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48화 (48/210)

048. 속이 다 시원하네

진짜?

대체 뭐가 진짜란 말일까?

진의 머릿속엔 의문이 가득했지만, 진은 아무런 내색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녀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제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살해의 업을 타고난 말릭.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전 살의를 마주하는 것이 좋습니다. 남을 죽일 때나 누군가 날 죽이려고 할 때 전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문제는 맛탱이가 좀 갔다는 점이었다.

“죽고 죽이는 일.”

그것도 심하게 맛이 갔다.

“그런 일을 할 때 전 제가 특별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주 최악의 방향으로.

“당신도 저처럼 특별한 인간입니다. 제 ‘살의’처럼 당신도 특별한 무언가가 있으시겠지요.”

“그것 때문에 날 따라다닌 겁니까?”

녀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그저 당신이 특별하기에 따라다니는 게 아닙니다.”

“그럼?”

“당신이 움직일 때마다 당신 주위엔 상상치 못할 것들이 나타납니다. 전 당신이 아닌, 당신 주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좇는 겁니다.”

사건을 좇는다?

진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을 때, 녀석은 그 사건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전 감찰부와 이단 심문관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녀석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때는 절대 닿을 수 없는 강자들이 살의를 가지고 제 몸을 짓눌렀습니다. 살의에 짓눌려 마치 숨도 못 쉴 것 같던 그 감각!”

진은 다른 건 몰라도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말릭은 ‘미친 변태 새끼’라는 것.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등골이 오싹오싹합니다. 그런 즐거움이 당신 곁에는 가득합니다.”

진은 솔직히 말하고 싶었다.

아니야! 이 미친놈아!

“당신은 특별합니다. 당신은 뭔가를 위해 끊임없이 움직일 테고, 제가 즐길 만한 ‘살의’를 계속 만들어 줄 겁니다. 이번에 즐겼던 악마와의 전투처럼요.”

녀석의 눈에 광기가 번들거렸다.

‘왜 이렇게 질척거리나 했더니. 이걸 이런 식으로 생각하네. 진짜 미친놈인가.’

진이 뭘 노리는지,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도 모르면서 진의 주위를 맴돈 이유는 간단했다.

그저, 진 주위에서 그가 즐길 만한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악마와 죽고 죽이는 혈투는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악마는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움직였는데, 그걸 즐거운 시간이라고 생각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녀석은 그 전투로 아무런 피해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저 녀석 몸 내부가 엉망인데? 악마를 죽이려고 뭔가를 희생한 거 같아.]

[그렇긴 한데, 자세히 보면 그게 또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요. ‘살해의 업’ 때문인 거 같은데…….]

[아, 진짜 데스나이트 제작하고 싶어지게 하는 놈일세.]

녀석의 몸은 로메른과 루나가 이상을 발견할 정도로 문제가 있는 상태였다.

“몸이 그렇게 됐는데 즐거웠다?”

진이 떠보듯 물었는데.

“하하. 그것도 보이는 겁니까? 정말이지 당신은 언제나 날 놀라게 합니다.”

오히려 녀석의 관심만 더 끈 것 같았다.

“당신이 절 싫어하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깐 다행입니다.”

진의 말에 녀석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더 좋습니다.”

녀석은 씩 웃으며 말했다.

“절 더 위험한 곳으로 밀어 넣어 주셨으면 합니다. 너무나 끔찍해서 상대조차 할 수 없는 적을 만나게 해 주시면 참 즐거울 것 같군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미칠 거면 곱게 미쳐야지 이건 아주 심각하게 미쳤다.

‘아니지. 저놈이 미친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지금 미친놈 말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진은 생각을 바꿨다.

‘이놈 써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말릭을 통해 악마를 등쳐 먹었던 것처럼, 녀석을 위험에 떠밀고 이득을 챙길 수 있지 않을까?

‘이보다 착한 일이 어디 있어?’

애초에 녀석이 원하는 일을 들어준 것이다.

‘로메른. 내가 가긴 위험하고 더러운 일 없어? 기왕이면 죽을 확률 높은 일.’

진이 로메른에게 질문을 던지자.

[그런 일이야 쌓이고 쌓였지.]

각이 보였다.

