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21화 (21/210)

021. 교구장이 움직이다

이곳의 교단은 좀 특별하다.

정치에 참여하지도 않고, 골드를 모으지도 않는다. 그저 주민들을 돕고, 신의 뜻을 퍼트릴 뿐이다.

지구라면 일부에 불과한 ‘참 종교인’이 이곳에선 보통일 뿐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종교인이다.

덕분에, 사제의 서품을 받은 자들은 주민들은 물론이고 귀족들의 존경까지 받게 된다.

‘그럼 교구장은 어떨까?’

비록 촌구석에 있는 교구장이라고 하더라도, 엄청난 영향력을 갖게 된다.

진은 그런 교구장에게 부탁한 것이다.

“어떤 부탁입니까, 형제님.”

교구장은 진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이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교구장이 자신과 만난 것을 신의 뜻이라는 묘한 소리를 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신이 뭔가를 하면 언제나 크게 놀라워하며 감동했다.

‘그의 오해를 이용해야 돼.’

그가 정확히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이용할 생각이었다.

“며칠 전 노바가 제게 처음으로 부탁을 하나 했습니다. 친우를 구해 달라는 부탁이었는데, 전 이를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진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3명 중 2명은 구했으나 1명에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교구장이 입을 열었다.

“백작가입니까?”

“예. 중부에 있는 테스 백작가입니다.”

교구장은 무언가를 생각한 뒤 대답했다.

“제게 시간을 좀 주시겠습니까?”

간단히 될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제가 구해 오면 그때 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직은 확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백작가가 그 정도인가?

진이 의문을 떠올렸을 때,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이제부턴 정치의 영역이야.]

정치?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설마, 달라고 하면 그냥 준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 교단이 귀족에게서 노예를 빼앗는 일이야. 교단이 노예제를 반대한다는 인상을 남길 수도 있어.]

진은 로메른의 말을 이해했다.

현재 대륙에는 노예 제도가 만연하다. 배달해 줄 정도로 발전했다는 건, 하나의 ‘문화’가 되었단 뜻이다.

그런 걸 교단이 거부한다면?

왕국과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다.

“제가 너무 무리한 부탁을 드린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죄송합니다.”

진이 사과하자 교구장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형제님께서 펼치시는 뜻을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큰 뜻은 작은 도움이 모여 만들어지는 법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지만, 진은 아니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오해를 이용해 부탁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좋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진은 그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 *

교단에서 돌아오는 길.

뒤에 있던 노바가 입을 열었다.

“주인, 미안하다. 이럴 줄 몰랐다.”

녀석은 자신이 한 부탁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걸 느꼈는지 대뜸 사과부터 했다.

“됐어. 괜찮아.”

솔직히 말해서 괜찮았다.

일이 복잡해지는 건 교구장 문제였고 진은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노바는 그걸 다르게 받아들였는지 감동한 얼굴로 진을 바라봤다.

“손발 오그라드는 이야기 그만하고, 친우들 자랑이나 해 봐. 내가 구해 주는 보람이라도 있게.”

“응! 알겠다!”

녀석은 곧장 친구들 자랑을 시작했다.

“처음 구한 ‘날파람’. 발 빠르다. 눈 좋다. 활 잘 쏜다.”

노바 녀석이 단순하게 설명하면.

[레인저라고 생각하면 돼. 정찰 및 원거리 공격 특화. 사막전사 중에 별로 없는 종류야.]

그 설명을 로메른이 받아 다시 풀이해 주었다.

“두 번째 구한 살바람. 은밀하다. 숨으면 못 찾는다.”

[오. 암살자도 있어? 사막의 암살자는 들어 봤지?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암살하는 녀석들이야. 암살계의 전설이라고 보면 돼.]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모두 구한 상태였다. 진이 제일 궁금한 건 마지막 세 번째였다.

“마지막은?”

“용수바람. 주술사다. 똑똑하고, 전사들만큼 튼튼하다.”

주술사? 진은 단순히 의문을 떠올렸을 뿐이지만, 로메른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사막 주술사!? 미친. 진짜!?]

대체 사막 주술사가 뭐길래 이 난리를 피우는 걸까.

[얘가 뭘 모르니까 놀라질 않네. 사막 주술사라니까!?]

아니,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요.

또 또 지 혼자 아는 이야기 한다.

진이 게슴츠레 눈을 뜨고 쳐다보니, 녀석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 기운 운용력만 놓고 보면 대륙 최강이야. 이놈들은 마법을 쓰는데, 연산이고 설계고 없어. 의지로 사용한다니까? 애초에 대륙에 몇 있지도 않아!]

