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63화 (63/210)

063. 독점의 힘

세인트 조직의 영역으로 한 무리의 드워프들이 몰려왔다. 그들 손에는 무기인지 연장인지 모를 물건들이 쥐어져 있었다.

‘이러니까 진짜 깡패 같네.’

진이 녀석들을 빤히 바라보자, 보스로 보이는 녀석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질 수 없지.’

진도 녀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중간쯤에서 만난 둘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역시 보스는 보스인가.’

얼굴 곳곳에 난 칼자국.

우락부락한 근육과 매서운 눈빛.

작은 키임에도, 보스라고 불리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은 외모였다.

그런 그에게서 쇠를 긁는 듯한 거친 소리가 흘러나왔다.

“네가 세인트의 보스인가.”

“그래.”

“인간일 줄이야…. 좋군.”

녀석은 그렇게 말한 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몸을 움직였다.

진은 곧장 방어 자세를 취하고, 반격을 준비…….

‘어?’

용암파의 보스가 진의 앞에 넙죽 엎드려 있었다.

“이게 뭔…….”

진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녀석이 속사포같이 입을 열었다.

“아이고, 저 망측한 놈들이 마치 반란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공격하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데려왔습니다. 전 항복입니다! 충성입니다! 용암파를 통으로 드리겠습니다!”

묵직하고 거친 목소리는 사라졌다. 그야말로 간신배와 같은 얇은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보, 보스!?”

“이게 대체 무슨!”

“아, 암습인가!?”

“아니지. 마법이다!”

용암파 조직원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한데, 더 기가 막히는 일이 펼쳐졌다.

“이놈들! 어딜 우리 세인트 님의 영역에 쳐들어온 것이냐!”

보스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조직원들에게 소리쳤다.

“보, 보스?!”

“보스는 무슨 보스! 내 보스는 오직 이분뿐이다!”

그러면서 진을 가리켰다.

상상초월 지하세계.

‘그러니까 지금 보스가 조직을 배신한 거지?’

조금 늦게 이해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급발진이었다.

“헤헤, 보스! 여기만 정리하시면 외곽은 전부 보스의 영역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간신배 같을까.

‘와. 심지어 틀린 말도 아닌데, 묘하게 신뢰가 안 가네.’

그런 진의 생각을 읽은 검성이 입을 열었다.

[저런 자를 간신이라 하네. 언제든 뒤통수 칠 수 있는 저런 자를 조심해야 하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쉽게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저자는 죽이는 게 나을걸세.]

검성의 입에서 죽이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진도 일부는 동의했다.

다만…….

‘여기선 무조건 검성이 한 말의 반대로 해야 하는 곳 아닌가?’

[오. 설득력 있는데?]

[그, 그게 무슨 소린가!? 이건 농담이 아닐세!]

일단 받아 주고,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죽이면 될 일이다.

진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주제 파악이 빠르군.”

“예. 보스! 제 유일한 장점입니다! 주제를 아니까 외곽으로 나와서 제가 거대 작업장까지 꾸린 거 아니겠습니까?”

넉살 하나는 끝내줬다.

“이름은?”

“마그마입니다.”

“받아 주지.”

“충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그 녀석을 받아 주자마자 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마그마를 뒤따라 온 용암파의 조직원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진의 앞에 넙죽 엎드린 것이었다.

“보스! 원래 저희가 마그마 자식을 담그고 조직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의 보스는 하나뿐입니다!”

“세인트 만세!”

“우리는 세인트 조직원이다!”

챙겨온 전투용 구슬이 무색하게 외곽 점령은 허무하게 끝났다.

‘……진짜 개판이네.’

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마그마의 처신은 놀라웠다.

“우린 싸우지 않고 세인트 조직이 되었다.”

“그게 무슨…….”

“너희는 이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만, 난 세인트 조직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내가 항복하자고 했으면 할 거였나?”

“그건 아니긴 한데…….”

“난 보스로서 최고의 선택을 한 것일 뿐이다.”

“아. 또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긴 하지만…….”

“보스는 인간이다. 드워프와 달리 오래 살지 못하지. 50년만 버티면 이 조직은 우리 것이 되는 것이다!”

