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 깡패가 되는거야
오랜 시간 지하에 갇혀 도시를 이뤘다곤 하지만, 동굴 생활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한데,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은 전혀 달랐다.
‘이건 그냥 도시잖아?’
석조 건물들이 지하에 빼곡했다.
이곳은 지하라는 걸 빼면, 일반적인 도시와 그다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건물들만 있는 건 아닌 거 같고.’
도시 곳곳에 있는 굴뚝에선 연기가 계속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 음. 이건 상상과는 좀 다른데?’
동굴에서 착취당하는 이종족.
감독관들의 채찍을 맞으며 비참하게 살아가는 이들.
이런 걸 상상했는데, 그런 상상과는 달리 문명이란 게 존재하는 일반적인 도시처럼 보였다.
‘잠깐만.’
그런 발전된 모습을 봐서일까.
진의 머릿속엔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거 그냥 벽 부수면 알아서 도망치는 거 아니야? 그럼, 난리가 날 리도 없잖아.’
만약에 도망치다가 잡힌다고 해도 상관없다.
후작가의 감시가 한층 강화될 테고, 여기서 문제가 터지려야 터질 수 없게 될 것이다.
‘해결 속도만 놓고 보면 이게 제일 빠르고 간단하지 않아?’
진의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검성이었다.
[어찌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대가 아니면 이들을 구할 사람이 없단 말일세! 지하로 숨어드는 것도 도왔건만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해결책을!]
검성은 진심으로 분노한 듯 소리쳤다.
[그건 안 돼. 애초에 그렇게 간단했으면 벽을 부수기 쉬운 밖에서 벽을 부쉈을 거야.]
[그렇지. 말 잘했네! 로메른 그대는 역시 정의를 위해…….]
검성 영감의 말을 로메른이 잘랐다.
[뭐, 그런 정의 같은 것 때문은 아니야. 그게 불가능하니까 안된다는 거야.]
[자, 자네!]
검성은 배신당했다는 듯 목소리가 떨렸지만, 이미 검성의 말을 듣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벽이 뚫려도 녀석들은 나가지 않아. 아니. 나가지 못해.]
‘이유는?’
[여기 이상하지 않아? 아무리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너무 발전했잖아.]
확실히 그랬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이렇게 도시로까지 발전할 수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니었다.
‘그럼?’
[일단, 이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해야 돼.]
‘이해?’
[일단, 이 도시가 얼마나 오래됐는진 대충 알고 있지?]
‘어. 몇백 년 됐다며.’
이곳은 정말 오래전에 만들어진 곳이라고 들었다.
[맞아. 처음 이곳에 갇힌 이들은 대부분 죽고, 이 지하에서 태어난 이들이 대부분이야. 여기서 태어난 이들에겐 이곳이 세상 전부나 다름없어.]
대충 무슨 이야긴지 이해가 됐다. 지구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갈라파고스화.’
고립된 곳은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을 한다는 말이다.
이곳에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가지 않는다고?’
[그것도 이유 중에 하나일 뿐, 다른 이유도 있어.]
하긴, 모든 일이 이유 하나 때문에 명쾌하게 설명되기는 힘든 일이다.
[오래된 만큼 이곳은 좀 독특한 방법으로 계급이 나뉘기 시작했어.]
후작이 지하로 보내는 식량과 재료들을 독점하는 ‘지배층’.
장인들을 관리해서 지배층과 거래하는 ‘중간 상인’.
재료들을 가공해서 물건을 만들어내는 ‘장인’들.
이렇게 3가지로 계급으로 나뉘었다.
‘지배층이란 녀석들은 강해? 용케 이 상황을 유지하네.’
[여러 가지 의미로 강해. 뭐랄까 교단을 향한 존경심과 귀족의 권위를 모두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돼.]
‘그게 가능해?’
[가능해. 여기있는 녀석들은 재료와 식량을 신에게서 받는거라고 생각하니까.]
‘……그게 뭔 개소리야?’
지상에서 보내준 물건을 신이 보내준 물건으로 생각한다니.
그게 말이 되나?
잠시 생각하던 진은 이내 생각을 바꿨다.
‘아니지. 이놈들 똑똑한데?’
[그치?]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배층은 신과 소통하는 ‘제사장’이었으며, 도시를 지배하는 ‘영주’였다.
제정일치의 권력을 가진 자.
제사장이 없으면 그들은 굶어 죽는다. 지배층을 밀어내고 싶어도 밀어낼 수 없게 된다.
