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50화 (50/210)

050. 이게 영감님의 힘이다

보물전 입장은 곧장 이어졌다.

‘아 들어가기 전에 영감님이랑 대화 좀 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보물전을 바로 들어가야 해서 그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진이 아쉬워하자, 영감님은 흐뭇하게 웃으며 수신호를 보냈다.

[다녀오셔도 됩니다. 이 노구는 밖에서 성자님을 돕고 있겠습니다.]

‘돕고 있는다? 무슨 이야기지?’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지만, 영감님의 도움이 해가 될 리는 없었다.

‘뭐, 보물전에서 나와 다음에 물어보면 될 일이니까.’

지금 집중해야 할 건 그게 아니었다. 보물전에 집중해야 했다.

“들어가셔서 개인당 하나씩 가지고 나오시면 됩니다.”

그런 경고 아닌 경고를 들은 후 보물전에 입장할 수 있었다. 말릭은 안에 들어오자마자 입을 열었다.

“전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뭐?”

녀석은 여기까지 들어와서 안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가 가 봐야 남작님의 행동만 제한될 터, 그냥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진은 녀석의 성격이 슬슬 이해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안 돼.’

이걸 세심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녀석은 극히 효율적으로 움직였을 뿐이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녀석이 미친놈인 건 확실하다.

살해의 업을 지닌 말릭을 대륙에 풀어 놓는 건 위험하다.

‘하지만, 잘만 쓰면…….’

녀석이 원하는 걸 주면서 잘만 사용한다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미친놈이라 좋은 점이 있긴 하네.’

진의 행동에 의문을 가질 만도 한데, 녀석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애초에 궁금해하질 않았다.

“갔다 온다.”

진은 녀석을 뒤로하고, 보물들이 쌓인 공간으로 들어갔다.

‘좋아. 내가 뭘 가져가면 돼?’

[이젠 너한테도 대충 보일 거야. 한번 쭉 둘러봐. 뭐가 더 좋을지 고민 중이야.]

보인다?

로메른이 허튼소리를 할 리는 없다. 진은 안에 있는 보물을 살펴봤다.

벽에 걸린 각종 무구와 장식장 안에 들어 있는 각종 장신구.

‘흐음.’

진은 보물을 쭉 살펴보다가, 이내 걸음을 멈췄다.

‘저거 뭐야?’

허름해 보이는 칼에 무언가가 기분 나쁘게 일렁이고 있었다.

[보이지? 사기(死氣)를 머금은 검이야. 저게 더 사기를 먹으면 마검이 돼. 뭐, 재질을 보니까 마검까진 힘들 거 같지만.]

확실히 개조한 눈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원래라면 보이지 않을 것들이 보였다.

‘진짜 보물은 따로 있구나?’

[그런 거지. 애초에 여기엔 중급 이상 보물은 없을걸?]

‘어!? 왕국 보물전인데?’

[하하. 여기에 모든 보물이 있으면 기분 좋다고 들여보내겠어? 진짜 보물전은 따로 있어.]

하긴 생각해 보면 그것도 그랬다.

‘그럼, 여기서 챙겨갈 수 있는 건 뭔데?’

[오직 여기서만 찾을 수 있는 게 있어. 사용법도 모르고, 쓸모도 없으니까 이곳에 처박힌 물건들이 있거든.]

‘그게 보물이야?’

[우리한테는 보물이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봐.]

진은 로메른의 말대로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물의 질이 올라가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점점 질이 떨어졌다.

‘장식장 없는 거 실화냐.’

장식장마저 없어지더니, 나중엔 쓰레기 더미처럼 골동품 같은 물건이 잔뜩 쌓여 있는 곳이 나왔다.

[이게 진짜 보물이지.]

“이게?”

그런 로메른의 말과는 달리 진의 눈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일단 기다려 봐.]

진의 몸에서 성령이 계속 튀어나왔다. 그러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끝에.

“……아무것도 없잖아?”

특별한 건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잡동사니만 차곡차곡 정리됐다.

로메른은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가 챙겨 가려고 하는 건 단순한 보물이 아니야. 엄밀히 따지면 보물도 아니지.]

‘보물이 아니라고?’

진의 눈앞으로 열쇠 하나가 날아왔다. 열다가 부러질 것 같은 낡디낡은 열쇠.

“열쇠?”

[어. 대륙 곳곳에 위험한 게 있다고 했지?]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들의 목적은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줄여 세상이 멸망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런 것 중 하나가 봉인된 곳의 열쇠야.]

‘위험해?’

[어. 봉인된 상태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꽤 위험해.]

‘그래?’

오히려 좋았다.

다른 때면 몰라도 지금은 열심히 일해 줄 돌쇠가 하나 있었다.

뭐, 미친 돌쇠라는 게 문제지만.

‘딱 좋네. 말릭 보내면 되겠어.’

[그렇지!]

척하면 척이었다.

[여기가 진짜 봉인만 된 곳이라 위험하긴 더럽게 위험한데 챙겨 나올 게 없어. 너한텐 최악의 장소지.]