“미래를 보신 거였군요!”

조직원들과 호로록 화해하더니.

“그대가 보스의 오른팔인가?”

“그런데?”

“경계하지 말게. 난 왼팔이 되고 싶을 뿐이니까. 그대의 자리는 존중하지. 난 마그마다.”

“……난 초롱이야. 오른팔은 넘보지 마.”

“하하. 걱정하지 마라. 난 이 자리면 족하니.”

녀석은 빠르게 진의 측근이 되었다.

오른팔인 노움에게는 없는 힘과 추진력. 확실히 거대 조직을 운영했던 녀석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그 결과, 이런 일이 펼쳐졌다.

“들어와라.”

진의 부름에 노움이 아닌.

“아이고, 보스의 왼팔 마그마가 왔습니다!”

마그마가 왼팔을 자청하며 들어왔다.

‘이건 대체 뭐 하는 놈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유능한 녀석이긴 했다.

주제 파악이 빠른 게 장점이라더니.

‘빨라도 너무 빠르잖아…….’

놀라울 정도였다.

아무튼, 쓸 만한 인원이 생겨서 나쁠 건 없었다.

“다음 단계로 간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철괴를 비롯한 모든 소재의 가격을 올린다.”

“오! 현명하신 결정입니다! 도시 중앙에 있는 4개의 조직은 서로를 견제하느라 움직이지 못할 터이니, 이쪽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무리 봐도 간신인데, 마그마는 유능하긴 쓸데없이 유능했다.

녀석은 진의 계획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쓸만하군.”

진도 녀석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쓸 만하단 말에 녀석은 히쭉히쭉 웃었다.

흉악한 녀석이 저렇게 웃으니 기괴했다.

“웃지 마라.”

“넵!”

그때, 진의 머릿속엔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탁월한 생존력과 눈치.

이걸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

바로 전령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줄타기가 중요했는데, 이 녀석은 그런 면에서 딱 어울렸다.

* * *

지하도시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소재 가공비용이 상승합니다.>

신에게 물건을 받는 이 도시에서 어떻게 원자재의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단 말인가?!

모두가 같은 의문을 떠올렸지만, 이미 세인트 조직이 원자재 가공을 독점하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구매는 불가능한가?”

“그렇습니다. 외곽이 세인트 조직에 의해 통합되었습니다.”

“우리 쪽에서 직접 원자재 가공을 하는 방법은?”

“그것이……. 외곽에 하청을 주고 그들을 쥐어짜는 게 이득이라 저희에겐 설비가 전혀 없습니다.”

“……아예 새로 만든다고 하면?”

”처음부터 다시 준비해야 해서 시간은 물론이고 막대한 비용까지 발생할 겁니다. 게다가 대장장이들의 숙련도도 차이가 있을 겁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이 도시에서 원자재 가공은 가장 천대받는 기술이었다.

한데, 하루 만에 달라졌다.

“비용을 따져 보면?”

“가격이 올랐다지만 여전히 사 오는 게 쌉니다.”

이게 바로 독점의 힘이었다.

“우리 쪽 손해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다만, 계속 가격을 올릴 땐…….”

“죽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까진 올리지 않겠지. 손해는 대장장이들 일당으로 메꾸도록 여태까지 그만큼 받아먹었으면 조직과 아픔을 함께해야지.”

“예. 알겠습니다.”

이러한 대화는 도시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그들을 하나같이 같이 결론을 내놓았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 잠자코 있던 건 아니었다. 불만을 표하는 조직들이 있기도 했다.

“너희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당장 가격을 내려라!”

“우리가 정녕 무력을 동원해야……!”

가격 상승을 정식으로 항의한 조직이 두 곳 있었다.

‘칼라’와 ‘카멜레온’.

마그마는 그들을 잘 달래서 돌려보낸 뒤, 진에게 호다닥 달려왔다.

“보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뭐,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불이익을 줄면 될 일. 그쪽엔 더 비싸게 팔아라.”

“차별을 주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앞으로 칼라와 카멜레온 쪽엔 더 비싸게 팔겠습니다.”

이 노골적인 차별에 그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놀랍게도 가만히 있었다.

