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59화 (59/210)

059. 이게 나오네

짝퉁 세계수는 무사히 엘프들의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의 나무께서 마을에 오셨다!”

“어머니의 나무시여!”

“우리를 안아 주소서!”

엘프들의 열렬한 환호가 쏟아졌다. 한데, 조금 특별한 환호도 있었다.

“성자님! 감사합니다!”

“어머니의 나무께서 선택하신 성자님! 정말 감사합니다!”

진에게도 환호성이 쏟아졌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진의 상반신이 나무 위쪽에 튀어나와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배 앞에 붙어 있는 ‘선수상’과 비슷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할 순 없지.’

원래 일을 했으면 티를 내야 하는 법.

뭔가 겉으로 보여지는 게 있어야 뭔가 했다는 걸 확실히 보여줄 수 있다.

[진짜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야?]

그 발상은 로메른조차 감탄을 터트릴 정도였다.

‘그럼, 정산을 시작할까?’

이젠 고생한 보람을 느낄 차례였다. 괜히 엘프 마을에 짝퉁 세계수를 옮긴 게 아니었다.

이곳에선 챙길 수 있는 것들이 가득했다.

[좋지!]

로메른이 대답하자마자 곧장 다시 입을 열었다.

[오! 엘프들이 준비했다는 게 장난이 아니야. 대지의 기운이 엄청난데?]

‘그래?’

그 순간, 진의 몸으로 포근한 기운이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거야?’

[어. 어머니의 나무가 나타날 때를 대비해서 대지의 기운을 모아 놓은 거 같은데 그 양이 엄청나.]

‘대지의 기운?’

[워낙 정순해서 영기(靈氣)대신 사용할 수 있을거 같은데?]

‘오. 몸 개조하는 그 기운 대신?’

오랜시간 어머니의 나무를 위해 준비한 ‘정수’나 마찬가지였다. 그 기운이 얼마나 정순한지 ‘영기’ 대신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 이 좋은 걸 나무에 흡수시킬 순 없는 노릇이지. 줄 테니까 팍팍 먹어!]

‘그래.’

그 순간, 엄청난 에너지가 진의 몸으로 쏟아졌다.

‘미, 미친…….’

한데, 생각한 것보다 더 엄청났다.

[조금만 버텨.]

‘조, 조금?’

[어. 음. 양을 생각하면 조금 오래?]

‘야, 이!’

세계수 위쪽에 상체만 내밀고 있는 진의 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마치 가게 앞 풍선 인형처럼 진의 몸이 흔들리자, 엘프들이 그 모습을 바라봤다.

‘카리스마 넘치는 내 이미지가!’

한데, 진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터져 나왔다.

“진 님!?”

플로나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플로나만이 아니었다.

나무 주위에서 환호성을 지르던 엘프들 모두가 깜짝 놀라 진을 바라봤다.

“플로나 님,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장로가 마법을 이용해 순식간에 진이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그는 진의 몸을 이곳저곳 살펴보기 시작했다.

“흐음. 어찌 이런 일이!”

그는 심각한 듯 중얼거렸다.

플로나는 아래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장로는 확인을 끝마친 뒤 곧장 내려갔다.

그가 내려오자마자 플로나가 물었다.

“어떤가요?”

“내부의 대지의 기운이 가득합니다! 이건 인간이 몸에 담을 수 있는 기운이 아닙니다!”

심상치 않은 말에, 플로나의 표정이 변했다.

“결론만 말하세요.”

“나무를 움직이기 위해 무리하신 것 같습니다. 너무 깊이 동화하셔서 대지의 기운이 역류한 것 같은데……. 허어. 그렇다고 해도 이 기운이 역류할 정도로 동화를 하려면…….”

그는 잠시 고민하다 어렵사리 입을 뗐다.

“아마도 진 님께서 무언가를 희생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런 이적이 가능하셨을 겁니다.”

“…….”

오해였다.