그러니 더더욱 말릭을 보내기엔 최고의 장소였다.

‘최곤데?’

[그치? 원래 다른 걸 챙기려고 했는데, 말릭 보내려고 그거 챙긴 거야.]

딱 맞았다.

게다가, 보물 하나를 녀석한테 쓴다고 아까워할 거 없었다.

어차피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럼 다른 하나는?”

[이거야.]

진의 눈앞으로 작은 석판 하나가 날아왔다.

“이건 뭐야?”

석판에는 깨알같이 작은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위험한 지식이 담긴 비석. 우리가 챙기는 것만으로도 사건 하나를 막을 수 있는 물건이지.]

“오.”

챙기는 것만으로도 사건 끝?

이렇게 좋은 물건이 다 있다니!

“만족스럽네.”

[이건 나도 처음 보는 물건이야. 연구하면 제법 쓸 만한 게 나올 거야.]

거기다 말하는 걸 들어 보니 연구해서 이쪽이 써먹을 수도 있을 거 같았다.

‘그럼, 나갈까?’

[어. 몇 개 더 챙겨 가고 싶긴 한데, 그건 다음 기회를 노리자고.]

진은 곧장 보물전 입구로 나왔다. 물론, 나가기 전에 낡은 열쇠는 말릭에게 넘겨주었다.

“이걸 가지고 나가면 됩니까?”

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릭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진과 말릭이 가져 나온 물건을 보고, 보물전 관리관은 깜짝 놀랐다.

“이걸로 되시겠습니까?”

“예. 충분히 심사숙고해서 골랐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어. 알겠습니다.”

보물전 관리관은 눈을 반짝였다.

‘교단에서 예비 성자님으로 불리신다더니…….’

보물전에 값진 물건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데, 이런 것들을 가져 나왔다.

‘물욕이 없으시구나.’

그는 존경의 눈빛으로 진을 바라봤다. ‘예비 성자’란 이름값 덕에 생긴 오해였다.

“생각보다 너무 일찍 나오셔서 잠시 기다려 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기다려야 한다고?

모든 일정이 끝난 게 아니었나?

그런 진의 의문을 느낀 듯 보물전 관리관이 입을 열었다.

“아직 포상이 남아 있습니다.”

“예?”

아직도 포상이 남았다고?!

‘와, 끝이 없네.’

* * *

보물전 관리관은 진에게 너무 일찍 나와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지만, 그건 핑계일 뿐이었다.

회의장으로 보물전 관리관이 들어왔다.

“보고하라.”

그저 기분이 좋다고 보물전을 개방해 준 게 아니었다. 왕의 치밀한 계산이 있었다.

“진 세인트와 말릭 테스는 좀 특별한 물건을 선택했습니다. 열쇠와 석판입니다.”

“열쇠와 석판?”

왕의 물음에 그가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확인 불가 물품으로, 실질적으로 가치가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둘 다 그런 선택을 했다?”

“아닙니다. 제가 보기엔 말릭 테스가 진 세인트에게 선택권을 넘긴 것 같았습니다.”

그 말에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릭 테스에 관해선 이미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하긴, 성주의 보고대로라면 그가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질 리 없었겠지.”

만약 골랐다고 해도 검을 가져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선택권을 넘겼다는 건, 진이 말릭을 완전히 휘어잡고 있단 뜻이었다.

“그대가 본 진 세인트는 어땠지?”

“물질적 욕망은 물론, 망설임이나 아쉬움 또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랫동안 보물전에 드나드는 사람을 본 보물전 관리관의 눈썰미는 믿을 만했다.

물론 진이 무욕한 이유는 집에 골드가 산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었지만.

왕은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들이 걱정하던 문제가 해결됐군.”

그 문제는 다른 게 아니었다.

“예, 폐하. 이 정도로 물욕이 없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제가 아니라 시험해 본 것인데, 이 정도로 순수한 존재일 줄은 몰랐습니다.”

“교단 측에서 예비 성자란 직책을 괜히 내린 게 아닌것 같습니다.”

귀족들은 혀를 내둘렀다.

예비 성자라고 해도 사제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정도 무욕함을 지녔을 거라곤 상상치 못했다.

“그럼 어느 영지를 내려 줄지 마무리를 하도록 하지.”

영지 수여.

계승 남작인 진에게 영지를 수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아무리 예비 성자라도 계승 작위와 감찰부의 권한만으로도 이미 너무 많이 힘이 실린 상태였다. 여기서 쓸 만한 영지까지 받는다면, 상상 이상의 힘을 갖게 된다.

만약, 욕심이 많은 자가 그런 힘을 얻게 된다면 차후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이런 확인이 이뤄진 것이다.

“제법 괜찮은 땅을 내려 줘도 될 거 같군.”

“폐하, 잠시 제 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그때 여태 조용히 하고 있던 영감님이 끼어들었다. 왕은 이야기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여러분들의 시험에 반발하지 않은 것은 예비 성자님이 아무런 욕심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비 성자를 대놓고 시험하는데, 추기경의 동의가 없을 리 없었다.

