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 노바의 친우들
최근 노바는 많은 것들을 배웠다.
“네 몸은 명검과도 같다. 하지만 그 명검을 일반 철검처럼 쓰고 있구나. 제대로 몸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 보겠느냐?”
기사단장에게서 몸을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당연히 그 배움은 쉽지 않았다.
혹사를 넘어, 몸을 파괴하려는 것만 같은 수련. 하지만 노바는 그 수련이 못내 즐거웠다.
‘난 그저 몸을 휘두르기만 했구나.’
배움 속에서 발전이 있었고, 혹사당한 몸은 단숨에 회복할 방법이 있었다.
하루하루 자신이 발전하는 게 느껴졌다.
“견뎌라. 네 몸은 두드릴수록 더 강해지니. 너도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질 것이다.”
“나. 강해진다!”
“그래, 강해지거라. 강해지면 그 누구도 널 야만인이라 칭하지 못할 것이다. 왕실 기사단까지 갔던 내가 보장하마.”
그 말은 노바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여태껏 머릿속에 맴돌던 의문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주인은 어째서 내게 이런 배움을 내려 주는 것인가?’
하지만 그 의문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디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냐! 집중해라! 이 기회가 얼마나 천금 같은 기회인지 잊지 마라!”
그 말대로였다.
지금은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이유나 목적을 찾을 만한 여유 따윈 없었다. 지금은 충만한 하루하루에 집중할 때였다.
그렇게 그에게 배움을 내려 주는 건 기사단장만이 아니었다.
교단.
그것도 교단의 교구장이 자신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었다. 교구장의 교육은 기사단장과 정반대의 교육이었다.
몸이 아닌 정신에 관한 교육.
“형제님, 저와 할 일은 간단합니다. 가슴속에 중심을 세우는 겁니다.”
“중심? 어렵다.”
“그리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전 가슴속에 신앙이란 중심을 세웠습니다. 신앙과 함께하면 전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난 없다. 신앙.”
“그러니 찾으셔야 합니다. 형제님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형제님께서 소중히 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배움은 육체를 단련하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육체를 단련해 온전히 다루듯, 생각을 정리해 정신을 온전히 바로 세우는 것.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명상이 매일같이 이뤄졌다. 그러다 해답에 가까운 것들을 떠올렸다.
“사막, 태양, 형제…… 주인.”
“좋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입니다. 그 모든 걸 아우르는 생각을 떠올려 보세요.”
쉽지 않았다.
번뇌와 번민이 오갔다. 그렇게 며칠이 다시 지나고, 그는 너무나도 가까운 곳에서 해답은 찾았다.
“나 지킨다.”
수호.
신앙과는 다르지만, 그는 뜻을 세웠다.
“좋은 뜻을 찾으셨습니다. 그걸 가슴에 새기는 겁니다. 그걸 다짐이자 목표, 인생의 지표로 삼는 겁니다.”
어떻게?
방법은 똑같았다.
노바는 명상하고, 교구장은 조용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여러 이야기를 한다.
교구장의 목소리는 노바의 명상을 방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인도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정신적 인도나 마찬가지였다.
“지키는 건 공격하는 것보다 몇 배나 어렵습니다.”
“어려운 길이야말로, 인생의 이정표가 되어 줄 수 있을 겁니다.”
…….
그러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을 수도 있었다.
“형제님께서 그대를 이곳에 보낸 이유를 아십니까? 그대를 지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차별과 모욕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대가 형제님을 지킨다구요? 이미 형제님이 당신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째서 성령인지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그대가 어떻게 제게 배움을 받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까?”
그의 머릿속에 맴돌던 의문.
하루하루 쫓겨 미뤄 놨던 질문.
‘주인은 내게 왜 이런 배움을 내려 준 것인가. 이 모든 것을 왜 내게 준 것인가.’
교구장의 입에서 주인의 의도가 흘러나왔다.
“그대가 성법을 익히고 성령을 사용한다면 그 누구도 그대에게 야만인이라 하지 못할 겁니다.”
자신을 위해서였다.
기사단장이 한 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이 강해진다면.
자신이 성령을 사용한다면.
그 누구도 자신을 야만인이라 부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형제님의 이런 행동은 이 대륙에 새로운 시대를 열 겁니다. 그걸 형제님께서 모르셨을 거 같습니까?”