물론, 모든 게 설명이 된 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게 설명되지 않았다.
‘지배층 놈들은 이딴 짓거리를 도대체 왜 하는 거야?’
알량한 권력 때문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했다. 그 권력을 위해 수백년간 여기에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 구조면 뭔가 분노가 터질 것도 없어 보이는데?’
진은 노예들의 분노가 터져서 문제가 생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에 반전이 숨어 있어.]
‘반전?’
[꽤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은 거 치곤 장인들을 일부러 쥐어짜고, 절망을 권장해.]
‘일부러 그런 일을 한다고?’
[어. 일부러 그렇게 해. 아까 말했던 중간 거래상들은 말이 중간 거래상이지 뒷골목에 깡패놈들이나 다를 게 없어.]
‘미친…. 대체 뭐 때문에?’
[착취하고 쥐어 짜내서, 절망이 흘러나오게 하는 게 목적이야. 여긴 일종의 부정적 감정을 뽑아내는 작업장이나 마찬가지야. 그런 상황에서 벽이 뚫렸다고 애들을 보내주겠어?]
이 도시 자체를 착취하기 위해 ‘갈라파고스화’를 유도한 것이다.
사는 이들은 탈출할 생각이 없고, 이곳의 지도층 또한 탈출을 두고볼 리 없었다.
‘이해했어. 이게 벽을 부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네.’
[그렇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게다가 부정적인 감정을 사용하는 이들은 자신의 먹이를 쉽게 놓치지 않는다.
‘여길 만든 건 흑마법사지?’
[그냥 흑마법사가 아니야. 리치가 이곳의 지배자야.]
‘……리치?’
어처구니가 없었다.
‘리치’가 제사장이라니.
[어. 그 녀석은 그 부정적인 감정을 모아서 ‘마도서’를 만들려고 하는 거야.]
‘그게 가능해?’
[어. 안 될 건 없지. 나만 해도 비슷한 방식으로 마도서를 만든 적이 있으니까.]
‘……그 물건이 튀어나오면 문제가 된다는 거지?’
[어. 사상 최악의 마도서를 가지고 있는 리치가 시체 대군을 이끌고 후작가 영지를 뚫고 올라온다고 생각해 봐. 그것도 대장간이 있으니 완전 무장한 시체들이야.]
단순히 혼란스러운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멸망의 한 사건이 된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흠. 그럼, 지배층 쪽은 섣불리 건드리기 힘들 거 같고….’
그렇다고 진이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연히 ‘장인’ 그룹에도 속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뿐이다.
‘중간 상인이 되어서 장인 계층을 포섭해야 하겠네.’
[바로 그거야. 진. 우린 조직을 만드는 거야!]
‘조직?’
[말했잖아. 여기 중간 상인은 깡패나 마찬가지라니까.]
‘그러니까 나보고 깡패가 되라는 거야?’
[바로 그거야!]
하다 하다 이젠 깡패가 됐다.
* * *
처음엔 뜬금없이 깡패가 되라고 해서 대체 이게 뭔 상황인가 싶었는데, 며칠 이 도시를 경험해 보니 이해가 됐다.
콰아앙-!
진의 주먹을 맞고 노움 하나가 벽에 처박혔다.
“이제 네가 관리하던 대장간은 나 세인트의 소유다.”
진의 말에 노움은 상처입은 몸을 억지로 움직여 진을 향해 조아렸다.
‘하. 진짜 미친 도시라니까.’
이곳에서 폭력에 의한 ‘공포’는 필수다. 이미 확인을 끝마쳤다. 이곳은 순수한 선의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세인트 남작. 이번엔 날 믿어보게.]
검성 양반의 저 말에 낚여서, 이 도시에 선의를 전파하려고 해봤다.
[선의를 가지고 다가가는 걸세. 결국, 성군이 가장 나라를 번성시키는 것일세!]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성자’ 처음엔 느낌으로 다가갔다.
한데, 그 결과가 참 걸작이었다.
“이딴 뻔한 수작에 놀아날 것 같으냐!”
“내게 호의를 베풀 수 있는 건 우리 보스뿐이다!”
“등신이군. 어차피 뒷골목에서 죽을 거 나한테 죽어라.”
오히려 욕설과 함께 집요한 공격을 받았다.
[이, 이 미치광이들이! 어찌 선의에 이런 식으로 반응한단 말이냐!]
검성마저 학을 뗄 정도였다.
완벽한 무법도시.
선의가 오히려 위협이 되는 곳.