“그분께서 그저 운으로 예비 성자가 되신 게 아닙니다. 선한 마음과 재능, 신의 선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추기경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성자님은 정말 아무런 욕심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 분에게 좋은 땅은 포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담을 가중하는 족쇄일 뿐입니다.”

귀족들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추기경의 말에 진심으로 동의하는 이들은 없었다.

예비 성자가 정치력을 갖게 되면 그들의 자리가 위태로우니, 필사적으로 동의하는 척할 뿐이었다.

“그러니 좋지 않은 땅을 내려 주셨으면 합니다. 예비 성자님은 정령사이시니 자연이 가득한 곳도 좋을 거 같습니다.”

그렇다고 좋지 않은 땅을 내려 달라는 요청이 나올 줄 몰랐기에 모두가 당황했다.

회의에 참석 중인 귀족 하나가 입을 열었다.

“추기경님. 그건 교단 전체의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영감님은 그저 진의 순수성 때문에 한 선택이었지만, 이건 신의 한 수였다.

진이 좋은 땅을 가졌다면, 필연적으로 정치적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모든 견제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비 성자님은 오히려 그런 땅을 좋아하실 겁니다.”

오해였다. 이건 영감님이 진을 너무 좋게 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폐하, 교단 측의 요청도 있는데 그렇게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회의장의 귀족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추기경의 부탁이다. 최적의 땅을 찾아보도록.”

왕의 허락이 떨어졌다.

좋은 땅을 고를 땐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던 일이.

“이쪽은 어떻습니까?”

“허어. 그쪽은 영지민이 있잖습니까.”

“여긴 영지민도 없습니다.”

“자연이 가득한 곳은 왜 빼놓습니까.”

…….

순식간에 진행되기 시작했다.

* * *

잠시 후.

“추기경님?”

“성자님,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진이 대기하고 있던 방으로 영감님이 찾아왔다.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추기경님을 만나는 일인데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진의 말에 영감님은 감동하였는지 잠시 말을 멈췄다.

“추기경님?”

“허허. 역시 제 선택은 옳았습니다.”

“예?”

“예비 성자님의 영지가 선정되었습니다.”

그제야 진은 마지막 포상이 뭔지 눈치를 챘다.

“영지라니…….”

진이 너무 놀라 멍한 표정을 짓자, 영감님이 입을 열었다.

“그리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최대한 오지로 부탁했습니다.”

“……예?”

오지(奧地)?

사람도 없는 산골짜기?

아니, 왜 거길 받아 오셨어요?

“보여 드리겠습니다.”

한데 이런 진의 마음도 모르고 추기경님은 싱글벙글 품에서 지도를 꺼내, 한쪽을 가리켰다.

“여기입니다.”

산이다.

그것도 산속이었다.

“주위에 백작령, 자작령, 후작령이 감싸고 있으니 물건을 구하시긴 편할 겁니다.”

서쪽엔 백작령.

남쪽엔 자작령.

동쪽엔 후작령.

진의 영지는 세 영지 사이에 끼어 있는 쓸모없는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북쪽은 탁 트여 있다는 건가.’

한데,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북쪽엔 엘프들이 지낸다고 합니다. 인간을 배척한다고 하지만, 성자님을 배척하진 않을 겁니다.”

아니, 영감님.

저도 인간이에요.

북쪽은 열려 있는 게 아니라 엘프가 막고 있었다.

“게다가 엘프 영역 너머에는 사막이 붙어 있습니다. 성자님의 기사들이 사막부족이니 도움이 될 겁니다.”

진이 보기엔 아니었다.

이곳에 어떻게 엘프가 있나 했더니, 이 엘프들은 사막전사를 막는 일종의 방벽이었다.

‘이 땅이 남은 이유도…….’

사막부족들이 엘프를 뚫고 내려왔을 경우, 완충 지역으로 사용하기 위해 버려둔 땅 같았다.

‘……골라도 어떻게 이런 땅을 골라 오신 거지?’

그 설명은 영감님에게 들을 수 있었다.

“영지민도 없고 대자연이 펼쳐져 있으니 성자님께서 푹 쉬면서 맘껏 활동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쁘지 않긴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굳이?!’

굳이 이 땅이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한데, 이런 진의 생각과는 다른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야, 역시 저 영감님 대단한데? 어떻게 이 땅을 꼭 찝어 온 거지?]

[괜히 추기경님이 아니시네요.]

루나와 로메른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난 이보다 좋은 곳이 없는 거 같은데?]

[잠재력과 위치, 앞으로 우리가 할 일까지 생각하면 정말 최고예요. 신께서 도우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루나와 로메른이 이런 말을 할 정도라면…….

“정말 감사합니다, 추기경님. 아주 마음에 드는 곳입니다.”

진은 곧바로 태세 전환을 했다.

“허허. 역시 성자님이시라면 이곳을 마음에 들어 하실 줄 알았습니다.”

영감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진을 바라봤다.

그 두 눈엔 신뢰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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