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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의 정령 천재-24화 (24/210)

024. 이게 회귀자 정령이지!

갑자기 나타난 말릭.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진이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진, 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하고 싶은 대로 해. 뒷감당 전부 해 줄 테니까. 내 소환자가 어디서 쫄고 다니는 꼴 난 못 본다.]

로메른의 말에 진은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내가 걱정할 게 뭐가 있어?’

사상 최강의 영웅이 자신의 정령이다. 귀찮아지는 게 걱정이지 눈앞의 녀석이 두려운 건 아니었다.

“알고 오신 것 같으니 제 소개는 안 해도 되죠? 서서 이러지 말고, 들어가서 이야기하죠.”

진은 녀석의 대답도 듣지 않고, 안으로 휘적휘적 걸어 들어갔다.

웬만한 일로는 당황하지 않는 마리아가 꽤 당황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러고 있지 말고, 애들한테 오늘 저녁까지 훈련하고 오라고 말이나 전해 줘.”

“……죄송합니다, 도련님.”

뭐가 죄송할까?

백작의 자제인 그에게 마리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죄송할 게 뭐가 있어. 괜찮아. 나간 김에 차 한잔 천천히 마시고 들어와.”

“예, 도련님.”

진은 마리아를 밖으로 보냈다.

그리고 안으로 걸어 들어가 마당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앉으시죠.”

그는 진의 태도에도 불쾌하지 않은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예.”

한 테이블에 앉아 서로를 마주 봤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여기 우리 둘밖에 없는 겁니까?”

“예. 우리 둘뿐입니다.”

그 말에 녀석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제가 어떤 인간인지 아실 텐데, 무섭지 않으십니까?”

옅은 미소와 훤칠한 얼굴.

여기까지만 보면 정상인이었는데, 녀석의 눈을 보면 그 생각이 달라진다.

녀석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광기가 일렁였다.

‘그런데 말투는 또 침착하고.’

그 부조화가 녀석을 더욱 이질적으로 느껴지게 했다.

진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내가 왜 겁을 먹어야 합니까?”

“그렇습니까?”

녀석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피처럼 끈적이는 시선.

마치 속을 들여다보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숨 막히는 긴장감과 침묵이 맴돌았다.

그때, 여태껏 조용히 있던 로메른이 움직였다.

[이 미친놈이 진짜. 누굴 시험해 볼라고!]

로메른의 분노한 목소리와 함께, 순간 빛이 번쩍였다.

툭.

바닥으로 잘린 테이블 모서리가 떨어졌다. 곧이어 나무 탄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빛을 이용한 공격.

로메른이 걱정하지 말라고 한 이유가 있었다.

[생각하고 있는 거 행동으로 옮기면 다음엔 대가리에 쏜다고 전해.]

평소처럼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녀석의 광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무언가’가 담긴 목소리.

멸망을 막기 위해 돌아온 ‘영웅’.

눈앞의 미친놈과는 격이 달랐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거 행동으로 옮기면 머리통에 구멍 날 겁니다.”

녀석은 조용히 양손을 들어 보였다.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표시였지만.

‘……진짜 미친놈이네.’

눈에 일렁이는 광기, 지금 이 상황이 즐겁다는 저 표정. 당장이라도 움직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움직이진 못했다.

진의 경고는 그냥 무시하기엔 로메른의 공격은 너무 대단했다.

언제 어떻게 공격했는지 보이지도 않았던 공격.

녀석은 경솔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역시 당신을 찾길 잘했습니다.”

대신 녀석은 입을 열었다.

대체 이 녀석은 자신을 왜 찾은 걸까.

“절 왜 찾은 겁니까?”

“감찰부와 함께 교단의 이단 심문관이 움직였습니다. 대체 어떤 자가 왕국과 교단을 동시에 움직였는지 당연히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이 정신병자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는 ‘호기심’이었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생각지도 못한 해답이 나타났습니다.”

녀석의 시선이 진에게 꽂혔다.

“남작가의 막내아들.”

미소 짓고 있는 녀석의 눈 위로 흥미와 호기심 그리고 광기가 일렁였다.

“고작해야 남작가의 막내아들이 왕실과 교단을 어떻게 움직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조사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광기가 흘러넘쳐,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표정마저 기괴하게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보니 알겠군요.”

무엇을?

이쯤 되니 진은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보여 준 건 로메른의 광선 공격뿐이었다.

“제가 특별한 것처럼, 당신도 특별한 겁니다.”

