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26화 (26/210)

026. 이게 던전 탐험이냐!?

외출하자던 로메른의 이야기는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연금술사의 던전?”

판타지의 꽃.

던전.

이곳은 귀찮음보다 호기심이 앞서는 장소였다.

인간적으로 판타지 세상에 왔으면 던전 한 번쯤은 가야지!

‘던전 탐험이라니. 설레잖아.’

정보만 확실하다면 보상이 확실한 곳이 던전이다. 회귀자인 로메른의 기억이라면 정보가 틀릴 리도 없었다. 심지어 위치마저 좋았다.

“그런 던전이 남작령 안에 있다고?”

다른 도시로 넘어가거나 멀리 여행을 떠날 필요도 없었다.

[남작령에 와 있는 연금술사 있지? 그 양반이 찾아내는 던전이야.]

“……뭐?”

[연금술사 고위직이 이 남작가에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왔겠어? 다른 목적이 있으니까 온 거지.]

그 말대로였다.

연금술 재료들의 유통을 꿰뚫을 만큼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남작령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걸 우리가 차지한다는 거지?”

[그렇지! 2년 뒤인가 3년 뒤쯤에 던전이 발견돼. 아마 지금은 애먼 곳을 찾고 있을 거야.]

그럼 연금술사 쪽 사람들과 마주치거나 문제가 생길 리도 없었다. 게다가 연금술사의 던전이면 안을 뒤지면 쓸 만한 게 잔뜩 나올 것이다.

그렇게 진이 생각하고 있을 때, 녀석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입을 열었다.

[설마, 미래에 주인이 있는 물건이라고 망설이는 건 아니지?]

그 말에 진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가 있어? 던전은 먼저 찾은 사람이 임자잖아. 그게 아니라 연금술사의 던전이면 보상으로 뭘 챙겨 올 수 있을지 생각 좀 해 봤어.”

진의 말에 녀석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던전에 주인이 있는 게 말이 돼? 우리가 차지해서 더 좋은 곳에 쓰면 되는 거 아니야?]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해. 기왕 쓸 거면 진짜 필요한 사람들이 써야지. 예를 들면 세상을 구하는 우리?”

[그렇지!]

둘은 쿵짝이 맞았다.

“그래서 가면 뭐가 있는 거야? 영약이라도 있어?”

[더 좋은 게 있어.]

“더 좋은 거?”

[던전 보상이 뭔지 벌써 공개하면 재미없잖아.]

하긴 그 말도 맞았다.

던전 탐험의 재미는 마지막에 있는 보상인데 그걸 벌써 확인하는 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서 얻는 게 대박인 건 확실한 거지?”

[어. 확실해. 아 그리고 그 마리아란 하녀 꼭 데려가.]

“마리아?”

[재밌는 걸 볼 수 있을 거야.]

비효율을 극도로 싫어하는 녀석이 데려가라면 이유가 있을 터.

“알겠어.”

그렇게 외출이 결정됐다.

* * *

예전엔 난리를 떨고 나서야 외출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남작령 벗어나지 않을 생각이에요. 아이들도 전부 데려갈 생각이구요. 바람 좀 쐬고 올게요.”

“다녀오거라.”

진이 호위로 데리고 다닌 아이들의 실력을 남작도 알고 있었다. 그는 다른 곳이면 몰라도 남작령이라면 위험할 리 없다고 판단했다.

덕분에, 여행은 단 하루 만에 준비됐다. 이건 정말 중요한 의미였다.

‘이제 남작령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이거야!’

남작령에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가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 덕분에, 이번 여행은 저번에 치료하러 갈 때와는 전혀 느낌이 달랐다.

“아, 날씨 좋다.”

일이란 느낌보다는 정말로 여행을 가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건 며칠 가지 못했다.

[이쪽으로 가야 돼.]

로메른이 가자고 하는 방향이 문제였다.

남작령의 가장 끝.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금역.

“저번엔 위험해서 이쪽 가면 안 된다면서?”

영기를 회수하러 다닐 때 일부러 빼놓았던 지역이었다.

[그거야 저번 일이고, 이젠 위험할 일 없어.]

하긴 생각해 보면 그랬다.

그때는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녀석의 말에 자신이 성장했다는 게 실감됐다.

“그래. 가자.”

진은 로메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마차의 경로를 정했다. 처음엔 이곳이 어째서 금지로 불리는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 그런지 더 공기가 좋은 느낌이었다.

[그거 공기 좋은 거 아니다. 사람이 다니질 않으니까 자연의 마나가 더 많아서 그래.]

녀석은 진의 감상에 초를 쳤지만, 어쨌든 좋은 건 좋은 거였다.

로메른의 말처럼 서클을 타고 들어오는 자연의 마나 양은 집에 있을 때보다는 확실히 많았다.

물론 이런 평화로운 상황은 초입을 넘어 내부로 들어오자 순식간에 깨졌다.

몬스터들이 하나둘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차는 멈추지 않았다.

“적 발견.”

