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31화 (31/210)

031. 추적

로메른이 정혈을 모으러 간 사이, 아이들은 진이 있는 곳으로 왔다.

“주인. 걱정했다.”

“괜찮아. 다 때려잡았어.”

진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아이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곳곳에 있는 전투 흔적과 피.

오면서 봤던 괴물 같은 인간들.

주인은 가볍게 말했지만,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는 가볍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주인. 대단하다.”

노바의 진심 어린 말에 진이 씩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잠시 수다를 떨고 있던 사이, 로메른이 돌아왔다.

“끝났어?”

진의 물음에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어. 깔끔하게 정리도 했고, 챙길 것도 다 챙겼어.]

“범인은?”

[찾았어.]

“어? 벌써 찾았다고?”

[정혈만 있으면 찾을 수 있다고 했잖아.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흡혈귀가 있는 곳도 알아낼 수 있는데, 어떻게 할래? 바로 갈래?]

진은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별로 피곤하진 않은데.’

전투를 치르긴 했지만, 몸은 그리 피곤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들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혼자 가야 하는 건 아니지?”

[어. 다 같이 가도 돼.]

“그럼 나쁘지 않지.”

진은 그렇게 말한 뒤 노바를 바라봤다.

“이 일을 벌였던 녀석을 찾았어. 바로 갈 거야.”

“알겠다, 주인.”

진은 곧장 가마에 올라탔다.

“준비해.”

“알겠다, 주인.”

출발 준비가 끝나자 로메른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이쪽이야.]

로메른의 안내를 받아 이동한 곳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이었다.

“하수구?”

도시 아래 뚫려 있는 거대한 하수구가 목적지였다. 진은 가마에서 내려 아이들과 함께 하수구로 진입했다.

[이거 이상하네.]

하수구에 내려오자마자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뭐가?”

[다른 생명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뭔가 대비를 해 놨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는 거 같아.]

“그래?”

의아하긴 하지만, 이건 좋은 소식이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진입할 필요가 없었다.

“숨어 있는 적은 없어. 빠르게 안으로 진입할게.”

도시 아래 있는 하수구답게 미로나 다름없었지만, 이쪽엔 내비게이션 뺨을 치는 로메른이 있었다.

[여기서 좌측.]

갈림길이나 복잡한 길이 나올 때마다 로메른은 방향을 알려 줬다.

그렇게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뭔가 이상한 점이 느껴졌다.

“뭐지? 어떻게 함정이 하나도 없어?”

지키는 사람이 없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함정이 없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해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의 그런 의문은 금방 해소됐다. 흡혈귀가 있는 곳에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미친.’

하수도 밑에는 곳곳에 피와 뼈가 널브러져 있었다.

흡혈귀가 사람을 먹어 치운 흔적.

이곳을 지키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었다.

‘내가 다 때려잡은 거네.’

원래라면 이곳에 머물며 침입자를 막아야 할 어린 흡혈귀들을 진이 전부 때려잡은 것이다.

‘고생한 보람이 있네.’

어쨌든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장애물이 없는 걸 확인한 진의 일행은 더욱 속도를 높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녹슬고 낡은 철문.

[이 뒤에 있어.]

그 뒤에, 이 일의 모든 원흉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투 준비.”

진의 말에 아이들이 무기를 꺼내고, 전투를 준비했다.

이제 이 녀석만 잡으면 된다.

“돌입.”

진의 말에 노바가 앞으로 나섰다. 노바는 간단한 방법으로 굳게 닫힌 문을 열었다.

끼기기기긱!

거대한 철문이 통째로 뜯겨 나갔다.

살바람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날파람은 활을 조준했다.

용수바람은 이미 다른 아이들에게 모두 버프를 해 준 상태였다.

한데 문 뒤에는 적이 없었다.

“이게 뭐야?”

문 뒤에는 흡혈귀의 은신처가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 이곳은 오히려 ‘연구실’에 가까웠다.

각종 실험 도구와 책들이 가득했고, 시험관엔 새빨간 피가 담겨 있었다.