아니, 그의 주인은 게으른 것 같아도 그렇지 않았다. 주인은 영리한 자다. 누워서 남들이 하지 못할 일을 뚝딱 해치운다.
“형제님께선 그대에게 자신을 지켜 달라 했습니다. 그 대신 형제님께선 그대와 그대의 부족들 전부를 구해 주실 생각이신 겁니다.”
진이 들었다면 절대 아니라고 했을 것이다. 그딴 거창한 계획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노바를 보낸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안 보내면 귀찮게 구니까!
하지만 이 진실은 진과 로메른만이 알 뿐, 다른 이들은 모른다. 덕분에 이런 오해가 피어났다.
“지킨다!”
야만왕은 감동했다.
자신은 코앞도 보지 못했다.
주인이 자신을 이리 생각하는지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자신은 끊임없이 주인을 살펴보고 확인했는데, 주인은 자신을 위해 큰 뜻을 펼치고 있었다.
‘지킨다!’
야만왕의 가슴에 중심이 선다.
인생의 목표가 정해진다.
절대 흔들리지 않을 중심!
“성법은 그 중심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간절히 바라세요. 당신의 중심을 확인한 신께서 힘을 내리실 겁니다.”
순간적으로 야만왕의 몸에서 신성력이 일렁였다.
“신이시여. 이 종은 당신의 뜻을 보았습니다.”
교구장은 그 모습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 * *
노바는 중심을 찾자마자 곧장 움직였다. 진에게 친우들을 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내 친우들 노예다. 친우들과 주인을 모시고 싶다.”
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몇 명이야?”
“셋이다.”
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로메른을 바라봤다.
[셋? 친위대는 그보다 더 많았던 거 같은데? 아, 기억이 완벽하지 않으니까 너무 답답하네.]
로메른은 답답하다는 듯 대답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정보를 얻을 곳은 한 곳 더 있었다.
“노바. 질문이 있어.”
“뭐든 대답하겠다, 주인.”
바로 노바가 정보를 줄 또 다른 사람이었다.
“친우들을 사 달라고 한 이유는 뭐야?”
말 돌릴 필요 없었다.
녀석은 미래의 야만왕이라 불린다고 들었다. 녀석이 어눌하게 말한다고 멍청할 리 없었다.
교구장님과 기사단장님이 이런 말을 해 줬다.
‘노바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영리한 아이다.’
그렇다면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다.
“주인, 큰 계획 있다.”
어. 그런 거 없어.
물론 진은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저 녀석이 말하길 기다렸다.
“그 계획에 도움 된다. 함께 주인 지킨다. 친우들이 딱이다.”
어디서 시작된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노바는 진이 큰 뜻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뭐, 회귀자를 도와주기도 할 거니까 틀린 이야기는 아닌가?’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무엇을 오해하든 그 아이들이 딱 맞는 적임자란 뜻이었다.
‘재능이 있다는 거지?’
단순히 친우들이 불쌍해서 사 달라는 게 아니었다. 녀석은 더 멀리 보고 있었다.
[맞네. 친위대 맞아. 재능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녀석이 빈말할 녀석은 아닌 거 알지?]
로메른도 그 뜻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인상착의 모두 기억하지?”
“기억한다. 친우들 잊은 적 없다.”
그러면 복잡하게 갈 것 없었다.
정말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밖에 나갈 준비 해.”
진은 해먹에서 몸을 일으켰다.
* * *
정보 길드.
이곳은 이상하게 오기 꺼려지는 장소였다. 하지만 이곳만큼 많은 정보를 가진 곳은 없었다.
괜히 상단 이곳저곳 알아본다고 시간 낭비하느니 여기서 도움을 받는 게 빨랐다.
정보 길드 안으로 들어가니, 저번과는 달랐다.
“이쪽입니다, 도련님.”
다른 정보 길드원이 나와서 진을 특별실로 안내했다. 그렇게 특별실 내부에서 잠시 기다리니, 보고 싶지 않던 사람이 들어왔다.
“다시 찾아 주셨군요, 도련님.”
정보 길드 지부장.
그는 반가운 얼굴로 진에게 인사했다. 괜히 여기서 말려들 필요가 없었다.
진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람을 좀 찾고 싶습니다.”
“잘 찾아오셨습니다. 그건 저희가 전문이지요. 어떤 사람을 찾으십니까?”
“노바, 설명해 줘.”