물론 녀석이 원하는 대로 해 줄 생각은 없었다. 더 간절히 원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이쪽에서 맘껏 휘두를 수 있겠지.’

[와. 진,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악질이구나?]

‘선의에는 선의로 대하듯 악에는 악으로 대하는 게 맞지.’

[그건 동감이에요. 생각 같아선 바로 소멸시켜 버리고 싶지만, 저자의 욕망을 휘둘러 세상을 이롭게 한다면 그 또한 나름에 쓰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진은 생각 정리가 끝났다.

“당신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실력을 알아야 극복하기 힘든 곳으로 보낼 수 있을 테니까.”

반쯤은 승낙이나 다름없는 말이 진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녀석의 표정이 변했다.

“보여 드리겠습니다. 한데, 방법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쪽을 죽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제 주위에 있으니까요.”

노바와 아이들.

훌륭한 고용주는 고용인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법.

녀석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뭐, 겸사겸사 녀석의 실력도 확인하고.’

실력을 확인한 뒤, 그보다 위험한 곳으로 보낼 생각이다.

웬만하면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느새 수도에 코앞까지 도착했고, 이제 마지막 야영을 앞두고 있었다.

“마지막 야영이다. 빠르게 준비해라!”

“예!”

그렇게 야영 준비가 이뤄지는 동안, 한쪽에선 다른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었다.

매번 야영할 때마다 벌어진 작은 이벤트. 말릭과 아이들의 대련이었다.

“오늘은 반드시 박살 내 주마.”

날파람의 말에 말릭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좋습니다, 좋아요.”

대련이라곤 하지만, 모두 자신의 무기를 사용했다.

실전보다 더 실전 같은 대련.

날파람과 살바람이 용수바람의 버프를 받자마자, 말릭과의 대련이 시작됐다.

2 : 1의 싸움. 심지어 용수바람의 버프를 생각하면 3 : 1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한데, 전투가 시작되고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과연, 악마를 죽였단 말은 거짓이 아닌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저 아이들도 놀랍지만, 말릭은 그저 놀랍다고 표현할 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구경하는 기사들의 말대로 말릭은 쉽사리 밀리지 않았다.

사각에 있는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는 공격을 부드럽게 흘렸고, 계속해서 쏟아지는 화살을 쳐 냈다.

다만, 그 공격이 너무 촘촘하기에 말릭 또한 반격을 노릴 순 없었다. 계속된 대련으로 아이들은 성장했고, 둘이 함께하는 공격은 빈틈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만히 있을 말릭이 아니었다.

푹.

살바람의 단검이 말릭의 어깨춤을 찔렀다. 살바람은 공격에 성공했음에도 기뻐할 수 없었다.

“날파람! 물러서!”

말릭은 일부러 어깨를 내줬다.

뼈를 내주고, 살을 취하는 공격.

아이들이 말릭과의 대련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말릭 또한 대련을 통해 발전하고 있었다.

말릭의 살의가 마치 날카로운 검처럼 날파람을 향했다. 날파람은 뒤로 물러나며 화살을 쏘아 봤지만, 이미 연계 공격은 깨진 상황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만.”

진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말릭의 살의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아이들 또한 단검과 활을 거뒀다.

“정말 즐겁습니다.”

말릭은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승리를 확신한 웃음.

‘녀석의 살의가 날파람에게 닿았어.’

진이 대련을 멈추지 않았다면 날파람은 말릭의 검에 쓰러졌을 것이다.

‘진짜 괴물 같은 놈이네.’

노바는 굳은 얼굴로 다음 대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노바, 오늘은 쉬어.”

“주인?”

좀 흥분한 모양인지, 녀석의 입에서 옛날 말투가 튀어나왔다.

“오늘은 내가 할게.”

진의 말에 녀석의 눈이 커지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놀란 건 노바만이 아니었다.

주위에 있던 기사들은 물론이고, 말릭마저 깜짝 놀랐다.

“그는 사제가 아니었나? 성법을 사용했다고 들었는데.”

“제가 알기론 그렇습니다.”

“한데, 어째서…….”

다들 말릭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비전투직인 사제가 대련에 나서다니.

누가 봐도 결과는 명확했다. 하지만 그건 진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진은 애초에 사제가 아니었다.

