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22화 (22/210)

022. 정의가 승리했나?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고, 충격적인 광경에 모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각종 고문 도구들과 피가 가득한 지하실.

백작도 이 정도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지 그의 표정은 사색이 되었다.

잠시 후, 조사를 마친 이단 심문관이 밖으로 나왔다.

“악마 숭배 의식이나 이교도의 의식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 말에 감찰대장이 대답했다.

“최악이군.”

감찰대장이 보기엔 이건 최악이었다. 구체적인 목적이 없는데 이런 일을 벌였다면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재미로 벌인 일이군.”

“……신이시여.”

교구장은 그 말을 듣고 아찔함을 느꼈다. 인간이 아무리 타락한다고 하여도 이럴 수가 있는 것인가!

그때, 백작이 끼어들었다.

“치료를 위해서였습니다!”

“치료? 이딴 짓이 무슨 치료지?”

아무리 노예라고 해도 이건 명백하게 선을 넘었다. 수법은 너무 잔인했고, 몇 명이 죽어야 이런 흔적이 남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광증을 다스리는 치료입니다. 피를 보면 그 광증이 사그라집니다. 평민들은 단 한 명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골드를 주고 구매한 노예만 죽였습니다.”

백작의 말에도 감찰대장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구겨졌다.

“알면서 노예를 지원해 주었다는 건가?”

“자식이 아픈데, 아비로서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백작이 그렇게 호소하고 있을 때 여태껏 조용하던 범인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제가 말해도 되겠습니까?”

지금 상황과는 달리, 녀석의 말투는 평온했다. 녀석은 아비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곧장 다시 입을 열었다.

“확인이 끝났으면 이걸 좀 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 태연스러운 태도에 검찰 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제가 노예를 죽이긴 했지만, 사특한 의식을 한 게 아닌 건 확인하셨을 겁니다. 한데, 절 아직도 붙잡아 두시는군요.”

전혀 잘못한 게 없다는 태도에 교구장이 입을 열었다.

“노예 보호법을 모르십니까?”

분노마저 보이는 그의 말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건 왕국의 법령에 있는 법이 아니지 않습니까? 앞으로 교단의 치료는 받지 않겠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게다가 저의 행동이 거북하셨다면, 앞으론 노예도 구매하지 않겠습니다.”

그에게선 일말의 반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교구장은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처벌을 감수했으며, 앞으론 노예를 구매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여기서 교구장이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그의 시선은 교구장 옆에 있는 감찰대장을 향했다.

“제 부덕함 때문에 감찰부가 움직이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깔끔하게 사과한 뒤.

“아버지는 못난 아들을 지원해 주셨을 뿐, 아무런 잘못이 없으십니다. 그 분노가 백작가가 아닌 제게 향했으면 합니다.”

이번에도 그는 해결책을 내어 놓았다.

“혹시나 제가 이곳에 있는 게 불안하다고 생각하시면, 세상과 격리되어 살겠습니다.”

“격리?”

“예. 제가 노예도 구매하지 못하면 혹시나 날뛰지 않을까 걱정이신 거 아닙니까? 그러니 제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격리하겠습니다.”

“말해 봐라.”

“언제나 젊은이가 부족한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카이얀 대요새. 그곳에 자원입대하겠습니다.”

몬스터가 들끓고, 언제나 전투가 벌어지는 지옥.

“아들아!”

백작은 아들의 말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아들의 표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 괜찮습니다.”

괜찮다?

그렇지 않다.

사제의 치료받지 못한다는 제한은 지금도 유효하다. 끊임없이 전투가 벌어지는 그곳에서 치료조차 받지 못한다면?

반드시 죽는다.

“쯧.”

감찰대장은 혀를 찼다.

저 녀석의 논리는 완벽하다.

처벌이 부족한가?

아니, 오히려 차고 넘친다.

게다가 녀석이 그곳을 왜 자원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피를 보고 싶다면, 그곳만 한 곳이 없겠지.’

왕국은 평화롭다. 이런 세상에서 피를 볼 수 있는 곳은 오직 그곳뿐이다.

“풀어 줘라.”

감찰 대원은 그를 풀어 주었다.

“네 이름은 무엇이지? 내가 기억해 두겠다.”

