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23화 (23/210)

023. 구하길 잘했다

아이들이 훈훈하게 인사를 나누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교구장은 자신이 할 일은 끝났다는 듯, 슬그머니 돌아가려고 했다.

보면 볼수록 멋진 양반이었다.

‘멋진 퇴장이네.’

자신이 구해 놓고도 감사를 원하지 않았고, 용수바람의 행복을 본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간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가 돌아가려고 할 때,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어? 저 양반 어디 가. 가지 말라고 해.]

진짜 눈치라고는 없는 녀석이었다. 진이 못 들은 척하니 녀석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이대로 보내면 안 되지. 저 양반도 성과를 들고 가야 할 거 아니야.]

“성과?”

진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녀석이 대답했다.

[교황청에 말해서 감찰부까지 움직였는데, 교구장도 성과를 들고 가야지.]

그제야 진은 로메른이 하는 이야기가 이해됐다.

[교구장이 이번 여행으로 성장도 했는데, 여기서 성과까지 들고 가면 교황청 내부에서 힘도 커지지 않겠어?]

교황청 내부의 힘이 커지면?

[당연히 그 수혜의 당사자는 우리가 되는 거지.]

이런 영리한 방법이!

모두가 윈-윈인 데다가, 교구장도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완벽한 플랜!

[그러니까 구해 온 아이들 전부가 성령을 사용할 수 있는 걸 보여 줘야 돼.]

성령을 사용하는 아이를 구했다.

그 사실만으로 충분한 성과가 되어 줄 것이다.

[게다가 교구장이 구한 용수바람은 주술사잖아? 성령을 좀 더 특별하게 다루는 게 가능해. 교구장의 성과로는 차고 넘칠 거야.]

고생하신 교구장님께 든든한 성과를 넣어 줘야지!

진은 곧장 교구장에게 다가갔다.

“교구장님.”

“형제님.”

“벌써 돌아가실 생각이십니까?”

“조용히 돌아가려고 했는데……. 형제님께서 보고 계셨군요.”

교구장은 조금 쑥스럽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보여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보여 주고 싶은 게 있다는 말에, 교구장의 얼굴엔 의문과 함께 기대가 퍼져 나갔다.

진은 노바를 불렀다.

“노바.”

진의 부름에 노바는 물론이고, 나머지 아이들까지 진의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 주인이다.”

노바가 진을 소개해 주자, 다른 아이들이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노란바람’이 자신의 주인이라고 당당하게 소개할 거라곤 생각지 못한 거 같았다.

“어 다들 반갑고, 인사는 천천히 하자. 부른 이유는 따로 있으니까.”

진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금 인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교구장에게 든든한 성과를 보여 줘야 했다.

“내가 누군지 궁금할 거야. 아무리 팔려 왔다지만 노란바람이 어째서 날 주인이라 부르는지 궁금할 테고.”

녀석들은 어느새 진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특별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진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보여 줄게.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진은 로메른에게 손짓했다.

[보여 주자고.]

아이들을 구하는 동안, 로메른은 놀고만 있지 않았다. 녀석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뭔가를 만들어 냈다.

그걸 확인할 차례였다.

[나와라. 나의 걸작들아!]

그 말과 함께 로메른의 몸속에서 성령이 4개나 튀어나왔다.

첫작이었던 노바의 성령을 제외한 나머지 3개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거대한 활을 메고 있는 성령.

로브를 쓰고 단검을 든 성령.

마지막으로 유일한 여자 형태의 성령.

[이동해라.]

그렇게 나타난 성령들은 아이들의 등 뒤에 섰다.

이건 개인의 특성에 맞춰, 로메른 맞춤 제작한 성령들이었다.

만능인 노바.

레인저인 날파람.

암살자인 살바람.

주술사인 용수바람.

각 개인의 성향에 맞춘 성령들.

[발전한 모습을 보여 주마!]

로메른의 당당한 말과는 달리, 일어난 일은 소박했다. 원래라면 로메른이 직접 성령과 아이들을 연결해 줘야 했지만, 그게 자동으로 됐다.

이다음에 해야 할 일은 진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생명력을 뒤에 있는 성령에게 보내 줘. 모르겠으면 노바가 하는 걸 보면…….”

