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사냥.
“늑대인간?”
진이 화들짝 놀라 로메른에게 되물었다. 늑대인간이란 존재가 신기해서 놀란 건 아니었다.
“그거 전설 아니야?”
몸뚱이에 늑대인간과 관련된 기억이 있었다. 이곳이나 지구나 늑대인간에 관한 정보는 비슷했다.
허구이며 전설인 이야기.
아이들에게 해 주는 동화 속 이야기.
[세상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지.]
“……무슨 의미야?”
[늑대인간은 실존해.]
진은 되묻는 게 멍청한 짓이란 걸 알지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어. 꽤 역사가 깊은 이야기야.]
깊은 역사까진 필요 없었다.
“핵심만 알려 줘.”
[뭐, 간단한 이야기야. 인간들 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살아가고 있는 거야.]
전혀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누가 허락했고, 어떤 이들이 인간과 뒤섞여 살고 있는지 그 무엇 하나 설명이 되지 않았다.
“누가 허락한 건데?”
[그건 나도 정확히 몰라.]
“모른다고?”
설마 로메른의 입에서 모른단 말이 나올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어. 엄청 오래전 일이니까. 최초의 황제라는 말도 있고, 신이라는 말도 있고, 하여간 그래.]
“……그딴 허락이 용케 유지가 되네.”
[많은 피가 흘렀다고 들었어. 인간들에겐 까마득하게 오래전 일이지만, 녀석들에겐 아니야.]
“아직 기억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거지?”
[맞아. 그러니까 약속이 계속 지켜지는 거야.]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감이 잡혔다.
“그럼 우리가 조사해야 할 건 늑대인간이야?”
[아, 그건 아니야. 그쪽을 조사하는 게 아니라, 도움을 받을 거야.]
“도움?”
로메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늑대인간들은 마지막까지 약속을 지켰어. 현재로서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이들이야.]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인가.
대체 누구길래 늑대인간의 도움까지 받는 걸까.
그런 진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흡혈귀는 들어 봤어?]
늑대인간 다음엔 흡혈귀냐!?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그래. 늑대인간이 나왔으면 흡혈귀가 나와 줘야지.
“알고 있어.”
[이쪽도 약속한 종족 중 하나야. 우리가 조사해야 할 건 이놈들이야.]
로메른의 말을 들어 보니, 흡혈귀가 벌인 일이란 확신이 있는 거 같았다.
“흡혈귀가 범인이란 뜻이야?”
로메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이 멸망하게 되는 이유는 하나가 아니야.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어.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흡혈귀야. 우린 이 녀석들을 멈춰야 돼.]
“어떻게?”
흡혈귀들과 치열한 협상?
흡혈귀와 보이지 않는 전쟁?!
진은 이런 것들을 떠올렸는데, 로메른의 해결책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건 여러 종족이 얽혀 있는 문제라 우리가 해결하기엔 너무 귀찮아. 그냥 범인을 잡아다가 늑대인간에게 주면 돼. 그러면 그쪽이 알아서 해결할 거야.]
뒷일은 짬 때린다니, 그 얼마나 좋은 방법인가.
“좋은데?”
진이 보기엔 매우 훌륭한 방법이었다.
[그렇지? 이종족의 일은 이종족에게 맡기는 게 좋은 법이지.]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늑대인간과 접촉.
흡혈귀 범인 색출.
이렇게만 해결하면 된다.
* * *
흡혈귀 범인 색출은 진의 몫이었지만, 늑대인간과 접촉하는 건 ‘마리아’의 몫이었다.
일단 마리아에게 전설의 겜블러를 빙의시켰다.
저번에 연금술사를 빙의시켰을 때처럼, 그녀의 분위기가 완전히 변했다.
“도련님.”
언제나 냉정하고 침착한 그녀의 눈빛이 고혹적이고 요염하게 변했다. 단지 분위기만 변했을 뿐인데, 그녀의 외모마저 변한 기분이었다.
지금 마리아는 하녀가 아니다.
전설의 겜블러 ‘카라스’다.
“네가 할 일은 간단해. 뒷일 걱정하지 말고 카지노 주인이 튀어나올 정도로 따면 돼. 가능하겠어?”
늑대인간과 접촉하는 방법은 이게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다.
“저도 준비가 필요해요.”
그녀가 말한 준비는 간단했다.
‘전투 준비.’
그녀에겐 도박이 곧 전투였다.