서슬 퍼런 감찰대장의 말에도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왕국을 수호하는 감찰대장님께서 제 이름을 기억해 주신다니 영광입니다. 전 ‘말릭’입니다.”

감찰대장이 할 일은 끝났다.

“철수한다.”

감찰부와 이단 심문관이 물러났다. 그들이 물러가자 백작은 입을 열었다.

“어쩌자고 그런 약속을 한 것이냐! 대체 어쩌자고!”

백작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저택에 울려 퍼졌다.

백작가 저택 앞.

이곳에 오는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감찰대장이 입을 열었다.

“교구장님, 방금 봤던 말릭이란 아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간 같지 않다 생각했습니다.”

“역시 그러셨습니까?”

“저와는 다르게 보셨습니까?”

감찰대장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전쟁 중이었다면 저 인간 같지 않은 녀석은 영웅으로 불렸을 겁니다.”

“…….”

교구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면 저 악마는 영웅으로 불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교구장과 감찰대장.

둘은 아무런 말도 없이 복귀하기 시작했다.

충분한 처벌을 했고 사람을 구했지만, 무엇 하나 시원하지 않았다.

교구장의 머릿속에 녀석의 평온한 표정이 떠올랐다.

* * *

진은 교단을 통해 어떻게 일이 되고 있는지 빠르게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형제님께서 확인하셔야 합니다.”

이게 가능했던 건 교구장 덕분이었다. 진은 돌아가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정말이지 놀라웠다.

‘감찰부를 움직이다니…….’

왕국과 사이가 틀어지지 않기 위해 교구장은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정말 섬세하고 뛰어난 판단이었다.

한데, 이런 진의 감탄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친…….”

범인은 싸이코패스 같아 보였다.

한데, 녀석은 단순한 싸이코패스가 아니었다.

“뭔 이딴 새끼가 다 있어! 이거 세상을 멸망시키 데 일조한 놈 아니야?”

[말릭이라. 어디서 들어 본 거 같은데…….]

진의 물음에 로메른이 전혀 다른 정보를 전해 줬다.

[어!? 말릭 후작? 그 전쟁 영웅 같은데?]

영웅. 이 끔찍한 녀석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영웅? 이딴 놈이 어떻게 영웅이 돼?”

[야만족과의 전쟁. 그때 전쟁 영웅으로 뽑힌 자 같은데? 내 기억에 있을 정도로 나름대로 유명했던 녀석이야.]

“……그게 말이 돼?”

이딴 녀석들이 있으니까 야만족이 들고일어났을 텐데 전쟁 영웅이 된다니.

[이런 일이 있었는 줄은 나도 몰랐어. 손 속이 잔인하다곤 들었어도, 그건 오직 적을 향한다고 들었는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자식한테 야만인들은 사람이 아니었던 걸까?

그는 악인인가 선인인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 상념을 일깨운 건, 로메른이었다.

[괜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지도 말고.]

“뭐?”

[수많은 변수를 모조리 통제하는 건 신의 영역이야. 큰 틀에서 보면 우린 최고의 선택을 했고, 최상의 결과를 만들었어.]

과연 그랬을까?

솔직히 진은 잘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우린 목표를 이뤘어. 주술사를 구했잖아. 위험도 배제했고.]

“그건 그렇지.”

로메른의 말대로 우린 목표를 이뤘고, 말릭인지 뭔지 하는 놈도 오지로 처박았다.

[게다가 녀석이 카이얀 요새로 간 건 정말 잘된 일이야.]

“잘됐다고?”

[어. 안 그래도 그쪽엔 골드라도 지원을 해 주려고 했어.]

“왜?”

[그쪽에 한번 난리가 나거든, 큰 위험은 아니지만. 뭐, 미래의 전쟁 영웅을 보내 줬으니 골드 따위보단 훨씬 좋지 않겠어?]

“위험하겠네?”

[당연하지. 녀석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대륙의 평화를 위해 일할 거야. 지가 반성을 하든 안 하든 그건 변하지 않아.]

그 말을 들으니 가슴속에 묵직하게 내리누르고 있던 게 쑥 내려간 기분이었다.

“잘됐네.”

진의 심각하던 표정이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왜? 골드를 아껴서?]