진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용수바람은 능숙하게 생명력을 성령에 부여했다.

“……용수바람이 하는 걸 봐도 되고.”

잠시 후, 넷 모두 성령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성령을 활성화시켰다.

“세상에…….”

그 모습을 본 교구장이 나지막이 감탄을 터트렸다.

[벌써 놀라면 안 되지.]

로메른은 그 말을 한 뒤, 진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빠르게 설명했다.

‘미친, 그게 가능해?’

진은 깜짝 놀라 로메른을 바라봤는데, 녀석은 씩 웃을 뿐이었다.

진은 용수바람의 곁으로 다가갔다.

“다른 아이들의 성령을 느껴 봐. 그 힘을 더 키울 수 있을 거야.”

진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는데.

“……느껴진다.”

용수바람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아니,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키운다.”

로메른이 한 말처럼, 다른 성령들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이게 된다고?’

어떻게 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과정을 건너뛰고 결과에 도달한 것만 같았다.

[내가 말했지? 의지로 마법을 구현하는 놈들이라고.]

그때 해 줬던 설명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이건 너무 엄청났다.

[물론, 내가 준 성령이 대단해서 저게 가능한 거야. 그냥 사용하라면 저건 불가능해.]

그렇다고 해도 저건 대단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지금부터 용수바람의 상처를 치료할 거야. 지독한 기억은 남겠지만, 몸에 남은 건 치워 줄게.”

그렇다고 치료를 진이 해 주는 건 아니었다.

“증폭된 너희들의 힘을 용수바람이 가져갈 거야. 힘이 빠져나간다고 당황하지 마. 용수바람, 넌 아이들의 힘을 가져와!”

다른 이들의 성령에 개입할 수 있는 건, 주술사인 용수바람뿐이었다.

진은 이게 한 번에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는데, 친우의 회복이란 확고한 목표가 있어서일까.

증폭된 성령의 힘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용수바람에게 전부 흡수되었다.

‘미친.’

진은 새로운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신성력이 과도하게 모이면 찬란하게 빛난다. 그 빛은 더없이 성스럽고, 따듯하다.

‘이러니까 신의 힘이라 불리는 거겠지.’

그 빛 속으로 로메른이 들어갔다.

그리고 엄청난 빛이 터져 나왔다.

세상을 정화할 듯 밝은빛이.

“신이시여.”

빛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묘하게도 교구장의 목소리는 확실히 들렸다.

어째서 들리나 했더니.

“신이시여!”

교구장이 울부짖듯 소리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치 토하듯 소리쳤다.

그가 저러는 이유가 진은 대충 예상이 갔다.

‘이 양반이 미안하게.’

그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이번 여행은 세상의 끔찍함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교구장급이 성장할 정도로 끔찍한 여행.’

선하기에 세상의 어둠을 보고 상처받는 법이다. 사제이기에 쌓아만 두었을 것이다.

“신이시여…….”

그는 신을 부르짖으며, 속에 쌓인 걸 토해 냈다. 저 엄청난 빛은 용수바람만을 치유해 주지 않았다.

세상의 악의에 상처 입은 교구장마저도 치유됐다.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

교구장의 표정엔 어둠이 사라지고 평소의 온화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다만, 얼굴엔 곤란함이 가득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방금 본 것을 교황청에 보고해야 했는데, 너무나 경이롭고 대단해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물론 그 곤란함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마자 사라졌다.

“용수바람 상처 없다!”

“없다!”

“아프지 마라!”

용수바람의 몸에 새겨진 수많은 상처 또한 사라진 상태였다.

‘좋네.’

모두가 미소 지은 그 광경이 진의 가슴 한편을 간지럽게 만들었다.

* * *

노예가 셋이나 늘었음에도, 진은 다른 노예들과 대화할 시간을 갖거나 일부러 친해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대신 노바에게 직책을 주었다.

“노바, 이제 네가 대장이야.”

“대장?”

“저 아이들을 책임지는 건 내가 아니야. 노바 네가 할 일이야. 모든 지시는 노바 널 통해서 할 거야. 네가 대장이니까.”

“대장……. 알았다, 주인. 친우들 내가 책임진다!”

애초에 귀찮을 걸 싫어한 진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저 아이들을 받아들였을 리 없다.