“보스. 섣불리 움직이면 다른 조직들이 움직일 겁니다. 녀석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당하고만 있자?”

“방법이 없습니다.”

불이익을 당한 조직들은 외곽을 치고 싶었지만, 불이익을 받지 않은 조직들이 뒤에 있었다.

섣부르게 공격했다가는 본진이 털릴 수도 있는 상황.

절묘한 균형이 이뤄진 덕에 두 조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보스! 정말 놀라우신 판단입니다!”

마그마는 진을 칭송했지만, 진은 계획이 완벽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닌 걸 잘 알고 있었다.

중간에서 마그마가 활약해 주었기에 계획이 생각대로 진행된 것이다.

‘저 녀석 쓸데없이 쓸 만하네.’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는데, 칭찬은 한번 해 줘야 하는 법.

“수고했다.”

진이 적당히 칭찬해 주자.

“보, 보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녀석은 격하게 반응하며, 눈물마저 흘릴 기세였다.

‘와. 저게 연기인지 진짜인지 구별이 안 되네.’

그렇게 마그마에게 중간보고를 듣던 와중, 노움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보, 보스! 중앙에서 호출이 왔습니다! 제사장께서 보자고 하십니다!”

기다리던 소식이 드디어 도착했다. 리치가 미끼를 물었다.

* * *

리치.

육체를 버리고 영생을 택한 흑마법사.

고작 육체만 버리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리치가 되면서 버려야 할 건 육체만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자에서 언데드가 되는 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리치가 되면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인간으로서의 기억과 감정.

그것들이 서서히 희미해진다.

영생을 추구했지만, 어째서 영생을 추구했는지 알 수 없게 되고.

목적이 있긴 하지만 어째서 그 목적을 원했는지 기억나지 않게 된다.

그야말로 괴물이 되어 버린다.

이 지하도시에 있는 리치도 다를 바 없었다.

‘사념을 모은다.’

사념을 모은다는 목적이 있지만, 어째서 모으는지 기억이 희미했다.

‘지상에 있는 인간을 죽인다.’

복수를 해야 한다는 강렬한 감정이 남아 있지만, 어째서 인간을 죽여야 할지 그 기억이 희미했다.

‘동족들. 가증스러운 인간.’

그 희미한 기억 속에 이유가 남아 있긴 했지만, 이유는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리치는 멈추지 않았다.

‘모은다. 죽인다.’

자신이 리치가 될 때 절대 잊지 않기 위해 남겨 두었다.

이유도 모르고, 기억도 없지만, 그는 무조건 이 일을 해낼 것이다.

‘존재 이유.’

그 이유야말로 리치가 된 이유이자 목적이었으니까.

이렇게 보면 리치는 고장이 난 로봇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감정과 기억을 잃어버린 대신.

이성과 흑마도의 지식을 얻었다.

수백 년간 한 목적을 위해 한결같이 달려왔다.

리치가 된 그는 유능했고 뛰어났다.

그 증거가 바로 지하 도시였다.

그런 리치가 마법진을 보며 생각에 빠져 있었다.

‘사념이 늘었다.’

외곽의 사념이 줄어든 대신, 중앙에서 엄청난 양의 사념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가 마법진의 한쪽을 건드렸다.

‘세인트 조직.’

그는 곧장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냈다.

외곽보다는 편하게 지내던 중앙.

그곳이 세인트 조직에게 쥐어짜이며, 엄청난 사념이 발생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다.’

장기적으로 보면 세인트 조직의 방법은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념이 거의 다 모인 지금이라면…… 나쁘지 않다.’

마도서는 거의 다 완성된 상태였다. 지금은 장기적으로 사념을 뽑아낼 방법이 아닌, 단기적으로 사념을 잔뜩 뽑아낼 방법이 필요했다.

‘게다가 저것도 유용해 보인다.’

리치의 시선이 빨간색 구슬에 닿았다.

‘저걸 이용해 사념을 정제한다면…….’

나쁘지 않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거 같았다.

이내 그는 생각을 정리하자마자 곧장 지시를 내렸다.

“세인트 조직의 보스를 불러라.”

“예. 제사장님.”

그렇게 둘의 만남이 성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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