“야, 이! 날 뭘로 보고!”

뭐, 그 이유도 없지 않았지만.

* * *

며칠 뒤.

특별 주문한 가마가 집에 도착했다. ‘3보 이상은 걷지 않겠다!’라는 의지에서 나온 괴작이었다.

“와우.”

진은 가마를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로메른이 열심히 번 골드를 상당량 때려박긴 했는데, 이렇게 잘 만들어질지 몰랐다.

진은 바닥에 놓인 가마에 앉아 보았다.

“쿠션 좋고.”

푹신한 쿠션이 진의 몸을 휘감았다. 돈이 좋은 건 판타지나 지구나 똑같았다.

진은 의자 옆을 손으로 더듬었다.

“레버가…….”

진이 특수 주문한 가마엔 특별한 기능이 있었다. 카 시트를 뒤로 누일 수 있는 것처럼, 가마의 좌석은 각도 조절이 되었다. 레버를 당기니 가마의 시트가 부드럽게 뒤로 넘어갔다.

“오오. 제대로 만들었는데?”

애초에 특수한 자재들로 만들었으니 쉽게 부서질 리도 없었다. 그렇게 가마를 둘러보고 있을 때, 손님이 더 방문했다.

“형제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우리의 영웅!

진의 든든한 빽!

교구장이었다.

“교구장님!”

진은 벌떡 일어나 교구장을 향해 달려갔다. 그 모습을 교구장은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예, 형제님.”

교구장의 느낌은 어딘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신께서 제게 원하신 것을 확인한 기분입니다.”

“……괜히 저 때문에 고생하신 거 아닌가 싶습니다.”

“아닙니다. 제 중심은 더 단단해지고, 그분의 뜻을 확인했습니다.”

그 말에 로메른이 대꾸했다.

[진짜네. 말만 번지르르한 게 아니야. 신성력이 더 커진 거 같은데? 이야, 교구장급이 여행 한 번에 성장을 해? 신을 찾을 만하네.]

아니. 여기서 성장을!?

진이 황급히 대답했다.

“축하드립니다.”

진의 뜬금없는 칭찬에, 교구장은 로메른을 바라봤다.

“이 아이가 말해 준 모양이군요. 모두 형제님 덕분입니다. 제 좁았던 세상이 더 넓어졌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진은 조금 미안한 기분이었다. 진 때문에 여행을 가서 본 것이 깨끗한 세상은 아니었으니.

진이 미안한 표정으로 머뭇거리자, 교구장이 먼저 화제를 돌려 주었다.

“이럴 때가 아니죠. 그 아이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구해 온 아이. 이 아이는 진보다 먼저 봐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노바를 부르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진은 곧장 노바를 불렀다.

“노바! 친구 왔다!”

진의 부름에 집 뒤쪽에서 노바가 바람처럼 튀어나왔다.

“주인! 나왔다!”

교구장은 순박한 노바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며 한 아이를 보여 주었다.

“용수바람. 형제님께서 찾으시던 아이입니다.”

그 아이를 본 진은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노바처럼 녀석은 아이라 부르기엔 너무 큰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커다란 몸 위로 신성력으로도 지워지지 않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진과는 달리 노바는 만난 것만으로도 즐거운 거 같았다.

“용수바람!”

“노란바람!”

두 아이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어?”

희소식은 한 번에 온다고 하더니.

“정보 길드에서 나왔습니다. 부탁하신 두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마치 짠 것처럼 타이밍 좋게 정보 길드까지 도착했다.

[정보 길드 지부장이 신경 좀 썼나 본데? 말 상태랑 마부들 상태가 엄청 안 좋아. 교구장 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도착시키려고 무리 좀 했나 봐.]

하여간 음흉한 양반이다. 그래도 이런 편집증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날파람! 살바람!”

“노란바람!”

“용수바람!”

넷이선 악수를 할 수 없는 법.

네 사람은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훈훈하네.’

진의 시선이 넷에게 향했다.

귀찮긴 했지만, 저들을 구해 낸 보람이 있었다.

[가마꾼들 왔다고 좋단다.]

아씨. 그런 거 아니라니까!

물론 그 감상은 순식간에 깨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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