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32화 (32/210)

032. 범인 발견!

흑마법.

다른 마법과는 달리 이쪽은 듣기만 해도 뭔가 위험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건 지구식 사고방식이었다. 이 세상에서 흑마법은 배척받지 않는다.

[모든 마법이 위험한데, 그중에서 흑마법만 배척을 받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로메른의 말대로 흑마법이라고 해서 더 위험한 게 아니었다.

애초에 ‘마법’이라는 건 세상의 법칙을 거스르는 ‘위험한 지식’이다. 이 지식은 삶을 더욱 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대량 살상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꼭 지구의 과학 같네.’

그렇게 보면 지구의 과학과 이곳의 마법은 많은 부분이 닮아 있었다.

이곳의 마법처럼 과학도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수많은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그래서 마탑들이 존재하는 거야. 마탑들은 이런 마법의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종 제한과 규칙을 만들어 놓고 관리해.]

대충 이해가 됐다.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어제 봤던 그건 누군가 숨어서 실험을 한 거겠네?”

[맞아.]

돌아가는 상황은 대충 감이 왔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다.

“조사 결과는 어때?”

[흑색마탑에서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놈이야. 실험 도구는 사제품을 썼지만, 방식까지는 못 숨겨.]

그나마 다행이었다.

떠돌이 흑마법사였다면, 찾는 과정이 꽤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한데, 로메른에겐 아닌 모양이었다.

[어떻게 흑색마탑에서 교육을 받은 놈이 이딴 짓거리를 벌이냐고! 이딴 하찮은 짓거리를!]

녀석은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진은 로메른의 심정이 이해됐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소중한 무언가가 있는 법이다. 로메른에겐 그게 ‘흑마법’이며 ‘흑색마탑’인 것이다.

“로메른 진정해. 찾아내면 되잖아.”

[……그래.]

녀석은 속으로 화를 삼키며 대답했다.

“우린 흑색마탑으로 가는 거야?”

[어.]

그럼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이쪽은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있고, 조사를 요구할 자격 또한 가지고 있다. 게다가 흑색마탑엔 보너스가 존재했다.

“마탑에서 뭔가 뜯어낼 방법은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어차피 흑색마탑 가는 거, 주머니도 든든하게 챙겨 오자는 거지.”

[뭐?]

평소에는 똑똑하던 양반이 왜 이러실까.

“적당히 팔아먹을 이름 없어? 그걸로 흑색마탑에서 뭔가를 좀 뜯어내서 세상을 지키는 데 쓰…….”

진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이름을 판다? 내가? 다른 곳도 아니고, 흑색마탑에?]

로메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말했지만, 진이 보기엔 이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어. 안 될 거 없지 않아?”

[모든 흑마법의 주인인…….]

녀석의 말이 길어지기 전에 진이 끼어들었다.

“답답한 소리 하지 말고, 효율적으로 가자. 난 오히려 네가 먼저 제안할 줄 알았는데?”

[…….]

진의 말에 로메른은 입을 다물었다.

“설마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이런 헛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지?”

로메른은 못 들은 척 다른 곳을 바라봤다.

‘했네. 했어.’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괜찮았다.

“아니면, 편한 길 두고 굳이 돌아서 갈 거야? 예전에 말했던 그 꼰대들처럼?”

로메른이 매번 하던 이야기가 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무 이름이나 팔 수는 없으니 생각 좀 해 볼게.]

녀석은 나름의 타협점을 내놓았다.

[후. 인생. 내가 흑마법의 지배자였는데…….]

결정됐으면, 이제 움직일 차례다.

* * *

마리아는 어제처럼 카지노로 내려갔고, 진은 아이들과 함께 흑색마탑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로메른은 혼자서 계속 중얼거렸다.

[소환의 대가라 불렸던 그 녀석으로 할까? 아니지. 그럼 다른 녀석 중에…….]

필사적으로 팔아먹을 이름을 떠올리는 거 같았는데, 녀석이 꺼내는 이름 대부분이 이런 식이었다.

소환의 대가.

저주의 완성자.

천재 흑마법사.

…….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이 계속해서 나왔다.

‘이거 설마 자기랑 급을 맞추려고 이러는 건가?’

아무리 봐도 흑마법의 지배자인 자신이 아무 이름이나 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할 줄은 몰랐는데.’

녀석은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덕분에, 흑색마탑까지 가는 길은 지겹지 않았다. 오히려 로메른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흑색마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녀석이 입을 열었다.

[진. 결정했어.]

로메른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 그래? 누구로 결정했는데?”

[꿈의 지배자라 불렸던, 흑마법사 ‘로앤’.]

“꿈의 지배자?”

[어. 이름 팔아먹기 딱이기도 하고. 뭐…… 적당하기도 하고.]

진의 생각대로였다.

자기가 흑마법의 지배자였다고 비슷한 급을 찾아온 거 같았다. 진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래. 가서 어떻게 이름 팔지는 맡길게.”

[알겠어. 나름대로 스토리를 만들어 둘게.]