그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말했다. 한데 진이 보기엔 저건 특별한 게 아니었다.

그저 미쳤을 뿐이었다.

“전 이 상황이 너무 즐겁습니다. 당신이란 존재를 알게 되어 기쁩니다. 뭐, 당신과 손을 섞어 보지 못한 건 아쉽지만요.”

도대체 뭐가 기쁘고 즐겁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말하고 있는 걸 보면, 복수를 위해서 온 것도 아니었다.

대체 이 또라이는 뭘까.

미친놈?

미쳤다는 것만으론 부족한 느낌이었다. 대체 어떤 인생을 보내야 이런 인간이 만들어지는 걸까.

그런 진의 의문을 로메른이 풀어 주었다.

[이놈, ‘살해의 업’을 타고난 거 같아. 데스나이트로 만들기에 최상급 재료인데, 죽일까? 일단 죽인 뒤에 보관했다가 나중에 만들면 될 것 같은데?]

뒷이야기는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감찰부와 약속하고 카이얀 요새로 가는 녀석을 죽이면 일이 굉장히 복잡해진다.

로메른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진짜 집중해야 하는 건, 앞부분이었다.

‘살해의 업?’

로메른은 살해의 업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살해의 업을 타고난 놈들은 무언가를 죽이지 않고는 못 사는 놈들이야. 세상이 어지러울 땐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평화로운 시대엔 살인귀일 뿐이지.]

살해의 업이 뭔지 대충 감이 왔다.

살해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

살해하지 않고는 살아가지 못하는 인간.

문제는 그것만으로는 눈앞에 있는 말릭을 설명하진 못했다.

‘종잡을 수가 없어.’

그런 진의 생각처럼.

“그럼 가 보겠습니다. 카이얀 요새에 빠르게 가지 않으면 사고를 칠 거 같거든요.”

녀석은 뜬금없이 작별 인사를 고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온 거야?

‘아니지. 미친놈이 괜히 미친놈이겠어.’

진은 녀석을 이해하는 걸 포기했다.

“멀리 안 나갑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다음에 또 보긴, 어림도 없지.

“글쎄, 당신에게 다음이 있을 거 같습니까?”

로메른의 말대로라면 카이얀 요새 쪽에 난리가 난다고 했다.

사제의 치료를 받지 못하는 저 녀석이 그때 버틸 수 있을까?

아니, 어려울 것이다.

확고한 진의 말에 녀석은 진한 미소를 흘리며 대답했다.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반드시.”

이딴 헛소리를 하곤 녀석은 자신의 저택을 떠났다.

진은 녀석이 떠나자마자 곧장 집 안으로 들어가 소금을 꺼내 왔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진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소금을 뿌렸다.

* * *

말릭과의 만남은 진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

‘너무 가볍게 생각했어.’

진은 교구장에게 부탁만 했을 뿐, 일이 진행되는 것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그저 ‘시작’만 열었을 뿐이었다.

고작 시작이기에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자신에게 화살이 향할 거라 생각지 않았다.

그 일을 집행한 건 교단과 감찰부였다. 그러니 그쪽으로 화살이 향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어수룩한 생각이었다.

말릭은 자신을 찾아냈다.

‘방심한 건가? 아니지…….’

진의 시선이 로메른을 향했다.

아군일 때 한없이 든든한 녀석.

세상을 구한 영웅이자 회귀자.

그런 로메른이 있기에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생겨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회귀자와 빙의자. 자신이 로메른과 비슷한 존재라 생각한 것일지도 몰랐다.

‘안일했어.’

몸은 회복했지만, 자신은 일반인과 다를 게 없는 존재였다.

만약, 말릭이 진을 기습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로메른이 있으니 별일 없었겠지.’

그럼, 언제나 로메른 뒤에 숨어서 살아가야 하나?

앞으로 이런 위험이 밀려올 때마다?

‘후회하진 않아.’

로메른과 얽힌 건 후회하지 않는다. 애초에 녀석이 아니었다면 몸을 회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충분히 공평한 거래였어.’

게다가 로메른은 진이 귀찮아지는 것 이상으로 여러 가지 보상을 해 주고 있었다.

‘문제는 나야.’

경각심이 너무 없었다.

평온하고 평안한 생활을 원한다고 해도, 필요할 때는 움직여야 하는 법이다.

진은 로메른을 보며 입을 열었다.

“로메른. 나 강해지고 싶어.”