전투를 앞두고 전사들이 얼굴에 워페인트를 칠하고 갑옷을 입는 것처럼, 그녀도 화장하고 도발적인 드레스를 입었다.
“저 어때요? 괜찮나요?”
고혹적인 화장과 표정에 과감한 드레스가 더해지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도박하는 상대는 한눈을 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네.”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그녀를 카지노로 보내야 했다.
물론 그냥 보낼 순 없었다. 그 전에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진은 지배인을 다시 만났다.
“방에 있던 문제는 해결됐어. 마지막 확인하고 있으니까 우리가 나간 다음부터는 손님 받아도 돼.”
“그, 그게 정말입니까?!”
“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배인은 머리가 땅에 닿도록 고개를 숙였다.
“감사 인사는 됐어. 대신 며칠 지내는 동안 편의를 좀 봐줬으면 좋겠는데.”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모든 최상급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진이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이쪽은 내 일행이야. 우리 들어올 때 봤지?”
“……예?”
지배인은 마리아를 알아보지 못했다.
“내 뒤에 있던 아이, 기억 안 나?”
“설마 하녀복을 입고 있었던 그분입니까?!”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배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힐끔힐끔 마리아를 훔쳐봤다.
“이 아이가 카지노에서 놀 건데 편의 좀 봐줘.”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카지노 가드들에게 특별히 모시라고 말해 놓겠습니다.”
“좋아. 그거면 충분해.”
이렇게 해 두면 마리아가 카지노에서 위험할 일은 없을 것이다.
“마리아. 재밌게 놀아.”
“예, 도련님. 오늘 저녁에 깜짝 놀라실 거예요.”
“좋지.”
이제 마리아가 늑대인간을 꾀어 낼 때까지 흡혈귀를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진은 다른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 * *
어느새 해가 지고 도시는 불야성을 이루는 것처럼 빛이 가득했다.
이제 진짜 조사를 할 차례다.
[제일 먼저 갈 곳은 사건이 벌어졌다는 장소야.]
“시간이 꽤 지났는데, 흔적이 남아 있겠어?”
[어, 상관없어. 이건 없어지는 흔적이 아니니까.]
로메른의 말대로 진은 곧장 사건 현장을 향했다. 도시를 꽤 돌아다녀야 했는데, 그건 그다지 문제 될 게 없었다.
“여기서 오른쪽.”
“오른쪽!”
가마 위에 앉아 아이들에게 방향만 지시하면 끝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뢰서에 적혀 있던 사건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 이건 생각 이상인데?”
괜히 교단에서 이곳을 조사해 달라고 한 게 아니었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벽과 바닥에는 피 얼룩이 보였다.
“다들 기다리고 있어.”
진은 가마에서 내려 피가 흐른 곳으로 다가갔다.
“로메른. 이걸로 뭘 알 수 있어?”
[이렇게 단서가 많은데, 모를 이유가 없지.]
“단서가 많다고?”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곤 피 쪽으로 날아가 힘을 발휘했다. 곧이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벽과 바닥에 묻어 있던 핏자국들이 바스러지듯 사라지고, 그것들이 로메른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으음. 생각대로네. 흡혈귀가 난리 친 거 맞아. 그것도 엄청나게 어린 흡혈귀.]
“어린 흡혈귀?”
[어. 흡혈귀가 된 지 오래되지 않은 녀석이야. 피 순도도 낮고, 구울이 되지 않은 게 용할 정돈데?]
“그런 것까지 확인할 수 있는 거야?”
[그것뿐이겠어? 잡다한 정보도 많아. 희생된 인간의 피도 꽤 많네.]
순간 진의 표정이 굳었다. 그런 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메른은 계속 설명을 이어 갔다.
[피가 오래돼서 이 정도밖에는 못 알아냈지만,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건 다 확인했어.]
“다 확인했다고?”
[어.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이 왔어.]
로메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여기서 벌어진 일은 말이 되지 않아. 애초에 어린 흡혈귀는 피의 욕망을 다스릴 때까지 바깥출입 못하게 돼 있으니까.]
그런데도 어린 흡혈귀가 난리를 쳤다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흡혈귀를 만들고 일부러 방치했다는 거야?”
[그래. 우리가 찾아야 할 건 흡혈귀를 만든 그놈이야.]
이런 일을 꾸미고 있는 흡혈귀.
그 녀석이 목표였다.
“방법은?”