어. 음. 그게 대단한가?

얼마 없어서 귀하다고 하는 거야?

그래도 진이 못 알아듣자.

[쉽게 말해 줄게. 야만왕만큼 두려웠던 존재가 야만왕의 주술사였어. 내가 확실히 기억할 정도로 뛰어난 자였다고!]

야만왕만큼 대단한 자.

이러니까 느낌이 팍 왔다.

[생각이 달라졌어. 이건 무조건 구해야 해. 만약 이 녀석만 오면…….]

녀석은 알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구하면 쓸모 있다 이거지?’

그렇다면 이 정도 수고는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구해 줄게. 무조건.”

“고맙다, 주인.”

아니, 내가 고맙지.

이런 걸 상부상조라고 하나?

* * *

플린트 남작령의 교구장 ‘가롯’.

진에게 시간을 달라고 한 그가 방문한 곳은 다름 아닌 교황청이었다.

“교황님께 보고드립니다.”

“말하라.”

“저번에 제가 발견한 신의 뜻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신의 뜻’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모두 나가라. 그리고 이 이야기를 아무도 들을 수 없게 하라.”

교황은 모두를 내보내고, 그 누구도 이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조치했다.

잠시 후, 교황이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 축복을 받은 그 아이의 일인가?”

“그렇습니다, 교황님.”

교구장이 축복을 사용하면 그건 당연히 교황청으로 보고가 된다. 교황은 이미 ‘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진은 축복을 받고, 빛의 정령을 소환하고, 악령을 성령으로 만들었다. 일련의 이 과정은 사제라면 ‘신의 뜻’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드높은 자리에 있는 교황이라도 그건 다르지 않았다.

“성령을 부여해 성령의 힘을 사용하는 성령 사용자가 탄생했습니다.”

“무엇이?!”

“성령 사용자입니다. 그를 지도한 결과, 성령의 힘을 빌리면 간단한 성법을 사용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심지어, 성령의 힘을 빌려 사용하는 사용자가 만들어졌으니.

“……신이시여.”

교황은 다시 한 번 ‘신의 뜻’인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성령 사용자의 신분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야만인으로 불리는 노예입니다.”

노예란 말에 교황은 나지막이 침음을 흘렸다.

“노예 제도를 내버려 둔 우리를 신께서 꾸짖으시는구나.”

노예 제도는 굉장히 까다로운 문제였다. 교단은 당연히 노예 제도를 싫어했지만, 대륙 전체에 노예 제도는 너무나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그렇기에 교단은 싫어도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교황님. 신께서도 교황님께서 노예 제도를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아실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교단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참 종교인’이다. 교단은 몇십 년에 걸쳐 ‘노예 보호법’을 뿌리는 데 성공했다.

-노예는 계급일 뿐, 그들도 인간이다. 함부로 죽이거나 피해를 주는 건 불가하다.

-만약 이를 어길 때, 교단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치료해 주지 않겠다.

치료해 주지 않는다는 처벌은 얼핏 보면 가벼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기에 하는 소리다.

포션이나 다른 치료법은 한계가 있다. 그렇게 한계에 봉착하면 이 처벌의 무서움이 드러난다.

교단은 절대 치료해 주지 않는다. 덕분에 평생을 병과 질병을 두려워하며 살 수밖에 없게 된다.

덕분에, 노예에게 예전처럼 채찍질하거나 굶기는 가학적인 행위는 대륙에서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교황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가롯 그대의 부탁이 노예들의 해방이라면 난 들어 줄 수 없다.”

“아닙니다. 제가 부탁드리려는 건 그게 아닙니다.”

“하면?”

“백작가에 팔려 간 노예 하나를 되사 오고 싶습니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교구장이 찾아왔단 건 뭔가 문제가 있단 뜻이었다.

“문제가 있나 보군.”

“예. 그렇습니다. 아마 고문이나 학대가 이뤄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이미 구매 시도를 해 봤는데, 싫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흐음.”

“정보 길드의 조사에 따르면 최소 여섯의 노예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합니다.”

“……신이시여.”

교황은 이 일이 보통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무려 여섯의 생명이었다. 단순한 학대나 고문이 아니었다.

“이건 우리 교단만 움직이면 큰일로 번질 게다. 왕국과의 마찰은 둘째 치더라도, 백작가에선 절대 내주지 않을 것이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하여 교황님을 찾아 뵀습니다.”

교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롯, 이 영리한 아이는 경솔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에게 온 것이다.

신의 뜻을 따르려는 사제를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교황의 책무.