진은 그저 땅의 기운을 처먹느라 몸안에 기운이 가득할 뿐이었다. 희생은 무슨, 몸은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엘프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오해는 점점 더 깊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를 위해 이런 일까지 하시다니.”

“정말 성자님이 확실하십니다. 괜히 어머니의 나무께서 그를 사랑하신 게 아니었습니다.”

“우린 대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진이 아니었다.

진의 몸이 점점 더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컥!

기침 소리와 함께 진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땅 아래로 피가 흩뿌려졌다.

플로나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피를 보며 탄식을 터트렸다.

“우리의 욕심 때문에…….”

플로나가 보기에 저 피는 엘프들의 욕심이 만든 결과였다.

어머니의 나무를 옮기는 일이었는데, 엘프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모두 ‘진’이 해낸 일이었다.

“플로나 님.”

장로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머니의 나무와 융합하셨는데 피를 토하실 정도라면 역시 무언가를 희생하신 게 확실한 거 같습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무려 어머니의 나무를 옮기는 일인데, 그게 간단히 될 리 없었다.

인간인 그가 이런 이적을 벌이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했을까?

엘프는 그저 환호하기만 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나 염치없는 이들이었습니까. 어찌하여 한 사람에게 모든 희생을 강요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녀의 표정엔 죄책감과 후회가 잔뜩 묻어 있었다.

“제가 더 깊이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마을에 지도자인 제가 희생을 함께해야 했습니다.”

어머니의 나무께서 함께하신다기에 너무 기뻐서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아닙니다. 플로나 님. 저희 장로들이야말로 신중한 선택을 하실 수 있게 조언을 드려야 했습니다.”

장로급 엘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플로나의 표정이 변했다.

“진 님께선 어머니의 나무께서 하신 부탁과 우리의 부탁 모두를 들어주신 겁니다.”

“맞습니다. 플로나 님.”

“진 님께 우린 지울 수 없는 빚을 졌습니다. 모두 인정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저희 장로들은 인정합니다.”

장로들이 플로나의 말에 동의하자 그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갔다.

“어머니 나무께 바치기 위해 지금까지 보관했던 것을 진 님께 드리겠습니다. 반대하시는 분 있으십니까?”

플로나는 거부하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장로들을 바라봤는데.

“없습니다. 이미 진 님 덕분에 우리는 어머니의 나무 곁에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저분께 드리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그 씨앗을 줄 수 있겠습니까.”

거부하는 장로는 아무도 없었다.

만장일치.

순식간에 모두의 동의를 얻었다.

“어머니의 씨앗을 가져오세요.”

“예. 플로나 님!”

어머니의 씨앗.

이 마을 최고의 보물.

원래라면 멸족을 당해도 내주지 않을 보물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잠시 후.

장로는 작은 목함을 들고 왔다. 플로나는 그 나무함을 받아 곧장 열었다. 그곳엔 이곳저곳이 금 간 씨앗 하나가 담겨 있었다.

딱 봐도 정상적인 상태의 씨앗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가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무려 ‘세계수의 씨앗’이었다.

그녀가 씨앗을 손에 쥐자, 나뭇가지 하나가 다가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쥐었다.

“우리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나무께서도 이리 기쁘게 허락하셨습니다.”

나뭇가지는 그녀를 천천히 나무 위로 올려 주었다.

그렇게 천천히 나무 위로 올라온 그녀는 어느새 진을 마주할 수 있었다.

“진 님.”

그녀는 진의 이름을 부르며, 그 씨앗을 진의 입에 집어넣었다.

“부디 회복하시길.”

그 순간, 아래에 모여 있던 엘프들도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부디 회복하시길!”

쿠드드득. 쿠드드득.

상반신이 빠져나와 있던 진이 세계수의 나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머니의 나무시여. 그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쏴아아아-.

나뭇가지들이 흔들렸다.

* * *

한편, 짝퉁 세계수 안.

‘이거지!’

진은 잔뜩 신이 나 소리치고 있었다.

‘땅의 기운에 세계수의 씨앗이라고!?’