“이 녀석이 네가 말한 흡혈귀야?”

[……어, 맞아.]

범인이라고 생각했던 흡혈귀는 벽에 걸려 있었다.

그 흡혈귀의 몸 곳곳엔 관이 연결된 바늘이 박혀 있었고, 녀석의 피를 계속해서 뽑아내고 있었다.

“얘가 범인이 아닌 거지?”

[어, 아니야. 오히려 피해자라고 봐야 돼.]

피해자?

“잠깐만, 흡혈귀가 제일 먼저 배신해서 문제가 생긴 거라고 하지 않았어? 근데 여길 보면…….”

이건 흡혈귀가 한 짓이 아니었다. ‘누군가’ 흡혈귀가 한 것처럼 보이도록 수작을 부린 것이다.

[잠깐만 기다려 봐.]

로메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 녀석은 주위를 돌아다니며, 실험 도구와 책을 살펴봤다.

[누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게 뭔지 깨달았어.]

“놓치고 있던 거?”

[의뢰서에 소량의 마기가 발견됐다고 쓰여 있던 거 기억해?]

“어. 기억나.”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교단에서 이 사건의 추가 조사를 요청한 이유가 바로 ‘마기’ 때문이었다.

[마기를 사용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딱 셋뿐이야. 흑마법사, 악마, 마수.]

녀석은 설명을 이어 갔다.

[일단 마수는 아니야. 마수가 이곳에 나왔다면 미약한 마기를 흘렸을 리 없으니까.]

그럼, 남은 건 둘뿐이다.

악마와 흑마법사.

그러자 진의 머릿속에선 하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설마 이 일에 악마가 연관된 거야?”

악마와 흡혈귀.

둘은 꽤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게다가, 판타지의 클리셰이기도 했다.

“설마 미래에 마왕이라도 강림하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마왕이 왜 강림해? 법칙상 불가능해.]

아무래도 헛다리를 짚은 거 같았다.

[이 세상이 망하는 건, 이 세상에 사는 이들 때문이야. 악마는 이번 일에는 연관되지 않았어.]

이건 마기를 남긴 건 악마도 아니란 뜻이었다.

“그럼 흑마법사가 마기를 남겼다는 거야?”

[어. 흑마법사가 남긴 거야.]

“흑마법사?”

[그래. 이 일을 벌인 진짜 범인은 흑마법사야.]

* * *

카지노는 지닌 칩의 개수에 따라 놀 수 있는 곳이 달라진다. 카지노에선 각 구역을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으로 불렀지만, 아무도 그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입장 제한 금액’을 구역의 이름으로 사용했다.

10골드 존.

100골드 존.

1,000골드 존.

1만 골드 존.

이런 방식으로 구역을 분리한 건, 손님의 수준을 맞추기 위해 카지노에서 고안한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각 구역의 손님이 섞이는 일이 발생한다. 승리를 계속해서 윗 구역으로 넘어올 때가 있으니까.

물론 그건 굉장히 드문 일이다. 한 구역을 넘어가기 위해선 최소 10배를 따야 했다.

“예. 1만 골드 칩을 확인했습니다.”

그런 드문 일이 오늘은 연달아 일어났다. 10골드 존에서 놀던 손님이 어느새 1만 골드 존까지 올라왔다.

이 카지노가 세워지고 두 번째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1만 골드 존에 입장한 그녀는 다른 도박꾼들의 열렬한 러브콜을 받았다.

“흠! 아가씨 저와 게임 한번 하시겠습니까?”

“저와 카드 게임하는 건 즐거울 겁니다.”

아름다운 데다 아무리 봐도 초보자 같은 귀족가 영애. 도박꾼들이 보기엔 호구나 마찬가지였다.

“좋아요. 대신 룰 알려 주셔야 해요.”

“하하. 당연히 알려 드려야죠.”

“나도 끼겠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 있으시면 내가 안 낄 수가 없지!”

도박꾼들이 몰려들고, 그녀와 함께 게임을 시작했다.