로메른까지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진은 흑색마탑의 정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흑색마탑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들어가자마자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생각보다 내부가 화사한데?’

흑색마탑이라고 하길래 검은색으로 칙칙하게 장식해 두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내부는 화사했다.

[다 필요 없고, 일단 지부장부터 만나자.]

진이 카운터에 다가가 곧장 용무를 밝혔다.

“이곳의 지부장님을 만나고 싶은데요.”

“혹시, 약속이 되어 있으십니까?”

“아니요. 약속은 안 했어요.”

대뜸 찾아와 지부장을 만나고 싶다고 하면 허락해 줄 리 없었다. 대신 여기서 써먹을 만한 게 있었다.

진은 옷 속에 달아 둔 브로치를 보여 주었다. 그러자 곧장 반응이 나타났다.

“부제님이셨습니까?”

“예. 교단 측 의뢰와 관련된 일로 지부장님을 좀 뵙고 싶은데요.”

부제란 직책은 흑색마탑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6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허락이 떨어졌다.

진은 그의 안내를 받으며, 지부장이 있는 6층으로 올라갔다.

* * *

흑색마탑의 최상층 6층.

“지부장님. 부제님을 모셔 왔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해라.”

“들어가시면 됩니다, 부제님.”

진은 안내해 준 그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안으로 들어갔다.

각종 실험 도구와 벽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책. 그리고 사방에 퍼진 양피지까지.

이곳은 지부장의 집무실이라기보다는 연구실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흑색마탑 카베마스의 지부장 로덴입니다.”

“예, 안녕하십니까. 철급 부제. 진 플린트입니다.”

둘은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저번에 그 일 때문에 찾아오신 겁니까?”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번에 그 일이라고 하시면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뒷골목에서 발견된 대량의 혈흔을 말씀드린 겁니다.”

그는 진이 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그 일을 조사하다가 흑색마탑의 도움을 좀 받을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부제님께서 저희의 도움을 요청하시다니. 조금 놀랍습니다.”

벌써 놀라면 안 되지.

진짜 놀랄 일은 지금부턴데.

“일단, 확인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흑마력을 조금만 보여 주시면 됩니다.”

“흠. 여쭤 보고 싶은 건 많으나, 우선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는 왼쪽 손에 흑마력을 작게 뿜어냈다. 그 모습을 본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이쪽은 확실히 아니야.]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지부장이 범인이었다면, 상당히 골치가 아파졌을 것이다.

“방금 그걸로 뭔가를 확인하신 것 같은데, 이제 이유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진은 차분히 하수도에서 보았던 것을 설명하며, 증거 몇 개를 보여 주었다.

“……아니, 어떻게 그런!”

그는 탄식을 터트리기도 하고.

“마도를 배우는 자가 어찌!”

분노하기도 했다.

그의 반응은 로메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가 지금까지 조사한 모든 것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절 도와주시겠습니까?”

진의 물음에 그는 단 1초도 고민하지 않았다.

“도와 드리겠습니다.”

물론 그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만, 이건 늑대인간과 흡혈귀, 그리고 흑마법사가 얽힌 일입니다. 이 일을 정리해 줄 세력이 필요합니다.”

맞는 말이었다.

흡혈귀를 의심하는 늑대인간.

괜한 의심을 받는 흡혈귀.

이 모든 일을 꾸민 흑마법사.

세 가지 세력이 얽혀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 모든 걸 정리해 줄 세력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그는 나중 일까지 생각하고 부탁한 것이다.

“그 정리를 교단 측에 부탁한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이건 개인이 아닌 세력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건이었다.

애초에 진은 해결할 생각도 없었고, 해결하고 싶어도 세력이 아닌 개인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초 조사는 교단에서 한 일이니, 교단 측에선 오히려 좋아할 테고, 완벽하게 해결한 내 공도 올라가겠지.’

명분과 실리.

두 가지 모두를 챙길 수 있었다.

“좋습니다. 그건 제가 책임지고 추진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카베마스에 있는 모든 흑마법사를 불러 모으겠습니다.”

* * *

지부장이 모든 흑마법사의 집합을 명한 지 고작 30분 만에 모든 흑마법사가 집합했다.

‘장난 아닌데?’

이건 생각 이상의 단합력이었다.

한데, 로메른이 보기엔 아닌 모양이었다.

[빠져 가지고 비상소집이 발령됐는데 30분이나 걸려?! 아주 개판이야.]

흑마법사 나름의 체계가 있는 모양이었다.

“한 번에 몇 명까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까?”

“제가 아니라 이 아이가 느끼는 겁니다. 그냥 동시에 피우셔도 찾아낼 겁니다.”

“호오. 그렇습니까?”

진의 말에 지부장은 로메른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로메른이 이런 말을 했다.

[와. 예전 같았으면 내 눈도 못 쳐다봤을 녀석이. 진짜 세월 많이 좋아졌다.]

진은 웃음을 참기 위해 애써야 했다. 그런 잠깐의 해프닝이 지나가고, 본격적으로 범인 색출이 시작됐다.