‘이렇게 하면 다른 아이들을 노바가 책임지고 통제할 테니, 난 노바만 신경 쓰면 돼.’

이 방법이 정말 좋은 점은 귀찮음이 최소화된다는 것이었다.

진과 노바는 이미 충분한 신뢰가 쌓였다. 문제가 생길 리도 없었다.

‘이래서 중간 관리자를 두는 거지.’

영리하고 부지런한 중간 관리자는 윗사람의 수고를 덜어 주는 법.

“주인, 부탁이 있다. 함께 배우고 싶다.”

봐라. 이렇게 바로 신호가 왔다.

진이 신경 써야 하는 것까지 노바가 알아서 하는 아름다운 상황.

“좋아. 이야기해 둘게.”

“고맙다, 주인!”

고맙긴 내가 고맙지.

그렇게 넷은 함께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교구장과 기사단장은 3명이나 늘어나자 훨씬 바빠지긴 했지만,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도련님. 이런 아이들은 대체 어디서 찾으시는 겁니까. 제일 자질이 떨어지는 아이가 왕실 기사단원급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아마 그 친구 주술사일걸요?

기사단장에게 이 진실을 말해 줄 순 없었다.

기사단장만 이런 게 아니었다.

교구장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형제님. 용수바람, 이 아이는 천재입니다. 만약 형제님께서 데리고 계신 아이가 아니었다면, 사제가 되라고 했을 겁니다.”

용수바람의 재능에 깜짝 놀랐다.

뛰어난 데다가 악착같이 배우려고 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그 어떤 스승이 싫어할 수 있을까.

며칠간 지켜본 결과.

아이들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좋아. 그럼 나도 준비해 볼까?’

야만왕인 노란바람은 기사단장이란 훌륭한 스승이 있다.

주술사인 용수바람 또한 마찬가지다.

[주술사 교육은 내가 할 거야.]

최강의 흑마법사가 스승을 자청했다.

‘남은 둘이 문제야.’

레인저 날파람과 암살자 살바람.

둘은 아직 스승이 없었다.

기왕 써먹을 거면 제대로 가르쳐서 써먹어야 하는 법이다.

‘기사단장과 교구장의 기초 교육이 끝나기 전에 제대로 된 스승을 구해야 돼.’

그래서 스승을 구해 줄 생각이었다.

어떻게?

그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찾아 줄 사람을 구하면 된다.

“또 오셨군요, 도련님.”

정보 길드.

사람을 찾는 데 이만한 곳이 없다.

“예. 지부장님은 잘 지내셨습니까?”

“저야 언제나처럼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번엔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진은 곧장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했다.

“레인저 교육을 해 줄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레인저라…… 까다로운 직종이지만 충분히 구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은퇴한 레인저 몇몇을 알고 있습니다.”

“한 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그들과 접촉한 뒤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아. 레인저는 해결됐고.

이제 남은 건 암살자뿐이었다.

“단검 전투술을 가르쳐 줄 교관도 필요합니다.”

암살자 교관을 구해 달라곤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은신 쪽은 사막 쪽 기술이 더 좋다고 하니 필요 없었다. 기초를 다잡아 줄 단검술이면 충분했다.

“단검 전투술이라……. 이쪽은 뛰어난 실력자가 없는데, 괜찮으십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단검 전투술이 뛰어난 이들은 전부 암살자다. 그들이 교관으로 활동할 리가 없었다.

“예, 상관없습니다. 대신 그중 가장 뛰어난 이로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쪽도 접촉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진은 정보 길드를 나왔다.

‘으! 끝이다!’

교관들의 세부 사항은 서류만 확인하고 서명만 하면 끝이었다. 다시 안락한 생활로 돌아갈 차례였다.

진은 군것질거리를 몇 개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해먹에 누워서 먹어야지.’

물론 그건 진의 바람일 뿐이었다. 집에는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도착해 있었다.

“당신을 찾는 데 얼마나 많은 수고가 들었는지 모르실 겁니다.”

서류로만 봤던 남자.

“이거 참, 인사도 드리지 않았군요.”

훤칠하고 선해 보이는 귀공자.

“말릭 테스입니다.”

피에 미친 사이코패스.

말릭 테스.

그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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