처음엔 도박꾼들이 룰도 알려 주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어? 이거 제가 이긴 거예요?”

“……그렇군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가 변했다. 도박꾼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분명 초보랑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게임이 잘 풀리지 않았다. 정말 이상하게…….

그러다 하나둘 깨닫기 시작했다.

“하. 호구는 내가 호구였네.”

“……후. 이렇게 비싼 수업료는 또 처음이구만.”

“절대 못 이길 것 같은 기분은 정말 오랜만인데…….”

호구는 자신들이었고,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어느새 도박꾼들이 빠지고, 딜러와 마리아만 남게 됐다.

“둘이 남았으니 어쩔 수 없네요. 이제 블랙잭으로 바꿀까요?”

“……예, 손님.”

초보 같은 모습을 하던 손님은 사라져 있었다. 딜러 앞에 앉아 있는 건, 노련한 겜블러였다.

“시작해요.”

도박꾼들이랑 게임할 때와는 달랐다.

“블랙잭이네요?”

마리아 앞에 빠르게 칩이 쌓였고, 딜러의 얼굴은 점점 새하얗게 질려 갔다.

“잠시만 딜러를 교체하겠습니다.”

“예. 괜찮아요.”

중간에 딜러가 교체되는 상황이 연출됐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느새 마리아 앞에는 산더미 같은 칩이 쌓였고, 새로 온 딜러 또한 새하얗게 질렸다.

그 모습에 1만 골드 존에선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그녀 주위로 구경꾼 몇몇이 몰렸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모르겠군.”

“속임수는 없어. 이건 순수한 실력이야. 그야말로 도신(賭神)이야.”

그녀의 플레이를 구경하는 건, 모두 프로였다. 그녀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볼 수 있는 이들이었다.

“대체 얼마를 딴 거야?”

“5만 골드 정도 되는 거 같던데?”

“50골드를 들고 맨 바깥 구역에서부터 왔다던데?”

“그럼 50골드로 5만 골드를 만들었다는 거야?!”

5만 골드. 지구의 돈으로 따지면 500억이 넘는 돈이었다. 약초 덕에 골드 걱정이 없는 진에게도 엄청난 골드였다.

“좀 더 빠르게 해 볼까요?”

“……손, 손님.”

딜러는 떨리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벌써 4만 골드가 넘는 손실이었다.

만약 여기서 더 잃는다면…….

다행히 게임은 더 진행되지 않았다.

“마리아.”

얼른 다음 게임을 하자고 하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대답했다.

“예, 도련님.”

“적당히 놀았으면 가자.”

딜러를 구해 준 건 진이었다.

“예, 도련님.”

그녀는 진의 말에 곧장 돌아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그만할게요.”

“……감사합니다.”

딜러는 이 지옥 같은 게임이 드디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내일 또 올게요.”

내일 다시 시작이었다.

“내일 봐요.”

“…….”

딜러는 대답하지 못했다.

* * *

호텔의 심처.

“보고드립니다. 특별실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호텔의 지배인이 누군가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그곳이?”

“그렇습니다. 부제가 방문했는데, 그가 처리했다고 합니다. 다만, 그게 목적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특별실을 해결한 뒤에도 철수하지 않고 호텔을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그때의 사건을 조사하러 온 것인가 보군.”

지배인은 보고를 이어 갔다.

“하나 더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지배인의 말에 그는 보고해 보라는 듯 턱짓을 했다.

“부제의 일행 중 하나가 오늘 카지노에서 5만 골드를 따 갔습니다.”

“속임수는?”

“가까이서 겜블러들이 확인했는데,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순수하게 실력인 것 같습니다.”

부제와 일행이 조사를 하고 있는데, 남은 일행은 카지노에서 골드를 따고 있다? 그것도 엄청난 액수를?

그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를 부르는 걸지도 모르겠군.”

“……예?”

“이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자가 있을 줄이야. 부제라고 온 자가 제법 대단한 모양이군. 그에 관해 은밀히 조사해서 보고해라.”

“예.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지배인의 눈이 노란빛을 내며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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