“다들 흑마력을 살짝 방출해라.”

지부장의 말에 흑마법사들은 일시에 흑마력을 방출했고, 로메른은 범인을 찾아냈다.

[세 번째 줄. 맨 앞에 서 있는 녀석이 범인이야.]

로메른이 가리킨 흑마법사는 ‘연구원’처럼 생긴 평범한 남자였다. 도저히 그런 끔찍한 짓을 벌인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는 모르는 건가.’

진은 지부장에게 조용히 범인이 누군지 말해 주었다. 그러자 지부장의 눈이 떨렸다.

“확실합니까?”

“예. 확실합니다. 사람은 실수하지만, 정령은 하지 않습니다. 정령이 보고 확인한 겁니다.”

그렇게 지부장과 대화를 나누다 범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 녀석은 진 옆에 있는 로메른을 바라보더니 뭔가 깨달은 듯 곧장 움직였다.

“지식은 해방되어야 한다. 마법은 제한과 법에 묶여 있어선 안 된다.”

그의 차분한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저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진! 이건 나도 못 막아! 정령 융합한다!]

로메른이 진의 서클로 들어왔다.

“지식은 해방되어야 한다!”

그 말과 함께, 그의 몸에선 엄청난 흑마력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한데 뭔가 달랐다.

그냥 흑마력은 검은색이었는데, 그의 흑마력은 붉은 기운을 띠고 있었다.

“죽어라!”

그건 마법이 아니었다.

그저 엄청난 흑마력을 진과 지부장에게 쏟아부었을 뿐이다.

[진. 서포트 해 줄 테니까 저거 막아!]

진은 마법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용수바람의 엄청난 재능과 로메른의 서포트가 있다면, 무엇이든 구현해 낼 수 있다.

‘우주 전함의 실드.’

SF 속에서나 등장하는 전함의 실드가 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진의 상상과 함께, 그것이 현실로 구현됐다.

육각형의 작은 방패들이 만들어지더니, 서로 결합하고 거대한 보호막을 만들어 냈다.

그 위로 엄청난 마력이 쏟아지지만, 보호막은 깨지지 않는다. 단순히 막기만 하는 게 아니다.

‘저렇게 흩뿌려지면 아깝잖아.’

보호막 위로 부딪힌 마력이 조금씩 흡수되기 시작한다.

[역시! 잔머리 장난 아닌데!? 원래라면 불가능하지만, 내가 있다면 다르지. 어딜 내 앞에서 흑마력을 써!]

흑마력이 보호막을 두드릴수록 보호막은 더 단단해지고 커진다.

마력을 피해 도망치던 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이곳을 바라봤다.

“세상에…….”

“계속 커지고 있어.”

“대체 무슨 원리야?”

보호막은 계속 커지고 커져, 한 녀석만 빼고 모두를 감싼다.

“으아아아아!”

녀석은 보호막으로 만든 감옥 안에 갇혀 버렸다.

“마무리하자.”

[좋지!]

진은 상상했다.

마력을 방해하는 빛으로 만든 침을.

그것이 저 녀석의 몸에 박히기를.

상상은 이내 현실이 된다.

“끄아아악!”

녀석의 몸에 빛으로 만든 침이 박히고, 어느새 마력은 사라진다.

“부, 부제님.”

지부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진을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대답할 때가 아니었다.

‘난 방심 안 해.’

범인이 필요하다.

여기서 녀석이 죽거나 도망치면 임무가 어그러진다. 교단이 와도 쉽게 정리할 수 없다.

[진. 이 녀석 재밌는 걸 가지고 있는데 회수해도 돼? 이게 있으면 몸 개조가 한결 편해질 거 같은데.]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죽으면 안 돼. 무조건 생포해야 해.”

[그럼 딱이야. 이거 흡수하면 녀석은 반항조차 못할 거야.]

“그럼 해.”

녀석의 몸에 박힌 빛의 침 몇몇 개가 새빨갛게 물들더니 이내 사라져 진의 서클로 흡수되었다.

‘이건 또 뭘 흡수한 거야?’

심장이 뜨겁고,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런 진과는 반대로 범인의 얼굴은 10년은 늙은 듯 초췌해져 있었다.

“지부장님, 제가 1차로 조치는 취해 놨는데, 혹시 모르니 절대로 자살 못하게 관리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진은 쓰러진 범인을 바라봤다.

녀석의 눈에는 여전히 광기가 맴돌고 있었다.

“지식의, 해방을, 위해.”

그렇게 첫 번째 임무가 끝났다.

* * *

뒷정리는 지부장의 몫이었다.

진은 곧장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 일찍 돌아왔네?’

입구에 외출 중이란 표시가 없는 걸 보니, 마리아는 오늘 일찍 들어온 거 같았다.

그렇게 진이 방 안으로 들어섰을 때, 예상치 못한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대가 날 찾았다고 들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는 사람이 아니었다.

샛노란 눈을 빛내는 한 노인.

늑대인간이 찾아왔다.

“아, 그거 해결됐습니다.”

“……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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