[이런 일을 꾸미는 녀석이 흡혈귀를 하나만 만들어 놨을 리 없지. 내 생각엔 더 있어. 그 녀석들이 찾아오게 만들면 돼.]
찾는 게 아니라 찾아오게 만든다. 이쪽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진, 너의 피엔 엄청난 생명력이 담겨 있어. 거기서 풍기는 향은 어린 녀석들이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럼 녀석들이 찾아올만한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진은 곧장 가마에 탄 뒤,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도시 외곽으로 가자. 최대한 으슥한 곳을 찾아봐.”
흡혈귀 사냥 시작이다.
* * *
도시 외곽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도시 중심부와는 정반대였다.
칠흑 같은 어둠이 가득했다.
흡혈귀들을 끌어들이기엔 최고의 장소였다.
진은 그놈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노바와 아이들을 꽤 멀리 떨어진 곳에 두고 홀로 왔다.
물론 완벽하게 혼자는 아니었다.
[진. 서클 안에서 보조해 줄 테니까 마음껏 움직이면 돼.]
진의 서클에 로메른이 들어가 있었다. 이건, 노바가 성령을 사용 것과 마리아의 빙의를 합친 것과 비슷한 방법이었다.
‘정령 융합.’
서클의 활용은 로메른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몸을 움직이는 건 노바처럼 진이 직접 움직여야 했다.
‘경험은 충분해.’
겁이 나거나 두렵진 않았다. 이런 건 패배할 것 같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이 정령 융합 상태일 땐 노바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시작할게.”
진은 손끝에 상처를 냈다. 핏방울이 손끝에 몽글 피어올랐다.
잠시 후.
[느껴지지?]
로메른 덕에 확장된 기감(氣感)에 무언가 걸리기 시작했다.
뭔가 접근하는 게 느껴졌다.
크아아-!
극한까지 활성화된 감각이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게 해 주었다.
“시작할게.”
진이 활을 쏘는 자세를 취했다.
진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지만, 이내 무언가 생기기 시작했다.
[준비됐어!]
로메른의 말과 함께 빛으로 만든 활이 나타났다. 진이 그 활의 시위를 당기자, 빛의 화살이 생긴다.
진은 시위를 놓았다.
……!
빛으로 만든 화살이 날아간다. 화살은 빛의 궤적을 만들며, 이내 무언가에 적중했다.
털썩.
달려오던 무언가가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다시 한 번 활을 당긴다.
그리고 다시 화살이 쏘아진다.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고 다른 녀석에게 적중했다.
털썩.
무언가 쓰러진다.
활을 쏘는 소리도,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도, 심지어 화살이 맞은 소리마저 나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만 쓰러질 뿐이다.
하지만 활만으론 부족했다.
흡혈귀 전부를 잡을 순 없었다.
[진. 15M 앞까지 왔어!]
두 녀석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젠 진의 눈에도 녀석들이 보일 정도였다.
[진 5M! 코앞이야!]
시시각각 녀석들이 다가오지만, 상관없다. 진은 전투가 처음이지만, 처음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전해 준 경험엔 전투 경험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저 자세를 취하고 녀석들을 기다렸다.
크아아아-!
입가에 피가 묻어 있는 얼굴.
더는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몸짓과 표정.
진의 몸이 순간 흐릿해지고.
스걱.
달려오던 녀석의 목을 베어 냈다.
진의 손엔 어느새 빛으로 만들어진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피가 뿜어지고, 녀석이 쓰러진다.
하지만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흡혈귀 하나가 남아 있었다.
진의 손에 있던 단검이 사라지고, 진의 주먹 위로 빛이 어린다.
“후우.”
깊이 호흡을 들이마시고, 기본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정권을 내질렀다.
퍼-억-!
가죽이 터지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콰앙--!
녀석이 벽까지 날아가 처박힌다.
마지막 녀석이 쓰러졌다.
팽팽하던 긴장이 풀리고, 진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와, 이게 되네.”
그런 진의 혼잣말에 로메른이 화답했다.
[기대 이상인데?]
칭찬에 인색한 로메른이 이런 말을 할 정도면 말 다 한 것이다.
“끝이야?”
[어. 잠깐 기다리고 있어. 저것들 회수해 올 테니까. 정혈만 뽑아내면 누가 만든 건지 바로 찾을 수 있어.]
“알겠어.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진은 잘게 떨리는 손을 부여잡은 후 심호흡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첫 번째 실전이 끝났다는 게 실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