적을 발견한 건, 레인저 날파람이었다. 녀석은 적을 발견하자마자 마차 지붕 위로 올라갔다.

“적 사살한다!”

[좋아. 첫 시작이니까 제대로 해 보자고.]

수련하며 실력을 키웠던 아이들.

그 아이들과 로메른이 움직였다.

활을 들고 있는 성령이 날파람에게 깃든다. 한데 그 모습이 조금 묘했다.

온몸에 힘이 깃든 게 아니라, 팔과 어깨에만 힘이 깃들었다.

[이제 부분 합일도 잘하네.]

부분 합일. 일부분만 합일된 만큼 체력이 보존된다.

날파람은 거대한 철궁을 당겼다.

그그그극!

얼마나 힘껏 당겼는지 철궁은 비명을 토해 내듯 소리를 냈다.

그리고 화살이 쏘아졌다.

퉁-!

일반 화살이 쏘아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소리.

“……미친.”

그런 소리처럼,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화살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고블린이 화살에 맞은 순간 뒤로 날아갔다.

“키에엑?!”

게다가, 활은 파워만 강한 게 아니었다.

퉁-!

퉁-!

퉁-!

속사마저 가능했다.

마차에 다가오던 고블린들은 화살을 맞고 다들 날아갔다. 운 좋게 고블린 하나가 마차 근처까지 도착했지만, 소용없었다.

이 마차엔 날파람 혼자 타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핑-!

마부석 쪽에서 암기가 하나 날아왔다. 그 암기는 정확히 고블린의 머리를 꿰뚫었다.

“정리 완료.”

마차 위에서 날파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든든하네.’

골드를 처바른 보람이 있었다.

마차는 멈추지 않고, 숲 안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 * *

금지라고 불린 것과는 달리.

대단한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소형 몬스터가 대부분이었고, 녀석들은 마차 근처도 오지 못했다.

그렇게 아무런 어려움 없이 한나절을 달리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 뭐가 있어?”

문제는 목적지에 도착했음에도 던전이라고 할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있어. 내가 여길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가 신기해서거든.]

“신기해서?”

[이쪽으로 와 봐.]

녀석은 진을 커다란 암벽이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진은 혹시나 해서 물었다.

“설마 여길 올라가야 한다는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애초에 그게 신기하겠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이쪽으로 와 봐.]

진은 녀석이 이끄는 곳으로 다가가자, 떨어져 있을 땐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어?! 동굴?”

분명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곳까지 다가오니 입구가 보였다.

“뭐야 이거?”

[마법 같은 게 아니라, 순수하게 착시 현상을 이용해서 던전 입구를 만든 거야. 이것 때문에 여길 찾는 데 3년이나 걸렸다고 들었어.]

“보통은 입구를 마법으로 숨기나 보네?”

[맞아. 그래서 던전을 찾을 때 마법 흔적을 추적하는 게 기본이야. 이 양반은 허를 찌르는 방법으로 자신의 던전을 숨긴 거고.]

게다가, 멀리서 보면 착시 효과 때문에 완벽하게 숨겨져 있다. 마법도 느껴지지 않고, 멀리서 보기엔 확인이 되지 않는 던전 입구.

이러니 전문가가 붙어도 못 찾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여길 찾은 게 더 용한데?”

[3년 동안 이 잡듯이 뒤져서 찾았다고 들었어.]

하긴, 그랬으니 이곳을 찾았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덕에 그 양반은 시간 낭비 안 하게 됐으니까 다행이지.]

그게 그렇게 되나?

진은 로메른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좋아. 그럼 안으로 들어가 볼까?”

진은 아이들을 불러 던전을 들어간다고 설명해 주었다.

다들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마리아. 너도 챙겨야지.”

“……예?”

마리아도 이 상황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에겐 외출한다고만 말했지 자세한 이야기는 해 주지 않았다.

‘금역 쪽으로 들어갈 때 꽤 놀란 거 같긴 했지.’

그렇다고 마리아를 두고 갈 순 없었다.

“마리아. 너도 들어갈 거야.”

“알겠습니다, 도련님.”

당황하긴 했지만, 역시 마리아였다. 이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냥 들여보낸다는 건 아니야.”

진의 말과 함께, 마리아의 곁으로 방패들이 날아왔다.

총 8개의 방패.

이걸 붙여 줄 생각이었다.

“평소에 빗자루와 먼지떨이를 다루는 걸 생각하면, 8개 정도야 쉽지?”

“그렇습니다.”

진의 말대로 그녀가 성령들을 다루는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성장에 묻혀서 그렇지 그녀도 물건에 빙의한 성령을 다루는 게 훨씬 완숙해졌다.

“걱정은 하지 말고, 어차피 우리가 있는 쪽까지 못 다가올 테니까.”

“알겠습니다, 도련님.”

그녀는 나름의 각오를 마친 거 같았다. 마리아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이들은 준비를 끝마쳤다.

“그럼 들어가자.”

진의 말에 날파람이 앞장섰다.