교황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이단 심문관 둘과 편지를 하나 줄 테니 왕국 감찰대로 향하거라. 감찰대장인 백작에게 편지를 보여 주면 그쪽에서 알아서 움직일 것이다.”

왕국과 문제가 생길 게 걱정이라면, 왕국과 함께 움직이면 된다.

이게 교황이 내린 해답이었다.

교구장은 교황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교구장을 보며 교황은 한 가지를 당부했다.

“진 플린트. 신의 뜻을 행하고 있는 그 아이를 주시하거라.”

“신의 뜻을 위하여.”

교구장이 교황의 말에 조용히 대답했다.

* * *

모두가 잠든 늦은 새벽.

테스 백작가에 손님이 방문했다.

“누구냐!”

당당한 문지기의 태도는 그들의 신분을 보고 사라졌다.

“왕국 감찰부다.”

“이단 심문관입니다, 형제님.”

감찰부와 이단 심문관의 방문.

하나만 방문해도 백작가가 뒤집힐 일이었는데, 둘이 함께 방문했다.

“문을 열어라. 그리고 우리가 방문한 걸 백작에게도 전하지 말아라.”

서슬 퍼런 감찰부의 말에 문지기는 황급히 대답했다.

“예, 옙!”

백작가의 문이 조용히 열린다.

이건 문지기의 잘못이 아니었다.

감찰부는 기본적으로 ‘왕명’이라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 땅에 사는 이라면 그 명을 거부할 수 없다.

게다가 그 뒤를 따르는 이단 심문관은 악마다. 악마를 잡기 위해 악마가 된 이들. 교단의 유일한 칼이자, 그 무엇보다 무서운 칼.

한 무리의 사람이 백작가 안으로 진입했다.

“너희는 누구냐…… 흐읍!”

때때로 기사들이 그들을 막아섰지만, 침음성을 삼키며 뒤로 물러설 뿐이었다.

그들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백작의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수색하라.”

감찰부가 집 안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그들은 저택을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 소란에 백작이 내려왔다.

“감찰부와 이단 심문관들께서 여기까진 무슨 일이십니까.”

침착하고 당당한 백작의 말투.

“잠시 조사할 게 있다.”

“이 새벽에 말입니까?”

감찰대장은 백작을 빤히 바라봤다.

“시간을 끌고 있군. 우리가 왜 왔는지도 알고 있고.”

그 말에 백작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자신의 속내를 완벽하게 들켰다.

“제가 다 설명…….”

백작은 황급히 핑계를 대려고 할 때.

“발견했습니다!”

감찰부가 해답에 먼저 도달했다.

백작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오해입니다.”

“그건 우리가 직접 확인하겠다.”

백작은 뭔가를 생각하듯 대답하지 않았다. 곧이어 안쪽에서 한 번 더 소란이 일었다.

“용의자 확보!”

“피해자 발견!”

“현장 보존해 두었습니다!”

그 말에 감찰대장과 이단 심문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작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그 뒤를 따랐다.

저택의 숨겨진 지하실. 그곳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이상한 냄새가 풍겼다. 귀족가 저택에서는 절대 나지 않을 탄 냄새와 피비린내.

지하실 입구에는 피투성이인 남자 둘이 전혀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노란색 피부의 남자는 죽은 듯 누워 있었고, 훤칠한 미남인 남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감찰대원들에게 붙잡혀 있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이단 심문관 사이에 조용히 서 있던 교구장이었다.

“치료부터 하겠습니다.”

교구장은 누워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기도하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다친 어린 양에게 성스러운 힘을 내려 주소서.”

엄청난 신성력이 노예의 몸에 깃들었다. 마치 시간을 뒤로 되돌린 것처럼 노예 몸에 있던 상처가 사라진다.

이내 죽은 듯 누워 있던 남자가 정신을 차렸다.

“크……윽.”

교구장은 그 남자의 귓가에 나지막이 희소식을 전해 주었다.

“노란바람의 친우라 들었습니다. 한숨 푹 자고 나면 친우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을 이해한 걸까.

그는 곧장 기절하듯 잠들었다.

“후, 신이시여.”

다행히 피해자는 구했다.

교구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건 잠깐일 뿐이었다.

‘신이시여!’

교구장의 눈 속에서 분노가 일렁였다.

“이단 심문관님들께선 해야 할 일을 해 주시길.”

여태껏 가만히 서 있던 이단 심문관들이 움직였다.

“지금부터 악마 숭배 의식이 있었는지 조사하겠다.”

“아, 악마 숭배 의식이라니! 그런 게 아닙니다!”

백작은 화들짝 놀라 소리쳤지만, 조사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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