[와. 세계수의 씨앗은 생각도 못했는데…….]

[왜 피를 뿜으라고 했는지 이제야 깨달았어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진.]

진은 웃음을 터트렸다.

피를 뿜은 거?

진이 루나에게 부탁한 일이었다.

‘딱 각이 보이더라고.’

[대체 그게 뭔 말인진 모르겠지만, 효과 하나는 확실했어.]

‘좋아. 그럼 이제 계획대로 진행할 거야?’

[어. 네 몸에 대지의 기운이 흡수되는 동안 진행하면 될 것 같아.]

‘우선, 사막 부족들부터 처리하자.’

[알겠어.]

짝퉁 세계수가 걸어오면서 숲에는 거대한 길이 뚫렸다. 엄청난 수의 나무가 쓰러지고, 짝퉁 세계수는 그 나무를 흡수했다.

그걸 괜히 흡수한 게 아니었다.

나무를 움직이기 위한 에너지기도 했지만, 바로 지금을 위해서였다.

[그럼, 방벽 프로젝트 시작한다!]

쿠드드드득. 쿠드드드득.

쿠드드드득. 쿠드드드득.

굉음과 함께 엄청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짝퉁 세계수의 뿌리가 엘프 영역의 경계로 쭉쭉 뻗어 나갔다. 그렇게 경계에 도착한 뿌리는 곧이어 밖으로 튀어나왔다.

쿠드드드득. 쿠드드드득.

쿠드드드득. 쿠드드드득.

뿌리가 하늘 높이 솟구치더니 마치 성벽처럼 커다란 벽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나무께서 오셨다!”

“다들 벽 위로 올라가 활을 들어라!”

여태 숲에서 치열하게 싸우던 이들에게 든든한 성벽이 생겼다.

그것도 의지를 가진 성벽이.

엘프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전투는 계속 벌어지겠지만, 이젠 성벽에서 막기만 하면 될 일이었으니까.

“어머니의 나무가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렇게 경계에 성벽이 생겨났을 때쯤, 진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어?! 미친!]

그건 생각지도 못한 변화였다.

원래라면 받지 못했을 세계수의 씨앗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대지의 친화력이 생긴다고?!]

속성 친화력.

빛과 피와는 다르게 4대 원소의 친화력은 끔찍하게 얻기 힘들다.

그게 쉬웠다면 활용도가 제한되는 특수 정령보다 4대 원소 쪽 정령을 소환했을 것이다.

한데, 그 친화력이 생각지도 못하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너무나도 정순한 땅의 기운.

손상된 세계수의 씨앗.

두 가지가 합쳐지며, 4대 원소 중 ‘대지’의 친화력이 진의 몸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아. 몸 개조를 할 절호의 기회였는데!]

[지금 그게 문제예요?! 친화력이 생기면 다른 이가 소환될 거예요!]

[아 미친!]

이 친화력이 생기는 게 문제인 이유는 간단했다.

친화력이 생기면 정령이 소환되고, 또 다른 회귀자가 하나 더 나타난단 뜻이었다.

[아. 꼰대들만 남았는데.]

그것도 꼰대 회귀자가.

그런 로메른과 루나와는 달리, 진은 묘한 감각에 젖어 있었다.

땅이 감싸 안은 것 같은 감각.

4대 원소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짝퉁 세계수 아래의 땅이 느껴지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대지의 힘이 느껴졌다.

‘당겨 올 수 있을까?’

그 간단한 생각과 함께.

[뭐야 이거!?]

엄청난 대지의 기운이 진의 몸으로 빨려 들어왔다. 친화력은 더욱 높아지고 대지의 힘이 진의 몸에 쌓였다.

[일단, 빼돌린다. 이건 나중에 내가 써먹을 거야.]

로메른이 열심히 기운을 빼돌렸지만, 진의 몸엔 한계에 가까운 대지의 기운이 계속해서 쌓였다.

[오오. 진! 더 빨아들여! 최고야 진짜!]