적어도 자신을 스스로 지킬 만큼은 강해지고 싶었다. 한데, 로메른의 입에선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하여간,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다니까. 내가 준비해 놓은 건 어떻게 알고.]

“응?”

[당연히 강해져야지. 정령사가 강해져야 정령이 강해지잖아. 내가 강해지려면 네가 먼저 강해져야 돼.]

“……그러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진이 강해져야 로메른이 강해진다.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수련을 하거나 뭘 하는 건, 네가 원하는 게 아니잖아? 솔직히 나 때문에 수련하라고 하는 것도 웃기지.]

“어. 음. 그렇지.”

오랜만에 불탔던 의지는 저 말을 듣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졌다.

[넌 정말 나랑 계약한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돼. 딴 놈들은 꼰대들이라 직접 땀을 흘려야 강해지니 이딴 헛소리나 해댄다니까?]

선생님, 설마 땀을 흘리지 않고 강해지는 그런 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의지는 개뿔, 역시 로메른만 믿고 가자 이거야!

“어떤 방법이야?”

[내가 예전에 언데드를 만들 때 그런 생각을 했어. 데스나이트의 전투 기술을 복사해서 스켈레톤한테 주면 어떻게 될까?]

“데스나이트급 검술을 쓰는 스켈레톤이 만들어지는 거야?”

[아니. 안 되더라고.]

“어?”

[아, 실패했다는 뜻은 아니야. 기술이란 게 육체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

곧이어 녀석의 설명이 이어졌다.

[기억을 받는 사람은 기억을 주는 사람과 비슷한 육체거나, 더 뛰어난 육체를 가지고 있어야 돼. 그리고 기억을 받아들일 뇌도 필요하고.]

기억을 받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필요했다.

기억을 주는 사람만큼 좋은 육체.

기억을 받아들일 뇌.

[그런 의미에서 보면, 넌 준비가 끝났어.]

“내가? 어떻게?”

[내가 설계하고 공사한 몸인데, 그 몸뚱이의 성능이 낮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내 몸은 일반인 정도 아니야?”

[어. 일반인 정도만 힘쓸 수 있게 몸에 제한을 걸어 놨어.]

“제한을? 왜?”

[네 몸 계속 공사 중인데, 손상이 생기면 큰일이니까. 일반인 정도만 해도 충분하잖아?]

“그건 그렇지.”

맨날 해먹에 누워 있는 진.

그런 진에게 제한이 걸린다고 불편함이 있을까? 아니, 전혀 없었다.

[그리고 너 잘 때 내가 매일 치료하는데, 아직도 아무런 발전이 없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그 말대로였다.

치료는 그때 끝난 게 아니었다.

매일 저녁 녀석은 진 몸 안으로 들어와 치료를 이어 갔다. 어째서 차도가 없나 했더니.

차도가 없는 게 아니었다.

“그럼 내 육체는 좋은 거야?”

[당연하지. 최후의 영웅들의 모든 장점을 모아서 만든 육체. 이 정도면 이해가 돼?]

“세상에…….”

진이 감탄하고 있을 때 녀석이 초를 쳤다.

[물론, 지금도 공사 중이야. 아직 완성을 시키기엔 내 힘이 부족하니까. 일단 기초 설계 정도 끝났다고 보면 돼.]

맨날 해먹에 누워 있었는데, 진의 육체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개꿀?’

뭔가 생각지도 못한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로메른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애들이 수업 받으면서 쌓은 경험. 그거 고스란히 네 몸에 전해 줄 거야.]

육체는 기본일 뿐 진짜는 바로 이 경험이었다.

[내가 만든 육체와 야만왕과 그 친위대들의 수련 경험. 이 정도만 해도 기본은 될 거야.]

선생님. 그게 기본인가요?

기준이 높은 사람이 밀어주니 이거 하난 확실히 좋았다.

남들은 영혼을 팔아도 못 얻는 기연이 진에겐 고작 ‘기본’일 뿐이었다.

[그 외에도 너를 위한 성장 플랜은 차근차근 진행 중이야.]

녀석은 진작부터 진의 성장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녀석이 착해서 이런 걸 해 주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진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넌 가만히 있어. 내가 무조건 강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기왕 말 나온 김에 오늘 저녁 어때?]

아이고, 선생님께서 편하실 때 해 주시면 됩니다!

진은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고, 애써 담담하게 대답했다.

“좋지.”

이거지.

이게 회귀자 정령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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