이 이어서 말했다.

“훔쳐 간 만큼 주민들은 더 착취당할 겁니다. 혹 부패한 귀족을 고발한다고 해도, 힘이 있는 귀족이라면 이를 덮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럼 힘이 약한 귀족만을 노릴 겁니까?”

“저희의 이런 작은 움직임이…….”

작은 움직임?

“작은 움직임은 그냥 작은 움직임입니다.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럼 가만히 있으란 말입니까!”

그녀의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 재능이 있는데 왜 가만히 있습니까? 자고로 신을 모시는 자는 자신의 능력을 세상을 향해 사용해야 하는 법입니다.”

“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억울할 것이다.

저 도둑질이 그녀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행동은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어요. 괴도 세인트는 영웅으로 칭송받았으니까요.]

실제로 그녀의 행동이 세상을 작게나마 바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진에게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다.

“범죄와 죄로 선의를 가져온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당신이 행한 일은 필연적으로 혼란을 동반합니다. 그 혼란은 고스란히 백성들의 고통으로 이어질 거고요.”

그녀는 분하다는 듯 아랫입술을 깨물고 진을 바라봤다.

“왜요? 화가 납니까? 당신을 보고 있는 전 더 화가 납니다. 당신의 알량한 선의와 자기만족을 위해, 다른 자가 죄를 짓고 백성들은 고통스러워졌습니다!”

“그, 그건!”

그녀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채찍질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대는 드높은 재능과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고결한 마음이 있습니다.”

“…….”

“그렇기에 신께서 저를 보내신 겁니다. 길을 잘못을 든 당신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 주기 위해서.”

이젠 미래를 보여 줄 차례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전부 제가 할 수 있습니다. 부패한 귀족을 찾아 처벌할 수 있는 ‘감찰부’의 권한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세상을 더럽히는 귀족을 처리할 수도 있고.

“게다가 제 영지엔 수많은 드워프들과 노움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드는 무구를 팔면 훔친 것보다 훨씬 많은 골드가 제 영지에서 움직일 겁니다.”

골드로 할 수 있는 일은 이쪽도 할 수가 있다.

“전 왕국의 체계를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기도 하며, 세상을 구할 성자의 위치에 있기도 합니다.”

진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로메른에게 신호를 보냈다.

‘후광 켜!’

진의 머리 뒤로 후광이 떠올랐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잠시 후.

그녀는 진의 손을 붙잡았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세이라 수녀가 진에게 합류했다.

* * *

세이라 수녀.

그녀가 왜 진에게 필요했을까?

[그녀의 분석력과 통찰력을 정말 놀라워요. 세인트 괴도가 영웅으로 칭송받았지만, 진짜 대단한 건 그녀였어요.]

‘왜? 물건을 훔치는 건 도둑이 잘해야 가능한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막상 전체를 보면 그렇지 않아요.]

‘그럼?’

[괴도 세인트는 언제나 부패한 귀족 가문의 재산만 훔쳤어요.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사전 조사가 그만큼 철저했다는 뜻이야?’

[맞아요. 게다가 한 번도 들키지 않으려면 철저한 계획까지 필요해요.]

이것을 종합해 보면 세이라 수녀의 능력이 보이게 된다.

‘조사 능력이 탁월하다는 거네.’

[맞아요. 통찰력과 조사 수완이 정말 좋아요. 지금도 그녀 나름의 정보원들이 있을 정도니까요.]

‘정보원? 신도들이 도와주고 있는 거야?’

[예. 맞아요.]

세이라 수녀는 정보 단체의 수장이라고 봐도 좋았다.

무언가를 찾고, 조사하는 데 특화된 인물. 그런 인물이 조사한 걸 확인할 인력(괴도)까지 데리고 있었다.

‘딱이네.’

[맞아요. 지금 상황에서 그녀만큼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렇지.’

교단에 속해 있으니 배신할 위험마저 없는 정보 단체.

진이 이곳까지 찾아와서 등용할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그리고 인재를 얻었으면 곧장 써먹어야 하는 법.

“세이라 수녀님.”

“예. 성자님.”

“후작가에서 이번에 일어난 일을 알고 계십니까?”

진은 서류 하나를 그녀에게 건넨 뒤 상황을 빠르게 설명했다.

“후작가에서 지속적으로 빠져나간 골드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추적이 순조로웠지만, 중간에 끊긴 덕분에 흡혈귀 측에선 더는 추적하지 못했습니다.”

흡혈귀들이 무능해서 찾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들이 찾지 못할 정도로 지식의 해방이 뛰어났을 뿐이다.

“그걸 찾으면 되겠습니까?”

“예. 찾아내기만 한다면 ‘지식의 해방’의 꼬리와 막대한 골드를 회수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신 이유를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녀는 진에게 첫 번째 임무를 받자마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덕분에, 제일 귀찮은 걸 맡길 사람이 생겼다.

‘와. 내가 찾아야 하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네. 역시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최고야!’

진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영지로 향했다.

* * *

대륙의 어딘가.

로브를 깊게 눌러쓴 이들이 원탁에 모여 있었다.

“지식의 해방을 위해.”

가장 상석에 있는 이가 입을 열자.

“지식의 해방을 위해.”

나머지 이들이 똑같이 대답했다.

마치 하나의 의식과도 같은 행동처럼 보였다.

잠시 후, 상석에 있는 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최근 들어 무너진 계획만 해도 3개가 넘는다.”

“죄, 죄송합니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한데, 상석에 자리한 이는 크게 개의치 않는 듯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너희들이 죄송할 일이 아니다. 계획이 줄줄이 실패한 덕분에 이쪽은 더 재미난 상황이 펼쳐졌으니.”

그의 얼굴엔 드물게도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본단에서 명이 떨어졌다.”

“보, 본단에서 말입니까!?”

주위가 술렁이고 있는데도, 상석에 앉은 이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의 영역인 라이탄 왕국에서 2개의 상급 계획과 1개의 중급 계획이 실패했다. 본단이 움직이는 건 당연한 일이지.”

본단이란 단어는 그들에게 공포나 다름없는지, 그를 제외하곤 모두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본단에서 내린 명은 간단하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우리를 의심하는 이들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 줘라.”

“……예?”

원탁에 앉아 있는 한 남자가 자기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우리는 더 이상 숨지 않는다.”

“모든 지식의 해방이 일어나는 겁니까?”

상석에 앉은 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습을 드러내는 건 오직 라이탄 왕국뿐이다.”

“그렇다면…….”

“그래. 더는 웅크린 채 뒤에서 움직일 필요가 없다.”

“드, 드디어!”

지식의 해방은 힘이 없어서 숨어있는 게 아니었다. 계획을 위해 숨을 죽인 채 움직일 뿐이었다. 한데, 그 계획이 누군가로 인해 부서지기 시작했다.

라이탄 왕국에선 더는 숨어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억눌러 놨던 욕망을 맘껏 펼쳐라. 세상에 우리의 힘을 보여 주는 것이다.”

“지식의 해방을 위해서!”

“가라. 우리가 일어났음을 세상에 알려라.”

웅크리고 있던 괴물들이 풀려났다.

* * *

며칠 뒤, 왕국 곳곳에 묘한 벽보가 걸렸다.

<지식의 해방을 위하여!>

누가 언제 붙였는지 알 수 없는 벽보는 지금까지 숨어있던 ‘지식의 해방’이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덕에, 오랜만에 쉬고 있는 진에게 한 통의 서신이 날아왔다.

“……왕성으로 오라고? 아, 오랜만에 쉬는데.”

진은 해먹에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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