진이 뒤에 서 있는 노바에게 말하자, 지부장은 잠시 이채를 띠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저희도 사람을 좀 불러 오겠습니다.”
“예. 기다리겠습니다.”
진이 그렇게 대답하자마자 특별실 안으로 정보 길드 옷을 입고 있는 야만인이 들어왔다.
“현지어로 들어야 더 정확한 설명이 가능해서요. 정보가 자세할수록 더 빠르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정보 길드의 일 처리 방식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면 지구의 웬만한 회사보다 나은 거 같은데?’
진이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노바와 정보 길드원은 야만족의 언어로 대화를 나눴다.
잠시 기다리면 될 일이었는데, 지부장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노예를 추가 구매하시는 겁니까?”
“예. 아시는 것처럼 제가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서, 가마를 타고 다닐까 해서요.”
“호오. 가마라. 그렇게 쓰긴 아까운 인원들 아닙니까? 저번에 명예 결투하시는 걸 봤습니다.”
“……그 전에 가신 줄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습니까?”
“예. 돌아가려는 찰나에 이상한 분위기가 흘러 남아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로메른이 입을 열었다.
[저거 거짓말이야. 가는 거 내가 확인했어. 아마 다른 곳에서 들은 거겠지.]
역시나 음험한 아저씨였다.
이딴 거짓말은 대체 왜 하는 거야.
편집증 환자의 의도를 생각해 봐야 머리만 아픈 법이다. 진은 모른 척 넘어갔다.
“아무튼, 호위 겸 가마꾼 정도로 사용하지 않을까 생각 중입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눈을 빛내며 알겠다고 말하는 지부장. 대체 뭘 알겠다고 한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대화를 더 해 봐야 손해 같았다.
진이 입을 다물고 노바를 바라보자, 그도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잠시 후.
둘의 대화가 끝났다.
노바와 대화를 나눈 정보 길드원이 지부장에게 조금 전 받아 적은 것을 내밀었다.
“흐음. 이 정도 정보면 충분합니다. 특징, 이름, 나이, 출신. 전부 명확하니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건 다행이었다.
“셋이 어디 있는지 찾아 드리면 되겠습니까?”
진은 고개를 저었다.
찾는 것만 부탁하면 직접 사러 가서 교섭까지 해야 했다. 그건 너무 귀찮은 일이었다.
“주인이 있다면 구매까지 부탁드립니다. 골드를 더 주고서라도 구매하겠습니다.”
“그렇기까지요? 그럴 가치가 있는 겁니까?”
가치? 차고 넘친다.
“예. 제게 필요한 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필요한 겁니다.”
“오호. 뒤에 있는 호위와 연이 있는 이들인 모양이군요. 알겠습니다. 구매까지 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귀찮을 필요도 없이, 정보 길드 측에서 구매해 줄 것이다.
“대금은 어떻게 드리면 되겠습니까?”
“특별실에 모시는 특별한 손님인데, 후불로 달아 두겠습니다.”
그래 주면 이쪽은 땡큐였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잘 부탁드립니다, 도련님.”
그렇게 훈훈하게 거래가 끝났다.
* * *
정보 길드의 일 처리는 정말 확실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노예를 구매해 이송 중이라는 소식이 계속 도착했다.
그렇게 둘은 무난하게 확보가 됐는데, 남은 하나가 문제였다.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절대 못 팔겠다고 합니다.”
완벽한 일 처리에 균열이 생겼다.
“골드를 더 쳐준다고 해도 안 판답니까?”
“그렇습니다. 어떻게 교섭을 해 보려고 했는데, 교섭 자체가 되질 않았습니다. 게다가 상대는 일반 귀족가도 아닌 백작급이라 저희가 더는 손쓰기 힘든 상황입니다.”
진은 혹시나 해서 물었다.
“혹시 그곳에서 신뢰를 받는 겁니까? 잘 지내고 있다고 하면 억지로 빼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건 아닙니다. 오히려 노예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거 같았다.
‘그럼, 억지로 뺏어 올 수밖에 없겠는데.’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강제로라도 받아 내야 했다.
“잠깐 기다려 주세요. 해결책을 가져오겠습니다.”
“해결책요?”
“예.”
이럴 때 직빵으로 통하는 약이 있었다. 진은 곧장 교단으로 향해 교구장과 면담을 신청했다.
“교구장님.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백작? 니가 안 내놓는다고?
귀족 작위로 안 되면, 교단을 끌고 가면 될 일이다.