그다음부터 진은 노선을 변경했다. 선의 대신 폭력과 공포를 준비했다.
그 결과 많은 것이 달라졌다.
“대답은?”
“추, 충성을.”
진은 한쪽 발을 굴렀다.
쿠-웅.
그 순간, 쓰러져 있던 노움의 몸에 빨간 기운이 어리더니 곧이어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 이것은”
“내 호의다.”
“앞으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녀석은 마치 포상이라도 받은 것처럼 목을 높여 소리쳤다.
“우린 외곽 지대에 있는 대장간을 통합 것이다. 대규모 세력이 붙지 않은 대장간을 뽑아 보도록.”
“예. 보스. 최대한 빠르게 준비하겠습니다!”
진이 노리고 있는 건, 외곽지대에 있는 소규모 대장간이었다.
이쪽을 관리하는 녀석들은 대체로 소수 정예를 표방하며 대장간을 관리했는데.
‘말이 좋아서 소수 정예지.’
그냥 동네 양아치 무리라고 보면 딱이었다.
“보스. 일단 주변 대장간을 확인했습니다.”
“가자.”
“예. 보스!”
그 뒤로는 같은 일이 이어졌다.
쾅-!
진이 대장간에 들어가면 사방으로 노움들이 날아다니고.
잠시 후, 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답해라.”
“추, 충성을.”
그 다음부터는 똑같았다.
녀석들을 치료시키고, 이내 다음 대장간을 향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대장간은 진이 움직였지만, 이젠 진은 혼자가 아니었다.
“보스. 여긴 저희가 정리하겠습니다.”
“상처는 걱정말고, 최대한 빨리 끝내도록.”
“그걸 또 해주시는 겁니까?”
그저 치료일 뿐이지만, 녀석들에겐 이게 일종의 포상인거 같았다.
“앞으로 너희들에겐 상처는 없을 것이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보스!”
그 다음엔 진도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가자! 우린 무적이다!”
“무적!”
“너 죽고, 나 죽자! 난 살아난다!”
상처입는걸 두려워하지 않는 광전사들이 만들어졌다. 둘은 똑같이 양아치였지만, 한쪽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미, 미친놈들아!”
“크하하! 보스께 머리를 조아려라!”
피를 흘려도 물러서지 않는 조직원들. 그 모습에 질린 녀석들은 얼마지나지 않아, 진 앞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쿠-웅!
진이 발을 구르자 모든 이들이 회복됐다.
“이, 이건!?”
“내 몸이 회복되다니!”
적들은 깜짝 놀랐지만, 진의 조직원들의 얼굴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보스께서 보여주시는 호의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호의가 되는진 모르겠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적이었던 녀석들은 감탄을 터트렸다.
“이런 자비라니!”
“정말 대인배이십니다!”
“영원히 큰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새로운 보스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으로 가자.”
“예! 보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양아치 부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물론, 진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 이놈들 왜 이래?’
그냥 주는 선의는 끔찍하게 싫어하면서 공포로 지배한 뒤 호의를 베풀면 저런 반응을 보였다.
이 기묘한 도시는 적응이 된 것 같으면서도 때때로 이렇게나 낯설었다.
“부수고 뺐어라. 모두 우리 것이다.”
물론, 진은 잘 적응하고 있었지만.
“예. 보스!”
그렇게 외곽에 있는 대장간이 술술 넘어오기 시작했다.
* * *
대장간을 점령하고 진은 바로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우리도 중앙의 거대 대장간처럼 거대 작업장을 만든다. 대장간을 뜯어서 한자리에 모아라.”
대장간을 뜯어 거대한 작업장을 만들었다. 원래라면 한참이나 걸릴 일이었다.
하지만, 이쪽은 회복을 시킬 수 있었다.
“회복했는데 잠이 필요한가?”
“아닙니다. 보스!”
“회복했는데 휴식이 필요한가?”
“아닙니다. 보스!”
“그럼 뭐 하고 있는 거지?”
“예…… 보스?”
“일해라.”
“예. 보스!”
그 덕에 도시 외곽에 묘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외곽에 지독한 녀석이 자리를 잡았다던데?”
“장인들을 재우지도 않고, 휴식시간도 주지 않는다던데?”
“뭐?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모양이야.”
“그렇게 훌륭한 방법이 있다니….”
“그덕에 외곽에도 거대 대장간이 차려지는 거 아니냐고 난리도 아니야.”
“훌륭한 보스군.”
이 동네에서 지독한 놈은 칭찬을 받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