던전 공략이 시작됐다.

* * *

던전 내부는 진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함정과 미로, 열리지 않는 문!

이것이야말로 던전의 꽃이었는데, 그런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두컴컴한 동굴이 길게 이어졌고, 야생동물의 누린내와 대변 냄새만 짙게 풍겼다.

물론 그건 진의 생각일 뿐이었다.

[자리를 잡은 녀석이 있나 보네.]

“안에 무언가 있다. 천천히 간다.”

로메른과 날파람은 뭔가 다른 판단을 내린 거 같았다. 진과 일행은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진입했다.

잠시 후, 꽤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크어어엉!

문제는 그곳에 주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거대한 덩치와 압도적인 존재감.

곰처럼 생긴 녀석이 몸을 일으켰다.

[자이언트 베어네. 노바 보내면 돼.]

진은 로메른의 말대로 곧장 움직였다.

“노바 막아!”

“내가 간다!”

노바가 순식간에 앞으로 달려가는 사이, 어느새 로메른이 성령을 꺼냈다.

꺼낸 성령은 하나가 아니었다.

노바와 용수바람의 성령.

두 성령이 모습을 드러내고, 곧장 아이들과 연결됐다.

크어어어엉!

그 잠깐 사이 녀석은 자신의 옆에 있던 바위를 집어 던졌다.

‘동물이 무슨 원거리 공격을!?’

거대한 바위가 빠른 속도로 날아온다. 이걸 어떻게 막나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게 등장했다.

콰아아앙-!

8개의 방패가 바위를 막아 내고,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하아. 하아.”

마리아는 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저 바위를 막은 것만으로도 그녀는 1인분 이상을 해냈다.

“나이스.”

그녀가 바위를 막아 내는 사이, 아이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용수바람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전투의 갈망.”

그 순간, 노바의 성령이 거대해지고 짙은 신성력을 띠기 시작했다.

“크아아!”

노바는 괴성을 지르며 곰에게 다가갔다.

크어어엉!

“크아아!”

곧이어 주먹과 앞발이 오가는 싸움이 벌어졌지만, 인간과 짐승의 싸움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괴수와 괴수의 싸움이었다.

인간은 절대 힘으로 곰을 이길 수 없다. 이게 당연한 상식이었는데.

퍼억. 퍼억.

크어어어엉!

그 상식은 노바의 주먹질에 산산이 부서졌다.

곰은 노바에게 처맞고 있었다.

그것도 주먹으로.

진은 놀란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로메른은 당연하단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역시, 야만왕이야.]

노바의 경험을 받아들였지만, 진이 저렇게 싸울 수 있을까? 전혀 아니었다.

저건 노바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우드득.

노바와 곰의 괴수 대전은 곰의 목뼈를 부러트리면서 끝났다. 곰을 때려잡은 노바는 진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주인, 가죽 깨끗하다.”

아 가죽 때문에 때려잡으셨구나.

“고생했어.”

“나 지킨다.”

노바의 말은 정말이지 든든했다.

* * *

아이들이 곰 가죽을 도축하는 사이, 진은 로메른과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입구에 이런 녀석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안쪽으로는 함정밖에 없을 거야. 금방 끝나겠네.]

“함정 구간이 제일 오래 걸리는 거 아니야?”

[뭐, 그렇긴 한데 나랑 있으면 전혀 아니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로메른의 몸에서 수십의 성령이 쏟아져 나왔다.

[해제하면 끝이잖아?]

그 말과 함께 그 성령들이 통로 안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통로 안쪽에서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쿵!

끼기긱!

콰앙-!

내부에 있는 함정이 한 방에 해제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한 던전 탐사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이제 안에 들어가서 보상만 가져오면 돼.]

로망은 무슨……. 어차피 보상 얻자고 하는 일인데, 이쪽이 훨씬 좋았다.

“마리아랑 살바람 따라와. 나머진 도축하고 있어. 요 앞에 갔다 올 테니까.”

진은 둘을 데리고 통로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곳곳에 함정이 발동한 흔적은 있었지만, 작동하는 함정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여간 철저하다니까.’

그렇게 통로 끝에 도착했을 때, 작은 공간이 다시 한 번 나왔다. 그곳에는 연금술 도구들과 책이 가득했다.

“이게 보상인가?”

당연히 아니었다. 곁에 있던 살바람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영약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와우.”

그래. 던전 탐험 보상이 이 정도는 돼야지.

“로메른?”

한데, 로메른은 이런 것들에 관심도 보이지 않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잠깐만, 여기 어디 있을 텐데.]

그렇게 주위를 돌아다니던 녀석이 한쪽 구석에서 뭔가를 발견한 듯 소리쳤다.

[찾았다!]

녀석의 손에는 귀신 하나가 붙잡혀 있었다.

‘귀신?’

대체 저 귀신이 뭐길래?

진의 물음이 커질 때쯤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이 귀신이 진짜 보상이야.]

녀석의 시선이 마리아에게 꽂혀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