로메른은 신이 나 소리쳤지만, 진에겐 전혀 들리지 않았다. 진은 일종의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4대 속성의 친화력이 상승하는 기연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잠시 후, 진의 친화력이 임계치에 도달했을 때.

쩌저적. 쩌적.

허공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 미친. 그 영감탱이 나오는 거 같은데?]

그런 로메른의 말처럼, 새하얀 수염을 허리까지 기른 노인이 그 틈새에서 빠져나왔다.

[허허. 이거 반가운 얼굴들이 많구먼.]

[아. 하필 이 영감탱이가 나오네.]

[검성, 오랜만이에요.]

검성.

그가 대지의 정령으로 소환됐다.

* * *

깊은 땅 속.

[어허. 사람이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면, 설득해서 죄를 깨닫게 하고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인데 어찌하여 이런 방법을…….]

허리까지 오는 새하얀 수염.

마치 신선처럼 보이는 정령.

검성이 말을 하고 있었다.

“와. 이건 상상 이상인데?”

[그치? 완전 꼰대라니까.]

[다른 이들도 있는데, 하필 검성이…….]

물론, 그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이나 정령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들으라는 듯 앞담화를 나눌 뿐이었다.

[내가 처음에 소환됐어야 했는데, 내가 늦고 말았구나. 어찌하여 저들이 먼저 소환됐단 말인가.]

진이 보기엔 전혀 아니었다.

저 양반이 처음에 나왔다면, 진은 세상이고 뭐고 다 때려치웠을 것 같았다.

[진 남작. 그대는 눈을 떠야 합니다. 세상의 평화는 선의에서 나오는 법. 이런 방식으로 ‘후작’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진은 단숨에 결정을 내렸다.

저 말을 계속 듣고 있을 순 없었다. 애초에 말로 설득이 됐으면, 이런 짓을 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후. 땅이나 파세요.”

진의 말에도 검성은 그 입을 다물지 않았다.

[어찌하여 쉬운 길만 찾는단 말입니까. 제가 어렸을 때는 이런 일은 상상도 하지 못할…….]

진은 마지막 수단을 사용했다.

써클을 움직여 그의 몸을 강제로 통제했다.

“어이. 검씨.”

[거, 검씨!?]

진의 말에 그가 화들짝 놀랐다.

“헛소리 말고 땅이나 파세요.”

써클의 기운이 그를 옥죄고, 압도적인 대지의 친화력이 그를 강제한다.

[캬. 대지의 친화력 오를 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효과 확실하네.]

[정말 다행이에요. 검씨가 땅을 파시네요.]

두 정령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허어. 세상이 어찌 되려고!]

물론, 한 정령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검씨!”

진이 소리를 치자.

[아. 팝니다! 파요!]

검성이 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후작 땅까진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 열심히 파세요.”

[저 영감 처음 나왔을 땐, 아찔했는데 덕분에 이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네.]

로메른의 말대로였다.

후작가 쪽 문제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만약 땅의 정령이 없었다면 일이 정말 복잡해졌을 것이다.

“괜히 후작가를 마지막에 처리하려고 했던 게 아니니까.”

[맞아. 지하에 숨어 들어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니까.]

후작가의 지하에는 수많은 이종족 노예가 갇혀 있었다.

처음에는 작았던 노예 시설이 수백 년이 지나며 일종의 지하 도시로 변모했다. 이제는 새로운 노예를 집어넣지 않아도 유지가 되는 시설.

후작가는 이 시설을 이용해 막대한 부를 쌓고 세를 불려 왔다.

“이건 딱 봐도 나중에 문제가 터질 것 같네.”

[맞아. 이것 때문에 대륙이 얼마나 난리였는지 모를 거야.]

수백년간 쌓인 증오와 분노.

이건 문제가 안 될 수가 없었다.

“해결하자고.”

진은 지하에 사는 수많은 노예를 해방할 생각이었다.

“검씨! 똑바로 하세요!”

깊은 땅속 진과 정령들은 천천히 지하 도시를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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