사제인 척을 하는 정령사라면 모를까.

진은 말릭을 바라보았다.

‘짐승에겐 매가 약이지.’

진은 말릭이란 짐승을 길들일 생각이었다.

게다가, 이젠 자신의 힘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성자라고 힘이 없을 거라 착각하는 멍청이들에게 이 대련은 경고가 될 것이다.

‘뭐, 진짜 이유는 저 녀석을 한 대 후려치고 싶은 거지만.’

진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직접 나오시는 겁니까?”

말릭은 어깨를 치료하는 것도 멈추고 진에게 물었다.

“마지막 날이니, 제가 나설 생각입니다.”

진의 말에 녀석의 눈이 형형히 빛났다.

“저 친구를 넘지 못해서, 진 님과는 대련해 보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그 말대로였다.

노바와 말릭은 박빙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말릭이 괴물 같은 거지.’

그냥 노바와 박빙도 아니고 용수바람의 버프와 성령까지 사용한 노바와 박빙이었다.

“치료가 끝나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진의 말에 말릭은 품속에 있던 포션을 꺼내 어깨에 들이부었다.

‘미친. 저게 얼마짜린데.’

녀석은 다 죽어 갈 때 외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포션을 이용해 순식간에 치료를 끝마쳤다.

“시작하셔도 됩니다.”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살의가 끔찍한 모습으로 일렁였다.

‘즐겁나 보네?’

진과의 대련을 맘껏 즐기겠다는 표정이었는데, 진은 녀석과 어울려 줄 생각이 없었다.

‘한 방 제대로 먹여 주자.’

[그럼 최대 출력으로 갈게요.]

[시작한다!]

로메른은 빛의 힘에서 생명력만을 분리해, 핏속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핏속으로 들어온 생명력은 성녀의 손에 의해 변화했다.

혈류가 빨라진 듯 심장이 미친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미친.’

온몸에 힘이 넘쳤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한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생명력이 폭발하듯 타올랐다.

[단순하게 움직여, 지금 속도를 감당하지 못할 거야.]

타오른 생명력이, 로메른이 개조한 말도 안 되는 몸뚱이가, 법칙을 거스른다.

쿠---웅!

진이 발을 구르자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지고, 진의 신형이 순식간에 쏘아진다.

“……!!”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 지축을 울리는 소리보다 진의 신형이 먼저 다가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말릭은 생각을 채 끝마치지 못했다. 그 전에 진의 주먹이 날아왔으니까.

‘즐기고 싶다! 움직여!’

살해의 업이 말릭의 바람을 도왔다. 진의 주먹을 막기 위해 팔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한데, 그 움직임만으로 말릭의 팔은 혈관이 터지고 팔이 부풀더니 피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한계 이상의 영역에 들어온 대가였다.

‘막는다!’

그래도 녀석은 목적을 달성했다.

말릭의 검이 진의 주먹이 다가오는 경로를 막아섰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콰----아아앙!

검이 진의 주먹을 막았으나 부서졌다.

‘움직여!!’

아무리 살해의 업을 지니고 있다 해도 두 번은 반응할 수 없었다.

퍼---억!

진의 주먹이 녀석의 몸에 적중했다. 말릭의 신형이 공터 끝까지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세상에.”

“대체 방금 무슨 일이?!”

대련을 구경하고 있던 이들 중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본 이는 몇 되지 않았다.

그렇게 대련은 놀라움을 남기고 끝났다.

“노바.”

진은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예, 주인님.”

노바의 표정엔 경의와 자부심이 가득했다.

“정리해.”

“예, 주인님.”

진은 자신의 천막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여유 넘치는 그 모습에 모두 감탄한 듯 쳐다봤지만.

[조금만 더 버텨!]

[거의 다 왔어요!]

진이라고 반동이 없을 리 없었다.

‘아프다고 말해 줬어야지!’

[통증을 우리가 통제하고 있어서 이 정도야. 신소리 말고 얼른 들어가. 내일까진 완벽하게 회복시켜 놓을 테니까.]

진은 멋진 마무리를 위해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속은 시원하네.’

며칠간 저 미친놈 때문에 막혀 있던 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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